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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2화 (232/272)

232화. 내 친구 강성원!(4)

“아까 한강실업 사장이라는 사람한테서 대충 들었다. 그 사람, 국정원이지?”

장례식장 한쪽 흡연 구역에 있던 이돈두를 발견하고 다가가자 그가 물었다.

“맞아. 국정원 위장회사 직위로 자길 소개한 거야.”

“어쩐지. 처음 볼 때 느낌이 좀 싸한 게 있었거든. 그나저나 그 씨발 새끼, 아직 제주를 못 빠져나갔겠지?”

이덕재를 말하는 거였다.

“도망칠 때를 놓쳤거나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르지.”

“그렇담 뒤져야지. 우리 애들을 다 풀어서라도.”

“기다려 봐. 그 새끼의 폰을 추적해 보라고 해놨으니까.”

“이 씨발 새끼!”

이돈두는 질긴 고기라도 씹는 양 이빨을 강하게 오물거렸다.

그러다가 지태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일 성원이 화장 끝나면 같이 올라갈 거냐?”

지태는 태엽이 풀린 괘종시계의 추처럼 천천히, 그리고 묵직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이덕재 그 새끼가 아직 제주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게 확실하다면 연변 거지새끼들하고 함께 있을 가능성이 커. 그것들을 다 잡은 후에 올라갈 거다.”

“잡아서 올라가? 여기서 처리 안 하고?”

강성원이 당한 그대로 복수를 하자는 뜻이다.

“그 새끼들은 겨우 손발이야. 손발을 잘라 낸다고 대가리의 숨통이 끊어지진 않지. 난 손발은 물론 대가리인 임경남과 그 패거리들까지 한꺼번에 전부 갈아 마셔 버릴 거다.”

이돈두가 움찔했다.

낮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을 토해내는 지태에게서 시퍼렇게 날 선 살기가 느껴진 까닭이다.

담대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신이었지만, 온몸으로 전해지는 지태의 살기를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을 정도였다.

애써 누르고 있던 지태의 분노가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이돈두는 낮은 신음성을 흘리더니 이내 지태에게 바싹 다가서며 그의 어깨를 감쌌다.

그리고 두어 번 토닥거리며 무언의 위로를 해주었다.

* * *

어머니는 날이 저물자 강성원의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실을 나와 빈소로 지태를 찾아왔다.

지태는 어머니를 장례식장 밖으로 이끌었다.

강성원의 어머니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녀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지태를 보자 어머니는 아직도 슬픔을 가득 껴안은 듯한 눈빛으로 지태를 한동안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많이 힘들지, 우리 아들?”

“……!”

“알지. 말을 안 해도 기가 막힌 네 심정을 엄마가 어찌 모를까.”

지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낮에 잠깐 바닷가에 나가 실컷 오열하고 돌아왔지만 다시 또 울컥해진다.

하지만 지태는 북받치는 격한 감정을 애써 꾹 눌러 가라앉혔다.

목 놓아 실컷 우는 일은 뒤로 미뤄 둘 것이다.

강성원의 복수가 끝나는 날 추모공원으로 강성원을 찾아가 눈물이 마를 때까지 친구를 잃은 슬픔을 맘껏 토해낼 작정이다.

“엄마는 내일 성원이 부모님 모시고 올라가요.”

“왜? 넌 같이 안 갈 거야?”

“볼일이 있어요. 며칠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볼일 보는 대로 올라갈게.”

어머니는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았다.

뭔가 비장함을 가슴에 숨겨 두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 차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헛험!”

헛기침을 하는 소리에 지태가 돌아보았다.

김성욱이 인기척을 내고는 멋쩍게 뒤돌아 서 있었다.

“엄마, 병실에 가있으세요. 회사 일인가 봐요.”

지태는 김성욱을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올라가 있으마.”

지태는 어머니를 병원으로 올려보내고 김성욱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대뜸 물었다.

김성욱이 굳이 이 자리에 급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딱 한 가지 이유밖엔 없을 테니까.

“놈의 위치를 잡았습니까?”

