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6화 (236/272)

236화. 인간쓰레기 수거 작전(2)

발신자는 경영지원실의 임은정 대리였다.

“무슨 일이야, 임 대리? 뭐?”

지은은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 알았어.”

서둘러 통화를 마친 지은이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노트북을 다시 만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임상만 회장이 물었다.

“뭔데?”

“잠시만요, 아빠.”

뭔가 다급한 모양이다.

지은은 엉겁결에 공적인 호칭 대신 아빠라고 했다.

“허!”

“뭐냐니깐?”

“이, 이번엔 지용 오빠의 동영상이래요. 근데…….”

지은이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뭔가 한마디를 덧붙이려 할 때였다.

“됐다!”

임상만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 지은의 말을 끊으며 급하게 노트북을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 후에야 지은의 못다 한 말이 이어졌다.

“그 앞에 모자이크로 처리된 사람…… 경남 오빠 같지 않아요?”

그때는 이미 임상만 회장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끄응.”

마침내 임상만 회장의 입술을 뚫고 십 년은 묵었음 직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장 네 오빠한테 전화 넣어.”

“예, 아빠!”

지은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던 스마트폰을 서둘러 집어 들었다.

* * *

“일부러 오지용 영상은 시간차를 두고 올리라 했네. 모자이크로 처리를 하긴 했지만, 놈이나 주변의 지인들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게 아닌가. 다음 타깃은 너다, 준비해 둬라! 임경남에게 보내는 짜릿한 예고편인 셈이지.”

김성욱은 말을 뱉고는 팔짱을 낀 채 털털한 웃음을 날렸다.

반면에 그 앞에 앉은 지태의 표정은 무거웠다.

입술을 빈틈없이 오므린 채 깊은 사념에 빠진 듯하다.

오늘 터뜨린 오신환 부자의 동영상은 그저 맛보기일 뿐이다.

내일 인터넷에 떠돌 임경남과 그의 패밀리와 관련된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가 된다면 온 국민은 충격 그 자체에 빠질 게 틀림없다.

물론 잔인한 장면은 모자이크로 처리를 할 테지만, 실제 살인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이어서 나올 장면은 또 다른 살인 교사의 증거가 된다.

바로 양재동 패밀리들이 손수 송민철을 승용차에 태워 남한강에 밀어 넣는 장면이다.

거기에 송민철의 생생한 증언과 강성원을 죽이라고 청부했다는 이덕재의 증언도 곁들여질 것이다.

잠시 제 흥에 겨워 털털하게 웃던 김성욱이 웃음을 거두며 정색했다.

심각한 표정의 지태를 앞에 두고 너무 크게 웃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미안하네, 한 회장. 내 기분에 너무 취해서 잠시 자네를 망각했어. 친구를 잃은 슬픔과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도 못한 사람을 앞에 두고서.”

“괜찮습니다. 부국장님이야 충분히 통쾌감을 느끼실 만하니까요.”

김성욱이 이해해 주어 고맙다는 미소를 살짝 흘렸다.

그러다가 문득 씁쓸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그나저나 내일 그게 뜨면 전 국민이 충격에 휩싸이지나 않을지 모르겠군. 너무 잔인한 장면은 노출시키지 말라고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살인 장면의 중계방송이나 같지 않은가.”

지태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들의 상식으로 접근했다간 임경남과 그의 패거리들을 한 방에 엮어 넣을 수 없다.

충격에 휩싸일 국민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서는 이쪽 또한 악마의 마인드로 접근해야만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태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일어서는가?”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가만히 못 있겠네요.”

“그럼 나하고 나가서 간단하게 한잔할까?”

지태는 씁쓸한 미소로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그냥 친구 녀석 불러서 한잔할게요.”

“누구, 이돈두 그 친구?”

지태의 눈가에 살짝 걸린 아픈 눈웃음이 그의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 * *

조금은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주먹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는데 술손님과 TV 소리 등이 함께 어우러져 엄청난 소음을 쏟아내고 있었다.

