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2)
빈집의 2층 쪽에서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요란하게 피어올랐다.
“이, 이런!”
폭발이 일어나는 순간 김성욱이 득달같이 앞으로 쏘아졌고, 지태와 김영철, 이돈두가 뒤따라 전력 질주했다.
빈집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셌던지 대문 밖에 있던 요원들조차 날아온 파편에 맞아 땅바닥을 뒹굴었다.
개중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요원들도 있었다.
그들이 내뱉는 고통스러운 비명들이 밤의 적막을 갈가리 찢어내는 듯했다.
“야! 다들 부상자들에게 달라붙어!”
김성욱은 자신이 이끌고 온 요원들에게 부상당한 이들을 살피라 명령하고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폭발의 여파로 2층의 한쪽 귀퉁이가 폭삭 내려앉아 있었다.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이정명 부장을 발견한 것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이었다.
이정명 부장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미동조차 보이지 않는다.
김성욱은 서둘러 그를 부축해 안으면서 뺨을 때렸다.
“이봐, 이 부장! 정신 차려, 이 부장아!”
꿈틀.
다행히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은 아닌 듯했다.
“으음.”
혼절해 있던 이정명 부장이 신음을 내뱉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충격에서 오는 혼란 때문에 아직 사태의 본질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구, 국장님!”
“그래. 이만 하길 그나마 천만다행이야. 견딜 수 있겠어?”
“예. 근데 나기문 하고 성정호는요?”
“아직……. 이제 위쪽으로 올라가 봐야지.”
그러나 김성욱의 얼굴엔 벌써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게 분명해 보이는 얼굴.
그때 지태가 재촉했다.
“국장님, 여긴 제가 있을 테니 어서요!”
지태가 김성욱을 대신해 이정명 부장을 부축했다.
그러고는 거듭 재촉하는 시선을 쏘아 보냈다.
“어서요, 어서!”
그제야 김성욱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낫다.
그러고는 잘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 2층으로 향했다.
그를 쳐다보던 지태를 이번엔 이돈두가 재촉하듯 밀어냈다.
“친구야, 너도 올라가 봐. 이분은 내가 보살피고 있을 테니까.”
잠시 이돈두를 돌아본 지태는 아무래도 그게 좋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장님 잘 좀 부탁한다.”
“그래, 걱정 마.”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준 지태가 김영철을 돌아보았다.
“김영철! 나랑 함께 올라가자.”
“그러디!”
김영철은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지태의 뒤를 따랐다.
* * *
“아직 그대로야?”
아키라가 낡은 소파에 몸을 묻은 채로 물었다.
안산 오이도 인근에 있는 공장이다.
그들이 있는 곳은 복층 구조물 형식으로 된 사무실이었다.
공단 밀집 지역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외따로 세워진 건물이었는데 오래 전 부도를 맞는 바람에 문을 닫은 곳이었다.
슈스케가 들여다보고 있던 태블릿 PC에서 눈을 떼며 대답했다.
불만인지 의구심인지 모를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으면서.
“그게 좀 이상합니다, 조장님. 분명히 이 시간쯤이면 긴급 속보가 떠올라야 맞는 건데…….”
그러자 아키라가 비릿하게 웃었다.
곧 개의치 않겠다는 말투로 내뱉었다.
“아마도 언론을 통제하고 있나 보군.”
그때 슈스케가 반갑게 소리쳤다.
“어! 이제야 뜬 거 같습니다.”
그러나 곧 찡그렸다.
“……?”
“LPG가스 폭발이 일어났다는 기삽니다. 빈집에 있던 LPG가스통이 원인 불명의 이유로 폭발해 한바탕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고만 짧게 언급됐습니다. 아마도 인근 불량학생들의 소행이 아닐까 한다는 추측성 기사로 마무리해 놨군요.”
“작은 소동이라……. 헛!”