“현재 전원을 꺼놓은 상태라서 정확한 위치 파악은 힘들어. 하지만 마지막 위치가 잡힌 곳은 알아냈어. 서귀포 쪽이야.”

“서귀포…….”

지태는 김성욱의 말을 되뇌며 이를 악물었다.

* * *

다음 날 오전.

대학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강성원을 화장했다.

백자 항아리에 담겨 나온 강성원의 유골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다.

지태는 한동안 강성원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붙든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성원아, 미안하다. 잘 가라, 성원아. 너의 새 보금자리는 나중에 찾아갈게. 원한으로 부릅뜬 네 두 눈이 편히 감겨질 때 속죄하는 마음으로 찾아갈게. 미안하다, 성원아.’

지태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그러자 질끈 감은 두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새어 나와 뺨을 적셨다.

“후우~”

마음을 다잡기 위해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런 다음 지태는 유골 항아리를 강성원의 사촌들에게 전했다.

그리고 저만치에서 남편의 부축을 받고 겨우 서 있던 강성원의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이곳에서 뒷마무리를 하고 제수씨의 회복 경과도 지켜볼게요.”

강성원의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시선으로 지태를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라, 지태야.”

강성원의 어머니는 목구멍으로 뭔가 울컥 밀려오는 듯 마른침을 한번 삼켰다.

그러더니 부축하던 남편의 손을 떼어내고는 지태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지태가 자세를 낮춰 그녀를 꼬옥 감싸 안았다.

* * *

제주공항에서 지태는 한 번 더 강성원의 유골과 작별을 나눴다.

그런 다음 조현민을 돌아보았다.

“조 사장님, 추모공원에 안착할 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지태는 한스그룹의 사장단도 있고 해서 회사 직위로 조현민을 호칭했다.

“걱정 마세요, 회장님. 정성을 다해 성원이를 보내줄게요.”

짧은 인사를 마친 조현민과 사장단은 탑승구로 향했다.

그들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지자 지태는 곧 이돈두와 함께 공항 대합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성욱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았지만, 지태는 슬그머니 외면하고는 곧 질문을 던졌다.

“한강실업 직원들은 내려왔습니까?”

“그래. 어젯밤 비행기로 내려오자마자 서귀포로 보냈네.”

“그 이후로 폰이 켜진 적은 있었고요?”

숨도 안 쉬고 곧바로 묻자 김성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극도로 조심하는 게 분명해. 놈들도 이곳의 분위기를 벌써 눈치채고 있다는 증거지.”

“가죠, 일단!”

지태가 급하게 서두르자 김성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차에 같이 탈까? 가면서 자네한테 따로 할 말이 있는데…….”

“그러시죠.”

지태는 이돈두를 돌아보았다.

“돈두야, 뒤따라와.”

“그래.”

이돈두는 뒤에 일렬로 주차되어 있는 렌터카 쪽으로 걸어갔다.

승용차 한 대와 승합차 두 대가 보였다.

* * *

“자, 이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말해주겠나?”

김성욱은 차가 출발하자 자못 심각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상황이라…….’

지태는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지를 말하려니 참으로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까닭이다.

아주 느리게 호흡을 고르면서 지태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김성욱에게 짧지만 임팩트 있게 설명해줄 가닥을 잡고 있는 거다.

지태는 임경남과의 악연이 시작된 지점부터 김성욱에게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고인이 된 아버지를 언급해야 했지만, 기왕 모든 것을 말하기로 작심한 이상 빼먹지는 않았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내뱉으며 심각하게 듣고 있던 김성욱이 마침내 입술 사이로 휘파람 같은 긴 숨을 내뱉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먼. 참으로 대단한 새끼들과 악연이 맺어졌어.”

임경남과 그의 패밀리들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지태의 첫 직장에서 맺은 허영만과의 악연, 그리고 이어진 임경남과 이현욱, 송영완까지 누군가 일부러 맞춰 놓은 것처럼 촘촘하게 짜인 악연의 고리였던 거다.

그것이 나비효과처럼 커지고 커져 끝내는 강성원의 죽음으로 이어졌으니 김성욱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난 임경남이 미얀마에서 자네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때 단지 기업 차원의 방어 내지는 방해 공작의 일환으로만 생각했어. 근데 자네의 말을 들어보니 이제야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지는구먼. 왜 그리도 자네를 짓밟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를 말이야.”

