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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9화 (239/272)

239화. 인간쓰레기 수거 작전(5)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이지원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거기엔 두 가지의 의미가 복합돼 있었다.

하나는 흐뭇함이요, 다른 하나는 비웃음이었다.

“엄청 다급했나 봐. 이 와중에도 와이프 대신 나를 찾는 걸 보면…….”

그러다가 이지원은 피식 웃었는데 임경남 부부의 결혼생활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무늬만 부부일 뿐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로 지내는 그야말로 쇼윈도 부부인 거다.

정이 없이 사는 처진데 아내한테 부탁을 했더라도 그녀가 선선히 들어줬을 리 없다.

그러니까 결국 자신을 선택했을 것이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바동거릴 때 최대한 뽑아 먹어야겠어.”

이지원은 옆에 지인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껏 고무돼 중얼거렸다.

전화를 걸 동전조차 없어 서둘러 몇 마디만 남기고 끊는 걸 보면 어지간히 궁지에 몰린 것 같았다.

그래서 이지원은 아양을 떨 듯 살짝 배짱을 부렸다.

때가 때이고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으로선 자기가 위험을 부담하기엔 너무 조심스럽다고 말이다.

그러자 임경남이 다급하게 외쳤다.

‘너 평생 놀고먹어도 좋을 만큼 보상을 해주지!’

자신의 별장 깊숙한 곳에 고이 모셔 둔 골드바를 모두 주겠다고 약속했다.

오한표 실장이 맡겨 놓은 돈을 가지고 강원도로 와준다면 그때 별장 금고의 비밀번호를 알려 주겠다고 말이다.

약간의 수고를 들여 평생 먹고살 만한 보상을 준다는데 이를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이지원은 다시금 입가에 미소를 그려 넣으며 가속 페달을 더욱 힘껏 밟아 갔다.

* * *

어둠을 조심스럽게 밟으며 터벅터벅 걷다 보니 고성군 간성읍의 외곽 지역에 있는 대대리 검문소가 보였다.

임경남은 불에 덴 듯 놀랐다.

얼른 가을 수확을 앞둔 풍성한 논둑길을 따라 검문소를 멀리 우회했다.

그리고 아무 데나 발길이 닿는 대로 방향을 잡았다.

인근에 민가조차 보이지 않아 불빛 하나 없는 짙은 어둠 속이었고, 방향 감각도 없어 지금 가고 있는 곳이 북쪽인지 남쪽인지조차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배고픔은 이제 더욱 더 극에 달해있었다.

그래서 걸어갈 기력조차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심신이 지친 탓에 임경남은 결국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저 건너편에 반암리라는 동네 표지석이 보였다.

주로 벼루를 만드는 데 많이 이용되는 오석 위에다 동네 이름을 새기고 그 안에 하얀 페인트를 칠해 놓아서 짙은 어둠 속이었지만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경남은 문득 바지 주머니를 뒤졌다.

동전 몇 개가 만져졌다.

양다리를 쩍 벌리고 동전을 꺼내다 보니 그중 한 개가 툭 떨어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임경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으로 땅바닥을 미친 듯이 더듬었다.

겨우 더듬거려 기어이 찾아냈다.

백 원짜리 동전이었다.

“허헛, 허허헛!”

순간 임경남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에 목을 매고 있는 그 자신의 현실이 그제야 피부로 느껴진 까닭이었다.

날이 어둑해질 무렵 장신리라는 마을 부근에서 마주친 주민 몇 사람에게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구걸해 얻은 동전들이었다.

그중 육백 원을 이지원과 통화하면서 썼고, 이제 수중에 남은 돈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와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도합 칠백 원뿐이었다.

그것으로는 빵 한 봉지 살 돈도 안 되었지만, 사실 사 먹을 돈이 된다 해도 쓸 수는 없었다.

