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63화 (263/272)

최후의 결전(7)

곳곳에서 폭탄 테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이후 모든 방송사는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대신 전국에 내려진 진돗개 하나 발령에 발맞추어 뉴스 특보와 속보들을 실시간으로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후우!”

펜션의 2층 객실에서 텔레비전에 시선을 두고 있던 조명철이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반복해서 보여주는 폭탄 테러 현장은 보기에도 처참했고 끔찍하기만 했다.

비록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지만 한바탕 핏빛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간 듯 화면에 보이는 현장의 모습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만치 참혹했다.

대한문 집회 현장에서만 노인 120여 명이 즉사했고, 중상자만 해도 200여 명이 넘는다고 했다.

개중 상당수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이어서 사망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었다.

“이제 좀 후련하겠네요?”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조명철은 고개를 돌렸다.

객실 테라스 쪽 티테이블에 홀로 앉아있던 지은이었다.

그녀는 냉소 반, 침울한 목소리 반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목적을 이뤘으니 하는 말이에요. 원하는 바를 위해선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쯤은 파리 죽이듯 가볍게 희생시키는 것이 댁들이 추구하는 방식 맞죠?”

“썅! 이 여성 동무래 지금 뭐라는 거이네? 동무도 알다시피 우린 이번 일에 전혀 관여를 하디 않았…….”

“동무! 나서지 마라!”

조명철은 발끈하는 요원을 묵직한 목소리로 찍어 눌렀다.

그러고는 지은에게 다시 시선을 가져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선 할 말이 없소. 그 점에 대해선 내가 사과하갔소.”

지은은 조명철의 눈빛을 한동안 받아들이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테라스 쪽으로 돌렸다.

저 깊은 어둠 속 너머에서 환하게 밝히고 있는 궁평항의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은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사과라니, 우습네요. 그쪽이 나한테 사과할 이유는 없잖아요. 난 다만…….”

“여성 동무에게 사과하는 게 아니오. 남조선 인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지. 그카고 어쩌면 그것은 내 자신과 여기 함께 내려온 동무들의 자괴감일 수도 있고.”

“……!”

“우린 방향타도 잃고 거기에 선장까지 잃어버린 뱃사람들이오.”

“그렇다면 언제쯤 끝날까요? 기어이 우리 지태 씨를 죽여야만 끝나는 건가요?”

“후후.”

지은의 물음에 조명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 한지태 동무 말이오. 지금쯤이면 이곳에 와 있갔구만.”

“……!”

조명철의 그 말에 지은은 제 발이 저려 순간 움찔했다.

안산에서 이곳으로 이동하기 전 자신이 공장 바닥에 써 놓은 게 있는 까닭이다.

“봤어요?”

지은이 한껏 커진 눈빛으로 물었다.

조명철은 다시 또 씁쓸한 미소를 날렸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렇지, 그것도 좋갔구만. 이젠 끝을 볼 때도 되었고…….”

* * *

지태는 거실 바닥에 쏟아 놓은 총기들에 시선을 주었다.

베레타와 글록 등 10정의 권총과 대한민국 특수부대원들이 개인 화기로 사용하는 K2C 소총이 7정이었다.

거기에 수류탄도 몇 발 놓여 있다.

국정원 김성욱 국장이 이돈두를 통해 보내온 것들이다.

지태가 먼저 권총 한 정을 손에 들더니 이돈두를 쳐다보았다.

“친위대 애들은 몇이나 데려왔지?”

“50명!”

“그중 미얀마에 따라왔던 친구들을 조장으로 삼고, 이것들을 그 친구들에게 한 정씩 나눠줘.”

지태를 경호하겠다며 이돈두를 따라 실탄 사격장을 다니며 권총을 만져봤고 사격 연습까지 했던 친구들을 말한다.

이돈두가 끄덕이며 윤학수를 돌아보았다.

윤학수는 권총들을 가방 속에 담아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이건 우리들 몫!”

