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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219화 (219/272)

219화. 연변 거지들(2)

“어떤 게 창근 형님이 있다는 표신데?”

“없습니다, 회장님.”

“뭐?”

“저희들이 한창 뒤쫓고 있는 중에 돌연 사라져 버렸습니다, 회장님.”

“왜?”

이돈두가 되묻자 강성원이 그의 어깨를 톡톡 쳐댔다.

“신호가 끊기거나 안 잡힌다는 건 폰의 전원을 꺼버렸다는 얘기야.”

“그럼 말짱 다 황이잖아. 찾긴 이미 글렀고.”

이돈두가 급 실망하며 툴툴대자 이번엔 지태가 물었다.

“어디쯤에서 사라진 건데?”

“서울 양양 고속도로에서 75번 국도로 빠져나가는 지점에서 갑자기 끊겼습니다.”

“음, 75번 국……. 뭐, 75번 국도라고?”

“예.”

“왜 그러는 건데?”

흠칫 놀라는 지태의 표정을 보며 이돈두가 물었다.

“75번 국도하면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지난번 송민철이 뒤를 쫓을 때…….”

“아, 양재동 패거리 새끼들의 별장!”

이돈두가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뒤를 이어 윤학수가 뭔가 확신하듯 따라서 끄덕였고, 강성원도 지태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 눈빛이 번뜩였다.

“송민철을 납치할 때 너는 없었어?”

지태가 다시 망치에게 물었다.

강창근의 근접 경호를 맡은 행동대라면 당시에 분명 함께 했을 테니까 말이다.

“저는 그때 거기 없었습니다. 성두 형님께서 제게 따로 맡긴 일이 있어서요. 아, 내가 왜 거길 생각 못했지?”

망치는 청평 별장을 떠올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그사이 네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았다.

유력한 단서가 나온 이상 여기에서 더 이상 미적댈 이유가 없다.

무언의 눈빛 사인을 빠르게 주고받은 그들은 곧 자리를 떴다.

* * *

75번 국도를 타고 가평대교를 넘어설 무렵엔 사방이 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헤드라이트를 밝힌 SUV와 승용차가 앞장을 섰고, 2대의 승합차에 나누어 탄 친위대들이 그 뒤를 따랐다.

승용차 안에는 이돈두와 윤학수 등이 타고 있었고, 강성원이 운전하는 SUV엔 지태가 동승하고 있었다.

손도끼와 수제 칼 등으로 무장한 연변 거지들이 십여 명 남짓이라고 했으나 지태와 이돈두, 그리고 윤학수와 강성원만으로도 놈들을 제압하는 건 충분했다.

그러나 혹시 싸움이 불리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돼 놈들이 별장 뒤편 호명산 쪽으로 달아날까 염려가 돼서 친위대 10여 명을 대동하고 온 거였다.

지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앞서 달려가는 이돈두의 승용차를 쳐다보았다.

그런 지태를 강성원이 흘깃 돌아보았다.

“왜, 긴장돼?”

“응?”

지태가 못 들었다는 식으로 되물었다.

“긴장되느냐고.”

“내가? 큭!”

지태가 픽 웃었다.

“내가 이 따위 것에 긴장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건 아닌데, 너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하는 말이지.”

“걱정이 돼서 그러지.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강창근이 무사했으면 좋겠는데…….”

“하긴!”

이돈두의 승용차는 이제 막 가평대교를 지나 391번 지방도 쪽으로 꺾어 들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분 후.

별장을 50여 미터쯤 앞두고 4대의 차량이 차례로 멈췄다.

“돈두야!”

차에서 내려 이돈두에게 다가간 지태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어!”

“애들을 별장 주변으로 먼저 올려보내라. 들이치는 건 우리가 할 거니까 애들한텐 혹시 도망치는 놈들이 있거든 뒤쫓으라 하고.”

“응. 그러지.”

고개를 끄덕이며 이돈두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친위대가 명령을 기다리듯 반원으로 서있는 곳으로 가서 이돈두는 지태의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별장으로 뻗은 언덕길 대신 산비탈을 우회해 달려가는 친위대를 지켜보다가 지태는 나머지 인원들을 데리고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별장은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모든 전등을 일부러 꺼두지 않은 이상 이렇듯 완벽하게 등화관제를 했을 리가 없다.

“이거 뭔가 찜찜한데.”

이돈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지태가 동의하듯 낮은 신음 소리를 흘린 후 말을 이었다.

