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3)
“저 병신 새끼들은 쿠데타를 주동했던 수뇌부가 전부 다 검거된 걸 아직 모르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는 하야토였다.
아까 조명철에게 맞았던 턱 부위를 매만지며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강한 비웃음을 섞었다.
입술은 대책 없이 깨져 있어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는 중이었고, 한쪽 턱은 탱탱 부어올라 있었다.
슈스케가 그런 하야토를 수치스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내각조사실 최정예라는 놈이 저런 병신 새끼한테 얻어맞기나 하고!”
“그건 너무 갑작스럽게 공격을 해오는 바람에…….”
“새끼! 그걸 지금 말이라고!”
슈스케가 독하게 눈을 부라릴 때였다.
아키라가 잔뜩 억누른 목소리로 그들을 꾸짖었다.
“조용히 해!”
“하이!”
“하!”
슈스케와 하야토가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조선의 수뇌부가 제압을 당했다는 것을 저놈들이 알든 모르든 상관없다. 어차피 저놈들은 우리의 총알받이로 쓰고 버릴 놈들이니까.”
두 녀석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아키라가 말을 이었다.
“한지태를 암살한 이후에도 한동안은 한국 사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저놈들이 그런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도록 우린 뒤에서 조종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런 다음 우린 조용히 이 나라를 빠져나가는 거다.”
“하! 잘 알겠습니다, 조장!”
슈스케가 절도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에도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우물쭈물 하다가 겨우 물었다.
“그럼 한지태 놈을 이곳으로 유인하는 것은 내일, 아니군요. 자정이 넘었으니 오늘이 맞겠습니다?”
“오늘 늦은 오후쯤이 적당하겠지. 놈을 초대하기 전에 이곳을 완벽하게 새 단장한 다음에 말이야.”
아키라가 제 말끝에 얼음장 같은 웃음을 흘렸다.
* * *
“솜씨가 그쪽 동네지?”
지태가 김영철을 돌아보며 물었다.
국정원의 안가였다.
그들은 이돈두와 그의 아우들을 아현동에서 돌려보내고 새벽 3시가 넘어 이곳으로 넘어왔다.
김영철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여주었다.
“폭발물의 종류는 우리 공화국 거이 아닌데 설치 형태로만 보자면 특작대 그 간나들이 맞아.”
“그럼 벌써 합류를 했다는 얘기군. 이번 작전도 놈들의 합작품이고.”
소파의 상석에 앉아있던 김성욱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더니 곧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지태가 분을 삭이듯 입바람을 훅 불어제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양쪽 다 귀신 뺨 때릴 놈들이어서 꽤나 골치가 아프겠는데. 그렇다고 우리 쪽도 특수부대를 투입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하아!”
“놈들이 노리는 게 어쩌면 그거일 수도 있습니다. 판을 키우는 거요! 어찌 되었든 우리 선에서 해결해야 돼요.”
“그러니까 골치가 아프다는 얘기 아닌가. 이게 알려져서 국민들이 동요하기 전에 조용히 잠재워야 하니까.”
김성욱은 진짜로 골치가 지끈거리는 모양으로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짚어가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그때 김영철이 가만히 지태를 불렀다.
“이보라, 지태 동무!”
“응.”
“내래 생각해 보니 아새끼들이 비단 지태 동무만 노리는 게 아닌 거 같아. 지태 동무만 노렸다면 이렇게 요란을 떨디는 않았을 거이야.”
“내 생각도 그래.”
“분명 후방 교란을 노리고 있는 거이 분명해. 불안감을 조성해서 우리 공화국의 진정한 의지를 위장 평화로 매도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든다, 이 말이디.”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이나 저팬 패싱으로 궁지에 몰린 일본 정권의 목적이 궁극적으로는 그거야. 판을 깨서 원상태로 되돌려 놓으려는 거!”
“길타믄 국장 선생의 말마따나 골치가 아프게 생겼구만, 기래. 사방팔방 어디서 터뜨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거잖네. 덴장!”
