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62화 (262/272)

최후의 결전(6)

지태는 발신자의 번호부터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인해 누가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감으로 알 수 있었다.

문자를 보낸 건 바로 놈들일 거다.

“누구야? 그 새끼들이야?”

김성욱이 다급하게 물어 왔지만, 지태는 한 귀로 흘리며 얼른 문자부터 클릭했다.

[말귀를 더럽게 알아먹지 못하는 위인이로군. 네놈이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았으니 그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겠지? 기대해봐, 네놈이 자초한 선물을! 그전에 이 동영상부터 즐겁게 감상하도록 하고. 다음번엔 네놈 여자의 목을 이렇게 따버릴 것이다.]

첫 문자는 이게 끝이었다.

지태는 서둘러 두 번째 문자를 클릭했다.

거기엔 놈의 말처럼 동영상 하나가 첨부돼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린 지은의 목에 누군가 날이 시퍼렇게 선 단도를 바짝 갖다 대고 있는 모습이다.

곧 위협하듯 살짝 그어 보였는데 베인 목 부위에서 금세 핏물이 배어났다.

“이 개새끼들!”

스마트폰을 든 지태의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말로는 차마 다 형용할 수 없는 분노와 주체하기 어려운 울분이 치솟았다.

지태가 부서져라 이를 으드득 갈 때였다.

찌르륵.

바로 그 순간 머릿속에서 느닷없이 짜릿한 전기 자극이 일어났다.

최봉준이 뭔가 경고를 주기 위해 나타날 때 일어나는 현상.

촌각을 다투는 위험상황인 모양이다.

곧바로 최봉준의 다급한 음성이 머릿속을 울렸다.

- 위험하네, 어서 자리를 피하게!

그의 경고가 언제 한 번이라도 어긋난 적이 있던가.

지태는 최봉준의 경고에 반문을 던지거나 토씨를 달지 않았다.

경고와 함께 반사적으로 창고 안에 대고 외쳤다.

“거기! 전부 밖으로 나와요.”

“무, 무슨 일이야?”

김성욱이 무언가에 잔뜩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꾸를 해줄 시간적 여유가 없다.

지태가 다시금 절규하듯 경찰특공대 EOD 팀원들에게 외쳤다.

“피해요, 다들 어서 피해!”

그 소리는 비단 EOD 요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창고 밖에 서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똑같이 보내는 경고였다.

“빨리, 빨리 피하라니까!”

절규하듯 외치는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문득 전화벨 소리가 창고 안에서 울렸다.

띠리리리링.

그리고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점이었다.

꽈꽈꽈꽝, 꽈꽝.

강한 폭발음이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곧 지진이 난 것처럼 온 대지가 심하게 요동치는 기분이 들었다.

무자비하게 파편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 직후였다.

* * *

같은 시각, 덕수궁 대한문 광장.

꽈꽈꽈꽈꽝, 꽈꽝.

2.5톤 트럭을 개조해 만든 연단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대형 스피커 옆에 놓인 검정색 가죽 가방이 터지며 천지를 뒤흔들 만한 강력한 폭발음이 들리는 순간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트럭 위와 그 아래에 있던 지휘부 사내들은 물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어 대던 노인들 수십 명이 그 거대한 폭발력의 폭풍에 휩쓸려 허공으로 붕붕 떠올랐다.

곧 사람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붉은 핏물과 살점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우박 비처럼 쏟아졌다.

폭발은 연달아 두 번에 걸쳐 일어났고, 사상자는 대략 살펴도 수백 명이었다.

아비규환,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 * *

영등포에 위치한 22층짜리 빌딩이다.

이곳은 오신환 전 의원이 속한 미래한국당이 입주해 있는 빌딩이었다.

정통 보수의 유일 정당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지난 대선과 지방 선거 등에서 패배의 쓴 잔을 연거푸 맛보는 바람에 현재는 30년 찬란했던 당의 명운도 기울어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쫓기듯 둥지를 옮겨왔다.

정각 5시.

꽈꽈꽈꽈꽝, 꽈꽝.

미래한국당이 입주해 있는 5층과 6층에서 느닷없는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아주 끔찍한 불기둥이 피어올랐다.

