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결전(1)
이돈두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어지간한 일 때문에 지태가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일이 터져도 크게 터진 것 같았다.
- 지은이가 납치됐다.
“뭐, 뭣?”
- 밖으로 말이 새 나가선 안 되는 일이라 너한테 은밀히 부탁을 하는 거다. 경찰에 알릴 상황도 아니고.
“알았어. 내가 어디로 가면 되냐?”
- 위치는 문자로 찍어줄게.
“그래. 바로 출동할게.”
이돈두는 전화를 끊고 윤학수를 돌아보았다.
눈치 빠르게 윤학수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 보스의 명을 기다렸다.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애들을 최대한 모아봐. 당장 가봐야겠다.”
“예, 회장님!”
윤학수가 곧바로 룸을 나갔고 김유창은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순간부터 완전히 좌불안석이었다.
“김 대표야! 오늘 술자리는 여기서 그만 끝내야겠다.”
그거야 오히려 제가 반길 일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계속 술자리를 갖자고 했다가는 지금껏 마신 술까지 목에 걸려 체하고 말 판국이니까.
“저는 염려하지 마시고 어서 가보시죠, 회장님.”
“그래. 다음에 또 연락하지.”
이돈두는 말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서대문구 북아현동 재정비 촉진 지구.
지은의 스마트폰 전원이 마침내 꺼진 곳이었다.
서둘러 현장에 도달한 한강실업 팀과 본부에서 지원 나온 요원들까지 합세해 주변을 샅샅이 훑고 있었다.
일단은 지은의 승용차부터 찾아야 했다.
그리고 승용차가 발견된 지점을 중심으로 놈들에 대한 추적을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지태는 이 수색의 결과에 대해 별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놈들이 그리 허술하게 움직일 리 없다는 의심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곳으로 자신을 유인하려 한 걸까.
어쩌면 시간을 벌기 위한 술책?
그것은 김영철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비관적인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거이 왠지 시간 낭비 같다, 야! 그 상간나 새끼들이래 뭔가 개수작이 있디 않고서야 일부러 저네들이 있는 곳을 흘렸갔나?”
지태가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시선은 왠지 좀 흐리멍덩해 보였다.
뭔가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 듯한 표정.
그때였다.
갑자기 한꺼번에 쏘아져 나오는 헤드라이트 불빛 때문에 지태는 짐짓 눈살을 찌푸렸다.
돌아보니 이제 막 다가와 멈춰 선 승용차에서 이돈두와 윤학수가 내리고 있었다.
그 뒤로 예닐곱 대가 넘는 승합차들이 차례로 멈춰 섰고, 돈두파 조직원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돈두가 쏜살같이 걸어왔다.
“어떻게 돼 가?”
어느새 바짝 다가온 이돈두가 숨도 안 고르고 물었다.
“일단 지은이의 차부터 찾고 있어.”
“그럼 우리 애들을 빨리 풀어야겠군. 차 번호가 어떻게 돼?”
이돈두는 지태로부터 승용차의 번호를 받아 윤학수에게 넘겼다.
윤학수의 인솔 아래 수십 명이나 되는 조직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였다.
“오랜만이로구먼, 기래. 잘 지냈네, 돈두 동무?”
김영철이 먼저 알은체를 했다.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이돈두는 미처 김영철을 눈여겨보질 못했었다.
뒤늦게 김영철을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 난 누군가 했네. 근데 자네가 여긴 어쩐……?”
이돈두가 묻기는 김영철에 물어 놓고 의문이 담긴 시선은 지태 쪽을 향해 있었다.
“그럴 일이 좀 있어. 근데 알지? 이건 애들한테도 비밀로 해줘.”
이돈두는 군소리를 보태지 않고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지태의 주변에 있다 보니 워낙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을 수없이 겪어봐서 이제 어지간한 일에는 그러려니 한다.
이번 김영철의 극비 방남에도 뭔가 국가적인 차원의 비밀스러운 사연이 숨어있을 테지만, 이돈두는 더 이상의 관심은 두지 않았다.
