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7화 (7/501)

# 7

공돌이 취업 (3)

토요일이 되었다. 구건호는 고시텔에서 짐을 빼어 차에 실었다.

“짐 빼고 보니 물건이 많네. 방에 있을 땐 몰랐는데.”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뺏는데 짐이 어떻게나 많은지 3번이나 주차장을 오르락 거리며 차에 실었다. 철 지난 옷들, 노트북, 담요, 책 등 짐이 꽤 되었다. 책은 일부 버리기도 했고 냉장고에 있는 소주 먹다 남은 것도 아깝지만 버렸다. 헉헉거리며 짐을 옮기고 있는데 고모한테 전화가 왔다.

“건호니? 너 요새 교회 안다니지? 사람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

고모가 짐 옮기느라 바빠 죽겠는데 교회 다니라고 오랫동안 설교를 했다.

“지금 이삿짐 옮기느라 바쁘니 다음에 통화하시지요.”

“어머, 어머. 이사 한다고? 어디로 가는 거지? 얘, 너 좋은 대로 가는 모양이구나. 하느님은 우리의 삶을 예정하고 계신단다. 이사 가는 곳 위치 알려주면 내가 한번 가겠다. 교회는 그 근처에도 있지? 하느님 믿으면 다 축복을 내려주신다.”

전화를 빨리 끊었으면 좋겠는데 미주알고주알 미칠 것만 같았다. 무슨 말을 하면 또 꼬투리 잡고 길어질 까봐 예, 예 하고 대답만 하였다.

“내 소리 듣고 있지? 교회는 꼭 다녀라. 그리고 참, 그 때 내가 말한 강남 철학관은 가 보았니? 못 가봤다고?”

“그런 것 저 믿지 않습니다.”

고모는 30분은 되어서야 전화를 끊은 것 같았다.

“애초에 고모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하는데.... 아니, 그런데 고모는 교회 집사라는 분이 왜 사주팔자는 보러 다니는 거야?”

구건호는 고모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이사를 다 하고 새 방에 들어 누었다. 힘은 들었지만 옮기고 나니 기분이 후련했다. 밖에 나가 자장면을 사먹고 다시 집에 와 들어 누었다.

“내일은 일요일이니 친구들이나 보러 부천엘 갈까? 아니, 인터넷이 되나 그것부터 해보자.”

이사한 집이 인터넷이 이미 깔려있어 그것 하나는 좋았다. 요즘은 원룸 세 놓을 때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은 물론 인터넷이 깔려 있어야 방이 잘 나간다.

“인터넷은 빨라 좋군. 가만있자. 고모가 말한 강남 철학관을 검색해 볼까? 진여 철학관이라고 했지?”

철학관도 광고 시대라 인터넷을 치니 철학관 위치와 전화번호가 쫙 떴다. 철학관이 무척 많았다.

“아니, 우리나라에 철학관이 이렇게 많은가? 이 많은 철학관들이 다 밥 먹고 사는지 모르겠네.”

진여 철학관은 있었다. 대표 전화번호도 나와 있었다.

“심심한데 통화나 한번 해보자.”

신호가 몇 번 간 후에 나이 든 남자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진여 철학관입니다.”

“원장님 좀 부탁합니다.”

“제가 원장입니다.”

“아, 그러십니까? 내일 일요일인데 혹시 문 여시나요?”

“일요일은 상담하지 않습니다. 일요일엔 내가 산엘 갑니다.”

“아, 등산을 가시는군요.”

“등산이 아니고. 산기도를 갑니다.”

“산기도요? 아 예, 그럼 다음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구건호는 피식 웃었다.

“산기도라고? 웃기네. 등산 가면서 산기도래. 도사 흉내는 제대로 내는 사람이군. 어쨌든 나중이라도 쪽박난 내 인생 어떻게 푸나 들어나 보자.”

월요일 아침 출근을 했다.

상무가 김반장에게 작업 지시를 받으라고 하였다. 김반장이 구건호를 데리고 간곳은 사출 성형실이 아니고 플라스틱 드럼통 세척하는 곳이었다. 화공약품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우리 회사는 일단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일정기간은 이곳을 거쳐야 합니다.”