지태가 이번에는 김영철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남으로 내려올 당시 소지한 총기라고는 권총뿐이었다.

폭탄 테러를 저지를 만큼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놈들이었다.

그들과 맞서기 위해선 권총 따위로는 어림도 없을 터였다.

“좋구만, 기래. 이거이 남조선에서 만든 거이네? 조준경까지 달려 있구만, 기래.”

김영철이 흡족한 눈빛으로 소총을 만지작거렸다.

그의 탄성에 장단을 맞춰줄 여력이 없다는 듯 지태는 이내 무시하며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얻어낸 시간은 딱 하루뿐이야. 그 이후엔 이곳으로 군과 경력들이 투입될 거야. 그렇게 되면…….”

지태는 잠시 말을 끊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방편으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지태의 생략된 뒷말을 알고 있었다.

공개적으로 들쑤시고 다니게 되면 지은의 안전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일 거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우리의 모든 역량을 총 집중할 거야. 일단 둘, 셋씩 조를 나누어 지은이가 말했던 제부도를 우선적으로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볼 생각이지만, 서신면 인근 마을도 가급적 동시에 수색해 나갈 작정이다.”

“인원이 너무 모자라지 않겠어? 우리 애들을 좀 더 부를까?”

이돈두가 미간을 좁히며 진중하게 물어 왔다.

“은밀하게 작전을 펼치자는 의미로 시간을 번 것인데 그럼 노출이 될 확률이 높아. 모자라는 부분은 드론을 이용하기로 하자. 김 국장한테 최대한 가용할 수 있는 드론과 운용 요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해 놨으니까.”

그제야 이돈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다시 의문스러운 점이 있는 듯 지태를 쳐다보았다.

“그럼 구해 오라는 트럭들하고 봉고차들은 어따 쓰게?”

“트럭들은 중고 가전 수집 차량이나 노점 트럭, 아니면 농사용 트럭으로 위장할 거야. 봉고차는 자율방범대 차량으로 꾸밀 것이고.”

이돈두가 입술을 일자로 붙인 채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은 뒤에 작업할 시간은 없을 테니 지금 당장 작업하라고 지시해야겠다.”

이돈두가 거실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우리도 놀믄 뭐 하갔나!”

현관문 쪽에 시선을 두었던 김영철이 지태를 보며 툭 던져왔다.

지태가 무언의 눈빛으로 묻자 김영철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오늘 밤 잠들 것도 아니잖간. 길타믄 야간 수색이나 나가자는 거이야.”

“……!”

지태는 말없이 끄덕이며 김영철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가 놓았다.

* * *

자정을 약 30분 정도 남겨둔 시각.

심야 수색에 나선 사람은 지태를 포함해 여섯이었다.

처음엔 이돈두와 김영철, 후안과 윤학수 등만 데리고 수색에 나서려 했지만, 이돈두가 운전대를 맡길 녀석이 필요하다며 친위대 중 한 명을 더 태웠기 때문이다.

승합차에 오른 그들은 곧 제부도 인근으로 방향을 잡았다.

놈들이 은신해 있는 곳은 궁평항이 바라다 보이는 산기슭에 자리한 펜션이었지만, 지태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다만 지은이 마지막 남긴 단서가 제부도였기에 일단은 수색 방향을 그쪽으로 잡은 거였다.

밤이 깊어 제부도를 중심으로 좌, 우측에 자리한 산업단지 외엔 사방이 짙은 어둠에 깔려 있었다.

전국은 현재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어 군과 경찰, 그리고 예비군에 이르기까지 비상이 걸린 상태였지만 이곳만은 예외였다.

제부도를 중심으로 바다와 인접한 서신면만큼은 지태의 요청으로 만 24시간 동안 군 병력과 경력을 투입하지 않기로 한 까닭이다.