“간단하게 한잔하자. 취하도록 마셨다간 내가 어쩌면 펑펑 울지도 모르니까.”

소음에 묻혀 겨우 들렸지만, 이돈두는 지태의 분위기를 보고 똑똑히 알아차렸다.

“그래. 적당히 마시자.”

이돈두가 지태의 빈 잔을 채워 주고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웠지만, 건배를 제의하진 않았다.

상갓집에서 건배를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듯 지금 지태의 분위기가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생략했다.

벽에 걸린 TV에서는 마침 9시 종합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의 톱뉴스는 뭐니 뭐니 해도 오신환 의원 관련 소식이었다.

벌써 몇 꼭지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기자들은 그와 관련된 보도를 번갈아 쏟아내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의 술손님 하나가 큰소리로 비웃었다.

“야당의 차기 대통령감이라더니 오신환이도 별수 없네.”

그러자 지인으로 보이는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았다.

“그러게 사내란 자고로 세 뿌리를 조심하라고 안 그랬냐. 입 뿌리, 손 뿌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바로 이것!”

그는 제 말끝에 지인의 사타구니 쪽을 가리키며 낄낄 웃었다.

“어디 그뿐이냐. 저 새끼 뇌물 받아 처먹는 장면도 찍혔잖아. 뇌물 준 새끼가 지금 법정 관리에 들어가네, 마네 하는 현보 중공업 회장이라잖아. 한마디로 두 놈 다 개거시기가 돼 버린 거지.”

“씨발, 웃을 일 없는 요즘인데 오늘 모처럼 고소하고 통쾌한 날이다. 술맛이 오늘따라 왜 이리도 다디다냐.”

그러자 모두가 웃었다.

이돈두가 웃음 잔치를 벌이는 옆자리를 돌아보다가 쓰게 웃고는 술잔을 비웠다.

지태 역시 뚫린 귀여서 다 들었던 모양이다.

그 역시 씁쓸한 표정으로 이돈두처럼 자신의 술잔을 한입에 비웠다.

* * *

다음 날 오후 3시경이다.

임경남의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된 지 약 10분가량 지났을 때였다.

지은은 노크도 생략한 채 임상만 회장의 집무실로 뛰어들었다.

무언가에 놀라 경악을 금치 못한 얼굴이었다.

벌겋게 상기된 것을 넘어 차라리 시퍼렇게 질린 표정이라는 게 더 옳다.

임상만 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늘은 또 뭐냐’ 하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어제 지은을 시켜 임경남과 통화를 했을 당시 임상만 회장이 물었다.

오지용이 마약을 하는 영상 속의 모자이크 처리된 인물이 혹시 너 아니냐고.

임경남은 그게 무슨 소리냐면서 펄쩍 뛰었다.

몸집이라든가 분위기가 워낙 임경남과 비슷했고, 마약을 한 전력도 있던 터라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은 있었다.

하지만 아들 녀석이 완강하게 부인하는 터라 임상만 회장은 내심 안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거의 사색이 되어 뛰어 들어온 지은을 보자 다시 또 불길한 예감이 훅 스쳐 갔다.

“아, 아빠! 크, 큰일 났어요.”

“뭐가 말이냐?”

“잠깐만요.”

지은은 집무 책상을 돌아 임상만 회장 옆으로 바싹 다가갔다.

그리고 집무 책상 위의 노트북을 조작해 동영상 하나를 화면에 띄웠다.

화면의 첫 장면은 양재동 빌라에서 마약을 즐기는 장면이었다.

곧 연예 기획사의 어린 연습생들과 단체로 난잡한 성관계를 갖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지은은 이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화면을 뒤로 빠르게 넘긴 후 어느 지점에서 멈췄다.

승용차 안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송민철을 남한강으로 밀어 넣는 장면이었다.

