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공돌이 취업 (2)
구건호는 캐피탈 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고 좋던 기분이 확 가버렸다. 연체이자 독촉 전화는 잊어버리지도 않고 잘도 전화를 했다.
“월급 180만원 받아서 이자까지 갚아나가면 정말 손에 쥐는 게 없을 것 같군. 외국인들처럼 야간 근무라도 해야지 별수 있겠나. 야간 수당은 시급에 1.5배를 주니 그렇게라도 할 수밖에... 참 인생 더럽게 꼬이는군.”
시청이나 구청 같은 큰 건물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동창 원철이의 얼굴도 떠올랐다.
“원철이의 연봉이 5,000이라지?”
구건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나도 가난한 우리 아버지의 인생길을 걷게 되는군. 빌어먹을!”
구건호는 털털거리는 소형차를 운전하며 광적면을 찾아가다가 갑자기 고모가 말했던 철학관 이름이 떠올랐다.
“맞아! 진여 철학관이라고 했어!”
철학관 이름을 기억해 내니 기분이 좋았다.
“사주팔자 같은 건 믿지 않지만 한번 가봐?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되는지? 정말 공돌이 하다가 끝나게 되는지 한번 물어봐? 철학관 원장이 족집게 선생이라면 무슨 말씀을 해 주실 것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에이, 그놈들이 뭘 알겠어. 자기 인생 자기가 잘 알면 왜 철학관 하고 앉았겠어.”
구건호는 정말 사주팔자 보는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그것은 언젠가 21살 입대하기 직전에 종로 인사동에 놀러갔다가 어느 사주카페에서 본 점괘가 엉터리였기 때문이었다. 하나도 맞지 않고 돈만 날려 그 바닥에서 노는 사람들은 전부 사기꾼으로 보였다.
“그래도 고모가 그렇게 떠드니 호기심은 가네.”
구건호가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엘 갔다. 생각보다는 상가와 음식점이 많은 동네였다. 시골이지만 병원과 약국도 있었고 은행과 큰 마트도 있었다. 주변에 새로 지은 빌라도 많아 원룸 임대 현수막이 많이 붙어 있었다. 어떤 집은 고시원처럼 정말 보증금이 없다는 집도 있었다.
“시간이 4시 반 밖에 안됐으니 집 구경이나 하고 가자!”
구건호는 먼저 무보증 원룸을 가보았으나 옵션이 없는 집이었다. 필요한 가전제품이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한달치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받고 있는 집이 옵션이 있었다. 신축 건물이라 깨끗해서 좋았다.
“캬, 노량진에 비하면 궁전이다. 궁전!”
노량진의 고시원은 여기보다도 월세가 많았지만 창문도 없고 좁고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짐을 옮길 것도 없으니 내일 당장 옮기자.”
구건호는 차를 돌려 현재 숙소가 있는 포천시 소홀읍으로 차를 몰았다. 스마트폰에서 랩이 흘러 나오게 틀어놓고 포천을 향했다. 박종석한테 전화가 왔다.
“형, 뭐해? 취업운동 안 해?”
“면접보고 가는 길이야.”
“아, 그래? 잘 됐네! 뭐 하는 데야?”
“사출공장이지 뭐. 내가 해보던 일이니까. 월요일부터 나오래.”
“어딘데?”
“양주시 경신리.”
“경신리? 거기가 어딘데?”
“양주시에 있지.”
“양주시? 남양주시 아니고?”
“아니야. 의정부 위에 있는 양주시야.”
“내일 그때 그 저수지 안 갈래? 월요일부터 출근이니 낚시 가도 되겠다.”
“나, 내일 짐 옮겨.”
“하하, 형 짐이 뭐 있겠어? 옷 몇 가지 하고 노트북 밖에 없잖아. 짐은 모래 옮기고 내일 낚시 가자. 인터넷 보니 거기서 베스 30센티 짜리 하고 메기 50센티 짜리 잡았다는 사람도 있어.”