아키라가 헛웃음을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상관없다. 어차피 한지태라는 놈에게 우리의 의지를 보여준 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우리 뜻대로 따르지 않을 시엔 자기 여자도 그리된다는 걸 지금쯤 깨달았을 거다.”
아키라가 독한 눈빛으로 웃으면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사무실 창문 너머로 공장 안을 내려다보았다.
입엔 재갈이, 그리고 두 손은 뒤로 결박되어진 채 바닥에 앉혀 놓은 지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야토, 타이치, 미나토, 타다요시 등이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작거리며 희롱하고 있었다.
“으으음!”
지은은 벌레를 털어내듯 놈들의 손길을 온몸으로 뿌리치며 저항했다.
그러면서 재갈이 물린 입으로는 최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며 놈들을 노려보았다.
그때 저쪽 편에 모여 있던 북한 측 525 부대원들이 지은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아키라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이야?”
“뭐가?”
지은을 희롱하던 놈들 중 최고 윗대가리인 하야토가 손에 쥐고 있던 권총의 총구로 자신의 뺨을 긁어 대며 못마땅하게 흘겼다.
“동무! 우리가 이루려는 혁명의 본질을 망각한 거야?”
“카쿠메에노 요오나 코토시테이루네. 바카야츠!(혁명 같은 소리하고 있네. 병신 새끼!)”
“뭐라는 거야, 이 간나 새끼가!”
순간 북측 대원들 중 대가리로 보이는 사내가 눈을 부라렸다.
하야토가 비웃듯 웃었다.
“상관 말라는 소리다! 어차피 나중에 한지태라는 놈하고 같이 묻어버릴 계집년인데 좀 건들면 어때서?”
“목적을 위해 우리가 비록 힘을 합치고는 있지만, 적어도 인간적인 도리에 벗어나는 일은 없게 하라.”
“바카야츠!”
“이 개새끼야, 그 정도는 나도 알아들을 수 있어. 어디서 감히!”
525 부대원들의 최고 윗대가리가 금방이라도 후려칠 듯 눈을 치켜떴다.
“네놈이 인상을 쓰면 어쩔 건데?”
하야토는 북측 대가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찰나,
빠악, 쩌어억, 쩌억.
타타탓.
철컥.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동작이 너무 빨라서 눈으로 미처 따라잡기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하야토는 어느새 권총을 빼앗긴 채 저만치 나가떨어져 있었다.
북측 대가리는 방금 빼앗은 권총의 슬라이더를 후퇴 전진시킨 다음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하야토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이 간나 새끼, 이 자리에서 뒈지고 싶네?”
금방이라도 총알을 한 방 갈겨버릴 태세였다.
턱과 복부를 동시에 얻어맞은 고통으로 몸부림을 치면서도 북측 윗대가리의 윽박은 두려웠던 모양이었다.
하야토가 움찔 몸을 떨더니 앉은 자세 그대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복층 사무실로 이어진 계단 위에서 아키라가 외쳤다.
“그만하면 됐소. 그쯤 해두시오.”
그 소리에 사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북측의 윗대가리가 권총의 총구를 아래쪽으로 내렸다.
그러고는 계단을 내려온 아키라가 바짝 다가오자 하야토에게서 빼앗은 권총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미안하오. 우리가 댁들한테 무례를 범한 듯하군요. 아, 참! 우린 아직 통성명도 못했지요? 난 아키라라고 합니다.”
아키라가 우호적인 모습으로 손을 내밀자 북측의 윗대가리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조명철이오. 525 특작대 특무상삽니다.”
“반갑소, 조명철 씨! 그나저나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군요.”
“우리야 뭐 늘 밥 먹고 하는 일이라서…….”
조명철은 겨우 이까짓 것을 가지고 뭘 놀라느냐는 표정이었다.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
그러다가 퍼뜩 떠오른 듯 조명철이 지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참! 저 여성 동무한테 함부로 하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소. 우리의 목표는 저런 거이 아니니까.”
“알겠소. 그 점에 대해선 주의하도록 하지.”
