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연변 거지들(3)
“니 지금 우리더러 ‘감히’라고 했니?”
흑표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려다가 소파 위에 널브러진 아가씨가 거치적거리자 발로 확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지배인이 허공에 대고 입김을 훅 불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가씨를 그제야 본 모양이었다.
그는 꼭지가 돌아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일단 조져라. 팔다리 몇 개 분질러서 병신을 만든 다음에 내 앞에 꿇려!”
“예, 형님.”
명령을 내리고 지배인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는 사이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흑표는 상황이 점점 재미있어진다는 듯 양어깨를 들썩이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 * *
강성원과 이돈두의 의견이 맞서고 있었다.
이돈두는 연변 거지들을 자기네가 잡겠다고 하는 거였고, 강성원은 이제 경찰 몫으로 넘기라고 하는 거다.
분위기가 마주 당겨 대는 실처럼 팽팽했다.
“경찰에 넘기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묻힐 게 뻔한데 그냥 맡겨라? 허!”
“그럼 너희들이 잡으면 어떡할 건데?”
“뭘 어떡해. 일단은 뼈다귀 몇 개 분질러 놓은 다음 누가 이번 일을 사주했는지 캐내야지.”
“그다음엔?”
“뭐가 그다음에야? 그땐 경찰이든 검찰에든 넘겨야지.”
“못 믿는다면서?”
“그럼 깔끔하게 회를 쳐버릴까?”
강성원이 말끝마다 조목조목 따지자 이돈두가 끝내 신경질을 부렸다.
더 두고 봤다간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았다.
묵묵히 지켜보던 지태가 그제야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자, 그럼 이렇게 하자.”
“……?”
“……!”
“성원이 넌 경찰 본연의 임무를 다해. 그리고 돈두는 너희들 나름대로 놈들을 찾는 거야. 내 생각도 사실은 돈두하고 같아. 어차피 경찰 쪽에 맡겨봤자 흐지부지 덮고 갈 게 뻔하니까.”
“야! 한지태, 너마저…….”
강성원이 마음 상한 듯 지태를 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흡사 ‘부루투스, 너마저!’ 하는 것 같았다.
“맞잖아. 내 말이 틀려? 네가 내사에 들어간 강창근 사건을 대검에서 확 채갔다면서. 그게 누구의 사주를 받았겠냐? 임경남하고 그 패거리들의 소행이라는 건 너도 잘 알잖아.”
“……!”
아픈 부분을 찌르고 나오니 강성원은 당장 할 말이 없어졌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강성원이 헛기침으로 딴청을 피웠다.
그 위로 점잖게 설득하는 지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별장이 누구 것인지는 몰라도 놈들 중 하나인 거는 분명해. 그렇다면 백 퍼센트 빠져나간다. 연변 거지새끼들을 우리 손으로 잡지 않는 이상 그놈들이 무단 침입해 일을 저지른 거라고 딱 잡아떼면 그만이야.”
“하긴…….”
마침내 강성원도 인정했다.
바로 그때였다.
띠리리리릿, 띠리리리릿.
강성원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에서 벨이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즉각 전화를 받았다.
“예, 팀장님! 옛?”
강성원은 화들짝 놀란 눈빛으로 스마트폰을 고쳐 잡았다.
“조, 조선족 애들이 칼부림을……?”
그러면서 시선은 곧장 지태에게로 향해 갔다.
지태가 그의 눈빛을 받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
럭셔리 비즈니스 클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바닥은 물론 벽이며 집기들까지 온통 다 핏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몇몇 아가씨들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바닥에 핏물과 더불어 무슨 물 같은 것으로 흥건히 젖어있다.
주저앉은 채 오줌을 지린 듯했다.
그 너머 복도에는 웨이터 복장을 한 사내들이 팔다리가 잘린 채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었고, 좀 더 안쪽으로는 지배인의 아우들이 보기에도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다.
손도끼에 찍히고 여기저기가 잘려 나가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과학수사 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광수대 강력팀장이 요행히 살아남은 도우미 아가씨를 상대로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고만 있을 뿐 말 한마디 제대로 내뱉질 못했다.
