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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5화 (235/272)

235화. 인간쓰레기 수거 작전(1)

한강실업 부근에 이르러 지태는 전화를 넣었다.

곧 도착한다고 통고를 하려던 것이었는데 김성욱은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밖에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거다.

의아한 마음을 안은 채 건물 밖에서 약 5분쯤 기다리자 김성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태를 발견하고는 곧장 걸어오더니 차에 올라탔다.

“……?”

지태가 멀뚱히 쳐다보자 김성욱은 높낮이 없는 톤으로 일단 차를 출발시키기를 주문했다.

“가지.”

“어디로요?”

“성남 방향으로 달리시게.”

“성남?”

“응. 자넬 좀 만났으면 하는 분이 계셔서.”

“누가요?”

“우리 원장님.”

국정원장을 지칭하는 것이다.

지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원장님이 나를 왜요?”

“자네가 내게 준 USB 있잖은가. 거기에서 주요 파일만 뽑아서 원장님께 보고 드렸다네.”

“……!”

김성욱에게 넘겨준 USB에는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놓은 임경남과 그의 패거리들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었다.

나중에 그것을 한 방에 터뜨릴 때 행여 그들이 가진 배경에 가로막혀 그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갈까 염려스러웠다.

그래서 그 어두운 힘들을 사전에 무력화시키기 위해 김성욱의 도움을 얻을 요량으로 일부 넘겼던 거였다.

그것을 김성욱은 국정원장에게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지태의 표정이 굳어지자 김성욱이 해명했다.

“놈들이 워낙 거물들의 자제가 아닌가. 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됐어. 괜히 어쭙잖게 건드렸다가 오히려 되치기를 당하면 안 되잖겠나. 해서 원장님께 보고를 드렸던 거야.”

“그랬더니 저를 보자 하시던가요?”

“파일에 담긴 내용들이 전부 다 팩트인지를 자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으신가 봐. 이건 그냥 폭탄이 아니잖아. 그야말로 핵폭탄 아닌가.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는 의도 같으니까 일단 만나 뵙고 편안하게 다 말씀드려.”

“그러죠.”

“알지? 자네가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그걸 잘 알기 때문에 원장님께서도 이번 일에 개입하시려는 거야. 아니 어쩌면 BH하고도 벌써 교감을 나눴을 수도 있겠구먼.”

지태는 전방에 시선을 둔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성욱이 문득 슈트 안주머니를 뒤지며 중얼거렸다.

“누구 전화지?”

곧 스마트폰을 꺼내 든 김성욱이 발신자를 확인하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지태의 시선에 느껴졌다.

지태가 흘깃 돌아보자 김성욱은 ‘원장님!’이라고 입 모양으로 말하곤 얼른 전화를 받았다.

“예, 원장님. 지금 가고 있는 중입……. 예?”

순간 김성욱이 화들짝 놀랐다.

곧 심각한 표정으로 ‘예, 예.’ 소리만 두어 번 반복하다가 이내 전화를 끊었다.

“갈 필요가 없게 됐네.”

“왜요?”

“그보다 어서 라디오 좀 틀어 봐. 지금 오신환 의원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는구먼.”

김성욱은 온몸에 철근이라도 매달아 놓은 듯 무거운 얼굴로 턱짓을 하며 오디오 쪽을 가리켰다.

* * *

오신환 의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권을 비난하면서 쏟아낸 폭로의 요지는 대충 이러했다.

- 남북한 정부 당국자 간의 접촉이 아닌 일개 모 중견 기업의 대표에게 비밀 접촉을 하게 만들었다.

- 그 기업의 대표라는 사람은 이전에 북한 측 인사들과 몰래 접촉한 사실이 있다.

- 정보 당국에서는 이런 범죄 사실을 알면서도 처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를 부추겨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북한과의 물밑 접촉을 시도했다.

- 또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 기업 대표라는 자가 북한과 뭔가 비밀 거래를 했다는 첩보도 갖고 있다.

오신환 의원은 모 중견 기업의 대표라고 소개하면서 이니셜이 H로 시작된다고도 했다.

또한 조금만 인터넷을 뒤져 보거나 잠깐만 유추해도 누구나 금세 알아채고 말 지태의 개인 신상까지 죄다 까발려 버렸다.

* * *

지태는 김성욱을 따라 한강실업으로 되돌아왔다.

