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내 친구 강성원!(1)
“확실해?”
“내가 누구냐? 한번 물었다 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 인간 셰퍼드 강성원이 아니냐. 골드웰의 송영완 그 새끼의 뒤를 밟다가 우연히 알게 됐어. 두 놈이 술집에서 은밀히 만나는 거 확인하고 그 즉시 이덕재라는 놈의 뒤를 한번 파봤지.”
강성원의 성격상 확실하지 않으면 장담하거나 기정사실화하진 않는다.
그가 이렇듯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은 뭔가 확실한 증좌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고개를 크게 끄덕인 지태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동자를 위로 끌어올려 굴리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다시 강성원을 쳐다보았다.
“지금 나한테 이 말을 꺼낸 의도는 혹시 그런 거 아니냐? 어차피 합법적으로는 놈의 입을 열게 할 수가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가자는…….”
“지금 내 처지가 그렇잖아.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간 놈들한테 정보만 새어 나갈 거고. 난 그 새끼들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아예 옷을 벗을지도 모르고.”
“음!”
지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양아치는 아무래도 양아치를 다루는 방식으로 가는 게 맞다?”
“역시 돈두의 힘을 빌려야겠지?”
“내가 나서는 것보단 이덕재 그 새끼한텐 그게 훨씬 더 잘 먹힐 거다.”
지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 * *
낡은 5층 높이의 건물이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팔짱을 낀 채 건물을 올려다보던 이돈두가 조수석의 윤학수에게 물었다.
“몇 층이라고?”
“3층입니다, 회장님. 전당포 바로 위층이 놈의 사무실입니다.”
“거 참!”
이돈두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를 내자 윤학수가 돌아보았다.
“너 자꾸 회장이라고 할 거야? 둘이 있을 땐 그냥 형이라고 부르라니깐!”
“아, 예, 형님!”
“저 새끼가 예전에 생활을 좀 했다고?”
“영등포 짱구파 식구였다고 들었습니다, 형님.”
“그럼 안에 거느리고 있는 똘마니들도 몇 놈 있겠네?”
“시끄럽지 않게 조용히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그래. 당장 애들한테 명령 내려. 양아치 하나 잡는데 무슨 뜸을 들이고 그래. 바로 처리하라고 해.”
“예, 형님.”
윤학수는 곧 승용차 밖으로 나왔다.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던 친위대원들이 기계처럼 허리를 굽혔다.
“작업 들어가자. 너무 요란 떨지 말고 가급적 조용히 낚아 와라.”
친위대원들은 대답 없이 깊은 묵례와 함께 건물 입구로 우르르 몰려갔다.
차 안에서 부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이돈두가 목이 뻐근하다는 듯 양어깨를 한껏 부풀리며 근육을 풀었다.
그러다가 문득 쓰게 웃었다.
지태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어젯밤 늦게였다.
합법적으로 나갈 상황도 아니고 또 그렇게 다룰 놈도 아니라고 했다.
양아치 새끼나 다름없으니 그놈 위상에 걸맞은 방식으로 처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었다.
이돈두는 환영의 뜻을 보내는 한편 섭섭하다는 뜻도 동시에 피력했다.
친구지간에 부탁이라니.
그것도 그거지만 연변 거지새끼들을 잡는 일은 그 자신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이제는 돈두파에 흡수되어 온 타워파 조직원들에게 장담한 게 있다.
그들의 보스였던 강창근에 대한 복수를 기필코 해주겠다는 약속.
그런 생각에까지 미치자 이돈두는 저도 모르게 양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 * *
문이 열리지 않자 사정없이 부수고 들어선 사내들이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구석구석을 뒤지고 살펴도 결국 아무것도 찾아낼 수가 없자 그들은 괜한 화풀이를 집기며 소파 등에 해대고 있다.
부수고 엎고 던지며 난장판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들.
그때 녀석들의 대가리로 보이는 사내가 들어서고 있다.
그는 이덕재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돈두파의 보스.
“씨발 놈들!”
스마트폰으로 CCTV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이덕재가 이빨 사이로 씹듯이 내뱉었다.
그러다가 곧 입술 끝을 비릿하게 끌어 올리며 씩 웃었다.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한발 빠르게 대처한 그 자신을 자화자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자신이 벌이고 있는 사업이 워낙 불법적인 것이라서 곳곳에 CCTV를 설치해 두었다.