* * *

“이, 이, 이런!”

김성욱은 눈앞에서 벌어진 참혹한 광경에 심장이 떨리고 기가 막혀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런 난리를 두고 경악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테니까.

폭발의 여파가 얼마나 강했던지 공장 건물은 폭삭 주저앉았다.

아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일 거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 조정이었다.

폭발이 일어나기 직전 지태가 절규하듯 외쳤지만, 경찰특공대 EOD 요원들은 미처 밖으로 피할 틈도 없었다.

그들은 강력한 폭발을 온몸으로 죄다 받으며 허공으로 튕겨졌다.

두툼한 방탄 슈트를 몸에 걸치고는 있었다지만, 그것은 수류탄의 폭발 정도에서나 효과를 발휘할 뿐이지 이렇게 강력한 폭탄 앞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SWAT EOD 팀장인 장현수 경감과 요원 3명이 손쓸 틈도 없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직도 거센 화염과 함께 뿌연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처참한 폭발현장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지태가 머리칼을 무심결에 뒤로 쓸어 올렸다.

손바닥에서 뭔가 끈적끈적한 느낌이 일었다.

살펴보니 시꺼먼 먼지와 뒤섞인 핏물이었다.

날아온 파편에 머리가 그만 깨져버린 모양이었다.

“동무래 갠찮은 거이네?”

등 뒤쪽에서 김영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그 역시도 몰골이 엉망이었다.

지태가 한숨 끝으로 물었다.

“괜찮아. 근데 자넨?”

“일 없어야! 내래 지태 동무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잖네. 긴데 동무래 갠찮디 않아 보이는구만. 이거 보라!”

김영철이 지태의 이마며 어깨 등등을 손가락으로 콕콕 짚어갔다.

파편에 맞아 찢어지고 깨진 자국들이다.

“괜찮다니까. 그보다…….”

지태는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김영철의 손길을 뿌리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 김성욱이 들어왔다.

“저기요, 국장님!”

“어, 왜?”

“아까 폭탄이 터지기 전 EOD의 장현수 팀장이 했던 말 있잖습니까.”

“했던 말…?”

김성욱이 무심코 되물었다.

아직 처참한 폭발의 순간에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운가 보다.

그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아, 핏물로 썼다는 글씨 말입니다.”

“어, 그래. 제부도!”

그제야 EOD 팀장이 했던 말이 퍼뜩 떠오르는 듯했다.

지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거 제 생각엔 아무래도 지은이가 남긴 단서 같습니다.”

“음…….”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듯 김성욱은 깊은 신음성을 흘렸다.

“그게 임지은 씨가 남긴 메시지가 확실하다면 놈들이 제부도 방향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겠지?”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태가 짱짱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표정을 보이던 김성욱이 곧 자신의 생각을 내놓았다.

“그럼 모든 병력과 경력들을 제부도 쪽으로 이동시켜야겠구먼.”

그런데 지태가 의외로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김성욱이 왜 그러냐는 식으로 의아함을 가득 담은 눈빛을 보내왔다.

“……?”

“놈들은 우리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전 병력이 섣불리 우르르 움직였다간 그 새끼들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그러면 이제는 더더욱 찾기가 힘들 테고요.”

“그러면 어쩌자는 건데?”

“저만 움직이겠습니다. 여기 이 친구와 함께!”

지태가 김영철을 가리켰다.

그리고 김성욱의 대꾸가 날아오기 전에 다시 말을 이었다.

“국장님은 우선 뒤에서 서포터를 해주세요.”

“자네들끼리만 움직이겠다고?”

“요란하게 다 같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저희가 은밀히 접근하면서 작전을 펼치는 게 나을 듯합니다.”

“허허, 이거 참!”

김성욱이 결국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지태의 거듭된 간곡한 부탁에 그는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좋아. 대신 24시간뿐이야. 그 이후엔 사단 병력이라도 풀어서 놈들을 찾아내 소탕할 거야. 비록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그 어떤 희생이란 지은을 의미하는 거였다.

김성욱이 그 대목을 말할 땐 지태를 의식해서인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쩝!”

지태가 쓴맛을 다셨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는데 어쩌겠는가.

