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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4화 (234/272)

234화. 내 친구 강성원!(6)

이덕재와 흑표를 붙잡아 놓은 이상 제주도에 더는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지태는 오늘 중으로 제주를 떠나기로 하고 육지로 나갈 방법을 김성욱과 논의했다.

두 놈을 외부에 노출시키지 않고 몰래 데리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자.

김성욱은 부하 직원을 시켜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해답은 곧 나왔다.

“오늘 오후 다섯 시에 목포로 가는 페리를 섭외했네. 이놈들은 대충 응급처치만 한 다음 렌터카에 실은 채 데려가는 걸로 하지.”

“그럼 저는 잠시 어디 좀 들렀다가 시간에 맞춰 제주항으로 가겠습니다.”

김성욱은 굳이 행선지를 묻지 않았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늦지 않게만 도착하라고 했다.

지태는 이돈두와 윤학수만 데리고 먼저 그 자리를 떴다.

나머지 친위대들은 김성욱 일행과 같이 움직이라고 해두었다.

윤학수가 운전하는 렌터카에 오르자 이돈두가 은근하게 물었다.

“병원에 다녀오려는 거지?”

절친이었던 강성원의 빈자리를 이제는 이돈두가 채우려 함인가.

그는 어느새 눈치만으로도 지태의 마음을 읽는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지태가 어금니를 살짝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이돈두가 추측한 대로 지태는 지금 김아름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 들르려는 거였다.

김아름의 병실은 참변 소식을 듣자마자 내려온 그녀의 친정 부모가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지태는 만일 김아름이 의식을 되찾았다면 먼저 올라간다는 인사라도 하고 떠나려는 것이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자신이 곧바로 내려와 서울로 데려가겠다는 약속도 해줄 참이다.

렌터카가 속도를 높여 갈 즈음 지태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강성원이 불쑥 떠올라서였다.

투박하긴 해도 정겹기만 하던 그의 말투며 눈빛, 미소까지 모든 게 다 벌써부터 그리웠다.

지태가 속으로 그의 이름을 안타깝게 불렀다.

‘성원아…….’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지태를 이돈두가 아프게 돌아보았다.

그의 심경이 고스란히 가슴으로 전해져왔다.

그러자 저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두어 차례 차 바닥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뱉던 이돈두는 급기야 입술을 아프게 꽉 깨물었다.

* * *

밤 9시 30분경.

지태 일행이 페리를 타고 목포항에 도착할 때쯤이다.

임경남과 양재동 패밀리들은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멤버십으로 운영되는 최고급 룸살롱이었는데 아직 아가씨들은 부르지 않은 상태였다.

호스티스들이 없는 가운데 자신들끼리 밀담을 나누기 위함이었다.

모든 게 수월하게 잘 풀렸다는 듯 그들은 하나같이 후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거머리는 떼어냈고, 남은 건 한지태 그 새끼뿐인가?”

이현욱이 자신의 온더록스 잔에 얼음을 추가하면서 입술 끝을 비릿하게 비틀어 올렸다.

그러자 송영완이 비슷한 분위기로 입술을 비틀더니 이내 말을 받으며 나왔다.

“역시 전문 청부업자는 확실히 짱개가 나아. 한국 놈들은 뒤처리가 깔끔하질 못해.”

흘깃.

그때 임경남이 방금 말을 받았던 송영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확인하듯 물었다.

“그 두 놈은 아직 제주에 있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을 때 얌전히 박혀 있으라고 했어. 여론이 좀 잠잠해지면 우리가 육지로 불러올리겠다고.”

“그랬더니?”

“시발 새끼들이 제 분수도 모르고 날뛰더라. 나중에 헬기를 보내 달래. 만에 하나 잘못되면 안 되니까 비행기나 배는 가급적 피하겠다는 거지.”

“놀고 있네, 개새끼들.”

임경남이 같잖아 죽겠다는 듯 조소를 날리자 나머지 세 놈이 따라 웃었다.

