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인간쓰레기 수거 작전(4)
지은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버지 임상만 회장과는 다른 의미로 아프게 입술을 깨물었다.
오빠 임경남이 청부한 살인사건 중에는 지태의 둘도 없는 절친인 강성원도 끼어 있었다.
현재 그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절망적일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다.
지은은 마음속으로 지태의 이름을 처연하게 불렀다.
‘지태 씨…….’
* * *
동영상이 터진 후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아직 임경남의 행방은 묘연했다.
하지만 임경남과 함께 잠적했던 둘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허영만과 송영완에 대한 체포 소식이 어젯밤 늦게 뉴스 속보로 뜬 것이다.
어둠을 틈타 충청도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밀항하려던 두 사람이 제보를 받고 달려간 검찰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됐다는.
똑똑똑.
한스 홀딩스 대표실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그저께부터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지태는 집무 책상에 앉아 방문자에게 들어오라는 대답을 주었다.
곧 문이 열리고 조현민이 들어섰다.
“식사는 하셨나, 한 회장?”
조현민의 인사성 발언에 지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무심히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점심시간이 어느새 은근슬쩍 지나 있었다.
“밥 생각이 없어서 깜빡했네요. 형님은?”
“내 그럴 줄 알았어. 비서실에 연락을 넣어 보니까 집무실에서 꼼짝도 안 하고 있다기에 내가 직접 밖에 나갔다 왔어.”
그러면서 손에 들고 온 종이 가방을 흔들어 보였다.
종이 가방 옆면에 초밥집의 상호가 언뜻 보였다.
“앉으세요.”
지태가 손짓으로 소파를 가리키며 집무 책상을 돌아서 나왔다.
조현민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 물었다.
“형님도 아직 식전이셔?”
“일부러 좀 늦췄지.”
지태는 그저 머쓱하게 웃었다.
조현민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도 해서 그가 내미는 나무젓가락을 냉큼 받아 들었다.
초밥 두어 점을 먹었을 즈음이다.
조현민이 자신을 흘깃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지태가 입 모양으로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말해 보세요.”
“임경남은 어떤 연유로 터뜨렸는지 잘 알겠는데, 오신환 의원은 뭐야? 그건 국정원의 작품인가?”
지태가 이번엔 쓰게 웃었다.
오신환 의원의 기자회견 있은 직후 그의 난잡한 사생활이 담긴 영상과 뇌물을 받아먹는 사진들이 곧바로 터져 나왔다.
이게 결코 우연이 아님을 조현민은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는 반길만해. 야당과 언론에서 주야장천 떠들어 댔던 이 정부와 자네에 대한 성토와 비판 기사들이 쏙 들어갔다는 거.”
“맞아요, 형님.”
“그나저나 그 아들놈도 덩달아 스타 반열에 올랐어! 그 아비에 그 자식이야, 부전자전!”
조현민이 연어 초밥 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킥킥거렸다.
오지용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마약 투약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던 와중에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를 성폭행했다는 미투(me too)폭로가 터져 나온 것이다.
섹스스캔들을 일으킨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의 성폭행까지.
부자간에 쌍으로 볼썽사나운 치부를 드러낸 꼴이었다.
조현민은 문득 화제를 바꿨다.
“이 집이 한 달 전엔가 오픈한 곳이야. 한 번 간다 간다고 해놓고서도 못 갔다가 오늘에야 큰맘 먹고 들러서 사 왔는데, 맛이 어때?”
“좋군요. 맛있어요.”
“그럼 다행이네.”
조현민이 만족한 듯 웃었다.
그러더니 다시금 힐끔 쳐다보았다.
“왜요, 또?”
“아니 그냥!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어서!”
괜찮을 리가 있겠는가.
이십 년 지기 강성원을 한순간에 잃은 지태였다.
그 죽음의 원인 제공자가 본인이라고 자책하고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괜찮은 거냐고 묻는 것 자체가 난센스였다.
“그런 걸 묻는 나도 참 푼수 빠졌어.”
조현민은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녜요, 형님. 내가 아직 성원이를 볼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그 새끼들이 곧 죗값을 치를 거라 생각하니 그나마 위안은 좀 되네요.”
“그래…….”
조현민이 연민을 담은 미소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부경물산은 하루 종일 뒤숭숭했다.
오전 10시경 중앙지검 특수부에서 쳐들어와 퇴근 무렵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압수 수색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임경남의 대표이사 집무실은 물론 재무회계 관련 부서들을 샅샅이 훑었다.
검찰에서 찾는 것은 분식회계 자료였다.
전 직원들이 일손을 놓은 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압색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건물 바닥이 꺼지게 한숨을 내짓는 이가 있었다.
바로 오한표 비서실장이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비서실의 이수경 대리가 그를 불렀다.
꿈에서 막 깬 듯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오한표 실장의 슈트를 가리켰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다.
오한표 실장은 주머니 안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다가 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소한 전화번호인데다가 033으로 시작되는 지역 번호가 앞에 찍혀 있었다.
‘강원도?’
오한표 실장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린 후 통화 버튼을 누르면서 조용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보세요?”
- 오 실장, 나요.
“나가 누구……? 헉!”
오한표 실장은 무심코 되묻다가 화들짝 놀라며 본능적으로 주변부터 훑었다.
“사, 사장님!”
* * *
거지 중에 상거지가 따로 없었다.
한 벌에 가히 수백만 원,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임경남의 명품 슈트는 제멋대로 구겨진 채 노숙인의 그것처럼 변해 있었다.
또한 세수를 며칠이나 하지 않았는지 얼굴도 아주 볼만했다.
흔히 어른들이 잘 안 씻는 아이를 보고 ‘까마귀가 친구하자고 하겠다, 인석아!’라고 혼내곤 하는데 지금 임경남의 얼굴 꼴이 딱 그러했다.
