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61화 (261/272)

최후의 결전(5)

눈빛을 가장 먼저 받은 하야토가 자세를 바로 하며 명을 기다렸다.

아키라는 그에게 일본말로 씹듯이 독하게 뱉어냈다.

“도코쿠라이 잇테루노카 키이테미테!(어디쯤 가고 있는지 물어봐!)”

“하이!”

그렇듯 앞뒤 자르고 내지른 명령이었지만 하야토는 금세 말귀를 알아들었다.

요원 둘을 데리고 앞서 출발했던 슈스케의 현재 위치를 묻고 있는 거다.

그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어 통화를 시도했다.

몇 마디를 끝으로 급하게 통화를 마친 하야토가 아키라를 돌아보았다.

“치쵸오상! 소오루니 호톤도 토오차쿠시타 소오데스.(조장님! 서울에 거의 도착했다고 합니다.)”

슈스케의 위치가 딱히 궁금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조명철에게 자신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시위조의 성격이 커서 아키라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 조명철을 흘깃 쳐다보며 툭 내뱉었다.

“생각을 정리하든 뭘 하든 일단은 여기부터 벗어납시다. 곧 놈이 찾아올 거요.”

“알겠소. 그런데 말이오!”

조명철이 대답을 던져 놓고는 재빨리 아키라의 시선을 붙들어 세웠다.

아키라가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다.

“저 여성 동무는 내 차에 태우겠소.”

“그러든가! 좋도록 하시오.”

나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조명철과 별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듯 아키라가 홱 돌아섰다.

조명철은 빠른 걸음으로 공장 문을 나서는 아키라의 뒷모습에 잠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저만치에 혼자 서있는 지은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는 현재 극한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1시간 전쯤 아키라가 할 말이 있다며 데려가더니 그 이후부터 생겨난 증상이었다.

‘저 여성 동무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조명철이 심기 불편한 시선으로 이를 악문 채 콧숨을 강하게 내쉬었다.

곧 사납게 변한 표정을 풀고는 지은이 서있는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지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갈 시간이오. 어서 가십시다.”

그러나 지은은 좀처럼 움직일 줄 몰랐다.

오한이 시달리는 것처럼 양손을 가슴에 모은 채 바들바들 떨어댈 뿐이었다.

“걱정 마시오. 이제부터는 내가 여성 동무의 곁에 딱 붙어있을 테니까.”

그제야 지은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엇!’

순간 조명철은 속으로 흠칫 놀랐다.

지은의 턱 바로 밑 목덜미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까닭이었다.

상처가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것만은 확실했다.

“동무, 괜찮소?”

“괜찮아요. 근데……?”

두려움에 떠는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눈빛으로는 어떤 다른 것을 묻고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 조명철이 내뱉은 말에 대한 진위 여부를 묻는 듯했다.

자신의 곁에 딱 붙어있겠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눈치껏 알아챈 조명철이 신뢰를 주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약속하오. 우리의 목적은 결코 여성 동무가 아니니까.”

* * *

지태는 현재 헬기를 이용해 안산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김성욱과 최명남 등을 태운 이 헬기는 지태의 요청을 받은 임상만 회장이 부경그룹에 연락해서 내준 거였다.

자리가 모자라 가용할 수 있는 요원들을 모두 태울 수가 없어서 급한 대로 우선 그들만 안산으로 먼저 넘어가는 길이었다.

한강실업 팀 요원들과 국정원 특수공작팀 소속 요원들은 자동차를 이용해 안산 공장에서 합류하기로 돼 있다.

일각이 여삼추였다.

지태는 극심한 불안감과 조바심으로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하아!’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자신의 그런 표정을 숨기려고 고개를 돌려 사물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그의 시야에 지상의 사물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건성으로 내다보고 있는 중이다.

그때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최명남이 지태를 흘깃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굉음을 내는 로터 소리에 묻힐까 봐 지태의 귀에 최대한 가까이 입술을 가져다 댄 채 목청을 높였다.

“너무 걱정하디 말라. 잘 될 거이야.”