그러다가 이현욱이 빠르게 웃음기를 지우며 임경남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 때까진 그 새끼들 밑구멍 좀 긁어주자. 아니, 시늉이라도. 그리고 나중엔…….”

이현욱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모두가 그의 입을 주시했다.

“뒤탈 없어야 하니까 두 놈 다 조용히 잠재워야겠지. 우리들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테니 술에 약을 타 먹여서라도, 이렇게!”

이현욱은 ‘이렇게’라는 부분에서는 손날로 자신의 목을 그어 보였다.

살기를 머금은 미소를 입가에 그리던 임경남이 불쑥 내뱉었다.

“참, 조금 있다가 여기로 지용이가 올 거다.”

그러자 순간 이현욱이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걔는 왜 자꾸 불러. 격 떨어지게.”

“뭐, 격이 떨어져? 그럼 지용이를 내 매제 삼으려고 하는 나도, 우리 집안도 격이 떨어지겠네?”

“아, 아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난 그게 아니라…….”

이현욱은 제가 엎지른 물을 얼른 주워 담기 위해 더듬거렸다.

“됐어!”

임경남은 자신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는 듯 피식 웃었다.

이 자식이 갑자기 왜 이리 나긋나긋하게 나오지? 하는 눈빛으로 비라보는 이현욱에게 임경남은 자신이 오지용을 부른 이유를 설명해줬다.

“오늘 우리가 들으면 깜짝 놀랄 만한 뉴스를 가져온다고 했으니까 눈치 주지 말고 그냥 봐줘. 이야기나 좀 들어 보게. 오신환 의원이 뭔가 폭탄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걸 지용이한테만 말해줬다는 거야.”

“그래? 그게 뭔데?”

이현욱은 조금 전 자신이 내뱉었던 타박을 금세 까먹은 듯 짐짓 호기심까지 어린 눈으로 임경남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임경남은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는 온더록스 잔을 흔들어 얼음을 술에 푹 담근 다음 입으로 냉큼 가져갔다.

* * *

제주에서 상경한 지 이틀 후 지태는 회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실업으로 김성욱을 만나러 가기 전 잠시 들른 것이다.

소식을 접한 조현민과 그룹 사장단들이 소회의실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태는 순식간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사장단을 향해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러고는 곧 각 계열사 별로 간략한 보고를 받았다.

지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한스 다모아의 해외 매장 진출과 더불어 시너지 효과를 누린 무역과 전자의 영업 신장세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더 반가운 보고는 언더웨어 업체인 ‘멋진 사람들’과 한스종합건설에 대한 거였다.

한때 부도설까지 나돌았던 두 회사가 한스그룹에서 인수 후 채권단이 추가 투자 방안까지 내놓았다.

그러자 끝 모르고 바닥만 치던 주가가 어느 순간 확 뛰어올랐다.

건설의 진광호 사장이 입을 열었다.

“……해서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이참에 신주를 발행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유상증자를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기업이든 유동자금이 넘쳐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요. 전쟁에 임할 때 실탄이 넉넉한 병사와 실탄이 달랑거리는 병사 중 누가 유리하겠습니까.”

진광호 사장의 제안에 지태는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은 한스홀딩스의 유기영 부사장 쪽으로 돌아갔다.

그 역시 시기적으로 적절하다는 듯 눈빛 사인을 보내왔다.

“알겠습니다. 그건 두 분 사장님들께서 책임지고 추진해 보세요.”

그렇게 1시간 남짓한 회의를 마쳤다.

지태가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마지막으로 전 계열사 사장단에게 당부를 했다.

“제주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당분간은 그룹 일에 신경을 쓰지 못할 듯합니다. 급한 결재가 필요하시면 자체적으로 회의를 소집해 주세요. 무역의 조현민 사장께서 그 회의를 주관해 주시고요.”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해오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는 조용한 박수로써 지태의 뜻을 받들겠다는 화답을 해왔다.

* * *

본사를 나온 지태는 곧장 한강실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직 러시아워도 아닌데 도로가 심한 정체 현상을 빚었다.