“여기는 세척반 아닙니까?”

“드럼통을 세척하기도 하고 분쇄도 합니다. 세척반, 분쇄반을 거친후 성형 기계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구건호는 화가 났다. 플라스틱 사출 성형을 하러 온 것이지 난데없이 무슨 드럼통이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반장이 싱글 싱글 웃으며 일하겠으면 하고 나가려면 나가라는 표정이었다.구건호는 방까지 옮겼는데 난감하였다. 상무에게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저는 사출 성형을 하러 들어왔는데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공장은 세척반과 분쇄반을 3개월씩 거쳐야 합니다. 나도 처음에 들어왔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개자식들!”

욕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세척반과 분쇄반은 냄새도 많이 나고 특히 분쇄반은 소음도 극심해 이직율이 많아 구건호 같은 사람을 땜빵으로 집어넣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척 같은 일은 일이 힘은 좀 들지만 단순 노동이었다. 월급이 깎이는 것이 아니라면 할 만할 것도 같았다.

“알겠습니다. 세척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척반에는 이미 50대의 선임자가 있어 일을 하고 있었다. 선임자가 구건호에게 고무장갑과 쑤세미를 지급해 주었다. 선임자는 무표정하고 말이 없었다.

“드럼통에 남아있는 화공약품 찌꺼기를 이곳에 쏟으십시오. 약품이 살갗에 닿으면 물집이 생기고 가려우니 반드시 토시를 끼고 작업하십시오. 특히 화공약품이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젠장!”

욕이 나왔다. 선임자가 하라는 대로 따라 하였다. 선임자는 플라스틱 통을 공기흡입구로 닦아내고 이상한 약품을 섞은 물을 분사식으로 넣고 다시 수증기로 닦는 공정을 진행 하였다. 마지막 작업이 물로 닦는 것인데 이 일을 구건호가 하였다. 드럼통 100개를 닦고 나니 하늘이 노랗고 허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좀 쉬었다 하면 안 됩니까?”

선임자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이까짓 일로 쉬냐고 하는 표정 같았다.

“쉬려면 쉬십시오. 보통 2시간 하고 허리를 펴는데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어지간하면 그대로 하시지요.”

선임자는 구건호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은데 쉬지 않고 일했다. 기운도 세었다. 오랫동안 노동으로 다져진 사람으로 보였다.

“하루 종일 이 일만 하니 머리가 다 어질어질 하네.”

구건호는 퇴근 후 원룸에 오자마자 바로 쓰러져 버렸다.

“9급 공무원이 되었어야 하는 건데...”

공무원 못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다시 노량진으로 돌아간다면 이제 이 악물고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공부만할 것 같았다.

“내가... 내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안 하고 놀기만 해서 이런 벌을 받는 모양이구나.”

구건호는 서글퍼졌다.

“이렇게 해서 골병도 들고 우울증도 생기는구나. 에잇! 술이나 마시자.”

구건호는 운동복 차림에 추리닝을 입고 편의점으로 갔다. 소주를 3병이나 사가지고 왔다.

구건호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드럼통 닦는 일만 했다. 팔과 목이 쑤셨고 허리는 더욱 아팠다. 파스를 사다 붙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공장을 옮겨야 겠다.”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공돌이 인생은 어딜 가나 마찬가지 아니냐 하는 자포자기 심정만 들었다.

“포천 공장이 월급이 밀려서 그렇지 일은 참 편했는데...”

포천 공장에선 퇴근 후면 피시방에 가서 가끔 게임도 하였다. 이곳 양주로 와서는 게임은커녕 피곤 때문에 소주마시고 잠자기 바빴다. 몇몇 고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동창회를 한다는 연락도 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동창은 결혼 한다는 연락도 왔다.

“나는 결혼은 포기해야 되겠지?”

구건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결혼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딱히 사귀는 여친도 없지만 지금 생활로는 가정을 꾸려나갈 수 없을 것 같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만 같았다.

“이렇게 영세 공장에서 노동만 하다 끝나는 인생인가... 휴.”

구건호는 원룸에 돌아오면 날마다 혼술만 즐겼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도 겉늙어 자신이 싫어졌다. 갑자기 고모가 말한 강남의 철학관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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