팀장이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내쉴 때 출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흘깃 돌아보니 강성원이었다.
그는 아주 바쁘게 달려왔다는 듯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넌 인마 하루 종일 어딜 쏘다니는 거야?”
“제보를 받아서 현장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무슨 제보? 아, 됐고! 과학수사 요원들이 뒤로 빠지면 팀원들하고 뭐라도 떨어진 게 있는지 한번 찾아봐.”
“알겠습니다, 팀장님. 근데 패싸움입니까? 습격한 것은 조선족 건달들이고요?”
“아, 보면 모르겠…….”
팀장은 강성원에게 신경질을 부리려다가 이내 목소리를 낮췄다.
어디서 놀다가 온 것도 아닌데 화를 내면 뭐 하나 싶은 거다.
“그나마 목숨이라도 붙어있는 종업원들의 말에 따르면 처음부터 기습을 목적으로 온 건 아닌 모양이야. 아가씨들을 너무 거칠게 다루니까 지배인이 혼을 좀 내주려다가 오히려 당한 거로 보여.”
“아니, 어쩌면 의도적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뭐가?”
“술 처먹으러 온 새끼들이 연장을 들고 왔을 리는 없잖습니까. 근데 여기 CCTV는요?”
“깨끗해. 이 새끼들이 죄다 쓸어갔어. 아주 프로 냄새가 나는 새끼들이야.”
팀장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강성원은 다시금 주변을 훑어가다가 흘깃 팀장을 돌아보았다.
“저…… 사실은 말입니다.”
“응.”
“조금 전 제가 어떤 제보를 받아 현장에 다녀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강성원의 태도가 하도 진지한 까닭에 팀장은 주의 깊게 그를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 난리를 피운 새끼들이 그놈들 같습니다, 연변 거지들!”
“……?”
팀장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는 듯 서둘러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 * *
돈두파의 직영 룸살롱이었다.
지태가 요사이 단골로 삼은 곳이기도 했다.
20평쯤 되는 커다란 룸 안에 지태를 비롯해 이돈두와 윤학수, 그리고 망치가 빙 둘러 앉아있었다.
지태가 술잔을 들다 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망치를 옆자리에 앉혀 놓고 술을 따라주는 이돈두가 보였다.
아직까지 망치는 눈물 바람을 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보스와 유성두를 잃었으니 현재 그의 상심과 절망이 얼마나 클까 싶었다.
유성두는 타워파의 2인자나 다름없는 존재였고 망치의 직속 선배이기도 했다.
2인자, 3인자가 존재하긴 했지만, 현재는 각각 무기징역과 15년형을 받아 교도소에 수감된 상태라서 유성두가 실질적인 2인자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조직을 이끌어갈 구심점을 잃었다.
타워파는 머잖아 공중분해가 될 것이 확실했다.
“망치야!”
“예, 회장님.”
이돈두의 부름에 망치가 눈물 가득한 눈빛으로 겨우 대답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부적절할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너희들의 울타리가 되어준다면 어떻겠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희들을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물론 강압적으로 흡수한다는 건 아니고, 너희들이 자발적으로 따르겠다면 말이야.”
“마,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당장 뭐라 말씀드리기가…….”
이돈두가 쓰게 웃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술잔을 들어 잠시 입술만 적시고는 내려놓았다.
“당연하지. 번갯불에 콩 구워 먹겠다는 건 아니야. 타워파 내에서 네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다만 너 혼자 판단할 사항도 아닐 테고. 천천히 생각해 봐. 대신 내 울타리로 들어와 한 식구가 되겠다면 예전처럼 주먹질이나 하는 건달 마인드는 버려야 한다. 너도 느꼈을 테지만, 우리 돈두파는 변했다.”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 저희 회장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요즘 돈두파가 도무지 건달 같지가 않다고 말입니다.”
망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했다.
이돈두는 그런 망치의 뒷머리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네 동료들에게 전해. 양지로 떳떳하게 나와서 살고 싶은 사람들만 돈두파로 건너오라고. 나 이돈두는 절대 우리 애들과 너희들을 차별해서 대하진 않을 거라고 말이야.”
