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 큰손 이야기-2화 (2/501)

# 2

낚시터의 인연 (1)

아스팔트 산길 옆으로 활짝 핀 코스모스가 바람에 흔들거리는 초가을이었다.

두 젊은이가 탄 낡은 승용차가 언덕을 향해 힘겹게 올라왔다. 차는 마후라가 터졌는지 이상한 소리를 냈고 앞 범퍼는 페인트가 벗겨진 상태였다.

“대한민국이 좋긴 좋아. 낚시터 앞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났으니 말이야.”

“여기는 알려진 낚시터도 아닌데 제너시스 신형이 다 와있네.”

“그러게. 이큐900 리무진인데?”

두 젊은이는 낡은 아반떼 차량을 제너시스 뒤에 세웠다.

“야, 범퍼가 다 벗겨져 폼 안 난다. 우리 차는 저쪽 뚝방 쪽에 세우자.”

운전대를 잡은 젊은이가 투덜대며 차를 후진시켰다.

“쩐 좀 있는 놈이 타고 온 모양인데 골프나 치러 가지 여긴 왜와?”

“여기가 무료 낚시터인지 모르는 모양이지?”

젊은이 두 사람이 차를 세워놓고 뒤 트렁크에서 낚시 대를 꺼냈다. 대낚시가 아니고 움직이며 고기를 잡는 루어 낚시 대였다.

“릴낚시가 좋아. 손에 지렁이나 구더기 안 묻히고.”

“그런데 잡는데 너무 바빠. 많이 움직여야 하고.”

“살 빼는 데는 최고다. 루어 낚시가.”

“이제 건호 형이나 나나 둘 다 직장을 잃었으니 춥고 배고파 살찔 틈도 없겠지?”

“요즘은 없는 놈이 관리 못해 더 살찐다더라.”

“흠, 그럼 난 또 찌겠군.”

“야, 종석아! 그런데 우리가 찍어 놓은 명당을 웬 아저씨 두 명이 앉아 있다.”

“쓰벌, 저 자리가 포인트인데.”

“저수지 건너편 쪽으로 가보자.”

“저쪽은 물 밑에 나뭇가지들이 많아 싫어.”

“그럼 그 위에 다리 쪽으로 가보자.”

뒤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는지 낚시하던 아저씨 두 명이 뒤를 돌아보았다. 한명은 40대 중반 정도이고 다른 한명은 60대로 보였다. 친구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아들과 아버지 같지도 않았다.

주말도 아닌 평일에 낚시를 하러온 것을 보니 우리처럼 무척이나 시간이 많은 사람들인 것 같았다.

“아저씨, 많이 잡으셨어요?”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못 잡은 모양이었다. 40대 남자가 험악한 얼굴로 구건호와 박종석을 쳐다보았다.

“종석아! 우리가 탐탁치 않은 모양인데 저쪽으로 가자.”

“쓰벌 놈들, 우리 명당 뺏어 놓고...”

“낄낄, 저 포인트 앞에 나무 팻말이라도 하나 박아 놓을 걸 그랬지? 이 자리는 구건호와 박종석 전용구간이라고.”

“입 사려! 지금 몇 시냐?”

“4시 40분! 조금 있으면 5시야.”

“슬슬 괴기들이 입질할 때가 오고 있다. 넌 저쪽으로 돌아라. 난 이쪽 밤나무 있는 곳으로 돌테니.”

“매운탕 감 큰 것 한 마리만 잡아봐!”

구건호와 박종석은 회사에서 잘렸다. 종업원 20명도 안 되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영세 공장에 다니다 그렇게 됐다. 사장은 납품처가 줄어들자 사람부터 자르기 시작했다. 하긴 임금이 두 달 치나 밀려 그렇지 않아도 공장을 때려치울 참이었다.

“형편이 피면 자네들 밀린 임금하고 퇴직금 등은 바로 통장에 넣어줄 것이니 그리 알게. 내 처지도 딱한 건 자네들도 잘 알잖아?”

사장은 구건호에게 사정 사정 하였다.

사흘간 고시텔에서 일자리 사이트인 워크넷이나 벼룩신문을 뒤졌다.

낮에 일하던 놈이 방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갑갑했다. 점심엔 고시텔 지하에 세워둔 차를 끌고 나와 헤매다가 문득 지방 노동청에 체불임금 신고를 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나온 김에 지방 노동청에 들렸는데 거기서 후배 박종석을 만났다. 둘은 금방 의기투합해 다음날 낚시터를 오게 된 것이다.

