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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22화 (222/272)

222화. 땅굴 작전(2)

선양 공항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웬 중년 사내가 다가왔다.

“한지태 선생 되시지요?”

“그렇습니다만…….”

지태는 사내가 표준말을 구사하긴 하지만 북한 특유의 억양이 묻어있어 김영철이 보낸 사람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김영철은 선양에 도착하면 북측 인사가 마중 나와 안내를 할 것이라고 미리 언질을 주었었다.

“한 선생을 정중히 모시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가시죠. 고려항공을 타면 공화국으로 바로 가실 수 있갔끔 수속을 다 밟아 놨습니다.”

사내는 팔을 뻗어 방향을 가리켰다.

지태는 그의 말대로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곧 고려항공에 오를 수 있었다.

약 한 시간 남짓 날아 평양의 순안공항에 도착하자 마중 나와 있던 김영철이 환하게 반겼다.

“잘 지냈네?”

“나야 별 영양가도 없이 바빴지, 뭐.”

“영양가가 있을지 없을지는 두고 봐야갔디. 가자우.”

김영철은 미리 대기시켜 놓은 승용차로 지태를 안내했다.

“물건은?”

평양 시내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지태가 물었다.

이번에는 감시역인지 운전기사인지 모를 사내를 대동하고 오지 않아 손수 운전대를 잡은 김영철이 피식 웃었다.

“부식 차량을 리용해서리 벌써 옮겨다 놨디. 구르마를 이용해 실어 나르면 끝이야.”

“그럼 내일이라도 가능해?”

“기거야 가능은 한데 뭐가 그리 급하네? 작전이 낼모레라고 하디 않았네? 그사이에 날짜래 바뀐 거이야?”

“그냥 해본 말이야. 진짜로 준비를 마쳤는지.”

“급하면 우리가 급하디 너네래 급하간?”

김영철이 흘깃 돌아보며 흘겨댔다.

지태가 딴청을 피우듯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약 30분쯤 달려 김영철이 차를 세운 곳은 평양의 창광거리에 있는 고려호텔이었다.

객실에 들어서자 지태는 김성욱으로부터 받아온 USB를 김영철에게 내밀었다.

김영철은 차에서 들고 내린 노트북을 곧 부팅시켰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국내 삼송전자에서 생산한 제품이었다.

지태와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김영철은 피식 웃었다.

“기왕이면 같은 동포가 맨든 걸 팔아줘야 하디 않갔나.”

“누가 뭐래?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기걸 꼭 말로 해야 알아듣간?”

“아, 시끄럽고! 어서 살펴보기나 해. 난 몸이 찌뿌둥해서 잠깐 샤워나 하고 나올 테니까.”

지태가 욕실에 들어와 샤워기에 몸을 맡긴 지 약 10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지태는 샤워기를 잠그고는 대답했다.

“왜?”

- 내래 잠깐 나갔다 오갔어.

“어딜?”

- USB래 검토했으니까네 위에 보고를 해야디.

지태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다녀와. 샤워 끝나면 위에 올라가서 나 먼저 밥 먹고 있을 테니까.”

- 배 많이 고프간?

“아침을 대충 먹었어. 점심도 아직 전이고.”

- 나가면서 전망대 식당에 말해 놓디. 내 이름을 대고 먹으라.

그것을 마지막으로 김영철이 급히 객실을 나갔다.

지태는 조용해진 욕실 문 쪽을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금 샤워기를 틀었다.

* * *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도대체 압색을 막는 이유가 뭔데요?”

강성원이 흥분한 채 책상 너머에 앉아있는 사내를 노려보았다.

그가 속해 있는 강력팀의 팀장이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고? 그냥 까라면 군소리 말고 까라는데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막연히 건너짚는 것도 아니고 제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했잖아요. 도대체 검찰 그 십새끼들은 왜 그러는 건데요?”

“그놈들도 어디선가 오더를 받았겠지. 그리고 인마, 너도 사실 법적으로 따지면 할 말이 없어. 그거 명백히 주거침입이야. 경찰이라고 아무 집이나 불쑥 들어가서 뒤질 수 있는 줄 알아?”

“허, 참!”

냉소로 혀를 찬 강성원이 팀장을 고깝게 쳐다보았다.