“어쩔 수 있나. 지금으로선 한 회장이 유일한 돌파구야. 그나마 놈들과 연결이 될 수 한 가닥 희망 같은 거!”
김성욱이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두 사람의 대화 사이에 다시 끼어들었다.
지태가 동의하는 고갯짓을 하면서도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으로선 놈들의 도발 여부보다 지은의 안위가 더 걱정이었다.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속으로 간절하게 빌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죄스러운 마음이 일었다.
자신 때문에 그녀가 이런 지옥 같은 고통을 맛보고 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
지태는 눈을 질끈 감은 상태로 허공으로 고개를 쳐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 * *
뜬눈으로 꼬박 날을 지새운 지태는 해뜨기가 무섭게 한남동으로 달려갔다.
지은이가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임상만 회장에게 더는 미루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으어어어~ 컥.”
아들 임경남을 잃은 슬픔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은의 납치 사실을 전해들은 임상만 회장은 그대로 졸도하고 말았다.
혹시라도 잘못될까 염려되어 주치의를 부르려 했지만, 다행히 임상만 회장은 곧 깨어났다.
냉수 두 컵을 연달아 들이켠 후 조금은 진정된 눈빛으로 지태를 쳐다보았다.
“어찌 된 건가?”
물어오는 음성이 몹시 떨렸다.
지태는 고개를 푹 떨굴 수밖에 없었다.
지은의 납치가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죄책감이 앞섰기 때문에.
“제 탓입니다, 회장님.”
“자네 탓이라니?”
지태가 울컥해지는 마음을 달래려 이를 악물었다가 풀고는 임상만 회장을 똑바로 주시했다.
그리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북한 쿠데타 세력들과 저팬 패싱에 내몰린 일본 집권당이 합작해서 한반도 평화를 깨려 한다는 거지?”
“……!”
지태가 침묵으로 답을 주는 사이 임상만 회장은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골랐다.
그러고는 곧 말을 이었다.
“그 세력들이 현재 우리나라에 침투해서 한반도 평화조성의 중심에 선 자네를 제거하고 우리의 내부 동요를 불러일으키려 공작을 꾸미고 있다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네의 연인이자 사업의 파트너인 우리 지은이를 볼모로 삼기 위해 납치를 꾀한 거고?”
“……!”
“그에 대한 대안은 있나? 우리 지은이를 무사히 구출해낼 대안 말이야.”
“…….”
지태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줄 수가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적이라야 어느 정도 확신을 줄 수 있겠지만, 놈들의 실체도 모르는 상황에서 어찌 장담할 수가 있겠는가.
지태는 죄송스러움과 자괴감에 빠져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임상만 회장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자네!”
“예, 회장님.”
“우리 지은이가 자네에게 어떤 사람인가?”
“사랑하고 있습니다.”
“얼마만큼?”
“제 모든 것을 다 걸 만큼입니다, 회장님.”
지태의 표정을 관찰하듯 임상만 회장은 한동안 그윽하게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무겁게 입을 뗐다.
“그럼 믿겠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나하고 약속하세.”
“제가 가진 능력, 그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지은이만큼은 꼭 무사히 회장님 앞에 데려다놓겠습니다.”
“……!”
임상만 회장은 입술을 꾹 닫은 채 지태를 관찰하듯 다시금 쳐다보았다.
굳건한 결의가 엿보였던 모양이다.
임상만 회장이 신뢰를 보내는 고갯짓을 해왔다.
“그거면 됐네. 그만 가보게. 지금 여기에서 낭비할 시간이 없잖은가.”
“예, 회장님!”
지태가 앉은자리에서 퍼뜩 일어나며 허리를 크게 반으로 접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그에게 다짐했다.
‘예. 꼭 무사히 지은이를 데려오겠습니다.’
* * *
“동무래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는 거이네?”
김영철이 넋을 놓고 앉아있는 최명남의 어깨를 톡 찌르며 물었다.
국정원 안가 2층 테라스였다.