큰 사거리 하나를 통과하는데 신호를 서너 번은 받아야 해서 가뜩이나 심란하고 답답한 지태의 가슴을 더욱 막히게 했다.

그때였다.

띠리리리릿, 띠리리리릿.

조수석에 내려놔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중국에서 걸려온 국제전화다.

느낌상 전화를 걸어온 이는 김영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아니라면 중국에서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없는 거다.

- 한 회장, 잘 지내고 있었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김영철이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하지만 그를 웃으며 반길 만큼 마음이 편한 상태가 아니다.

지태는 지극히 사무적인 어투로 짧게 대답했다.

“그래.”

- 목소리가 와 그러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이네?

“아니, 좀…….”

김영철에게 현재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친구를 잃은 비통함에 빠져 있다고, 또한 복잡하게 얽힌 악연을 떼어내기 위해 정신이 없다고 말할 것인가.

그래서 대충 말꼬리를 흐리며 얼버무린 거였다.

“근데 어쩐 일이야?”

- 하, 이거야 섭섭하다야. 이제 우리 사이가 꼭 일이래 있어야 연락을 하는 사이간?

“그냥 안부 전화라면 이만 끊자. 나 지금 운전 중이야.”

- 잠깐만 기다려 보라. 무시기 이리도 성질이 급하네?

“……?”

- 지태 동무래 요즘 북남 간 물밑 교류에 대해서는 국정원 애들한테 들어서 알고 있디?

물론 잘 알고 있다.

청와대 안보 라인과 국정원의 3차장 산하에서 북측과 비밀 접촉을 꾸준히 이어 나가고 있음을.

“그래서?”

- ……!

지태가 색채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되묻자 김영철은 잠시 침묵했다.

너무 생각지 못한 답이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러더니 곧 정색하며 말을 받았다.

-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지태 동무의 안부를 궁금해 하고 계셔야. 이거이 동무한테는 큰 영광이야, 고럼.

‘지랄하고 자빠졌네.’

순간 지태의 속마음은 바로 그러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한테서 안부 인사를 받는 것이라면 모르되 적대 국가인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안부 인사를 받았다고 그게 어찌 영광이겠는가.

“그 말 전하려고 전화한 거야?”

- 아니디, 기건 아니야!

“그럼?”

- 우리 공화국이 남조선과 적극적인 교류에 나서려는 이유가 뭐갔나? 미제 아새끼들이 꽉 틀어쥔 우리의 숨통이래 좀 터 보갔다고 기러는 거이 아니간.

그걸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태는 대꾸 없이 묵묵히 듣는 것으로 김영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우리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내게 직접 말씀하셨디. 지태 동무의 공을 절대 잊지 않갔다고 말이야. 나중에 북남 간 고위급 회담 이후 수뇌부 만남이 이루어진 후에는 지태 동무를 끌어안고 가시갔다는 말씀도 하셨디. 기걸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꼭 전해 달라고 하셨어.

“음, 고맙군. 내가 고마워하더라고 대신 전해드려.”

지태는 의례적으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영철이 대신 전하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말 속에는 그 자신에게 뭔가 좋은 선물이 있을 거라는 암시가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추후의 문제였다.

지금 지태는 그것을 귀담아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강성원의 복수가 우선이어서 그랬다.

그의 가슴속은 온통 복수심으로 꽉 차 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것도 채워 넣을 여력이 없는 거다.

지태의 분위기에서 뭔가 어두운 일면을 읽은 것일까.

김영철은 눈치껏 통화를 끝내 주려 했다.

- 동무래 지금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는가 보구만, 기래. 알갔어. 오늘은 리만 끊도록 하디. 대신 수일 내로 다시 통화하자우. 그전까지 마음을 잘 다잡고 있으라. 내래 동무의 건투를 빌갔어.

뚝.

김영철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지태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다가 조수석에 다시 툭 던져 놓았다.

그사이 신호를 받은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지태는 중립에 놓아두었던 기어를 전진에 놓고 가속 페달을 천천히 밟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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