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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31화 (231/272)

231화. 내 친구 강성원!(3)

처참하게 살해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하는 순간 강성원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졸도해 버렸다.

병원 현관 밖으로 나오자 이돈두가 사복형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지태가 다가가자 이돈두가 그의 손을 잡아 한쪽으로 끌었다.

“왜 그래? 나도 물어볼 게 많은데.”

“내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들었어. 내가 말해줄게. 그전에 내가 형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린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돈두는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이를 악물었다.

지태가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봐, 네가 내린 결론은?”

“연변 거지!”

흠칫.

지태가 정신이 번쩍 드는 표정으로 이돈두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제수씨가 손도끼에 맞아 정신이 없는 중에도 연변, 연변만을 반복하더란다.”

지태는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럼에도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지금은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보다는 때를 놓쳐선 안 되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야말로 차가운 이성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 위로 이돈두의 말이 이어졌다.

“손도끼를 썼다고 할 때부터 나는 왠지 그 씨발 새끼들이 퍼뜩 떠오르긴 했어. 그랬는데 제수씨가 연변이란 단어를 계속 중얼거렸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 그 씨발 새끼들이 확실하구나!’ 확신을 했다.”

“그렇담 일단 잡아야지.”

지태가 낮게 중얼거렸지만, 이돈두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염려 가득한 눈빛으로 지태를 훑었다.

강성원을 살해한 것이 연변 거지들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분노가 폭발할 것으로 믿었는데 의외로 너무 차분한 까닭이다.

자신의 상식을 벗어난 지태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었다.

“지태야, 괜찮냐?”

“분노하고 슬픔에 피 토하는 일은 그 새끼들을 잡은 후에 할 거다. 일단은 제주를 빠져나가기 전에 잡아야겠어.”

“벌써 첫 비행기로 토꼈을지도 모르잖아.”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니다, 잠깐만!”

지태는 이돈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누군가의 전화번호를 찾아내고는 곧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국장님, 한지탭니다.”

그랬다. 지태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김성욱이었다.

- 어, 한 회장.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부탁드릴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 부탁? 뭔데 이른 아침부터 전화를 다 한 거야? 아니, 그보다 자네 목소리 왜 그래?

아무리 감정을 누르고 이성을 되찾으려 했지만, 날카로운 김성욱의 촉은 속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베테랑 정보요원다웠다.

“여기 제줍니다.”

- 뭐, 제주도? 거긴 왜?

“지난 새벽에 신혼여행을 온 제 친구가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부국장님의 힘을 좀 빌리려고 합니다. 제주에서 육지로 나간 첫 비행기 속에 중국인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십시오. 지금 바로!”

격정을 애써 누르고 있는 듯한 지태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왔다.

김성욱은 거기에 대고 더 이상의 질문은 삼갔다.

통화를 먼저 끝낸 김성욱이 다시 전화를 걸어온 것은 채 5분도 되기 전이었다.

- 없다더군. 근데 자네 친구를 살해한 놈이 중국 놈인가?

“조선족 같습니다.”

- 조선족이 왜 자네 친구를?

“제가 혹시 광수대에 근무한다던 친구 얘기를 한 적이 있나요?”

- 어, 언뜻 들어본 것 같기도 하네. 자네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던……. 그 친구가 죽었는가?

되묻던 김성욱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갔다.

“나중에 말씀드리죠. 그리고 부탁인데요, 이 시간 이후 육지로 나가려는 중국 국적 애들을 모두 체크해 주시겠습니까?”

- 그러지. 걱정 마, 우리 쪽 라인을 총 가동할 테니까.

“고맙습니다. 올라가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지태는 통화를 마치고 이돈두를 돌아보았다.

“돈두야.”

“어!”

“아우들을 공항과 항구로 보내봐라.”

“놈을 찾게?”