“일단 뒤져보자. 나하고 성원이가 좀 더 안으로 들어갈게.”

“그럼 난 학수랑 주변을 훑어보지.”

이돈두가 윤학수를 데리고 뒤로 빠지는 사이 지태는 강성원과 함께 별장 현관문 쪽으로 다가갔다.

잠겨있을 줄 알았던 현관문의 손잡이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돌려봤는데 의외로 쉽게 열렸다.

강성원이 지태를 돌아보았다.

지태가 쳐다보자 강성원이 속삭였다.

“이 새끼들, 뭔가 수작 부리는 거 아니냐?”

지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을 더듬는 모양새를 취하더니 강성원을 향해 검지를 입술에 갖다 붙였다.

강성원이 입 모양으로 물었다.

‘뭐하게?’

지태 역시 입 모양으로만 대답했다.

‘소환!’

뜬금없는 소리에 강성원이 먼저 무언의 금기를 깼다.

“누굴?”

“쉿!”

다시금 강성원의 입을 닫게 만든 다음 지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르신! 내부 사정을 알고 싶습니다.’

- 이거야, 원! 아쉬울 때만 날 찾는구먼.

소환을 받은 최봉준이 툴툴거렸다.

그러나 이내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다.

벌써 지태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내부로 들어간 모양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곧 돌아온 최봉준이 속삭였다.

- 아무것도 없구먼. 인기척은커녕 사람 그림자 비슷한 것도 안 보여. 근데 지하실 쪽에서 웬 비릿한 냄새가 나.

‘비릿한 냄새라니요?’

-피비린내.

그 순간 지태는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그러고는 강성원의 팔뚝을 붙들며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왜, 왜?”

“지하실.”

“어? 지하실에 뭐가 있는데?”

“……!”

지태는 더 이상 대답해 주지 않았다.

주변을 재빨리 훑어 지하실의 위치를 가늠한 뒤 강성원에게 외쳤다.

“스위치를 찾아서 불 켜 봐.”

영문은 모르겠지만 지태가 워낙 다급하게 굴어대니 일단은 따를 수밖에.

강성원은 거실 벽을 훑어가며 스위치를 찾아 전등불을 켰다.

별장 내부가 환해졌다.

지태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옆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하실로 추정되는 곳이다.

지태가 거침없이 걸어가 그곳의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순간 기분 나쁜 피비린내가 확 풍겨 왔다.

“씨발, 한발 늦었나 보다.”

말을 내뱉은 지태는 벌써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강성원이 잽싸게 그 뒤를 따랐다.

* * *

별장의 정원 잔디밭이다.

파라솔 밑 야외 탁자를 중심으로 모든 인원들이 빙 둘러 서있다.

침울한 얼굴, 침을 심키는 소리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지극히 무거운 분위기였다.

그때 지태를 비롯해 탁자에 앉아있는 네 사람을 주시하고 있던 친위대원들의 시선이 문득 한 방향으로 쏠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개를 푹 떨군 채 흐느끼고 있는 한 사내 때문이다.

바로 타워파의 행동대원 망치였다.

“야, 망치!”

이돈두가 그를 불렀다.

“예, 회장님.”

흐느낌 속에서 망치가 겨우 대답했다.

상대 조직의 보스지만, 이제는 그의 호칭을 회장님으로 하고 있다.

이돈두가 손짓을 했다.

“이리 와서 앉아라.”

하지만 망치는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윤학수가 친위대 하나를 지목해 턱짓을 하자 그가 망치를 부축해 데려와 탁자에 앉혔다.

탁자에 앉던 망치가 테이블 위에 놓인 비닐 팩을 무심결에 쳐다보다가 급기야 오열을 해대기 시작했다.

비닐 팩 속에는 아주 거칠고도 울퉁불퉁하게 잘린 누군가의 손목이 담겨져 있었다.

용꼬리로 추정되는 문신이 손등에 그려져 있었다.

“회장님……. 아이고, 불쌍하신 우리 회장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실을 샅샅이 뒤진 끝에 겨우 찾아낸 강창근의 손목인 것이다.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강창근과 유성두를 토막 낸 듯했다.

지독한 피비린내를 풍기는 것에 비해 핏자국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다.

강성원은 형사 특유의 감으로 잡동사니가 널린 지하실을 뒤져 갔다.

그리고 낡은 소파 밑에서 두 사람을 토막 내는 과정에서 튕겨 나간 듯 보이는 강창근의 손목을 찾아낸 것이다.