“예, 회장님.”
망치가 이제 막 대답을 마치던 찰나였다.
빠른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윤학수의 직속 아우인 윤재필이다.
지시를 내린 게 있는 듯 윤학수는 그의 무례를 나무라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지켜봤냐?”
“예, 형님.”
“어떤 상황이야?”
“역시나 망치가 말했던 그 연변 거지들이 맞는 거 같습니다, 형님. 럭셔리 비즈니스를 완전히 작살을 내고 갔다고 합니다, 형님. 무려 일곱 명이 죽었고, 심각하게 부상을 당한 애들이 여섯이라고 합니다, 형님.”
“이런 시바! 죄송합니다, 회장님.”
윤학수가 무심코 욕설을 내뱉으려다가 ‘아차’ 하고는 얼른 이돈두에게 사과했다.
그 심정은 이돈두 역시 마찬가지여서 입술을 악문 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이, 학수!”
“예, 회장님.”
“우리 애들을 총동원해서라도 샅샅이 뒤지라고 해. 발견하게 되면 나한테 먼저 보고하라 그러고. 그놈들은 내가 직접 처리한다.”
“회장님께서 직……? 알겠습니다, 회장님.”
윤학수는 뭔가 반문하려 했지만 이내 말을 삼키며 그의 명을 받들었다.
지태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식대로 해도 되지?”
이돈두가 시선은 정면에 둔 채 혼잣말처럼 허공에 말을 흘렸다.
지태가 돌아보자 그제야 이돈두도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대신 사주한 새끼가 누구인지 자백할 만큼은 내버려 둬.”
“그래, 약속하지. 하지만 차라리 죽여 달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조져 놓을 거다, 그 새끼들!”
이돈두는 입술을 악물었다.
“이제 유일한 증인은 송민철이야. 걔가 살아있다는 걸 임경남이 알게 되면 반드시 또 죽이려 들 거다. 잘 지켜라.”
“그래야지.”
“참, 그리고 내가 한 며칠 중국에 가있을 거야.”
“중국……? 언제?”
“낼모레부터.”
지태는 날숨을 깊게 내뿜은 뒤 천천히 술잔을 들었다.
* * *
소회의실에 지태와 조현민이 마주 앉아 있다.
조현민이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유기영 부사장이 좀 늦네.”
“강동진 사장을 만나러 갔는데 거의 올 시간이 됐네요.”
“강 사장은 왜?”
“저번에 말한 것 있잖아요.”
“유상증자?”
지태의 미소를 지어 보이자 조현민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며칠 전 지태가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멋진 사람들이 처음부터 부실했던 건 아니니까 증자를 하게 되면 관심 갖는 사람들이 꽤 될 거야. 더구나 한스가 인수한 후에 투자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고.”
“그래요. 이것만 해결되면 자금 문제는 얼추 숨통이 트일 거 같네요.”
“그나저나 내일 출국하면 며칠이나 한국을 비우는 거야?”
“후후.”
“왜 웃어?”
“요즘처럼 내가 하는 일을 나도 모르긴 처음입니다. 도무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네요.”
그 자신도 며칠이나 걸릴지 몰라서 하는 말이었다.
조현민이 이해한다는 듯 풀썩 웃었다.
“참, 박 사장은 언제 귀국합니까?”
해외 매장 개설을 위해 케냐로 떠난 박찬익을 말한다.
“어제 통화하기론 일주일 정도 더 있을 거라던데.”
“뭐가 잘 안되어 간답니까?”
“그건 아니고. 사람이 워낙 꼼꼼해서 그래.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 성에 찰 때까지 끝을 보는 친구잖아.”
“크큭. 기민성이가 꽤나 투덜대겠는데요. 그놈 누구한테 잔소리 듣는 거 엄청 싫어하는데.”
“자기가 추천한 사람이라서 제 발등 제가 찍은 건데 누굴 탓해.”
“하긴. 크큭.”
“프흐흐흐.”
둘은 기민성을 떠올리며 잠시 유쾌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조현민이 먼저 정색하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