보상을 해주겠다는 자신의 말만 믿고 부푼 가슴으로 달려오고 있을 이지원과 마지막 통화를 위해 고이 모셔 둔 돈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반쯤 정신이 나간 놈처럼 허탈하게 웃다가 임경남은 겨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지금쯤 이지원은 아마 고성군 인근에 다다라있을 것이다.

빨리 공중전화를 찾아 이곳의 위치를 알려 주어야 한다.

임경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로 저편 해안가 쪽으로 집 몇 채가 보였다.

구멍가게와 기사식당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분명 공중전화 부스가 있으리라.

임경남은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짜내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도로 우측에서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바다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모양이다.

몇 걸음을 걷다 말고 임경남이 쓰게 웃었다.

오한표 실장이 맡기고 간 돈을 좀 갖다 달라는 부탁을 하자 대뜸 안면 몰수로 나오던 이지원이 떠올라서였다.

그러다가 평생 놀고먹을 정도의 보상을 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냉큼 미끼를 물었다.

“씨발 년!”

임경남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또 한 번 더 입술 끝을 비틀어 올렸다.

“어디 한번 당해 봐, 이년아!”

* * *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지금 위치가 어디냐고 묻는 김성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현진이라는 곳을 방금 지났어요. 간성읍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 엄청 밟아 댔구먼.

“엄청은 아닙니다. 부국장님이 천천히 달린 거죠.”

- 내가 일부러 천천히 달렸나? 이지원이 속도를 안 올리니까 그렇지. 나도 임경남이를 무지 면회하고 싶은 사람이야.

“그래서 지금 어딘데요?”

- 간성읍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대대리 검문소가 있어. 조금 전에 거길 막 통과했네.

“놈은 어디에 있는데요?”

- 이지원하고 조금 전 통화한 곳이 반암리라는 동네야. 앞으로 10분만 더 가면 될 거 같아.

“알겠습니다. 전 그놈을 잡아 놓은 후에나 도착할 거 같군요.”

- 그래. 너무 무리하진 마. 이제 여유 있게 와도 돼.

전화가 끊겼다.

지태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내려놓고 이제 막 우측으로 꺾어지는 커브를 돌았다.

스쳐 지나가는 이정표에 간성읍까지 6km가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흐음.”

지그시 깨문 입술 사이로 낮은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이제 길어도 2~30분 내외면 임경남의 낯짝과 마주할 수 있다.

놈과 마주할 시간이 가까워 오자 지태는 다시 또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여기까지 두 시간 남짓을 달려오는 동안 마음속에서 벌써 열댓 번은 더 때려죽였던 임경남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할 가장 잔인한 방법만을 총동원해서 놈을 도륙을 내고 난도질을 해댔다.

그럼에도 모자랐고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놈과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지태는 더욱 흥분이 되었다.

발끝부터 치밀어 올라온 분노가 머리 꼭대기를 뚫고 나오는 기분이었다.

“개새끼!”

지태는 욕설과 함께 더욱 세게 가속페달을 밟았다.

차량 통행이 뜸한 새벽의 7번 국도를 지태의 승용차는 총알처럼 빠르게 질주해 나갔다.

* * *

내비게이션은 이곳이 목적지 부근이라고 떠들어 댔다.

이지원은 차의 속도를 줄이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임경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 씨! 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

마지막으로 전화통화를 할 당시 임경남은 해안도로의 우측, 그러니까 바다와 면해 있는 도로변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었다.

이지원은 임경남이 자신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비상 깜빡이를 켰다.

그렇게 시속 20km 정도의 속도로 주변을 천천히 훑으며 올라갔다.

그러는 사이 이지원의 승용차는 어느새 반암리의 경계를 지나 거진읍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바에 따르면 그러했다.

* * *

임경남은 도로변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폐그물과 부표들 뒤편에 숨어 있었다.

그는 조금 전 비상 깜빡이를 켠 채 앞을 지나간 이지원의 승용차를 조심스럽게 지켜보았다.