이돈두가 격정에 못 이겨 오열하는 망치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려 준 다음 지태를 돌아보았다.

입술을 악문 것이 분노에 찬 모습이었다.

* * *

럭셔리 비즈니스 클럽.

굳이 강남의 유흥가라고 갖다 붙이기에도 민망할 조금은 변두리에 위치한 술집이다.

상호명은 럭셔리지만, 외관상으로는 전혀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는 그저 그런 곳이었다.

흑표와 연변 거지들은 강창근과 유성두를 죽여 강물에 내던진 후 서울로 넘어왔고 파티를 벌이기 위해 곧장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열 명 남짓 되는 사내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만한 커다란 룸이 없었다.

술집 사장은 이 집에서 그나마 넓은 평수의 룸 두 개에 그들을 분산시켜 앉혔다.

상석에 앉아있던 흑표가 소파 좌우를 천천히 훑어갔다.

술에 취하고 여자들의 분 냄새에 흠뻑 취한 연변 거지들은 거의 짐승이 되어 있었다.

룸으로 불려온 아가씨들은 거칠고 짓궂게 구는 연변 거지들을 눈치껏 떼어내려 했지만,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거칠게 파고들며 그간 굶주렸던 욕정을 채우기에 바빴다.

“씨베, 다들 오늘 생일날이로구나, 야!”

흑표가 흐뭇하게 말을 내뱉고는 크게 웃어젖혔지만, 이미 짐승이 되어있는 그들의 귀에는 들어오질 않는다.

흑표는 비릿한 웃음을 피워 올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청부한 의뢰인에게 작업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작업의 전 과정을 영상으로 녹화해 두었다.

흑표가 재생되는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다시금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릴 때였다.

“아아악! 아~ 짜증 나, 정말!”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씨발!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너무하네. 냄비 구경 처음 하니, 이 개새끼야! 하긴 생긴 꼬라지들을 보아하니…….”

악다구니를 내뱉던 도우미 아가씨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저, 저 씨발 년이!”

파트너가 도망쳐 헛물켜게 생긴 연변 거지 하나가 씩씩거렸다.

“이런 얼빤한 새끼! 그깟 계집년 하나 제대로 못 다루니? 당장 잡아 오라.”

흑표가 조소로 입술 끝을 비틀자 놈은 반쯤 내려진 바지를 추켜 입으며 밖으로 나갔다.

가만히 지켜보던 흑표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고는 내부의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타구니에 고개를 박고 있는 여자의 뒷머리를 끌어당겼다.

고개를 아랫도리에 묻기 전 기분 좋게 5만 원짜리 지폐 열 장을 그녀의 가슴에 꽂아준 값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다.

“기건 됐고. 이제 정식으로 하자. 내 허벅지 위로 올라오라.”

“아잉, 오빵. 그건 아니지. 그건 따로 우리 둘이 쇼부를 봐야 하는 거야. 오빠, 이런 데 첨이야?”

“이 씨발 년이 지금 뭐이라니? 내가 그리 우스워 보이니?”

“뭐어, 씨발… 년? 허!”

파트너 아가씨의 태도가 돌변했다.

개인 팁으로 받은 50만 원 때문에 겨우 참고 있는 건데 욕까지 얻어먹으니 돌연 태도를 바꾼 거다.

그걸 가만히 두고 볼 흑표가 아니다.

짜증을 섞은 주먹이 날아갔다.

퍽.

“커억.”

숨이 턱에 걸린 것 같은 짧은 비명 하나를 남겨 두고 아가씨는 그만 정신을 잃은 채 소파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때였다.

룸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조금 전 파트너 아가씨를 찾아 나섰던 연변 거지가 얼굴 가득 핏물을 칠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니 면상이 왜 그러니?”

흑표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형니메, 이 씨벨 새끼들이…….”

놈의 대답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밖에서 구두 발자국 소리들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 거지발싸개 같은 새끼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느새 달려와 외친 사내는 술집 지배인이었다.

흑표와 연변 거지들이 손님으로 들어섰을 때는 허리를 꺾어 정중하게 맞았지만, 이제는 안중에도 없다는 식이다.

그는 독기 가득한 두 눈으로 룸 안의 연변 거지들을 매섭게 훑어갔다.

뒤에 병풍처럼 늘어선 대여섯 명의 사내들도 거의 엇비슷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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