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내 친구 강성원!(5)
“헛! 이 얼빤한 새끼가 지금 뭐이라니? 나를 사시미로 담궈 버리갔다고 했나?”
“왜, 내가 못할 거 같냐?”
둘은 두 눈에 불꽃을 튕기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먼저 시선을 비켜 간 것은 흑표였다.
이덕재의 말마따나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사실이니까.
이 상황에 서로 잘났다고 다투어봤자 별로 이로울 것이 없다는 계산도 깔려있었다.
“관두자이.”
흑표가 한발 물러서자 이덕재는 흘깃 째려보더니 그와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는 듯 이제 더는 독한 눈빛을 쏘아 보내지 않았다.
그때 흑표가 궁금증을 담은 시선으로 물어왔다.
“근데 갸들 계산은 언제 해준다고 하니? 언제나 잔금을 받을 수 있갔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냐. 일단은 제주를 어떻게 빠져나가느냐 그걸 연구해봐야 해.”
육지라면 어디든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가 있다.
하지만 하늘길과 바닷길을 막아 버리면 옴짝달싹할 수 없는 곳이 제주가 아니던가.
그만큼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으쩟드야 간에 일단은 여길 빠져나가는 게 문제갔구만.”
흑표가 맞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내 쓴맛을 다셨다.
그러더니 돌연 자신의 배를 쓸었다.
시장기가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기나저나 너 혹시 배가 아이 고프니?”
그 소리에 이덕재는 본능적으로 흑표를 돌아보았다.
흑표가 말을 꺼내기 전까진 인지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배가 몹시 출출했다.
편의점에서 사 온 컵라면과 삼각김밥 등으로 어제 저녁을 대충 때운 이후 아직까지 빈속이었다.
이덕재는 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였다.
추적을 당할까 봐 일부러 전원을 꺼 두었는데 이걸 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인 거다.
그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그걸 보며 흑표가 거들었다.
“에이, 아주 잠깐인데 별문제 있갔나.”
“하긴…….”
흑표의 부추김까지 있자 이덕재는 이윽고 결심한 듯 고개를 흔쾌히 끄덕였다.
* * *
이덕재가 ‘왕배달꾼’이라는 앱을 통해 주문한 음식은 도합 3개였다.
족발과 닭볶음탕, 그리고 짬뽕 등이었다.
얼마 후 세 대의 오토바이가 거의 동시에 이덕재가 은신하고 있는 집으로 달려왔다.
검정색 마스크와 깊게 눌러쓴 오토바이 헬멧의 세 사내가 각각의 음식물을 들고 대문 밖의 초인종을 눌렀다.
분명히 창문 너머로 지켜봤을 것이 틀림없을 텐데도 이덕재는 굳이 누구냐고 신분을 물어 왔다.
“족발요!”
“닭볶음탕입니다!”
“짬뽕요. 불기 전에 어서 문 열어줘요!”
세 사내가 각기 자신이 들고 온 음식물의 이름을 한목소리로 읊었다.
그러자,
찌이잉.
이윽고 문이 열렸다.
세 사내는 대문 안으로 달리기 경주를 하듯 들어섰다.
현관문을 반쯤 열고 기다리던 이덕재가 만 원권 지폐 몇 장을 손에 든 채 신경질적으로 내저으며 짜증을 부렸다.
“야, 이 새끼들아! 빨리 좀 못 와? 도축장에서 돼지 잡고 닭 모가지 비틀고 넌 인마, 밀가루 빻아 짬뽕 만들어왔냐!”
“죄송함돠.”
세 사내는 거의 동시에 느물거리는 목소리로 성의 없는 사과를 한 다음 바싹 다가섰다.
이덕재가 왠지 수상쩍다고 느낀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헬멧의 쉴드 너머로 언뜻 보인 한 녀석의 눈빛 때문이었다.
아주 짧은 찰나였지만 이덕재는 그에게서 강한 살기를 느꼈다.
“너, 너희들 뭐 하는 색…….”
그의 물음은 끝을 맺지 못했다.
뻐억.
“커억!”
눈에 살기를 띠었던 사내, 정확히 말하자면 족발 봉지를 든 배달부의 날카로운 손끝이 이덕재의 목울대를 제대로 찍어 버렸다.