임경남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수화기를 귀에 바싹 갖다 댄 채 주변을 연신 두리번거렸다.
“오 실장, 나 길게 통화 못해요. 동전이 별로 없어.”
- 사장님, 지금 어디십니까?
오한표 실장이 제 나름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물어 왔다.
“강원도요.”
- 그니까 강원도 어디시냐고요?
“그건 왜? 신고라도 하시게?”
그렇게 비꼬듯 묻는 임경남의 목소리 끝이 갈라졌다.
-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리……. 전 다만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
“동전이 거의 다 돼가요. 이봐요, 오 실장!”
- 예, 사장님.
“가진 돈 있으면 청담동에 좀 전달해줘요, 현금으로만.”
- 청담동이라 하심은……?
“아, 이지원 몰라요, 이지원!”
- 아, 지원 아가씨…….
오한표 실장이 그제야 깨달은 듯 이지원의 이름을 되뇌는 사이 어느새 동전을 다 삼킨 공중전화가 매정하게 끊기고 말았다.
“이런 씨발!”
임경남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 나갔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찾아낸 돈이 겨우 칠백 원이었다.
이제 수중에 가진 현금이라고는 단 한 푼도 없다.
물론 한도에 제한이 없는 신용카드가 몇 장 있지만, 사용할 수가 없다.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검찰에 추적을 당할 염려가 있는 거다.
“하아!”
임경남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망연하게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루 종일 중노동에 지친 태양이 저 멀리로 보이는 산마루를 향해 낙하를 계속하고 있었다.
꼬르륵.
뱃속에 곡기를 마지막으로 넣은 게 언제였던가.
배곯은 흥부 자식들처럼 공복의 쓰린 배는 자꾸만 먹을 것을 넣어 달라고 보채고 있다.
“씨발.”
천하의 임경남이가 돈이 없어 밥을 굶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임경남은 공중전화 부스를 힘없이 빠져나왔다.
‘하,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막연했다.
인적 없는 곳으로만 걷기를 벌써 닷새였다.
송영완의 홍천 별장을 나온 임경남은 춘천 쪽으로 정처 없이 방향을 잡아 달리다가 다시 양구를 넘어오는 중간에 페라리를 버렸다.
검문에라도 걸리면 꼼짝없이 붙잡히고 말 것이기 때문에 미련 없이 차를 버린 거다.
하지만 지금껏 살아오면서 1km 이상 걸어본 적이 없는 임경남으로서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아주 죽을 맛이었다.
도로를 따라 걸을 수도 없어서 길이 아닌 곳이나 산길로만 다녔다.
그렇게 닷새가 지나는 동안 임경남은 어느덧 강원도 고성에 와 있었다.
난생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그래서 다만 한 가지 안심이 되는 점이라면 검찰의 추적과 레이더망에서 많이 비켜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스마트폰의 전원은 이미 오래전에 꺼 두었고, 아무리 밥을 쫄쫄 굶어도 절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았으니 그를 추적하기란 결코 용이하지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답답한 그들이 우선 뒤지고 다닐 곳이 어디겠는가.
가족 소유의 별장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그와 관계가 있겠다 싶은 지인들의 주변까지 샅샅이 훑고 다니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곳 고성엔 아무런 연고도, 지인들의 흔적도 없는 곳이다.
자신이 설마 이곳에 와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할 게 틀림없다.
더구나 이동수단도 없이 도보로 이동 중일 것이라고는 차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임경남은 꼬르륵대는 배를 쓸다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만만하게 보이는 시골 노인이라도 붙잡고 동전 몇 개만 적선해달라고 구걸해야 할 판이었다.
몇 만 원도 아니고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만 빌려 달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지원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선 이 치욕과 수모를 어떻게든 견뎌야 한다.
그런데 사지육신 멀쩡해 보이는 놈에게 선뜻 동전을 쥐어 줄 노인네가 과연 있기라도 할 것인가.
임경남은 다시 또 주변을 본능적으로 경계하며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갈 것인가.
아주 막연하기만 한 발걸음이었다.
* * *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각이다.
지태는 이제 막 씻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오늘 지태는 퇴근 시간에 맞춰 어머니를 회사 근처로 나오게 했었다.
아들을 잃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는 강성원의 어머니를 함께 가서 위로해 주려고 말이다.
여러 가지 죽 종류를 사 들고 찾아갔지만, 강성원의 모친은 수저를 들지 않았다.
어머니의 권유에 못 이겨 강성원의 모친은 겨우 몇 수저 뜨긴 했지만, 그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그녀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우는 것으로 다 보내고 말았다.
“후우.”
지태는 잠자리에 눕긴 했지만 쉽사리 잠은 오지 않았다.
뷔이익, 뷔이익.
몸을 굴려가며 뒤척이고 있는데 머리맡의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떨어 댔다.
‘이 새벽에 누구지?’
지태는 스탠드를 켜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김성욱이었다.
“여보세요?”
- 자는데 깨운 건가?
“아뇨, 아직……. 근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나 또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고 찜찜한 기분으로 물었다.
- 좀 나올 수 있겠나?
“왜요, 무슨 일이신데요?”
- 사실은 그놈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 같아서 그래.
“그놈이라뇨? 혹시……?”
- 그래. 임경남이! 일단 나오겠나?
당연한 것을 묻고 있다.
지태가 누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 우린 지금 이지원의 뒤를 밟고 있어.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를 타는 걸 보니 강원도로 방향을 잡는 거 같아. 일단 출발해. 좀 있다가 다시 통화하게.
곧 전화가 끊겼고, 지태는 벽에 걸어 놓았던 옷을 서둘러 챙겨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