자신이 알아도 될 만한 사실 같았으면 지태가 어련히 말해주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은을 납치한 놈들의 정체만큼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이제 막 물어보려는 참인데 지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돈두가 입을 다무는 사이 지태가 발신인을 확인하고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곧 전화를 받았다.
“예, 도희 씨! 이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 미안해요. 혹시 주무시다 전화 받으신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 그럼 혹시 지은이랑 함께 있어요?
“아뇨.”
지태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오도희가 근심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어머! 그럼 이게 무슨 일이지?
“……!”
오도희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아무래도 말을 해주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곧 전화를 걸어온 용건을 설명했다.
- 아까 두어 시간 전쯤 지은이랑 둘이서 술 마시고 헤어졌어요. 그런 다음 대리를 불러 지은이를 먼저 태워 보냈거든요. 근데 걔가 떠나고 나서 10분쯤 있다가 대리 기사 두 명이 거의 동시에 왔어요. 그 사람들이 내가 콜을 했던 진짜 대리 기사들이었어요.
“……!”
- 아무래도 뭔가 잘못 된 것 같……. 저기요, 지태 씨!
오도희가 말을 잇다 말고 지태를 불렀다.
지태의 태도에서 뭔가 수상함을 감지한 듯했다.
- 지태 씨!
대답이 없자 오도희는 재차 지태를 불러 댔다.
지태가 메마른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도희 씨! 하나만 먼저 약속 받으십시다.”
- 뭐, 뭘요?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도희 씨 머릿속에만 두는 걸로.”
- 뭔데요?
“사실 지은이의 신상에 문제가 생겼어요.”
- 문제라면 혹시……?
지태는 간략하게 현재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오도희는 듣는 도중 왜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 임상만 회장께는 말씀을 드렸느냐는 등의 물음을 던져왔다.
그녀의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특수한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태는 설명했다.
만일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면 지은이 더욱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두 번째 질문에는 현재 진행되는 상황을 봐가면서 임상만 회장께 알릴 생각이라고 했다.
지태는 이제 그만 전화 통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도희 씨가 지은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내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나를 믿고 기다려주세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절대 발설하면 안 됩니다. 알겠죠?”
- 네, 알겠어요.
오도희는 거의 울상인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지태는 고개를 푹 떨궜다.
오도희에게는 나만 믿으라고 했지만, 사실 막연했다.
그보다 지옥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지은을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찢어질 듯 아팠다.
“이 개새끼들!”
지태가 이빨 사이로 으르렁거리듯 뱉었다.
이돈두와 김영철이 그의 기분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덩달아 고개를 푹 떨구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 * *
“CCTV는 잘 처리했지?”
아키라가 물었다.
조수석에 있던 슈스케가 냉큼 대답했다.
목소리에 무한한 자신감이 실려 있었다.
“미나토가 종합교통정보센터를 해킹해서 다운시켜 놨습니다, 조장님!”
해킹에 대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미나토였다.
그의 실력을 믿기에 아키라는 만족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지금쯤 한바탕 난리가 났겠군.”
아키라가 흐뭇한 미소를 그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지은을 태운 승합차를 비롯해 3대의 차량이 현재 줄지어 뒤따르고 있다.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가는 중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해둔 제2의 거점으로 이동해서 당분간 그곳에 머물며 돌아가는 추이를 지켜볼 예정이다.
아키라가 문득 스마트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슈스케를 다시 불렀다.
“이봐!”
“예, 조장님!”
“속보 뜬 거 있나 확인해봐. 뒤에 있는 북조선 애들 실력이 확실하다면 지금쯤 난리가 나고도 남을 시간 아닌가.”
“하이!”
슈스케가 똑 부러지게 대답을 하고는 태블릿 PC를 들어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아키라가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비릿하면서도 오묘한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 *
임시 작전 본부로 활용 중인 특수 밴 차량으로 갔던 김성욱이 투덜거리며 되돌아왔다.