지태는 짧게 쓴맛을 다셨다.

전염이 된 듯 김성욱 또한 입맛을 다셨다.

“명확해. 아주 심증이 굳어지게 만들어. 이덕재라는 놈하고 연변 거지들이 놈들의 청부를 받아서 자네 친구를 그렇게 만든 것 말이야.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인가?”

“똑같은 방식으로, 아니, 그보다 몇 배로 되돌려줄 생각입니다.”

“그건 불법인데…….”

“사고로 위장하든, 아니면 자살을 당한 것처럼 완벽하게 꾸밀 수는 있겠죠.”

‘자살을 당한 것처럼’이라는 말이 나오자 김성욱이 미간을 좁히며 찡그렸다.

한때 의문사가 발생할 때마다 국정원을 빗대어 놀리던 용도로 쓰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참, 북쪽에서 연락이 왔네. 그쪽 권력의 최상층에서 자네를…….”

“쉿!”

지태는 고개를 내저으며 김성욱의 말을 잘랐다.

그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지태는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말했다.

“정부에 협조를 하는 건 이번 일이 모두 마무리된 훕니다. 그전엔 내 눈, 내 귀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 어떤 것도 안 들릴 겁니다.”

김성욱이 거기에 대해 뭔가 대꾸를 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지태의 표정이 너무도 단호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협조를 구하려면 어쩔 수 없겠군. 하루빨리 이번 일이 마무리되게 우리도 발 벗고 도울 수밖에!”

김성욱은 복잡 미묘한 심정으로 입맛을 다시며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차는 어느새 서귀포 인근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방금 시야를 스쳐 간 이정표에서 서귀포까지 5km가 남았다는 글자를 김성욱은 선명하게 보았다.

* * *

서귀포시 외곽이었다.

효돈천을 사이에 두고 남원읍의 태양광발전소 단지가 형성돼 있는 곳이다.

이덕재와 흑표는 효돈천이 바라보이는 외딴집에 머물고 있었다.

영등포 건달 시절 행동대 후배 녀석이 제주에 내려와 정착한다며 마련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이 바뀌어 육지로 다시 거처를 옮기면서 매매를 위해 비워 둔 곳이었다.

통유리로 된 거실 창가에서 이덕재와 흑표는 효돈천을 내려다보고 있다.

짐짓 느긋하게, 마치 휴식 차 제주에 내려온 사람처럼 태연한 이덕재를 보자 흑표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참지 못하고 흑표가 물었다.

“이봐, 우리 언제까지 여기에 있어야 하니?”

“잠잠해질 때까지.”

“그게 언제나 되갔나?”

“나야 모르지.”

“씨베, 이 쉐끼가 지금 뭐이라니? 니가 모르므 누가 아니?”

흑표가 눈에 넣을 듯 째려보자 이덕재가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게 이 병신아!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거 아냐. 그 경찰 새끼를 난도질할 때 계집년도 똑같이 처리했어야지.”

이덕재는 지금 김아름을 살려 둔 것을 타박하고 있는 것이다.

손도끼에 심한 중상을 입었지만, 그녀는 마지막 기를 다해 경찰에 신고를 하고 정신을 잃어버렸던 거다.

그 덕분에 자신들의 예상보다 사건이 빨리 세상에 알려져 아침 첫 비행기로 제주를 떠나려던 일이 좌초되고 만 것이다.

흑표가 쩝쩝 소리가 나게 쓴맛을 다셨다.

거기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 걸 보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다는 뜻 같았다.

“이상하게 계집애한테는 내가 약해. 마음이 약해서 심하게 다루지를 못 하거든.”

“씨발, 그걸 말이라고…….”

이덕재는 말 같지도 않은 것을 핑계로 내세우는 흑표를 아주 같잖다는 듯 훑었다.

“씨베, 노려보지 말라. 그리 노려보므 어이 하갔다고.”

“죽고 싶냐? 확 사시미를 떠서 젓갈을 담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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