곧바로 찾아낼 만큼 노출된 카메라도 있었지만, 그중 몇 대는 외부인들이 눈여겨 살피지 않는 한 쉽게 찾아내기 힘든 곳에 숨겨둔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전부터 낯익은 얼굴 하나가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서울 광수대 형사로 있다가 지금은 파출소 차석으로 좌천된 강성원이라는 형사였다.
그는 3일 전에는 이곳 건물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다니더니 급기야 사무실 문 앞에까지 와서 한참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이덕재는 그 즉시 사무실을 비우고 애인의 오피스텔로 은신해 버린 것이고.
“오빠, 뭐해? 폰으로 몰래 야동이라도 보는 거야?”
이덕재는 말을 걸어온 여자의 면상을 꼭 생긴 대로 놀고 있다는 식으로 쳐다보았다.
단골로 다니던 강남의 룸살롱에서 일하던 아가씨였다.
이덕재는 그녀가 진 빚들을 몽땅 다 갚아준 다음 당분간 데리고 놀 요량으로 집에 들어앉혀 놓았다.
몸매가 좋고 애교가 많아서 애인으로 들어앉히긴 했는데 몇 달을 함께 살 맞대고 살다보니 머릿속이 영 깡통이었다.
그리고 내뱉는 말마다 어찌 그리도 상스럽고 무식한지.
속이 훤히 다 비치는 시스루 차림의 여자는 퍼질러 자다 나왔는지 입을 떡 벌리고는 길고도 게으른 하품을 해댔다.
그러다가 눈물이 맺힌 듯 양손으로 대충 눈을 훑고는 이덕재와 시선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오빠, 요즘엔 안 바빠? 끽해야 일주일에 한번 들를까 말까 하던 사람이 웬일이야. 이틀씩이나 밖에도 안 나가고?”
“왜? 다른 놈팡이를 만나야 하는데 나 때문에 못 나가서?”
“어휴, 어휴! 내가 오빠 말고 어떤 바지씨가 있다고 그래. 난 오로지 울 오빠밖엔 없어. 그니까 나중에 오빠가 나를 위해 열녀문이라도 세워줘.”
열녀문 좋아하시네.
이덕재는 한심이 덕지덕지 묻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시끄럽고, 얼음 채워서 술이나 한 잔 가져와.”
“피이~”
여자는 타이어 실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하, 씨발! 이제 어쩌나?”
이덕재는 속이 터져 죽겠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눈을 돌려 소파 테이블에 올려놔 둔 스마트폰을 쳐다보았다.
이덕재의 비릿한 웃음이 다시 피어올랐다.
“어차피 내가 잘못되면 똥줄 탈 새끼들이 누군데. 씨발, 알아서 조치를 취해주겠지.”
혼자 중얼거리고는 이내 결심한 듯 이덕재는 통화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
* * *
이돈두가 이덕재를 잡으러 갔다가 허탕만 치고 돌아온 날로부터 정확히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늘은 강성원과 김아름이 드디어 결혼식을 치르는 날이다.
지태는 결혼식이 치러지기 30분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강남에 위치한 웨딩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식장 입구로 들어서는데 친위대원 몇 명에게 둘러싸인 이돈두가 보였다.
지태를 먼저 발견한 윤학수의 인사에 이돈두가 돌아보았다.
그러면서 두어 걸음 앞으로 마중을 나오며 지태를 반갑게 맞았다.
“어, 한 회장!”
“네가 오늘 장가 가냐? 왜 이리 부지런을 떨었어?”
“장가드는 놈은 장례식 기분이겠지만, 축하하러 온 나는 잔칫날이지. 그러니 안 설레겠냐.”
“새끼, 비유를 해도 꼭! 좋은 날 불길하게 장례식이 뭐냐, 장례식이.”
지태가 진담 반, 농담 반을 섞어 흘겼다.
“그런가? 그럼 내가 괜히 입방정을 떨었네.”
자신의 입을 나무라듯 손바닥으로 입술을 쳐대는 이돈두에게 지태는 어머니를 소개했다.
“울 어머니셔. 인사드려라.”