북아현동으로 자신을 유인한 것이 왠지 시간을 벌려는 놈들의 술수 같다는 지태의 의구심을 확인차 갔다 오는 거였다.
“젠장! 자네의 추측이 어쩌면 맞는 거 같아.”
김성욱은 지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기부터 했다.
“왜요?”
“서울 경찰청 종합교통정보센터가 완전히 먹통이 됐다는군. 해킹을 당해서 그거 복구하느라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거야.”
역시 그랬던가.
자신의 추측이 맞아 떨어진 것에서 오는 불길한 예감에 지태는 입바람을 허공으로 훅 불어 올렸다.
그런 후에 다시 또 한숨처럼 자신의 추정을 내뱉었다.
“그러면 놈들은 벌써 이 지역을 벗어났을 겁니다.”
“내 생각도 그래. 우리는 지금 놈들이 똥을 싸지르고 간 엉뚱한 곳에서 맥없이 삽질만 하고 있는 거고.”
김성욱은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그때 손에 들고 있던 워키토키에서 그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뭐야?”
“국장님, 임지은 씨의 승용차를 찾았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정명 부장이었다.
“그래? 거기가 어딘데?”
“국장님이 계신 사거리에서 두 블록 위로 올라오시다 보면 철거 중인 빌라가 보일 겁니다. 바로 그 앞 공터 쪽입니다. 아주 교묘하게 위장을 해놨습니다.”
“다른 수상한 점은 없고?”
“공터 뒤편에 외따로 떨어진 주택 한 채가 보이는데 지금은 빈집 같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머물렀던 곳이 아닌가 싶어서 직원들을 시켜 수색해 보려고 합니다.”
“알았어. 내가 지금 바로 가지.”
김성욱이 무전을 마치고는 지태를 쳐다보았다.
눈빛으로 묻고 있는 것 같아서 지태는 쓴맛을 다셨다.
당연히 동행할 것이다.
지태가 고개를 끄덕인 후 김성욱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도 뒤를 돌아보았다.
김영철과 이돈두가 알겠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슬래브로 된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철로 된 대문은 벌써 오래전에 떨어져 나간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빈집 같았다.
한강실업 팀 요원들은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권총을 빼 들고 마당부터 조심스럽게 수색해 들어갔다.
이정명 부장이 점검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부하들을 돌아보자 눈이 마주치는 순서대로 수상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이정명 부장은 이제 집 안을 수색하자는 의미로 검지를 이용해 손짓 사인을 보냈다.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 * *
“저 집인가 보군.”
이정명 부장이 말했던 빈집으로 보이는 곳을 약 50여 미터쯤 앞에 두고 김성욱이 말했다.
지태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대문과 담벼락을 중심으로 국정원 요원들이 경계를 서듯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태는 머릿속이 짜르르하게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최봉준이 등장할 때 보이던 예고편 같은.
- 조심하게. 느낌이 좀 이상하네.
‘뭐가 말씀이십니까, 어르신?’
- 저 빈집에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어.
‘저를 노리는 놈들입니까?’
- 인적 말고 기운이야, 기운! 암튼 각별히 조심하시게.
지태는 최봉준의 경고를 받고는 김성욱의 발길을 불러 세웠다.
“왜?”
“느낌이 이상합니다. 안에 있는 요원들을 우선 뒤로 물리시지요.”
“무엇 때문에 그러는데?”
“아무래도 놈들이 집안에다 뭔가 수작을 부렸지 싶습니다.”
“자네가 무슨 점쟁이라도 돼?”
“그건 나중에 따지시고 우선은 제 말대로 하세요.”
“허, 이거 참!”
김성욱은 혀를 차면서도 얼른 워키토키를 들어 이정명 부장을 불렀다.
- 예, 국장님.
“아직 집 안에는 아무도 안 들어갔지?”
- 이미 들어왔습니다. 지금 수색 중입니다. 1층은 벌써 클리어했고, 현재 나 과장과 성 대리가 2층에서 수색 중입…….
이정명 부장의 보고가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