“물렸다!”

구건호가 루어 낚시대 줄을 감았다. 줄이 팽팽해지다가 다시 느슨해졌다.

“씨발! 도망간 모양이네! 아까 펄쩍 뛸 때보니 팔뚝만한 베스였는데!”

“형, 잡았어?”

“도망갔어!”

“그래도 형한테는 입질이라도 온다. 난 통 안와!”

“야,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제 이놈들 밥 먹을 시간이니 미끼 물거다.”

구건호와 박종석이 떠들면서 낚시터를 헤집고 다니자 가만히 앉아 대낚시를 즐기던 40대와 60대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들은 주섬주섬 낚시대를 걷기 시작했다.

“형! 저 아재들 가려는 모양인데 저리로 가자!”

“완전히 떠나면 가자.”

“가려면 빨리 가지 굉장히 꾸물거리네.”

“그물망 들어 올리는걸 보니 한 마리도 못 잡은 것 같군.”

“어? 저 제네시스 리무진 저 아재들이 타고 온 모양인데? 뭐야? 40대는 운전석에 앉고 60대는 뒤에 앉네. 사장과 기사인 모양이다. 킥킥.”

“신경 끄고 고기나 잡자.”

“기사까지 둘 정도의 사장이라면 왜 제네시스 타. 벤틀리 정도 타지.”

“고기나 잡자니까!”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질 때까지 구건호와 박종석은 낚시대를 부지런히 던졌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물소리만 요란했지 고기는 못 잡았다. 구건호가 손바닥만한 메기를 잡았으나 도로 놓아 주었다.

“오늘은 안 되겠다. 조황이 안 좋아.”

“조황? 형, 문자 쓰네.”

“우리 가져온 소주나 까고 돌아가자. 긴팔 셔츠 안 가져와 으슬으슬 춥다.”

구건호와 박종석은 뚝방 풀밭에 앉아 돗자리를 폈다. 가지고 온 통닭과 소주를 꺼냈다.

“한잔 받아. 해고 나흘째를 기념해서!”

“너 새끼손가락은 끝내 안 펴지는 모양이구나.”

“이거? 영광의 상처지. 공장에서 기계 다루다가 제대로 찍힌 거지. 그래도 달려있으니 좋지 않아? 형도 팔에 덴 자국 많네!”

“나도 사출기 다루다가 많이 데었지.”

“작업할 땐 긴팔 입고 해. 나중에 형수씨 될 사람이 보면 흉하다고 할 거 아니야?”

“긴팔 입을 줄 몰라 안 입냐? 한 여름 더워서 환장하겠는데 어떻게 긴팔 입냐? 다이소 팔토시도 못 끼겠더라. 너도 제수씨 될 사람이 구부러진 손가락 보면 싫어 할 거다.”

“하하. 나 같은 공돌이한테 누가 시집 와! 공돌이도 그냥 공돌인가? 임금도 못 받고 해고된 공돌인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한국 년들 모두 된장녀 뿐인데 나한테 누가 시집오겠냐? 돈 없는 가난뱅이지, 지잡대 다니다 말았지, 인물 별로지, 똥배 나왔지, 나이만 먹었지.”

“그래도 전에 같이 있던 공장 물류팀 정훈이 봐. 여자들만 잘 꼬시잖아? 여공들은 물론 품질관리부에 4년제 나온 강모라는 여자도 따먹고, 공장 앞 한식 뷔페식당 주인아줌마 피아노 친다는 딸도 건드렸고, 요즘은 경리부 신입 여직원하고도 어울린다는 소문이던데?”

“그 자식이 정상이냐? 사기꾼이지. 나한테 빌려간 30만원도 못 갚는 놈인데.”

“어쨌든 능력 있잖아? 공장에서 트럭이나 모는 고졸 출신이 그만하면 대단하지. 인정할건 인정하자, 형.”

“그놈 이야기 그만하고 술이나 먹자. 술맛 떨어진다. 자, 한잔 마셔!”

“캬, 죽인다. 달밤에 호숫가 뚝 위에서 마시는 소주가 사람 죽인다.”

“그래서 내가 여길 오자고 했잖아. 난 혼자서도 여기 가끔 온다.”

“혼자만 다니지 말고 나도 가끔 불러줘. 소주는 가지고 올게. 통닭은 형이 사고.”

구건호와 박종석은 배가 고팠는지 통닭을 정신없이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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