“낚시에 완전히 미쳤군.”
“먼저 낚시 하자고 바람 잡았던 사람이 누군데?”
“알았어. 가자. 가.”
“내일은 일요일도 아니니 낚시꾼도 없을 거야.”
“아침 10시까지 차 가지고 나 있는 곳으로 와.”
“알았어.”
구건호는 취업이 되었으니 내일 후배 종석이와 낚시나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낚시터에서 소주와 통닭을 먹을 생각을 하니 미리부터 입맛이 돋았다.
다음날 구건호는 박종석과 함께 포천에 있는 저수지를 찾았다.
“난 여기 저수지가 제일 좋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첫째로 사람이 없어서 좋아.”
“맞아. 찾는 사람도 없고 돈 받는 저수지 관리인도 없고. 형, 양주에서 공장에 다니면 쉬는 날 가끔 여기서 만나자.”
“여긴 멀어. 기름 값 아껴야지.”
“그럼 양주에서 좋은 낚시터 개발해 놓던지.”
“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도 제네시스 리무진이 와 있네.”
“우 씨, 우리 포인트 또 뺏겼네.”
“저 봐, 그때 그 사람들이야. 40대와 60대.”
사람 소리에 낚시하던 40대와 60대가 고개를 들고 쳐다보았다.
“저 사람들은 평일에 웬 젊은 놈들이 낚시를 하나 생각하겠지?”
“신경 쓸 것 없어. 저자들도 평일에 낚시하는걸 보니 부도난 인간일 가능성이 많아. 아니면 사기치고 도망 다니는 놈일 테지.”
“차는 좋은데. 새 차고.”
“사기 치는 놈들이 차는 좋은 것 탄다더라.”
“형 차 아반떼는 몇 년 식이지?”
“10년 된 차다. 왜?”
“고장 안나? 몇 키로나 뛰었지?”
“20만키로 뛴 차다. 아직도 튼튼해. 미주대륙 횡단 하고도 남는다.”
“뒷 범퍼 까진 것 수리 안 해?”
“시간이 없어 못해.”
“돈이 없어 못했겠지.”
“이 새끼가!”
“히히. 취소, 취소.”
소란스러운 소리에 낚시하던 40대가 인상을 쓰며 쳐다보았다.
“저 사람은 인상이 안 좋다.”
“쉿, 들려! 작게 이야기 해.”
구건호가 40대와 60대가 낚시하는 곳으로 갔다.
“많이 잡으셨어요?”
60대가 눈웃음을 치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사람은 벙어리인가?”
구건호는 이렇게 생각하며 다른 자리로 이동했다. 건너편 밤나무 아래에서 가지고 낚시대와 가방을 내려놓았다.
“힉! 오늘은 통닭이 아니고 김밥이네!”
“통닭은 네가 사오기로 하지 않았어?”
“난 형이 또 사오는 줄 알았지.”
“돈 아껴야지. 다음 달 월급 나올 때까지는 허리띠 졸라매야 해.”
“이크! 저기 팔뚝만한 고기가 뛰어 오른다. 오늘은 뭐 좀 될 것 같은데.”
“너한테 잡힐 고기는 없어. 나한테 잡힐 고기는 있어도.”
“웃기네.”
구건호는 정말 이날 베스 한 마리를 잡았다. 일자리도 확정되었고 오래간만에 고기도 잡아 기분이 좋았다. 잡은 고기를 보려고 박종석이 달려왔다.
“와, 크다. 커. 내가 방금 놓친 것 보다는 작지만 크다. 커.”
“놓친 고기는 다 크다더라.”
“아니야. 정말 컷어.”
“종석아, 김밥이나 먹자. 이 잡은 베스 너 안 가져갈 것 같으면 저쪽 사람들 줄까?”
“저쪽 사람? 없잖아? 지금.”
구건호가 쳐다보니 낚시하던 40대와 60대는 벌써 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