숨이 턱 막힌 것 같은 짧은 비명과 함께 이덕재는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뭐니? 와 그러니?”
뭔가 쿵 떨어지는 소리에 안에서 흑표가 물었다.
배달 사내들은 바닥에 나자빠져서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는 이덕재를 뒷발로 질근 밟으며 그대로 들이닥쳤다.
“너희들 뭐니?”
방 안에 있다가 수상쩍은 소리에 거실 한가운데로 나와 있던 흑표가 가소롭다는 듯 세 사내를 차례로 훑어가며 물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날이 잘 벼려진 손도끼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조금 전 두 눈에 살기를 띠었던 사내가 입술 끝을 살짝 비틀었다.
아주 독하고도 비릿한 조소였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기 전에 하나만 묻자. 그러는 너는 연변에서 온 거지 새끼?”
“이 씨베가 지금 뭐이라는 거니? 대가리가 뽀솨지고 싶어서 안달이 났구나야. 너 뭐 하는 새끼니?”
“3일 전 새벽에 너님께서 처참하게 절단을 내버린 강 형사의 절친!”
“이 씨베!”
“그래. 무턱대고 그냥 썰진 않을게. 내가 자비를 한번 베풀어주마. 너한테 기회를 한번 주겠다는 말이다. 이유를 대봐. 네놈이 지금 이 자리에서 기어코 살아야만 되는 이유! 내가 널 죽여서는 안 되는 정당한 변명!”
지태는 말을 끝내놓곤 비로소 머리에 쓰고 있던 오토바이 헬멧과 마스크를 벗어 바닥에 내던졌다.
한 걸음 뒤에 서 있던 이돈두와 윤학수도 지태를 따라 똑같이 헬멧을 벗었다.
그때 윤학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끄응.
꿈틀대는가 싶더니 이제 조금 기력을 회복하려는 이덕재가 눈에 들어왔다.
뻐억, 뻑.
콰작, 콰자자작.
윤학수는 사정없이 이덕재의 대가리며 복부를 그대로 밟거나 내질렀다.
한두 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수차례 독한 마음을 품고 짓밟았다.
…….
그대로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이덕재는 더 이상 꿈틀대지 못했다.
그 광경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면서 흑표가 씩 웃었다.
전혀 위축되거나 겁을 먹은 모습은 아니었다.
“긴데 말이야. 너희 셋이 전부니?”
“헛!”
지태의 입에서 가소롭다는 헛웃음이 새 나왔다.
그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 새끼는 내 몫이야. 알지?”
“그야 당연하지. 우리한텐 국물 한 방울 안 남겨줘도 돼.”
이돈두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윤학수와 함께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이 씨베 것들이 지금 뭐이라는 거니?”
흑표가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흘리더니 느릿느릿 지태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언제든 공격이 가능할 수 있게 손도끼를 어깨 높이로 올려두고 있었다.
* * *
“부국장님, 지원을 안 해줘도 되겠습니까?”
옆에 바짝 붙어있던 요원 한 명이 물었다.
팔짱을 낀 채 느긋하게 외딴집을 바라다보던 김성욱이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우리끼리 있더라도 호칭에 신경 쓰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김성욱은 그제야 답을 주었다.
냉소가 짙게 밴 목소리로.
“지원을 안 해줘도 되느냐고 물었지? 훗! 내가 장담컨대 여기에 있는 우리 요원들이 한꺼번에 다 덤빈다 해도 한 회장 하나를 못 당해낼 거다.”
“예엣? 한 회장이 그 정돕니까?”
“내가 파악한 바로는 그래. 보기엔 유능한 사업가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무서운 친구지.”
김성욱은 부하직원들 모두가 들으라는 식으로 내뱉고는 짐짓 소풍 나온 아이처럼 주변을 여유롭게 훑어갔다.
감귤 과수원 사이사이로 태양광발전소가 보였다.
효돈천과 어우러진 풍경이 그야말로 전원생활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이 문득 돌아보며 조금 전 질문을 던져 온 요원에게 물었다.
“한 회장이 안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약 10분 정도 됐습니다.”
“그래? 그럼 이미 상황은 다 끝났겠군.”
김성욱은 지태와 이돈두 등의 실력이면 벌써 끝내고도 남았을 거라는 듯 쓰게 웃었다.