“이런 말이 있죠, 팀장님. 개가 아무리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난요,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지금 내 앞을 막는 새끼들은 물론 그 배후에 있는 새끼들까지 모조리 다 캐낼 겁니다.”

“정 그리하겠다면 말리진 않아. 하지만 인간적으로 조심은 해라. 이건 진짜 너를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소리야. 자칫 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팀장이 강성원과 눈을 맞췄다.

“……!”

한참을 관찰하듯 눈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조금은 엿볼 수 있다.

강성원은 그의 충고가 협박이나 강요가 아닌 순수한 뜻임을 읽었다.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의 조언은 가슴에 새길게요.”

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뭔가 많이 복잡한 심경인 듯했다.

경찰 내부에 흐르고 있는 강성원에 대한 수상한 시선 때문이었다.

오늘 오전 광수대장을 찾아갔을 때 그의 태도에서도 그런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던 팀장이었다.

* * *

지태는 고려호텔 45층에 있는 전망대 식당에 올라가 혼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후식으로 차 한 잔을 하고 객실에 내려왔을 때 마침 김영철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실무를 담당하는 윗선 보고는 이미 마쳤는데 최종 결재권자의 컨펌이 남아있어 좀 늦어지겠다는 거였다.

그러는 사이 날은 어느새 저물고 저녁 8시 무렵이 되었다.

할 일도 없이 멍 때리며 앉아있는 것은 참으로 지루하고 지겨웠다.

똑똑똑.

거실 벽에 걸린 조선 중앙 텔레비전을 무료한 눈으로 지켜보는데 문득 객실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을 노크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김영철뿐이다.

“많이 기다렸디?”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

“기럼 드라이브나 가자우. 준비하라.”

“웬 드라이브?”

“기보면 알아. 가방 챙기라.”

도대체 어딜 가는데 캐리어까지 챙기라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태가 멍하니 쳐다보자 김영철은 여전히 웃음기를 담은 얼굴로 거실 한쪽에 놓인 캐리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번처럼 혹시 고방산 초대소로 데려가려는 것인가?

이곳에서는 김영철의 말이 깡패다.

일단은 따르고 볼 수밖에.

지태는 옷을 걸치고 곧 캐리어를 챙겨 들었다.

호텔 주차장으로 나오니 대기하고 있는 차가 바뀌어 있다.

순안공항으로 마중을 나왔을 땐 외제 세단이었는데 지금은 SUV인 거다.

“북한 사정이 어렵다는 거 순전히 뻥 아니냐?”

“이거이 내 차 아니야. 공화국을 방문한 귀빈들을 위한 접대용 차량이디.”

누가 네놈의 차라고 했냐.

지태가 흘깃 쳐다본 후 조수석에 올라탔다.

김영철은 평양 시내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차를 몰아갔는데 아무리 봐도 예전에 갔던 고방산 쪽이 아니었다.

짐작건대 남쪽 방향으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어딜 가는 건데?”

“휴전선.”

김영철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었다.

지태는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김영철의 얼굴은 진지했다.

“진담이야?”

“기렇대두 기러네. 진짜로 휴전선으로 가는 거이야.”

헐!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이 밤중에 웬 휴전선?

아무튼 북한 놈들은 남한의 보통 사람들이 가진 상식이나 예측을 뛰어넘는데 도가 텄다고 지태는 투덜댔다.

“이 시간에 거긴 왜?”

“왜는 왜갔어. 동무래 우리 공화국에 작전하러 온 거이 아니네?”

“그럼 오늘 당장 수송 작전에 들어간단 말이야?”

“기건 아니고 남측으로 뻗은 땅굴 부대에서 하루를 대기한 다음 내일 새벽쯤 작전에 들어갈 기야. 너희 쪽에서도 그러길 원하디 않았네.”

맞는 말이긴 해도 너무 황당하고 자다 말고 봉창 두들기는 격이어서 지태는 그저 헛웃음만 삼켰다.

평양 시내에서 약 3시간 정도를 달렸다.

비포장도로를 밝힌 헤드라이트 불빛 너머로 흙먼지에 뒤덮이고 심하게 색 바랜 이정표가 보였다.