아키라가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조명철을 흘깃 돌아보았다.
“나도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댁들 폭탄 설치는 잘한 거요?”
“말했잖소. 우리가 밥 먹고 하는 일이 늘 그런 거라고. 근데 무슨……?”
“아니오. 속보가 뜬 것을 보니까 그냥 애들 장난으로 치부를 해놔서 해본 말이오.”
“애들 장난?”
“그냥 그렇다는 말이오. 참, 오늘 경비는 우리가 설 테니 당신들은 푹 쉬시오. 그럼!”
아키라는 냉소인지 조소인지 모를 웃음을 살짝 흘려놓고는 이내 몸을 돌려 다시금 복층 계단 쪽으로 향했다.
* * *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소속 사내들의 희롱으로부터 벗어난 지은은 이제 조금 진정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방금 여타 납치범과는 전혀 다른 신사도를 보인 조명철을 쳐다보고 있었다.
북한 특유의 억양이 섞인 사투리를 쓰는 것, 그리고 무시무시한 무술 실력을 보이는 점들로 보아 혹시 저들이 남파 공작원은 아닐까 하고 지은은 생각했다.
그때 우연히 조명철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10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가볍게 캔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는데 지은과 눈이 마주치자 무슨 생각에서인지 부하 한 명에게 고갯짓을 했다.
명을 받은 사내가 생수 한 병과 빵 한 봉지를 들고 지은에게로 다가왔다.
“여성 동무! 사실 지금 아무 입맛도 없갔지만, 그래도 억지로라도 좀 드시갔소?”
그 순간 답답한 재갈이라도 일단 풀고 싶은 요량으로 지은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가 지은에게로 바짝 다가와 입에 물린 재갈을 냉큼 풀어주었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그녀의 등 뒤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풀어줄 테니 허튼짓 말라요.”
“네.”
그나마 한결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자유를 억압하던 구속에서 풀리자 지은은 비로소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러자 궁금했다.
“저 근데 하나만 물어볼게요. 아저씨들 정체가 뭐예…….”
“기딴 건 묻디 말라요.”
사내는 조금 전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몹시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뱉고는 이내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지은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머쓱하기도 한 표정으로 사내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은 마음이 다시 또 고개를 쳐들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남북한 평화 무드를 깨고 경협을 방해하려는 공작의 일환 같았다.
그래서 남북 평화공존의 중심에 서 있는 지태를 제거하는 것으로 판을 깨려는 게 틀림없었다.
‘그나저나 무사해야 할 텐데…….’
지은은 제 처지를 망각한 듯 그 와중에도 지태의 걱정이 앞섰다.
* * *
“우리래 위에서 받은 특명을 완수하고 나면 아무래도 저 쪽발이 새끼들을 죄다 없애 버려야갔디요?”
조금 전 지은에게 물병과 빵을 갖다 주고 왔던 사내가 말했다.
조명철은 대답 대신 복층 구조물의 사무실을 올려다보았다.
일본 내각정보조사실 소속 사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금은 임무를 완수하는 게 우선이다. 다들 이 순간에는 그 한가지에만 집중하도록.”
“알갔시오. 조장 동지.”
대답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 의구심이 드는 표정이다.
사내가 다시 조명철을 흘깃 쳐다보았다.
“근데 저기…….”
“……?”
“저 혹시 위에서 내려온 지령 같은 거이 없슴메?”
조명철은 떨떠름한 느낌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비무장지대에서 거사를 치르고 내려와 일본 요원들과 합류를 하게 되면 별도의 지령을 다시 내려주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는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었다.
“조장님!”
사내가 답을 재촉하듯 다시 불렀다.
조명철이 헛기침을 한 뒤에 목소리를 깔았다.
“아무 소리 말고 그냥 기다리라.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기다리다 보면 뭔가 소식이 날아 오갔지. 그러니까 보채디 말라.”
단호하게 말을 마친 조명철이 힐끔 지은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자꾸만 갈증이 이는 듯 생수 병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