“육지로 빠져나가려면 분명 나타날 거야. 얼굴은 몰라도 감으로 느껴지는 놈이 있을 거다.”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이돈두가 몸을 돌리려 할 때 지태가 다시 불러 세웠다.

“타워파에서 넘어온 망치라는 애 있지.”

“어.”

“그 애를 당장 제주로 불러줘. 연변 거지새끼들의 얼굴을 그나마 알고 있는 건 걔뿐이잖아.”

“오케이.”

이돈두가 곧 몸을 돌려 친위대 쪽으로 걸어갔다.

지태는 다시금 치미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나 억제하기란 너무도 힘이 들었다.

지태는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 * *

강성원의 어머니는 겨우 몸은 추슬렀지만 아직 충격에서는 헤어나질 못했다.

지태는 아버지를 병실 밖으로 불러내 강성원의 장례 문제를 상의했다.

“다행히 제수씨의 수술이 잘되고 생명엔 이상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직 비행기를 타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성원이만 서울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

“그래. 제주에서 성원이를 떠나보내는 게 좋겠구나. 내가 들어가서 성원이 엄마를 잘 설득해 보마.”

자식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어찌 의연할 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강성원의 아버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슬픔을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자신까지 무너지면 가뜩이나 심약한 아내는 더욱 더 깊은 슬픔과 충격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 게 분명했으므로.

지태는 병실로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르 쏟아져 내렸다.

동시에 북받쳐 오르는 분노와 견딜 수 없는 슬픔이 다시 또 온몸을 휘감아왔다.

* * *

빈소를 지키고 있던 이돈두에게 윤학수가 다가왔다.

“좀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형님.”

“왜?”

“누가 좀 뵙자고 하십니다, 형님.”

“누군데?”

이돈두가 묻자 윤학수는 고개만 돌려 누군가를 가리켰다.

강성원의 빈소 입구에서 40대 후반의 사내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이돈두 씨 되시지?”

사내가 바짝 다가오더니 대뜸 반말로 물어 왔다.

“그렇긴 합니다만, 댁은 누구셔?”

아무리 장례식장이라지만 초면부터 도발적으로 나오니 자연스럽게 이돈두의 인상이 구겨졌다.

“한 회장, 지금 어딨나?”

“그니까 누구시냐고 묻잖아.”

“나 한강실업 대표일세. 한지태 회장을 잘 아는 사람이야.”

“아, 그래… 요?”

그제야 이돈두는 말투를 공손하게 가져갔지만, 여전히 미심쩍다는 느낌은 지우지 않았다.

“근데 사장님은 나를 어떻게 아시고?”

“한 회장에게서 자네 이야기를 많이 들었네.”

김성욱은 답을 주면서 빈소 주변을 무겁게 훑어갔다.

이돈두에 대해서는 지태로부터 듣기도 했지만, 사실 한강실업 요원들이 뒷조사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지태와 손을 잡으면서 그의 주변 인물들에 대해 은밀히 파악을 끝내 놓았다.

“그나저나 한 회장은 어딜 갔어?”

“글쎄요. 어디 바람을 쐬면서 마음을 달래러 간 모양입니다. 1시간 전만 해도 같이 빈소를 지켰는데…….”

김성욱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천천히 구두를 벗었다.

지태의 가장 절친인 강성원에게 술 한 잔 따라주고 국화 한 송이를 영전에 올리려는 거다.

* * *

“아아아아악!”

벌써 몇 번을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가슴 속은 전혀 뚫리지가 않았다.

레미콘이 가슴속에서 굳어지고 있는 것처럼 더더욱 꽉 막혀 오는 느낌이었다.

지태는 현무암 갯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에 실어 목청이 터져 나갈 듯 다시 또 포효했다.

“아으으으, 아으아아악!”

울부짖음 다음에는 오열하며 강성원을 부르는 일이다.

눈물보가 완전히 터진 듯 끊임없이 울면서 연신 강성원의 이름을 불러 댔다.