지태는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보다 그의 위로가 더 고마웠다.

옅은 미소와 함께 주먹으로 최명남의 가슴팍을 살짝 치며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지태는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가져갔다.

최명남의 위로가 있었지만, 사실 안산으로 가면서도 큰 기대는 갖고 있지 않다.

놈들이 이렇듯 자신들의 위치를 쉽게 노출해가며 자신을 불러들인다는 게 왠지 수상쩍기만 했다.

뭔가 음흉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이런 식으로 허술한 짓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해 가고 있는 거다.

일단 달려가서 지은이 머물렀던 흔적이라도 확인을 해야 그나마 마음이 놓일 듯해서.

그때 김성욱이 지태를 돌아보며 외쳤다.

“이 새끼들 하는 수작이 왠지 눈에 훤히 보인다. 한 회장은 그런 생각이 안 들어?”

그가 말하는 수작이란 북아현동에서의 폭발이었다.

이번에도 지태를 불러들여 그런 식의 도발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미 예상하고 있는 일이어서 지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가서 확인해보면 알겠죠.”

지태는 짧게 외치고는 다시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 * *

위성 지도를 통해 공장의 위치는 이미 확인한 터였다.

처음에 문자를 받은 직후 서둘러 위치 파악에 나선 그들은 공장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그나마 조금 안심했었다.

놈들이 콕 찍어준 그 공장이 민가 밀집 지역과는 약간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만에 하나 폭발물이 터지더라도 피해의 여파가 그나마 덜하지 않을까 하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아현동의 경우와는 달리 이번엔 단순히 맛보기 수준에서 끝내진 않을 작정인 듯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게 클레이모어였다.

클레이모어의 폭발력과 살상력은 가히 놀랍다.

특히 더 위험한 것은 폭발할 때 발생하는 충격파와 후폭풍의 위력이었다.

그것이 이곳에서 두어 개만 터진다 해도 최하 반경 100미터 안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니까.

이곳이 다른 공장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불과 수십 미터 정도밖엔 안 된다.

어떤 식으로든 폭발이 일어나게 된다면 인근에 밀집돼 있는 공장들과 직원들은 절대 무사하지가 못할 것이다.

김성욱은 마침내 결심을 했다.

지태는 지은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은 군부대나 경찰력의 도움을 한사코 피하자고 했지만, 민간의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데 더는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지태도 막상 현장을 둘러본 이후엔 제 고집을 내세우진 못했다.

김성욱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지태와 합의를 본 김성욱은 곧바로 경찰과 인근 군부대에 지원을 요청했다.

긴급을 요하는 폭탄 테러 상황이라는 말에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달려왔다.

관할 경찰서에서 달려온 경력들은 공장 직원들과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을 안전거리 밖으로 피신을 시켰고, 단독 군장의 무장 군인들은 주변의 경계를 강화했다.

“아, 저기 오는군.”

김성욱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지태가 돌아보았다.

두툼하고 묵직한 슈트로 무장한 폭발물 처리반원들이 그들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SWAT EOD팀 장현수 경감입니다. 국정원의 국장님 되시죠?”

“김성욱입니다. 수고 좀 해주세요. 무엇보다 우선 안전에 만전을 기해주시고.”

그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당연히 안전을 최우선시 할 생각이었다.

목숨을 여분으로 더 갖고 사는 것도 아니니까.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은 공장 내부로 진입하기 전 일단 드론부터 띄웠다.

공장 내부 상황을 먼저 살핀 후 작전을 개시하려는 거다.

김성욱과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지태와 김영철이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태의 표정이 몹시 어두웠다.

뭔가 개운치 못한 기운이 자꾸만 뇌리를 스쳐 간다는 얼굴이었다.

* * *

약 오백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물론 심지어 이스라엘의 국기까지 손에 든 그들 대부분은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층이었는데 이들을 지휘하는 지도부는 5, 60대 중년들로 보였다.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이다.