행여 검찰이나 경찰에 자신을 신고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수사관들과 동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었던 거다.

다행히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서행하던 그녀의 승용차를 승합차 한 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달리 수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속도를 줄이거나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북쪽으로 휑하니 달려가 버린 것이다.

임경남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지원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흡족했던 것이다.

아니, 사실은 자신이 거짓 약속한 엄청난 보상, 즉 돈을 배신하지 않은 것에 지나지 않을 테지만.

‘어디까지 올라간 거야? 내가 안 보이면 대충 차를 돌려서 내려올 것이지.’

임경남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이지원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 * *

김성욱이 탄 특수 밴 차량은 반암리를 알리는 동네 표지석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었다.

이정명 부장이 이끄는 B팀의 차량은 이지원이 비상 깜빡이를 켜고 서행할 때 이미 빠르게 추월해서 거진읍을 조금 못 미치는 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성욱이 뭔가 미심쩍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곧 통화가 이루어지자 이정명 부장에게 물었다.

“야! 이지원이는 어디까지 올라간 거야? 통일전망대까지 올라갈 작정인가?”

- 아닙니다, 사장님. 저희 팀이 대기하는 곳 근처에서 이제 막 U턴 했습니다.

“그럼 곧 다시 보이겠구먼. 자넨 거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사인을 날리는 즉시 달려와.”

- 알겠습니다, 사장님.

김성욱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려다가 멈췄다.

지태가 어디쯤 와 있는지 궁금한 거다.

“지금 어딘가?”

- 이제 막 간성읍을 지나고 있습니다.

“우린 반암리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어. 아직 임경남은 보이지 않고.

- 혹시 눈치를 챈 것이 아닙니까?

“그런 것 같진 않아. 일단 지켜보고 있는 중이네. 참, 혹시 몰라서 차의 모든 라이트는 다 꺼두었어. 우리가 작전 개시 전에 이곳에 도착하면 그냥 지나치던가, 반암리 근처에서 라이트를 끄고 대기하고 있게.”

- 그러죠.

지태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김성욱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전방으로 퍼뜩 시선을 가져갔다.

저기 반대 차선 쪽에서 비상 깜빡이를 켠 채 다가오는 차량이 보였다.

이지원의 승용차였다.

밴에 타고 있던 4명의 요원들이 김성욱을 돌아보았다.

김성욱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일단 지켜보자는 사인을 주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 * *

이지원의 승용차가 50미터 전방에 나타나자 임경남은 다시금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여전히 조용했고 별다른 수상한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이지원의 독일제 고급승용차는 어느새 10여 미터 전방까지 와 있었다.

그때 임경남이 폐그물과 부표 더미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난간을 넘어 왕복 4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갔다.

중앙 분리대를 넘는 도중 슈트 자락이 어딘가에 걸려서 하마터면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지만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임경남을 발견한 이지원이 천천히 차를 세웠다.

“야, 라이트 어서 꺼!”

임경남이 급히 승용차의 조수석으로 올라타면서 외쳤다.

숨이 넘어갈 듯 다급하게 외치자 덩달아 놀란 이지원이 얼른 라이트를 소등했다.

“저기 보이지? 저쪽으로 차를 대 봐.”

임경남이 가리킨 곳은 비상시 임시 정차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쉼터 같은 곳이었다.

이지원이 차를 세우자 임경남은 다시 또 주변을 주욱 훑어갔다.

새벽 4시가 넘은 해안도로엔 오가는 차량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주변은 쥐를 잡아먹은 듯 고요했다.

안심이 되는 듯 임경남이 옆을 돌아보았다.

“오 실장이 맡긴 돈은?”

“뒷좌석에요.”

이지원이 고갯짓으로 뒤를 가리켰다.

서류 가방이 하나 놓여있었다.

가방 속을 살펴본 임경남이 씁쓸하게 이지원을 보며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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