순간 파라솔이 꽂혀있는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최명남이 군기가 바싹 든 모습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경례를 붙였다.
“나오셨습메까?”
“쉬라우! 긴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길래 내가 다가오는 기척도 못 들은 거이야?”
“고조 뭐 기냥…….”
“동무래 혹시 그 아새끼 생각하고 있었던 거이네?”
“……!”
최명남은 즉각 답을 내놓지 못했다.
김영철이 쓰게 웃었다.
“역시나 내 짐작이 맞았구만, 기래.”
김영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곧 손을 까불어댔다.
“그만 앉으라. 하늘 안 꺼진다.”
김영철은 최명남이 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또 은근히 물었다.
“그놈 이름이 조 뭐라 했디?”
“조명철입네다, 대좌 동지.”
“조명철이! 기래, 그놈하고 명남 동무래 동기디 아마?”
“오래 전에 특작대에서 같이 근무를 했댔습네다.”
“어드렇게 생긴 놈이야?”
얼굴 생김새를 묻는 게 아닐 터였다.
최명남은 대답 대신 잠시 쓰게 웃었다.
그러고는 곧 씁쓸히 답을 주었다.
“천생 군인이디요. 강직하고 오로지 명령에만 죽고 사는! 한마디로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찾아볼 수 없는 꽉 막힌 동무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인간성이라든가 사람의 도리는 올바른 동무였지요.”
김영철이 냉소를 입가에 담았다.
“인간성 좋고, 사람의 도리를 아는 새끼가 위대한 우리 공화국을 배신하고 반역을 꾀해?”
김영철은 못마땅하다는 듯 씹었다.
하지만 타인을 칭찬함에 있어 인색하기 짝이 없는 최명남이 이 정도로 평가를 내렸다는 것은 그놈이 꽤나 괜찮은 축에 든다는 이야기였다.
최명남이 딴청을 피우듯 건물 아래쪽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불쑥 외쳤다.
누군가를 발견한 듯했다.
“한지태 선생이 돌아오는 거 같습네다.”
“기래?”
김영철이 목을 쭉 늘어 빼고는 테라스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안가 쪽으로 지태의 승용차가 이제 막 들어서고 있었다.
* * *
“잘 다녀왔나?”
현관에 들어서는 지태를 보며 김성욱이 물었다.
제 딴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묻는다는 표정이다.
지태의 대답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후에 나왔다.
피곤에 절고 막연한 좌절감에 목이 확 잠긴 목소리였다.
“그냥 다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다. 이렇게 묻는 내가 머저리지.”
김성욱은 자신의 머리를 자책하듯 쥐어박았다.
그러고는 이내 정색했다.
“내가 곰곰이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현재 상황을 세상에 밝히고 공개로 전환했음 해.”
“후우!”
지태가 한숨처럼 입바람을 훅 불어제쳤다.
“그렇게 되면 지은이의 안전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국민들이 동요하게 될 겁니다. 놈들이 노리는 게 바로 그런 점일 테고요.”
“세상은 벌써 동요하다 못해 시끄럽게 요동치고 있는 형국이잖아.”
“그게 어디 국민 대다수의 여론입니까. 일부 극우 단체들의 연례행사잖습니까. 이런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도 틈만 나면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인데요, 뭘.”
지태의 말에 김성욱은 소리 없이 쓰게 웃었다.
비무장지대에서 참혹한 사건이 벌어지고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과 성명이 예상보다도 빨리 발표되었지만, 그에 상관없이 일부 보수 단체에서는 과격한 시위를 계속 벌이는 중이었다.
정권을 탈취해 간 종북 빨갱이들이 북한의 위장평화쇼에 부화뇌동하는 꼴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
“그렇다 해도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하잖은가. 전국의 경찰력과 특수부대의 힘을 빌려 동시에 놈들의 뒤를 쫓는 게 아무래도 낫지 않을…….”
“일단은!”
지태가 김성욱의 말을 끊을 요량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다음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