* * *
외딴집의 거실 상황은 김성욱이 예측한 그대로였다.
이미 게임 오버가 된 상태.
어느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흑표가 바닥에 구겨지듯 널브러져 있었다.
얼굴은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치 처참히 구겨져 있었다.
얼마나 심하게 당했던지 고통에 못 이겨 흑표가 무심히 내질러 버린 오줌으로 바닥이 흥건했다.
“캬악, 퉤!”
지태가 흑표를 향해 침을 퉤 뱉었다.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는 표정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아무 생각 없이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죽여선 안 되었다.
임경남과 그의 패밀리들의 숨통을 한꺼번에 끊어 놓기 위해서는 이놈의 숨통 또한 아직은 붙여 놔야만 했다.
지금은 꾹 참으며 울분을 삭히고 있을 수밖에.
“형님, 이것 좀 보십시오.”
그때 뒤에서 윤학수가 불렀다.
지태가 독하게 밝히고 있던 눈빛을 지우며 돌아보았다.
윤학수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태와 눈이 마주치자 잽싸게 자신의 무례를 사과하듯 허리를 굽혀 보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너무 놀라운 영상이라서 잠시 정신을 놓았습니다, 형님.”
상관없었다.
지태가 개의치 않고 윤학수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흠칫.
그 순간 지태는 전율했다.
후덜덜덜.
그 영상은 다름 아닌 강성원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윤학수가 널브러진 흑표의 주머니에서 꺼낸 스마트폰이었다.
흑표가 청부를 완수했다는 증거로 남기기 위해 찍어 뒀거나 기념으로 찍어 둔 모양이다.
분노가 극에 달하자 어느새 몸은 전혀 떨리지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지태의 표정은 터지기 일보 직전의 풍선처럼 빠르게 부풀어 갔다.
온 얼굴이 만취자의 그것처럼 벌겋게 변해 간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홱 돌리며 흑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쪼그리듯 앉으면서 놈이 떨군 손도끼를 천천히 집어 들었다.
지태의 시선이 향한 곳은 녀석의 발목이었다.
순간,
퍽!
콰자작.
“아악!”
기절해 있던 흑표가 발목이 끊어지는 고통에 못 이겨 비명을 내질렀다.
지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채 두 번째 도끼질을 했다.
퍽, 퍼억!
쩌억, 쩍.
“아악! 아으으으윽!”
흑표가 지렁이처럼 몸을 돌돌 말아 자신의 잘려 나간 발목 부분을 부여잡고 괴로워했다.
지태는 놈의 한쪽 손목을 강하게 낚아챘다.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챈 흑표가 마지막 힘을 다해 내빼려 했지만 지태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지태가 손도끼를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닭발을 잘라내듯 가차 없이 쾅쾅 내려찍었다.
빠악.
쩌억, 쩍.
이번에는 놈의 고통을 즐기려는 듯 도끼날 대신 뒷면으로 찍어 댔다.
차라리 단 한 번에 잘려진다면 그나마 고통은 덜할 것이다.
뭉툭한 뒷부분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동안 흑표의 손목은 너덜너덜해지더니 이내 밀가루 반죽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해 갔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몸에서 분리가 될 정도였다.
“나머지도 마저!”
지태가 으르렁거리듯 이빨 사이로 내뱉고는 놈의 성한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바로 그때였다.
“한 회장, 이제 그쯤 하지.”
어느새 집 안으로 들어선 김성욱의 목소리였다.
지태는 한쪽 귀로 흘려듣는 듯했다.
그러자 김성욱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네들은 뭐 하고 있어? 어서 한 회장을 말려봐.”
이돈두와 윤학수에게 던진 말이었지만,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만일 지태가 저러지 않았다면 그들 자신이라도 대신 나서서 그리 만들었을 테니까.
이돈두가 윤학수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김성욱에게 내밀며 말했다.
“일단 이 새끼의 숨통은 붙여 놓을 테니까 걱정 마세요. 그전에 이 영상이나 좀 보시죠.”
김성욱이 스마트폰을 받아 드는 사이 지태의 무자비한 도끼질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쩌억, 쩍.
빠직.
빠각.
콰자자작.
흑표의 비명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영혼이 몸을 떠난 듯 아주 깊게 정신을 놓아 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