“어! 어머님이셨어? 어찌나 젊으신지 난 지태의 숨겨둔 신붓감인 줄 알았…….”
“아, 쫌!”
지태가 흰소리 좀 집어치우라는 듯 으르렁대자 이돈두는 금방 장난기를 지우고는 정색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처음 뵙는데 농이 심했습니다. 저는 여기 한지태하고 사회 친굽니다. 성원이하고도 친구가 되고요.”
“아, 그래요? 사람이 붙임성이 있어 좋아 보이네.”
“감사합니다, 어머니. 인사도 드렸고 하니까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엄마, 그만 들어가죠. 성원이 부모님께 인사부터 드리게.”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앞장서 가는 어머니의 뒤를 따르다가 지태가 문득 이돈두를 돌아보았다.
“돈두! 좀 있다가 안에서 보자.”
“오케이!”
강성원의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린 지태가 신랑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좋냐?”
“다른 생각은 안 들고, 지금 당장 내 머릿속을 흔드는 건 개피곤이란 단어!”
“에라, 그런 식으로 이 형님을 계속 놀려라. 나중에 몰아서 한꺼번에 얻어터질 날이 있을 거니까.”
“큭큭. 참, 돈두 놈 말이야.”
“어, 왜?”
“밑에 애들한테 돈 봉투를 하나씩 다 안겼나 봐. 줄줄이 사탕으로 와서 축의금을 내고 갔다.”
“냅둬. 그게 돈두 방식의 우정 표현이니까.”
“그런가?”
강성원이 겸연쩍은 미소를 띠었다.
* * *
지태의 부탁으로 유성락 부회장이 주례를 맡아주었다.
식이 끝난 후 지태는 유성락 부회장을 모시고 뷔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 자리를 조현민과 이동구 사장 등 한스그룹 사장단이 함께했다.
사장단에게는 알리지 않았을 뿐더러 알릴 이유조차 없었는데 일부러 발걸음을 해준 것을 보면 분명 조현민이 꼬드겼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인적 친분이 없는 강성원의 결혼식에 그룹의 사장단이 총출동할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현민은 지태와 눈이 마주치자 짐짓 딴청을 피워 댔다.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담아와 본격적인 식사가 이루어지자 유성락 부회장이 문득 물었다.
“한스건설은 잘 돌아가?”
“예. 급한 것부터 하나씩 불을 꺼 나가고 있습니다. 분양이 안 되어 골치가 아픈 세대들에 대해선 얼마간의 보증금만 받고 일단 임대로 돌리려 하고요. 살다가 마음에 들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매수할 수 있도록 유도할 생각입니다.”
“하긴 그 전세금들만 모아도 유동자금 운용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 잘했네.”
“그나저나 감사드립니다. 회장님께서 채권단을 잘 설득해 주셔서 좋은 결과로 이어진 거니까요.”
“에이, 이 사람아. 난 별로 해준 게 없어. 그 사람들이 전부 다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 거야. 근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
“뭐가 말씀이십니까?”
“정부 말이야. 자네한테 왠지 모를 관심을 쏟아 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은행 관계자들도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를 했고.”
“하하. 뭔가 오해가……. 저 같은 놈을 뭐 볼 게 있다고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주겠습니까.”
지태는 부정하며 뒤로 한발을 뺐지만, 사실 짐작되는 인물들이 없진 않았다.
지난번 남북 화해의 물꼬를 트게 해준 공로를 결코 잊지 않겠다고 했던 대통령의 약속도 이 순간 불현듯 떠오르는 지태였다.
* * *
강성원은 신혼여행지로 제주도를 택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주도는 처음이었다.
제 나라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수두룩한데 굳이 해외까지 나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강성원의 의견에 신부인 김아름이 동의를 해주었다.
김포공항까지는 이돈두의 고급 외제 차량을 이용하기로 했다.
요란하게 허니문 카로 치장한 이돈두의 승용차에 강성원과 김아름은 나란히 올랐다.
친위대의 차량이 앞장을 서고 그다음이 강성원이 올라탄 차였다.
차를 빌려준 이돈두는 지태의 옆자리에 탑승한 채 그 뒤를 따랐다.
도합 일곱 대의 차량들이 줄지어 가는 모습은 흡사 한국을 방문한 외국 귀빈의 행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