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땅굴 작전(3)
그로 인해 자칫 정권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 이를 결코 간과할 수 없었다.
아직 국정원 내부의 빨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심증이 가는 사람이 있긴 하다.
하지만 확실한 물증 없이 건드릴 위치가 아니다.
그래서 우선은 지켜보는 중이었다.
김성욱이 허공에 입바람을 훅 불어제치곤 직원 하나를 크게 불렀다.
“야, 전 부장아!”
“예, 사장님.”
자신의 책상에서 데스크톱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30대 후반의 사내가 달려왔다.
“뭐 메일 날아온 거 없어?”
“한지태 회장 말입니까?”
“그럼 누구겠어. 우리가 비상대기하고 있는 이유가 뭔데.”
“아직 없습니다.”
“알았어. 가서 일 봐.”
아무 연락이 없다는 말에 김성욱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잘 되어가고 있나 모르겠네…….”
* * *
강원도 평강군을 관할하는 5군단 사령부 앞이다.
정문 가까이 이르자 바리케이드 너머로 위병소의 병사들이 총을 겨눈 채 라이트를 끄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김영철은 헤드라이트를 끈 채 기다렸다.
위병소 지휘관을 포함해 다섯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의 병사가 자동소총을 겨누며 다가왔다.
한 병사가 총구로 운전석의 창문을 콕콕 찍었다.
김영철이 창문을 열자 병사가 물었다.
“어케 오셨습네까?”
김영철은 말없이 신분증을 꺼내 병사에게 보여줬다.
잠시 들여다보던 병사가 화들짝 놀라며 거수경례를 붙였다.
그 모습에 위병소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급히 달려왔다.
중위 계급장을 단 장교였다.
“호위사령부 김영철 중좌십네다.”
경례를 붙였던 병사가 신분을 알리자 중위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하며 경례를 올렸다.
“동무! 내래 온다는 연락을 받았디?”
“예, 그렇습니다.”
“기렇담 날래 길 트라우.”
김영철이 헤드라이트를 다시 켜자 중위는 위병소 쪽에 수신호를 보내 길을 막아놓은 바리케이드를 치우게 했다.
“지태 동무, 영광으로 알라.”
사령부 안으로 차를 몰아가면서 김영철이 씩 웃었다.
“뭘?”
“동무래 우리 인민군의 최전방 부대를 방문하는 남조선의 첫 인물이 아니갔나.”
“그래, 영광이다. 우리 한씨 가문의 대단한 영광!”
지태는 농담처럼 코웃음을 쳤지만, 사실 놀라운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지금처럼 피치 못할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SUV는 빠르게 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사령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환하게 불을 밝힌 가운데 5군단 내 고위 장교로 보이는 사내들이 일렬로 도열해 있었다.
그중엔 별 세 개짜리 장군도 있었다.
바로 5군단장이었다.
SUV에서 재빨리 내린 김영철이 거수경례를 붙이자 5군단장이 가벼운 거수경례 동작으로 화답했다.
“어서 오라, 김영철 중좌.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께서 손수 전화를 주셨어. 잘 대접하라고 말이지.”
5군단장은 손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김영철이 빳빳하게 몸을 세운 채 악수를 받았다.
그리고 5군단장이 바로 옆을 돌아보자 김영철이 지태를 소개했다.
“이쪽이 남조선에서 온 한지태 동무입네다.”
“반갑소. 한지태 선생. 5군단장 양광철 상장이오.”
“한지탭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시갔고만. 잠자리가 불편하드래도 최대한 정성을 들였다는 것만 알아주시오. 이보라, 두 분 잘 모시라.”
5군단장은 숙소를 안내해주라고 명령하고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숙소는 정말이지 형편없었다.
장교들의 숙소를 비우게 하고 나름 바쁘게 정돈하고 꾸몄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시골 여관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전방 부대라서 화려하게 꾸미지 않았디. 겨우 하룻밤이니 기냥 참고 넘기라.”
김영철도 미안한지 지태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거야 상관없는데 준비는 다 끝냈는지 모르겠군.”
“뭘? 아!”
무심코 되묻다가 곧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김영철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철저히 준비했을 기야. 안 그랬다간 별 세 개에서 바로 소위로 내려앉아 노동교화소로 정신 개조를 받으러 갈 거이니까.”