[평강군]

지태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전선이 가까워 오자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발등에 다시 또 불똥이 떨어졌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풀자고 일부러 걸음을 한 이지원의 오피스텔인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임경남은 오늘도 어김없이 앙증맞은 눈웃음으로 맞아주는 이지원을 뜨겁게 품에 안았다.

컨디션이 최상일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품에 안기 전 코카인을 흡입한 덕분인지 쾌락의 강도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자기,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이지원은 오늘따라 유달리 거칠게 덤비던 임경남의 행동이 의아해서 물었다.

섹파 이상 크게 감정을 두지 않는 그녀에게 시시콜콜 대답하는 게 귀찮았던 임경남은 대충 얼버무렸다.

“아무것도 아냐, 인마. 그나저나 너 촬영 핑계로 해외에 나가서 다른 놈하고 배꼽 맞추고 온 건 아니지?”

“말도 안 돼!”

이지원이 애교를 비벼 넣은 입술로 삐죽였다.

그 모습이 은근히 흥분을 일으키게 한다.

이미 두어 차례 격렬하게 몸을 부딪친 뒤여서 두 사람은 알몸이었다.

옷을 벗기는 수고스러움이 필요 없다는 말이다.

임경남은 그대로 이지원을 다시 끌어안았다.

“또요?”

“시끄러워! 오늘은 내 안에 쌓인 무겁고 복잡한 것들을 다 털어내야겠다. 그래야 속이 좀 뻥 뚫릴 것 같아.”

임경남이 서둘러 이지원의 몸 안으로 진입하려 할 때였다.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놔 둔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내내 꺼두었다가 아까 잠깐 통화한다고 켜 놓고선 끄질 않은 모양이다.

임경남은 벨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지원은 신경이 쓰였다.

집중할 수가 없는 거다.

그녀가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거칠게 몸을 파고드는 임경남에게 말했다.

“자기야, 오지용이라는 분이에요.”

멈칫.

임경남의 동작이 절로 멈춰졌다.

“누구?”

“오. 지. 용!”

이지원이 또박또박 말하자 임경남은 그제야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어, 지용아!”

- 형님, 어디십니까?

“저녁 모임이 있어서 호텔에 나와 있다. 근데 어쩐 일이야?”

그러자 대뜸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른 때와는 달리 그 웃음소리가 왠지 기분 좋게 들렸다.

오지용이 지금 뭔가 무게감 있는 정보를 쥐고 있다는 뉘앙스가 느껴진 거다.

“뭔데?”

- 아버지로부터 들은 뜨끈뜨끈한 정보요.

“국정원 쪽 소스냐?”

- 그렇다니까요. 전화로 말하기가 좀 그런데 지금 볼 수 있어요?

‘음.’

임경남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마음을 굳혔다.

“그래, 지금 보자. 내가 이 자리 마무리하고 바로 양재동으로 갈 테니까 너도 그리 와라.”

- 예, 형님.

임경남은 전화를 끊고 밑에 깔린 이지원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계속해요, 말아요?’ 묻듯 한쪽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임경남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쓴맛을 다시며 애써 욕정을 떨쳐냈다.

* * *

김성욱은 조그마한 휴대용 녹음기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리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허, 이 새끼 봐라.”

김성욱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부하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어떻게 할까요?”

“양재동이랬지?”

“예.”

“지금 당장 작전 차량을 몰고 가서 양재동 빌라 내부 도청을 해. 뭐라도 중요한 게 나오면 바로 연락하고.”

“예, 사장님.”

직원은 위장회사의 직위로 김성욱을 호칭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김성욱은 턱을 쓸었다.

이틀을 귀가하지 못한 덕분에 제법 까칠까칠한 수염이 만져졌다.

지태가 북한으로 넘어가 있는 지금 그를 지원하는 국정원 3차장 산하 한강실업 팀은 비상대기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얼마 전부터 오신환 의원을 주시하던 팀으로부터 조금 전 오지용의 스마트폰을 감청한 것을 가져온 것이다.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극비 사항이 오신환 의원 쪽으로 자꾸만 새어 나가는 터라 얼마 전부터 그와 함께 아들인 오지용까지 주시하고 있었다.

오신환 의원에게서 나온 정보가 오지용을 타고 임경남에게로 흘러가는 구조였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극소수의 요원만 알고 있는 극비 중에 극비 사항이 외부로 흘러나가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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