지태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다.

“국정원에서 보유하고 있는 무기들을 빌렸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그 일대를 수색하는 동안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군 병력과 경찰 경력들로 하여금 모든 도로를 막아주십시오. 농로며 작은 오솔길 하나까지 전부 다.”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근데 정말 자네들 대여섯 명으로 감당이 되겠어?”

“돈두와 그 아우들도 활용할 생각입니다.”

“깡패들을?”

“작전에 투입은 안 시킬 겁니다. 다만…….”

그러는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지태가 김성욱에게 양해를 구하고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보스! 접니다, 후안.

“어, 그래. 지금 한국이야?”

- 예, 보스!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제가 당장 그곳으로 가겠…….

“아냐. 내가 좀 멀리 와 있어. 그러지 말고 일단 이돈두에게 전화를 해. 내가 있는 곳을 돈두에게 알려 줄 테니까 후안은 그 친구와 같이 움직이는 게 좋겠어.”

- 알겠습니다, 보스!

후안은 현재 지태의 심경이 몹시 복잡한 것을 눈치챘는지 가타부타 여러 말들을 덧붙여오지 않았다.

지태는 곧 전화를 끊었다.

그런 지태를 김성욱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냐는 듯,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 * *

지태가 김영철 등과 함께 화성시 서신면에 도착한 것은 밤 9시 무렵이었다.

다행히 물때가 맞아 제부도로 들어가는 바닷길이 열려 있었다.

지태는 승합차를 타고 낚시 관광객으로 위장해 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왔다.

왠지 의심스럽거나 놈들이 은신해 있을 만한 지점들을 중심으로 펜션과 창고 등을 훑고 다녔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펜션의 주인들은 적극적인 호객 행위를 펼쳤다.

행여 놈들에게 제압을 당한 상태라면 감히 호객 행위에 나설 수가 있겠는가.

어떤 사달이 나도 지금쯤 단단히 나 있을 거다.

여하튼 그런 점에서 보면 놈들이 섬 안에 은신해 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시 섬을 빠져나오는 동안 김영철이 미덥잖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운전대를 잡은 채 지태가 돌아보았다.

“왜?”

“동무래 기렇케 생각하디 않네?”

“뭐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말이디 대가리에 총을 맞디 않은 이상 섬에 은신할 까닭이 있갔네? 만일의 경우 꼼짝없이 갇히고 말 데를 동무 같으면 제 발로 찾아오갔어?”

맞는 말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지적이었다.

사실 자신도 막상 이곳에 와보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내심 미심쩍어하는 와중에 김영철도 같은 의견을 밝혀오니 당연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맞는 말이야. 그러잖아도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어. 그렇다고 이곳을 건너뛴 채 수색을 할 수는 없잖아. 지은이가 위급한 와중에도 굳이 이곳을 언급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이번에는 김영철이 그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태는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 임시 작전 본부로 쓰려고 얻어 놓은 펜션 쪽으로 차를 몰았다.

서신면 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펜션이다.

차가 멈춰 서자 이제 막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이돈두와 후안 등이 퍼뜩 다가와 맞았다.

반갑게 해후할 상황은 아니라서 그들은 서로 번갈아 가며 무거운 표정으로 악수만 주고받았다.

그렇다 해도 후안까지 악수만 하고 말 수는 없는 일이다.

지태가 악수에 이어 후안을 말없이 포옹해주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납치된 상황이었다.

후안은 그런 보스의 심정을 헤아린 듯 지태의 등을 가볍게 두어 번 두드려주었다.

인사가 끝나자 지태는 이돈두를 돌아보았다.

“받아 왔어?”

이돈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승합차 한 대를 가리켰다.

“근데 김 국장이 무기만 준 게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요원 다섯 명을 붙여주더라고. 너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작전을 하다 보면 도움이 필요할 거라면서. 대신 네 지휘를 받는 것으로 명령을 내렸대.”

지태는 잠시 쓴맛을 다셨지만 크게 불만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다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들을 잘 운용하면 될 듯싶었다.

“일단 들어가자. 안에서 내 계획을 말해줄 테니까.”

지태가 펜션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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