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인간쓰레기 수거 작전(7)
통화할 때 지태의 목소리를 들어 보니 아무래도 번잡한 장소는 원치 않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돈두는 이제 막 영업 준비를 마친 돈두파의 직영 룸살롱으로 지태를 불러냈다.
양주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지태를 위해 이돈두는 소주를 준비해 두었다.
안주는 탕과 볶음 위주로 몇 가지 요리를 외부에서 배달시켰다.
그리고 지태가 도착했을 때엔 테이블 위에 제법 거한 술상이 차려졌다.
술잔이 두어 순배쯤 돌았을 때였다.
이돈두가 약간은 애잔한 미소를 띤 채 물었다.
“복수를 끝낸 사람의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이제는 얼굴을 좀 펴도 되잖아.”
테이블에 시선을 꽂아두고 있던 지태가 고개만 살짝 들어 쳐다보았다.
곧 자조 섞인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이건 내가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복수가 아니잖아. 그 새끼가 끝까지 나를 농락하고 가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기분이 아주 더러워.”
“하긴 그러네.”
이돈두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그래도 여하튼 복수는 다 끝났잖아. 그럼 이제 추모공원으로 성원이를 찾아가도 되는 거 아니냐?”
지태가 씁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난 아직 성원이를 만날 자신이 없다. 그놈 영정사진을 똑바로 바라볼 면목도 없고.”
“이 정도 했으면 성원이도 널 이해할 거야. 어쩌면 너를 자랑스러워할지도 몰라. 통쾌하게 자기의 복수를 해 줬다고 말이지.”
“큭!”
결국 지태의 입에서 자조 섞인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럴까? 이쯤 했으면 그놈도 나를 용서해줄까?”
“……!”
“사실 나도 더는 참기가 힘들다, 성원이가 보고 싶어서! 해서 가긴 갈 건데 그전에 그 새끼의 모가지부터 비틀어야겠다. 적어도 임경남 대신 성원이 영전에 바칠 제물은 갖고 가야지.”
지태가 문득 살기 띤 눈빛으로 이돈두를 쳐다보았다.
이돈두는 움찔했다.
저도 모르게 전율할 만큼 지태의 눈빛은 독했고 무서웠다.
그러나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의 대가리를 강성원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것인지.
“그 새끼라니?”
“연변!”
“아!”
이돈두는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듯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근데 국정원 그 양반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암묵적으로 용인해 준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한테 그 새끼를 넘겨줬을 땐!”
지태가 칼로 자르듯 단정적으로 말하자 이돈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정황을 따져보니 그의 말이 옳은 듯했다.
이돈두가 동의하듯 내뱉었다.
“그럼 내일이라도 처리해 버리지, 뭐.”
“아니!”
“응?”
“굳이 내일까지 미룰 게 뭐가 있어.”
지태의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에 이돈두가 정색하고 쳐다보았다.
“그럼…?”
“이 술자리가 끝나는 대로, 곧장!”
“……!”
이돈두는 가만히 지태의 표정을 들여다보았다.
의지가 결연해 보였다.
독하게 품고 있는 마음이 잘 벼려진 비수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잠시 지태의 표정을 살피던 이돈두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하자.”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지켜보던 윤학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명이 날아들기 전 자신이 먼저 알아채고 움직이려는 것 같았다.
“저는 먼저 나가서 작업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형님.”
지태와 이돈두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윤학수를 올려다보았다.
두 형님의 눈빛을 받은 윤학수가 허리를 깊게 반으로 접었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룸을 나갔다.
“일단 남은 술은 다 비우자.”
이돈두가 턱짓으로 소주병들을 가리켰다.
아직 뚜껑을 따지 않은 소주가 두 병이나 더 남아있다.
지태가 입가에 보일락 말락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걸 보며 이돈두는 다시 한번 전율을 느꼈다.
독하게 풍겨나는 비릿한 살기 때문이었다.
* * *
파주시와 양주군, 그리고 연천군에 걸쳐있는 감악산 자락이다.
