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8화 (8/501)

# 8

강남 유명 역술인 박도사 (1)

구건호는 지금의 공돌이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우니까 정말 고모가 말한 철학관을 가고 싶었다.

“사주팔자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생활이 너무 비참하니 거기라도 가보자.”

구건호는 원룸에서 혼자 또 술을 마셨다. 술이 없으면 지금의 현실을 이겨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공장은 오전 8시부터 작업 후 10시가 되면 15분간 휴식 타임이 있었다. 구건호는 고모가 말한 강남 철학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철학관 원장이 아닌 젊은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은 지금 상담중이십니다. 무슨 일이시죠?”

“저.... 오늘 몇 시까지 상담을 하시는가요?”

“오늘은 손님들 예약이 꽉 차 있습니다.:

“내일은 어떤가요?”

“내일도 예약을 받을 수 없겠네요.”

“토, 일요일도 가능합니까?”

“일요일은 선생님이 산기도를 가시기 때문에 안 되고 토요일은 가능합니다.”

“그럼 토요일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토요일 오전11시에 오시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구건호는 강남의 이 역술인이 정말 유명한 사람으로 여겼다. 며칠씩 예약이 밀려 있다니 얼마니 용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또 의심도 들었다.

“손님도 없으면서 쇼로 그러는 것 아니야?”

구건호가 근무하는 공장은 주 5일 근무한다. 토요일 가끔 특근이 있지만 사주 보러 가는 날은 마침 특근이 없었다. 구건호는 여유스럽게 지하철을 타고 오래간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하철에서 앉아 가는데 마침 노인 한명이 타서 스마트폰 보는 척을 하는데 어디선가 전화가 왔다.

“건호냐? 나, 고등학교 동창 원철이다.”

“어, 조원철 오래간만이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약국집 아들 조원철이 뜻밖에 전화를 했다.

“전화 통화 가능하냐?”

“그래, 괜찮아. 그런데 내 전화번호 어떻게 알았냐?”

“응, 여의도 식당에서 박종석을 우연히 만나서 알았어. 너 지금 무슨 회사에 나간다며?”

“어, 뭐... 조그만 중소기업이야. 넌 지금 H그룹에 다닌다고 했지? 승진은 좀 했냐?”

“응, 이제 겨우 대리야.”

“대기업이니 연봉도 많겠지. 대리급이면 연봉이 얼마나 되냐?”

“작어. 우리 그룹은 좀 짜. 7,000 정도 받아.”

구건호는 “헉”하는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연봉 2,000만원이 겨우 넘는 자기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많이 받네. 우린 중소기업이라 별로냐.”

“중소기업도 의외로 많이 주는데도 많다던데? 너도 들어 간지 몇 년 되었으니 많이 받지?”

“우린 작아.”

“얼만데? 6,000?”

구건호는 속으로 “6,000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쓰벌”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예기하면 속상해. 그건 그렇고 너희 엄마는 부천에서 아직 약국 하시지?”

“아니, 서울 목동으로 옮겼어, 우리 누나 병원이 목동에 있어. 병원하고 같은 건물 내에서 약국하고 계셔.”

“오, 그래? 병원을 끼고 약국하니 잘 벌겠다. 얼마나 번다고 하시냐?”

“난, 잘 몰라. 매월 떨어지는 것이 한 2,000 될라나 모르겠다.

구건호는 또 “헉!” 하는 신음 소리를 낼 뻔 했다. 월수입 2,000이면 자기 연봉인 셈이었다.

“실은 오늘 내가 전화한 것은 결혼 때문이야. 내가 다음달 5일 결혼을 해. 청첩장 보내려고 하는데 너희 집 주소를 몰라 이렇게 전화한다.”

“그래? 축하한다. 주소는 뭐... 청첩장 그냥 사진 찍어 카톡으로 보내라.”

“그걸까?”

“신부는 뭐하는데?”

“응, 약사야. 우리 엄마가 약사라 약사는 싫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흰 피부에 귀족풍으로 생긴 조원철의 얼굴 모습과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이 떠 올랐다.

“알았다. 결혼식에 꼭 가마. 나 지금 어디 좀 가고 있어?”

“어디, 좋은데 가나보지?”

“아니야. 철학관에 가. 강남 유명 철학관을 누가 소개해 주어서.”

“하하, 궁합보러 가는 모양이구나. 어디 있는 철학관인데?”

“강남역 근방에 있는 진여 철학관이라고 해. 용하다고 해서.”

“진여 철학관? 거기 우리 엄마 잘 가는 곳인데. 진여 철학관 원장님 박도사 라고 하면 강남 아줌마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 아무튼 잘 갔다 와라.”

“그래, 고맙다. 결혼식 날 보자. 안녕.”

전화를 끊고 나니 이번엔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왜 전화했어? 요양원 아니야?”

“집이다. 요양원 일은 끝나서 일찍 왔다. 노인들 똥오줌 받아내는 것도 이젠 지겹다.”

“왜 전화 했냐구!”

“아, 참. 내 정신 좀 봐. 다른 게 아니고 너희 아버지 일이다.”

“아버지가 왜?”

“너희 아버지가 허리 아픈 것 다 나으셔서 경비 자리라도 한번 알아보시려고 한다.”

“알아보면 알아봤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너 책상 서랍에 넣어둔 너희 아버지 신임 경비원 교육 이수증 못 봤니? 그게 있어야 한단다.”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왜 이렇게 소린 지르냐.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전화 끊는다.”

“에이, 씨.”

지하철에서 동창생 조원철 전화와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니 열차가 어느새 강남 역에 닿았다.

강남 역은 역시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걷기조차 힘들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역시 다른 나라야. 대한민국은 강남 공화국이 있고 지방 공화국이 따로 있어. 하이고 예쁜 여자들도 많네.”

근처 커피숍과 상점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자들은 모두 세련되고 예뻤다. 지방에서 공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구건호 따위는 근처에도 못 가볼 것 같았다. 구건호는 길을 잘못 들어 삼성전자 본사 건물로 들어갔다.

“햐, 건물 좋다.”

“건물 안에서 목에 사원증을 건 젊은이 들이 도도한 걸음걸이로 구건호의 앞을 지나갔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저들과 같은 신분이 될까?”

구건호는 그들이 부러웠다. 가지고 온 메모지를 보았다.

“진여 철학관이 이 근처 어디 오피스텔 8층이라고 했는데... 오피스텔 이름이... 뭐? 도시의 빛? 여기서 뱅뱅 사거리 쪽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뱅뱅 사거리는 또 어디야?”

구건호는 한참 걷다가 오피스텔을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8층 진여 철학관은 문에 아주 작은 팻말만 걸어 놓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였다.

“제대로 찾아 온 것 같군.”

구건호는 노크 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피스텔은 보통 작은 방 만한데 여기 오피스텔은 무척 넓었다. 40평은 됨직 하였다. 고급 의상을 입은 중년의 아줌마 몇 명이 앉아있고 안내하는 여직원의 책상이 보였다. 여직원은 안경을 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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