지태는 제부도가 멀리 보이는 지점에서 운전대를 잡은 친위대원에게 우측 산업단지 쪽으로 방향을 틀라고 했다.

그곳부터 차근차근 훑으며 서쪽 방향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모두가 날카로운 매의 눈빛을 하고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가운데 지태는 잠시 눈을 감았다.

최봉준과의 교신을 시도하려는 거였다.

지태가 전음을 통해 최봉준을 불러들였다.

‘어르신!’

- 나 여기 있네.

‘제 답답한 심정 아시죠?’

- 알다마다.

‘그런데 왜 아무런 말씀도 없으십니까. 어르신의 신통력을 발휘해 놈들의 위치를 알려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 허어!

최봉준의 가벼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장사꾼이지 어디 박수무당이라던가.

‘그래도 그동안 놀라운 신통력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 그거야 내가 자네 머리 꼭대기에서 내다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서나 가능한 얘기지. 내가 천지의 조화를 주관하는 신도 아니고, 이거 참…….

순간 지태의 입술을 뚫고 한숨이 푹 새어 나왔다.

긴장감이 흐르는 적막 속에서 그 소리는 여러 사람의 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지태를 돌아보았다.

지태가 씁쓸한 미소로 손을 내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속이 좀 답답해서.”

자기들이 그러할진대 지태의 마음은 오죽 더 타들어 가랴 싶어서 모두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관심이 수그러들자 지태는 다시금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위로 최봉준의 그윽한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 자네의 여자에게 불행한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것이네. 이건 신통한 예지 능력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말이야. 그러니 너무 가슴 태우지 말라는 얘기야.

‘감사합니다, 어르신.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 나도 한눈팔지 않고 계속 주시할 테니까 자네도 조금은 여유를 갖도록 하고.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지태는 최봉준이 남긴 마지막 당부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정 전부터 시작된 심야 수색은 새벽 4시까지 이루어졌다.

모두는 좀 더 진행하자고 했지만,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날이 밝는 대로 본격적인 수색과 작전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다만 두어 시간이라도 쪽잠을 자두는 것이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폭풍 전야처럼 새벽의 정적은 한없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숨죽인 대지를 감싸며 어둠은 더욱더 짙어져 갔다.

* * *

동이 트자마자 펜션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어느 누가 기상나팔을 불어 댄 것도 아닌데 약속이라도 한 듯 친위대들부터 하나, 둘 눈을 비비고 나와 마당 앞에 도열하기 시작했다.

길어야 두어 시간 남짓 쪽잠을 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눈빛은 생생했다.

자신들이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르는 보스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라고 선언한 이가 바로 지태였다.

비단 보스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그간 지켜본 지태의 성품에 모두는 은근히 감복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이번 작전에 투입되자 누가 강요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발 벗고 나서는 이유이기도 했다.

“모두 고맙다!”

지태가 친위대들을 좌에서 우로 훑어가며 말했다.

감사의 마음이 흠뻑 담긴 음성이었다.

그러자 친위대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닙니다, 형님’을 외쳐 댔다.

잠시 그들을 묵묵히 바라보던 지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해줄 역할은 놈들의 은신처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딱 거기까지만 하라는 것! 절대 놈들을 잡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마라. 모르긴 해도 놈들의 화력과 무장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거다. 놈들과 붙는 건 여기 우리들의 몫이니까 내 말 꼭 명심하도록!”

“예, 형님!”

친위대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지태는 곧 조별로 나눠진 그들을 차례로 출발시켰다.

그들이 떠나는 것에 때맞추어 국정원 요원들이 도착했다.

어제 김성욱에게 부탁한 수색용 드론을 운용할 요원들이다.

지태는 그들에게 인근 야산과 차량이 근접하기 어려운 곳 등을 위주로 수색에 나서 달라 부탁했다.

이제 펜션에 남은 인원은 9명이다.

김영철과 북측 요원들, 그리고 이돈두와 윤학수, 후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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