2.5톤 트럭을 개조해 만든 무대 위에서 집회를 주관한 단체의 간부인 듯한 중년 남성이 선동적인 구호를 외쳤고, 노인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미친 듯이 흔들어 대며 그 구호를 따라 복창했다.

며칠 전 비무장지대에서의 도발을 규탄하는 동시에 북의 위장평화쇼에 끌려 다니는 정부를 타도하자는 구호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 * *

대한문이 곧장 바라다 보이는 대로변 일각.

짙게 선팅이 된 승합차 안에서 슈스케가 비릿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모리!”

“하!”

“미나토니 덴와시테미로!(미나토한테 전화해봐!)”

“하이!”

슈스케의 명령에 모리라 불린 사내가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가 전화를 하는 사이 슈스케는 다시금 창밖 너머 집회 현장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한 움큼의 조소를 퍼부었다.

“스구 시누 코토모 시라즈, 뵤오신타치!(곧 뒈질 줄도 모르고, 병신들!)”

“조초오!(조장님!)”

모리가 통화를 마치고 슈스케를 불렀다.

슈스케가 고개만 돌린 채 턱짓으로 상황을 물었다.

“요돈포노 호오모 주비시타 소오데스!(영등포 쪽도 준비를 마쳤다고 합니다.)”

“음, 요시!(좋아!)”

슈스케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더니 곧 시간을 확인했다.

“초오도 고훈고니 사쿠센다!(정확히 5분 뒤에 작전이다.)”

“하이!”

모리가 절도 있게 고개를 꺾으며 슈스케의 명을 받았다.

* * *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해발 100여 미터 정도의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한 펜션이다.

바로 눈앞에는 궁평항이 자리하고 있으며 먼발치로는 화남산업단지 너머 제부도가 보이는 곳이다.

아키라는 펜션 1층 거실에 앉아 통유리 너머로 멀리 갯벌을 쳐다보고 있다.

조명철과 북측 특작대 요원들은 보이지 않는다.

지은도 거실에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같다.

그 앞에 정자세로 서 있던 하야토가 문득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체크했다.

오후 5시 5분 전이었다.

“조장님, 5분 전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제 슬슬 문자를 날려야겠군. 놈에게 던져줄 깜짝 선물과 함께 말이지.”

비릿하게 웃어 보이던 아키라가 소파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 * *

드론을 이용해 1차 수색을 마친 경찰특공대 EOD 팀원들이 공장 안 미심쩍은 곳들을 위주로 폭발물 탐지에 나서고 있다.

첫눈에 들어온 클레이모어가 설치된 장소 말고는 아직까지 더 특별히 수상쩍은 곳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최초에 눈에 띄었던 클레이모어는 이미 처리한 후였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태는 김성욱 등과 함께 공장 출입문 앞에서 초조하게 그들의 수색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새끼들 괜히 간을 보자는 거 아냐?”

김성욱이 조바심에 못 이겨 기어이 한마디를 내뱉었다.

투덜거리는 목소리 같지만, 제거한 클레이모어 외에 다른 폭발물이 발견되지 않아 내심 다행이라 여기는 말투처럼 들렸다.

바로 그때였다.

EOD 팀장이 출입문 쪽을 돌아보았다.

“여기 핏물로 쓴 것 같은 글씨가 보입니다.”

김성욱이 의아하다는 시선으로 물었다.

“핏물 글씨? 뭐라고 쓰여 있는데요?”

“제… 부도?”

김성욱은 EOD 팀장의 말을 되뇌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사이에 지태가 급히 끼어들며 팀장에게 물었다.

“다른 건, 그 외에 다른 건 없습니까?”

“음……. 아! 여기에 잘린 케이블타이 조각도 보이는군요.”

‘케이블타이?’

순간 지태는 퍼뜩 지은을 떠올렸다.

그녀를 결박했던 흔적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핏물로 글씨를 남긴 것은 지은이 분명하다.

지태가 이를 악물며 빠르게 어떤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또로록, 또로록.

문자가 왔다는 알림음이 연달아 두 번 울렸다.

폰에 찍힌 문자는 두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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