임상만 회장이 입을 떡 벌린 채 경악했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 이어졌는데 바로 강성원이 흑표의 손도끼에 의해 호텔 객실에서 피살당하는 그림이었다.

“그, 그만!”

임상만 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은이 노트북을 덮었다.

“겨, 경남이를 다, 다, 당장 불러……. 흐억!”

임상만 회장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뒷목을 잡았다.

그러더니 지은이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의자와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아빠!”

* * *

부우우아아아앙.

신호를 무시하며 시내를 빠져나온 페라리는 고속도로에 이르자 더욱 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임경남은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통화 중이었다.

통화 상대방이 제 말을 잘 듣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얼굴이 벌게지도록 인상을 쓰며 연신 고함을 쳐 댔다.

“너, 이 새끼! 언제부터 또박또박 말대꾸야. 모이라면 모이는 거지 뭔 잔소리가 그리 많아!”

- 씨발, 지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우린 너 때문에 전부 엿 됐어, 이 새끼야!

“이현욱, 너 이 개샊…….”

임경남은 다시 또 불끈 치솟으려다가 애써 꾹 눌러 삼켰다.

“그러지 말고 일단 영완이네 별장으로 와라.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잔 말이야.”

- ……!

“야, 현욱아!”

- 알았어. 일단 갈게.

뚝.

이현욱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임경남은 신경질적으로 블루투스 이어폰을 벗어 조수석으로 내던졌다.

양재동 멤버인 허영만과 송영완은 연락이 되었다.

아니,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그들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사실 임경남은 태평하게 집무실에 앉아 있다가 그 두 사람 때문에 동영상이 세상에 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씨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게 웬 날벼락인가 싶다.

그토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임경남은 막연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상황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

임경남은 페라리의 속도를 줄이면서 내던졌던 블루투스 이어폰을 집어 들었다.

신호는 가고 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기계음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를 쏟아낼 즈음 임경남은 일단 끊었다가 다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다시 또 여자의 기계음이 들리기 직전에야 통화가 겨우 연결이 되었다.

“아, 과장님! 임경남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아니, 전화를 걸어온 이가 누구인지 모를 리 없을 거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은 이 와중에도 제가 누구라는 걸 은근히 과시하자는 의미가 컸다.

그런데 되돌아 온 답변이 꽤 수상했다.

- 아, 임경남 사장. 이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뭐, 어쩐 일이냐고?

그보다 임경남 사장이라고?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분명 사장님도 아니고 사장이라고 했다.

호칭이 짧아졌다.

임경남은 입술을 깨물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따질 처지가 아니다.

지금은 자신이 아쉬운 판국이니까.

“검사님, 혹시 영상을 봤습니까?”

임경남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그러자 ‘헛!’하는 짧은 헛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임경남이 얼른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거 누가 봐도 조작된 거요. 과장님도 그걸 봤다면 알 거 아닙니까.”

- 이봐, 임 사장! 내가 좋은 말로 충고를 하는데, 자수해. 되도록 빨리! 그나마 그게 당신이 조금이라도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최선의 선택이야.

“뭐, 뭣? 야, 이 개새끼야, 너 말 다 했어? 그동안 나한테 받아 처먹은 돈이 얼만데…….”

- 아, 됐고. 나 지금 무지 바쁘니까 전화 끊을게. 대신 하나만 알려 주지. 동영상이 터지기 몇 시간 전에 당신의 모든 것이 담긴 USB가 중앙지검에 배달이 됐어. 벌써 총장까지 보고된 사항이야. 이젠 네놈의 아비 임상만 회장이 아니라 그 할아비가 와서 설쳐 대도 빼도 박도 못할 처지가 됐단 말이다. 알겠냐?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이런 개 취급을 당하다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 댔지만, 대검 강력부 조직범죄과 과장의 말마따나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꽉 막힌 이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나.

임경남은 무심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빠르게 달리던 페라리가 순간 중심을 잃고 거칠게 비틀거렸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두 눈을 번쩍 뜬 임경남이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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