산과 산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는 곳이라서 주변에는 인가가 별로 없었다.
밤 10시.
차에서 내린 지태와 이돈두는 친위대의 안내를 받으며 산기슭을 올라갔다.
그렇게 약 20분가량을 올랐을 때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윤학수와 만날 수 있었다.
윤학수가 바짝 다가온 두 사람을 보자 말없이 묵례를 올렸다.
지태가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옆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깊게 파놓은 두 개의 구덩이가 보였다.
또한 그 옆에는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두 놈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바로 이덕재와 흑표였다.
어두운 하현달 아래였지만 놈들의 눈빛을 들여다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두려움에 떠는 이덕재와는 달리 흑표는 이를 악문 채 지태를 노려보고 있었다.
“학수!”
“예, 형님.”
“저 새끼가 나한테 할 말이 많은가 보다. 입에 물린 것 좀 잠깐 풀어줘 봐.”
“예, 형님.”
윤학수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위대 한 명이 다가가 흑표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주었다.
입이 열리자마자 흑표의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야, 씨베야! 이 좆같은 새끼야. 내가 도끼로 쳐 죽인 놈이 네놈의 친구라매? 손맛이 죽이더구만. 아직도 그 손맛이 짜릿해.”
지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살짝 걸렸다가 이내 사라졌다.
“다 씨불였냐?”
“뭐이라니, 이 씨베! 다 씨불여 댔으므 이제 회를 뜰 거이니?”
지태가 대답 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돈두가 쓰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돈두야!”
“어!”
“성원이 영전에 바칠 제물 말이다. 그거 너한테 하나 양보하려고.”
“나야 고맙지.”
지태는 저게 너의 몫이라는 듯 턱짓으로 이덕재를 가리켰다.
“오케이! 성원이가 오독오독 씹어 먹기 좋으라고 아주 부드럽게 매질 좀 해야겠다.”
이돈두가 옆을 돌아보자 퍼뜩 말귀를 알아먹은 친위대 하나가 얼른 알루미늄 배트를 넘겨주었다.
“그럼 내가 먼저!”
알루미늄 배트를 단단히 손에 쥔 이돈두가 이덕재 앞으로 다가갔다.
파르르 떨어 대는 이덕재의 모습을 보면서 이돈두가 이빨 사이로 뱉듯이 말했다.
“우리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했을 땐 이 정도쯤은 각오했겠지. 안 그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돈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듯 분노의 배트를 높이 들었다.
뻐억, 뻑, 빠각, 빠악.
“으으, 으으으.”
이덕재는 있는 힘껏 몸을 비틀어 대며 자지러졌다.
재갈이 물린 입에서 새어 나오는 비명 소리는 꼭 귀신의 곡소리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흑표가 낄낄거렸다.
“계집년처럼 울어 대기는! 이 빙시야, 그만 좀 징징 대라. 으쩌드야 댄데(어쨌거나) 우린 이 자리에 죽는다. 기왕 죽을 바엔 사내답게 죽…….”
쩌억!
딸깍.
그때 지태의 발길이 날아갔다.
주절거림을 미처 끝내지 못한 흑표의 턱이 그대로 부서졌다.
마치 턱 주변이 사라진 하회탈처럼 놈의 입술 아랫부분이 일그러져 윗니와 딱 맞닿은 형국이 되었다.
“넌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절대 울지 마, 이 개새끼야!”
지태의 발길이 다시 날았다.
이번엔 반쯤 굽히고 있던 녀석의 복부였다.
명치끝에 발끝이 들어갔는지 놈은 옆으로 넘어가며 ‘커억!’하는 소리를 냈다.
제 말마따나 아직까지는 참을 만한가 보다.
비명을 애써 눌러 삼키는 모습이 역력했다.
지태가 옆을 돌아보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친위대 중 한 명이 손에 들고 있던 손도끼를 빠르게 내밀었다.
흑표가 강성원을 처참히 살해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지태는 무색무취의 건조한 음성을 흘리며 쪼그려 앉았다.
