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5화 (5/501)

# 5

공돌이 취업 (1)

"팔자라는 것이 있는 걸까?”

고모가 말했던 철학관 이름을 생각해 보았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자동차가 양주시로 접어들고 덕정동이라는 곳을 왔다.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샀다.

“젠장 멀기도 하네. 아직도 많이 남았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갈까?”

큰 언덕을 넘어 한참 달리다가 꼬불꼬불한 지방 도로를 달렸다.

“네비가 있어 좋긴 좋다. 1.5키로 남았네.”

“목적지 부근입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

네비게이션의 마지막 음성이 들렸다. 찾아온 공장은 논밭 사이에 있는 공장이었다. 허름한 건물의 중급 정도의 공장이었다.

아줌마가 나오더니 과장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여기 찾기 힘들죠?”

아줌마는 인상 좋은 웃음을 지었다. 구건호가 젊은 사람이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젊은 분이라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 할 것 같네요. 상무님이 곧 오실 겁니다. 면접은 상무님이 보십니다.”

현장에서 지게차를 운전하던 사람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지게차 기사치고는 좀 건방진 인상을 하고 있었다.

“상무님, 저분이 면접 보러 왔데요.”

알고 보니 지게차 기사가 상무였다. 여기는 상무가 지게차 운전도 하는 모양이었다. 상무가 테이블에 앉으며 구건호에게 앉으라고 하였다.

“서류 좀 봅시다.”

상무가 구건호의 이력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사출은 해보신 경험이 있군요. 여기는 온스가 좀 큰 것입니다. 파쇄기도 다루어야 합니다.”

“아, 예.”

“운전면허증은 2종이요? 1종이요?”

“1종 보통 갖고 있습니다.”

“여기는 가끔 1톤 트럭 운전도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스틱 운전 가능하세요?”

“스틱은.... 군대에서 해 보았는데.... 하루 이틀 연습하면 가능할 것입니다.”

“여긴 기숙사가 없어요. 하나 있긴 있는데 외국인들이 사용하고 시설이 나빠 지내기가 힘듭니다. 사출을 해 보았다니 같이 잘 해 봅시다. 현장 보고 결정해도 됩니다.”

상무는 창밖으로 목을 내밀고 누굴 불렀다.

“김 반장! 김 반장!”

건너편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빨간 작업복을 입은 40대가 뛰어 나왔다.

“이 분 같이 일하게 될지 모르니 일단 현장 투어 시켜주세요.”

김 반장이란 사람이 구건호를 데리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은 소리가 요란했다. 화공 약품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원래 이렇게 소리가 납니까?”

“아니요. 저쪽 한구석에 재생 파쇄기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이 많네요.”

“예, 15명이 있습니다.”

일하던 외국인들이 반장과 구건호를 힐긋 힐긋 돌아보았다. 외국인들은 젊은이가 많았고 드믄 드문 섞여있는 한국인 근로자들은 대개 50대 이상으로 보였다.

“여긴 주 5일 근무지요?”

“기본은 그렇지만 토요일은 격주로 근무할 때가 많습니다.”

“급여는 얼마나 주나요?”

“사무실에서 이야기 못 들었습니까? 경력에 따라 다르니 난 잘 모르겠습니다.”

김 반장이라는 사람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구건호는 김 반장이라는 사람이 말을 곱게 하는 사람이 아니란 것을 느꼈다. 화제를 돌렸다.

“기계가 온스가 큰 것이라는 소릴 들었는데 대부분 작은 거네요.”

“큰 것은 B동에 있습니다. 이쪽 기계 잡던 사람이 그만 두었으니 아마 들어오신다면 이걸 잡을 겁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시오.”

“경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어디서 근무했습니까?”

“화성과 포천에서 일 했습니다.”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니시는 군요.”

반장이 약간 비웃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생각 같아서는 머리로 한번 받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도 혹 근무하게 된다면 잘 보여야 될 것 같아서 허리 굽혀 인사를 하였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공장은 크지 않고 종업원도 30명 정도 밖에 안 되어 보였으나 일단은 일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의 논밭이 있어 복잡한 도시보다는 좋았고 또 플라스틱 공장은 어딜 가나 그게 그것이기 때문이었다.

반장이 갈군다 해도 술 한 잔 먹고 형님 소리 한번 불러주면 될 사람으로 보였다. 공장 밖으로 나오면서 반장에게 물었다.

“기숙사는 없다고 하는데 방을 잡으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광적면 면사무소 있는데도 좋고 좀 번화한데 가려면 덕정동이나 덕계동으로 가야합니다.”

구건호는 현장 투어를 마치고 다시 상무 앞으로 왔다. 이번엔 상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잘 보셨지요? 회사 규모는 작아도 분위기는 좋습니다. 이직율도 별로 없고요. 에... 급여는 180만원 정도는 맞추어 드리지요. 점심 식사도 저쪽 가건물 안에서 아줌마 한분이 오셔서 준비해 드립니다.”

구건호는 180이란 소리를 듣고 얼른 머릿속을 굴려보았다.

“방값은 30 정도 들어갈 테고 자동차 기름 값 20,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고 아침, 저녁을 해 먹는다면... ”

생존은 하겠지만 저축은 별로 못할 것 같았다.

“1년 이상 근무하면 일 하는 것 봐서 급여는 올려드립니다. 여긴 야간 일해서 300까지 가져가는 외국인도 있습니다.

“300!”

구건호는 공무원 포기하고 어차피 공돌이 생활하니 야간 일을 해서 300을 벌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그러나 이것은 저녁때 친구를 만나고 관혼상제도 빠져야 하는 괴로움이 있다. 이른바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1년 이상 근무하셔서 조장급이 되면 유류비도 약간씩은 지원해 드립니다.”

“일은 언제부터 하면 되겠습니까?”

“가만있자.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상무가 벽에 붙은 달력을 쳐다보았다.

“월요일부터 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쪽에 살지 않는다면 방은 잡아야 할 테니까. 아 참, 오늘 아침 출근하다보니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 빌라에 보증금 없는 원룸 임대하는 광고가 붙은걸 보았어요. 한번 가서 알아보시오.”

“고맙습니다.”

“월요일 오실 때는 주민등록 등본 한통하고 은행 통장 사본 가져 오시오.”

“알겠습니다.”

구건호는 상무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공장을 나왔다. 면접 채용이 된 것이다. 내친김에 광적면 면사무소 부근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양주시 광적면... 참 들어보지도 못한 동네를 오게 되었네.”

갑자기 스마트폰 벨이 울렸다. 햇살론 융자를 받은 캐피탈 금융회사 직원의 전화였다.

“융자 받으신 것 이자가 연체되었습니다. 언제까지 입금 가능하시겠습니까?”

김이 팍 세었다.

“아 예, 바로 입금하도록 하겠습니다.”

“5일까지 입금 안하시고 연체되시면 신용에 영향이 갈수도 있습니다.”

캐피탈 회사 직원의 목소리는 저승사자 목소리 같았다.

“휴-”

그놈의 주식을 한 것이 한없이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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