“어으, 어으, 성원아!”

지태는 강성원의 빈소에서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불현듯 격정을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이돈두가 렌트해 놓은 차를 몰고 무작정 달려 이곳 바닷가에 도착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빈소에 앉아 영정 속 강성원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다.

복수를 할 때까지는 절대 이성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었다.

슬픔은 잠시 묻어 두자고 이를 악물었었다.

당장 감정을 드러낸다면 상황 판단에 눈이 흐려지고 그러다 보면 자칫 놓치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그래서 겉으로는 애써 냉정을 유지하려 했는데 결국 견딜 수가 없어서 무너지고 말았다.

지태는 고개를 푹 떨궜다.

뺨을 적시던 눈물이 방울방울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너무 울었나 보다.

이제 울음소리는 잦아들었지만,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딸꾹질이었다.

지태는 딸꾹질이 새어 나오는 사이사이로 복수를 다짐했다.

“성원아,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할게. 널 이렇게 만든 놈들, 하나씩 찾아내서 생선살을 바르듯 전부 다 발라버릴 거다, 기필코!”

지태는 두 눈을 독하게 뜨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순간 머릿속으로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렇지! 내가 왜 그 새끼를 잊고 있었지?’

지태는 서둘렀다.

그리고 렌터카를 주차해 둔 곳으로 달려 나오면서 스마트폰을 바쁘게 꺼내 들었다.

* * *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김성욱이 지태를 맞았다.

지태가 급하게 물었다.

“제가 이쪽으로 오면서 전화로 알아보라는 건요?”

“자네의 짐작이 맞는 거 같네. 이덕재라는 놈이 자네 친구가 살해되기 하루 전 제주로 넘어온 기록이 확인됐어. 육지로 빠져나간 흔적은 아직 없고.”

“그렇담 당장 폰 추적 좀 해주시겠습니까?”

“자네가 직접 잡으려고? 경찰한테 맡겨 두지 그래.”

지태는 고개를 내저었다.

“경찰에 넘기는 순간 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누군가 빼돌리거나 땅에 묻어 버릴 테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전부 말씀드릴게요. 일단 부국장님은 폰 추적이나 좀 해주세요.”

“그러지.”

말을 마친 김성욱은 스마트폰을 들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갔다.

지태는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강성원의 빈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제주에 내려와 있었다.

강성원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한스그룹 사장단이 이번에는 장례식장으로 총출동했다.

돈두파 친위대원들의 숫자도 어느새 꽤 많이 늘어나 있었다.

장례식장의 잡다한 일들을 돕게 하는 한편 혹시 출동할 일이 생기면 기동성을 발휘하기 위해 이돈두가 불러들인 거였다.

빈소로 들어서는 지태를 발견하자 그들은 요란스럽지 않게 작은 몸짓으로 인사를 해왔다.

지태 역시 작은 고갯짓으로 인사를 받아줬다.

“회장님…….”

조문객들 사이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한스그룹 사장단이 다들 일어서며 맞았다.

“괜찮습니다. 어서들 식사하세요.”

지태는 사장단들을 자리에 앉힌 다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예를 취했다.

“이 먼 곳까지 걸음을 해서 위로해주시니 뭐라 감사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무슨 외람된 말씀을!’ ‘당연히 찾아와야지요.’ 등등의 답례가 흘러나왔다.

그때 조현민이 일어나 다가왔다.

“한 회장 말대로 오는 길에 자네 어머님 모시고 왔어.”

“잘하셨어요, 형님. 근데 어머니는……?”

지태가 두리번거렸다.

“성원이 빈소에 국화 한 송이 올리시고는 바로 병실에 올라가셨어.”

강성원의 어머니를 보러 가신 모양이다.

지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빈소 쪽을 돌아보았다.

이돈두가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를 강성원의 사촌들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 몇몇이서 메꾸고 있다.

지태는 이돈두를 찾아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급히 상의할 게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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