“그럼 지금쯤이면 땅굴만큼은 남과 북이 하나로 열려 있겠네.”
지태가 입술 끝만 비틀어 올리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김영철이 숙소의 문을 열자 상위 계급장의 장교 하나가 쟁반을 들고 서있었다.
야식을 준비해 온 모양인데 장교가 손수 들고 온 것을 보면 나름 이번 작전의 보안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쟁반 위 커다란 냄비에는 닭백숙과 북한 소주 한 병이 놓여있었다.
김영철은 장교로부터 받아 온 쟁반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침 출출하던 찬데 잘되었구만, 기래. 한잔하면서리 내일 작전에 대해 논의를 해 보자우.”
“기러디 뭐.”
지태가 김영철의 말투를 흉내 내며 자리에 앉았다.
* * *
“그거 확실해?”
임경남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올라갔다.
투박하게 말린 대마초를 한 모금 쪽 빨던 오지용이 씩 웃었다.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형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아버지가 어디 허튼소리나 하실 분입니까.”
“하긴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 임경남이 허공에 시선을 둔 채 오지용의 말을 되뇌었다.
“한지태 그 새끼가 단둥에 있는 북한 무역회사를 들락거렸다?”
그러더니 다시 홱 고개를 돌려 오지용을 쳐다보았다.
“근데 뭣 때문에 빨갱이 새끼들하고 접촉한 거래?”
“글쎄요. 그것까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던데요. 한지태 놈과 관련된 사항은 국정원 내에서도 몇몇만 알고 있는 극비라나 뭐라나.”
“극비. 음, 극비……. 그렇다면 한지태 그 새끼를 옥죄려는 게 아니잖아. 보안법으로 잡아넣을 줄 알았는데 지금 분위기를 보면 오히려 국정원이 그 새끼하고 뭔가 짬짜미를 꾸미는 것 같잖아.”
“그렇긴 해요. 뭔가 비호해 주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도대체 뭐 하자는 수작이지?”
임경남이 입바람을 후 불었다.
닫혀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휘파람 소리가 났다.
“의원님께 좀 더 알아보시라고 재촉해 봐라. 어차피 이건 너한테도 득이 되는 거야.”
“득이라뇨?”
“한지태 그 새끼가 무너져야 지은이가 확실하게 너한테로 마음을 돌릴 거 아니냐.”
“허헛. 이야기가 또 그렇게 되나요? 참 나, 어렵게 먼 길 돌아가네, 정말.”
오지용은 자괴감이 든다는 식으로 쓰게 웃었다.
임경남이 담배 케이스에 든 대마초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지은이하고는 자주 만나냐?”
“드문드문 만나기야 하죠. 근데 만나면 뭐 합니까. 술 한 번 같이 마셔본 적이 없는데.”
“그럼 아직……?”
“예. 손도 한 번 못 잡아 봤습니다. 이게 무슨 데이틉니까, 형님. 회장님 때문에 마지못해 적선하듯 나와서는……. 암튼 자존심이 무지 상합니다.”
“쉽게 잡힌 물고기는 별로 맛이 없는 법이야. 힘들게 공들여서 잡아야 성취감도 높고 귀한 맛도 음미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여자에 관해선 내가 선배니까 하는 말인데, 일단 그렇게 내 손에 잡히면 그때부턴 끝이야. 아무리 모가지 빳빳하게 세우고 고상한 척 굴었던 여자도 자동으로 네 앞에 엎어진다. 알겠냐?”
“역시 선수는 다르셔.”
“그니까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굴란 말이야.”
임경남은 결국 기승전, 아버지인 오신환 의원으로부터 국정원의 정보를 빼내오라는 이야기였다.
오지용이 입맛이 쓰다는 듯 쩝쩝거렸다.
* * *
양재동 빌라가 위치한 골목 일각.
짙은 선팅으로 차량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 밴 한 대가 서있었다.
내부에는 각종 도감청 장치가 설치돼 있었는데 두 명의 요원이 그 앞에 앉아있다.
그중 헤드폰을 쓰고 있던 요원이 동료를 돌아보았다.
아주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었다.
“허, 이 새끼들 봐라.”
“맛이 간 새끼들! 죽으려면 뭔 짓을 못하겠어.”