그제야 흑표는 두려움이 왈칵 밀려드는 모양이다.
지태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슬금슬금 몸을 굴리더니 뒤로 내빼려 했다.
“씨발 놈!”
지태의 입가에 그 어느 때보다도 비릿하고 진한 살기가 걸려 있었다.
* * *
며칠 뒤 김포공항.
제주발 김포행 비행기가 도착했다.
조금 있으려니 김아름을 태운 휠체어를 뒤에서 밀며 지태가 걸어 나왔다.
그 뒤로 김아름의 친정 부모가 동행했다.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이돈두는 그녀의 부모님께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다음 곧장 김아름에게 바싹 다가갔다.
이돈두는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리를 거의 90도 각도로 숙였다.
“제수씨, 몸은 좀 어떠십니까?”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감사해요, 지태 씨에게서 다 들었어요.”
“내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렇게 건강을 되찾아 주셔서……. 그나저나 제수씨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친구를 지켜 주지 못해 미안…….”
순간 이돈두는 목이 메는지 울컥했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성원 오빠도 이제는 두 눈을 편히 감을 수 있을 거예요.”
김아름은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어느새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여 있다.
이대로 두면 아마도 공항에서부터 눈물바다가 될 듯싶다.
그제야 지태가 나섰다.
“성원이 놈 많이 기다리겠다. 그만 가자, 돈두야.”
“알았어. 대신 여기서부터는 내가 제수씨를 에스코트할게.”
이돈두는 지태를 밀어내고 대신 그녀의 휠체어를 붙들었다.
“어머님, 아버님, 가시죠.”
지태가 김아름의 부모를 향해 말했다.
“고맙소.”
김아름의 친정아버지가 작은 고갯짓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아내와 함께 이돈두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
“형님은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가시죠.”
윤학수였다.
지태가 입술로만 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네.”
* * *
김아름의 오열은 그치지 않았다.
강둑의 한 귀퉁이가 무너진 것처럼 눈물을 쏟아내며 강성원의 이름을 연신 불러댔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슬프고 애절한지 그녀를 지켜보던 모든 이가 함께 울었다.
그녀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돈두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그도 눈물이 뺨을 타고 연신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닦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지켜보는 게 너무 아프고 힘에 겨운 듯 이돈두는 고개를 들어 건물 천장에 시선을 고정했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지태는 김아름의 휠체어 왼편으로 약 2미터가량 떨어져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마치 강성원에게 속죄를 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앞에는 강성원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와 살아생전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사진은 두 장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지태와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고교 시절의 낡은 사진이었다.
고개를 푹 떨어뜨린 채 앉아있는 지태의 무릎 사이로 연신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미안하다. 내가 죽일 놈이다. 용서하지 마라, 성원아.’
토닥토닥.
이돈두가 언제 다가왔는지 격정에 휩싸여 있는 지태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거려 주었다.
* * *
지태는 김아름과 부모님을 친위대가 운전하는 차에 태워 귀가시켰다.
“우린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지태가 이돈두를 추모공원 한쪽에 있는 휴게 공간으로 이끌었다.
강성원이 있는 공간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 한다는 걸 왜 모르겠는가.
이돈두는 지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란히 걸었다.
윤학수와 친위대가 그 뒤를 조용히 따랐다.
“하아!”
야외 벤치에 앉자마자 이돈두가 문득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지태야!”
“……?”
“난 있지. 며칠 전 그 두 놈을 묻어 버리고 산을 내려올 때 이제는 좀 가벼운 마음으로 성원이를 볼 줄 알았거든. 근데 막상 여기에 와 보니까 전혀 아니더라. 여전히 여기가 무겁고 아려.”
이돈두가 자신의 가슴팍을 톡톡 쳐 보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던 지태가 고개를 떨궜다.
“난 성원이 놈 얼굴조차 똑바로 못 보겠더라. 성원이가 이리된 건 다 내 탓이잖아. 내가 임경남 패거리들과 악연만 만들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
지태는 다시 울컥해지는 모양이었다.
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이돈두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