도착하자마자 김성욱은 또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갔다.

사무실에 앉아 멍하니 기다리기를 한 시간쯤 지나자 김성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회의가 곧 끝날 것 같으니 자신이 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지태가 알겠다면서 전화를 끊는데 한강실업 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이정명이 다가왔다.

“한 회장님, 우리 사장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십니까?”

“……?”

지태가 눈빛으로 물었다.

“광화문에 있는 호텔에서 회의 중이십니다.”

이정명 부장이 소파 맞은편에 앉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조금 전의 통화로 김성욱이 현재 모처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지태가 궁금한 것은 그가 누구와 어떤 안건을 가지고 긴급회의를 갖고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정명 부장은 모든 걸 솔직히 다 털어놓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김성욱이 돌아와 다 말해줄 것이므로.

다만 약간의 시차만 있을 뿐이니까.

“이제 곧 우리 쪽에서 반격에 들어갈 겁니다.”

“반격이라뇨?”

“주저앉혀야죠, 오신환 의원을!”

“예?”

지태가 눈썹을 위로 한껏 그러모으면서 되물었다.

이정명 부장은 정색하며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러고는 지태 쪽으로 허리를 조금 앞으로 당겨 앉았다.

“사실 얼마 전부터 오신환 의원을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쪽 정보가 새 나가는 걸 포착한 이후부터죠. 그래서…….”

한강실업 팀에서는 오신환 의원과 그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들까지 샅샅이 훑었다고 했다.

그렇게 모아진 자료를 토대로 오신환 의원을 옭아매 적당한 선에서 주저앉히려 했지만, 지금 그가 보이는 행태는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다는 게 이정명 부장의 설명이었다.

게다가 그의 아들 오지용은 임경남 패거리와 어울리며 아버지로부터 얻어낸 정보를 함부로 유출하고 있어 더욱 더 우려가 되는 현실이라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지켜보려 했어요. 한데 결국은 이런 사달을 스스로 만들어내는군요. 오 의원은 제 발등을 스스로 찧은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정치 생명줄을 아예 싹둑 끊어놓자는 거군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지 않습니까. 우리가 취합한 정보들은 이미 윗선 라인에 보고가 되었어요. 더 이상 미루면 큰일이 나겠다 싶으니 지금 이렇게 긴급회의를 소집한 거고요.”

이정명 부장이 자신의 말을 맺으면서 비소로 허리를 다시 폈다.

그럼에도 아직 할 말이 남은 듯했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약간 기대면서 지태를 가만히 응시했다.

“아마 사장님이 오시면 한 회장님께 이런 말씀을 하실 겁니다. 동시에 던져 버리자고.”

“동시에? 임경남과 오신환 의원을 묶어서 말입니까?”

지태의 되물음에 이정명 부장은 고개를 크게 한번 끄덕였다.

“망설일 게 뭐 있겠습니까. 이미 증거는 충분히 모아졌는데. 기왕 터뜨리는 거 대형 폭탄을 날리는 거죠. 그래야 한동안 적폐 세력이며 돈 있다고 까불어 대는 놈들…. 아, 죄송합니다. 한 회장님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고…….”

“괜찮습니다. 제가 부장님이 말씀하시는 돈 있는 놈들 축에는 아직 끼지도 못하는데요, 뭘.”

“여하튼 모가지에 힘주며 같잖은 짓만 일삼던 놈들이 한동안은 잠잠할 겁니다. 몸 사리는 데는 도가 튼 놈들이 아닙니까. 당분간은 알아서 길 겁니다, 다들.”

이정명 부장은 제 스스로 만족스럽다는 듯 피식 웃었다.

회의가 거의 끝나가니까 곧 온다던 김성욱은 그 후로도 두 시간이 넘도록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러다가 저녁 식사 때가 다 되어서야 김성욱이 돌아왔다.

그땐 이미 그를 기다리다 못해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커피로 입가심까지 끝낸 후였다.

“하, 이것들 봐라. 보스는 쫄쫄이 굶고 달려왔는데 너희들끼리만 벌써 저녁을 뚝딱 해치우셨어?”

“걱정 마십시오, 사장님. 따로 남겨두었습니다.”

이정명 부장이 해죽 웃으면서 김성욱의 어깨를 주물러 대는 시늉을 했다.