동료가 예의 비릿한 웃음으로 말을 받았다.
“어서 사장님께 보고 드리자.”
“그러지. 내가 할게.”
헤드폰을 쓰지 않은 요원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어젯밤 야식을 챙겨 온 장교가 두 사람에게 다시 또 아침 식사를 배달해 왔다.
김영철은 상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그에게 깨끗한 장교복 한 벌을 가져오게 했다.
숙소를 나가기 전 지태에게 입히려는 것이다.
식사 후 땅굴이 시작되는 북측 방향의 군부대를 다녀오려는 것인데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까닭이다.
상위가 가져온 장교복은 소좌 계급장이 달려있었다.
졸지에 김영철보다 후임 장교가 돼버렸다.
“꼽네?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내래 위 아니갔어?”
“그래. 네놈이 좋은 건 다 해 처먹어라.”
지태는 가볍게 비웃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숙소를 나오니 군용 지프가 대기하고 있다.
김영철이 운전석에 오르자 지태가 뒤이어 그 옆자리에 앉았다.
지프를 몰아 약 30분쯤 남으로 달렸을 때 남방 한계선에 인접한 평강 지역 GP를 담당하는 인민군 대대가 나왔다.
위병소로 접어들자 미리 연락이 간 것인지 병사들 대여섯 명이 경례를 붙여 왔다.
그런데 지금껏 보아 온 인민군 병사들과는 뭐가 달라도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눈빛이 매섭고 체격들이 건장한 것이 마치 운동선수의 몸매 같았다.
지태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 의문은 곧 풀렸다.
병사들을 지휘하는 인물이 왠지 낯설지가 않은 거다.
그는 미얀마 카친 반군의 사령부에서 보았던 사내로 김영철의 부하였다.
두 번째 반군 오더 때에는 수송책임을 맡은 후안과 함께 오더 물품의 경호를 했던 바로 최명남이었다.
“어서 오시라요, 중좌 동지! 한지태 동무도 반갑습네다.”
최명남이 운전석 너머로 지태를 보며 활짝 웃었다.
지태 역시 화답하듯 반갑게 웃었다.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의 수인사가 끝나자 김영철이 최명남에게 물었다.
“준비는?”
“모두 마쳤습네다. 땅굴로 가는 길목은 우리 호위사령부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네다.”
“기래. 어서 차에 올라타라우.”
최명남을 뒤에 태운 김영철은 대대본부에 들리지 않고 그대로 차를 돌려 비포장도로로 나왔다.
그렇게 다시 10분쯤 달리자 수풀이 우거진 공터가 나왔다.
김영철은 그늘진 나무 아래에 지프를 세웠다.
비록 울퉁불퉁한 산길이지만 지프가 충분히 올라갈 정도는 되었는데도 굳이 차를 세운 게 의아해 돌아보니 김영철이 쓰게 웃었다.
“몇 발짝 안 돼. 기냥 걸어가자우.”
최명남이 앞장을 섰고, 지태와 김영철이 뒤따르는 형국이었다.
남쪽에서 대북방송을 내보내는지 요즘 한류를 선도한다는 아이돌 걸그룹의 발랄한 노랫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지태가 풀썩 웃었다.
김영철이 돌아보더니 그 의미를 알고는 따라서 쓰게 웃음을 지었다.
“어찌나 반복적으로 저리 방송을 해대는지 이곳에서 근무하는 몇몇 반동 아새끼들이래 노래 박자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디.”
지태는 다시금 피식 웃으면서 그 와중에도 이돈두의 DD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가수 겸 연기자로 거듭나고 있는 민희의 노래가 이곳까지 곧 울려 퍼질 날을 고대했다.
이제는 한스전자의 메인 모델이기도 한 것이니 부쩍 더 정이 가는 아이인 거다.
가는 도중 특별 경계를 나온 호위사령부 소속 병사들이 경례를 붙여 왔다.
김영철과 최명남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경례를 받아주며 남방 한계선 부근에까지 다다랐다.
“저기 보라우. 저기 가림막이 쳐진 곳이 바로 땅굴의 시작점이디.”
김영철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자 지태가 흘깃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꼭 ‘저게 남침을 하려던 증거인데 자랑스럽냐?’ 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