“비켜, 인마. 가뜩이나 피곤한데 괜히 친한 척하지 말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 김성욱의 표정은 아닌 게 아니라 몹시 피로해 보였다.

김성욱이 지태를 올려보다가 턱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한 회장, 와서 앉지 그래.”

역시 이정명 부장이 예상한 대로였다.

김성욱은 곧 회의 결과를 설명해 주었는데 오신환 의원을 정치판에서 내몰기로 합의를 보았다는 거였다.

또한 임경남과 그의 패거리들까지도.

“이걸 터뜨린 후에는 놈들이 숨 돌릴 틈도 없어야 해. 그룹 법무팀, 그리고 최고의 로펌을 섭외해서 방어 전략을 짜고 말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아야 된다는 말이야. 피할 새도 없이 단칼에 목을 쳐 내 버리는 거지.”

“그래서 어떤 방안을 제시할 건데요?”

“일단 오신환 의원 건부터 동영상 사이트에 올릴 거야. 그들 부자를 한꺼번에.”

지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임경남 패거리와 어울려 마약을 한 오지용의 동영상이라면 몰라도 오신환 의원의 영상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은 거다.

김성욱이 쓰게 웃으며 이정명 부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부장, 그것 좀 가져와 봐.”

“예.”

이정명 부장은 곧 자신의 책상에서 노트북을 가져와 지태 쪽으로 돌려놓고 무슨 영상인가를 실행시켜 주었다.

누가 봐도 얼굴이며 표정이 딱 오신환 의원이었다.

잡아뗄 수 없게 완벽하게 찍은 오신환 의원의 성 접대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은 편집된 영상 같았는데 바로 이어진 장면은 뇌물을 수수하는 그림이었다.

인적 없는 골프장 주차장에서 오신환 의원이 누군가와 환하게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그 상대는 낯이 아주 익은 기업인이다.

카메라의 앵글은 곧 그 옆으로 옮겨졌는데 오신환 의원의 승용차 트렁크에 검정색 가방을 싣고 있는 장면이었다.

지태는 동영상에서 눈을 떼며 김성욱을 쳐다보았다.

“최근에 촬영한 건 아니야.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지난 정부 때 실세였던 이 양반을 그 정부 차원에서도 사찰을 했었나 봐. 아직 우리 본사에 남아있더군. 아, 물론 우리 한강실업 차원에서 근래에 수집한 것도 있긴 해.”

지태는 허! 하고 짧게 헛웃음을 토해냈다.

이건 그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코 빼도 박도 못할 완벽한 그림이었다.

오신환 의원 측에서는 악의적으로 합성한 동영상이니, 자신을 옥죄려는 정치 사찰이니 떠들어 댈 테지만, 이렇게 완벽한 증거 앞에선 결국 부질없는 몸부림이 되고 말 것이다.

지태가 물었다.

“디데이는요?”

“낼모레!”

김성욱이 비릿한 미소를 입술에 담았다.

* * *

이틀 후.

그 이름도 생소한 나라의 서버를 이용해 올라온 동영상 하나가 세상을 온통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영상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것을 가장 먼저 인터넷 매체에서 신속하게 보도했고, 공중파는 물론 종편에서도 행여 때를 놓칠세라 서로 앞다투어 속보로 다루기 시작했다.

* * *

“허허!”

임상만 회장은 뭔가 김이 확 빠져 버린 헛웃음을 날렸다.

조금 전 지은이 들고 온 노트북으로 오신환 의원과 관련된 동영상을 지켜본 후였다.

“아빤… 아니, 회장님은 이런 분과 사돈을 맺으려 했어요? 이 지은이가 겨우 이런 추잡한 가문의 며느리가 되길 원했어요?”

“시끄럽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도 아니잖아. 누가 악의적으로 합성을 해서 퍼뜨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임상만 회장은 뒷부분에서는 말을 아꼈다.

혹시 현 정권 차원의 정치 보복이 아니겠느냐고.

지은은 임상만 회장 모르게 비웃음을 흘렸다.

“여하튼 세상 참 무섭다. 예전 같지가 않아서 자칫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가는 세상이 돼 버렸어.”

“이제 오 의원님의 정치 인생은 끝났다고 봐야 돼요.”

“그거야 좀 더 두고 볼 일이고…….”

임상만 회장이 떫게 입맛을 다실 때였다.

지은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이 불길한 느낌으로 바르르 떨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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