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화. 연변 거지들(1)
“회장님!”
“……?”
“잠시 만나보셔야 할 친구가 있습니다, 형님.”
“그게 누군데?”
“저 그것이…….”
윤학수가 좀 망설이는 것 같더니 곧 이돈두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들으면서 뭔가 많이 놀란 눈빛이다.
이돈두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회장님. 같이 가보시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이돈두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나 파이낸셜의 사장이 따라 일어나며 안녕히 가시라고 절을 올리려 했지만, 이돈두는 벌써 등을 보인 채 저만치 멀어진 뒤였다.
* * *
지태는 김성욱과 헤어져 회사로 복귀하는 중에 이돈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알려줄 게 있어서.
“뭔데?”
-창근 형님의 부하 놈인데, 급히 좀 보자고 해서 말이야. 창근 형님과 관련된 얘기를 해줄 게 있대.
“혹시 강창근의 소재를 알려 주겠다는 건가?”
-그건 만나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타워파가 누군가로부터 기습을 당한 거 같아.
이돈두가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음.”
지태가 무심결에 흘러나온 신음성을 삼킨 후 물었다.
“이런 거라면 성원이한테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
-그러잖아도 했다. 그런 다음에 너한테 알려 주는 거야.
“어디서 보기로 했는데?”
-남양주 덕소역 근처! 올래?
“…….”
지태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곧 결심했다.
“알았다. 문자 찍어줘.”
* * *
지태가 덕소역 근처 편의점 앞에 도착했을 때엔 강성원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돈두와 심각한 얼굴로 한참 대화를 나누던 강성원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지태가 보였다.
강성원은 조금 전까지 어두워져 있던 얼굴을 활짝 펴며 다가갔다.
“어이쿠, 회장님! 오늘은 별로 안 바쁘셔?”
“놀리지 마라. 그러잖아도 무지 피곤하신 형님이시다.”
지태가 픽 웃으며 강성원의 가슴팍을 가볍게 쳤다.
“그니까 뭐 하러 와. 나중에 전화로 결과를 알려줄 텐데.”
“왠지 좀 느낌이 안 좋아서…….”
지태의 말에 강성원이 쓴맛을 다셨다.
자신도 지태의 불길한 예측에 동의하는 바가 큰 까닭이다.
“불알친구만 친구냐? 나도 알은체 좀 해주지?”
이돈두가 느물거리며 걸어왔다.
지태가 악수로 반가움을 표한 뒤 물었다.
“연락해 왔다는 타워파 애는?”
“여럿이 몰려가면 겁먹을까 봐서 일단 학수만 보냈다. 이 근처라니까 곧 데려올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이돈두의 말처럼 오래지 않아 윤학수가 타워파의 행동대 녀석을 데리고 나타났다.
행동대 녀석은 잔뜩 위축이 된 채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이돈두가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윤학수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조용한 곳으로 자릴 옮기자.”
“예, 회장님!”
지태와 모두는 각자의 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덕소역에서 약 10분 거리에 있는 강변 체육공원으로 이동했다.
이돈두는 친위대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다음 타워파 행동대 녀석을 불렀다.
지태가 그에게 먼저 다가서려는 이돈두를 손짓으로 막았다.
“저놈 분위기를 보니까 너보다는 내가 낫겠다.”
“그럴래? 그럼 난 여기서 지켜보지, 뭐.”
이돈두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을 보며 지태는 녀석에게 다가섰다.
“너 혹시 나 아냐?”
지태가 위협적이지 않은 편안한 말투로 물었다.
녀석이 겨우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압니다. 한지태 사장님.”
“인마, 그건 예전이고, 이제 회장님이셔.”
뒤에서 이돈두가 호칭에 대해 간섭하고 나섰다.
지태가 뒤돌며 미소로써 고개를 내저었다.
이돈두가 참견해서 미안하다는 듯 한손을 들어 사과하는 모션을 취했다.
“이름이?”
일단은 긴장감을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지태는 가벼운 대화로 접근해갔다.
“망치, 아니, 지석찬입니다.”
“타워파에서 망치라고 불렸나 보네? 그럼 귀에 익숙한 망치라고 불러줄게.”
“편하신 대로 불러주십시오.”
“그래, 망치!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 강창근 회장한테!”
지태가 망치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망치가 순간 두 눈을 질끈 감더니 한숨부터 푹 내쉬었다.
이내 눈을 번쩍 뜨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회장님.”
“뭔데?”
“그날 있었던 상황을 멀리서 찍은 겁니다.”
“그날 상황……?”
지태는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돈두와 강성원을 이쪽으로 부르는 거다.
윤학수까지 합류해 세 사람이 다가와 머리를 맞대자 지태는 스마트폰 속 동영상을 플레이했다.
방배동 아지트가 기습을 당하는 순간이 담겨있었다.
전봇대 뒤에서 몰래 찍은 듯 보였는데, 승합차 두 대에서 내린 십여 명의 괴한들이 아지트의 담을 넘는 장면부터 녹화가 되어 있다.
놈들의 손에는 손도끼, 그리고 날카롭게 빛을 발하는 칼들이 들려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전부 다 직접 제작한 수제 칼이었다.
담을 넘은 놈들에 의해 대문이 활짝 열리자 놈들의 대가리로 보이는 녀석이 유유히 안으로 들어섰다.
들어가는 놈의 뒷모습만 봐도 뭔가 비릿하고 섬뜩한 아우라가 풍겼다.
그때부터 영상은 많이 흔들렸다.
망치의 두려운 마음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는 것처럼.
그러면서 갈등하는 모습도 연출되었다.
‘아, 씨발. 이거 어쩌지, 어쩌지.’ 하는 망치의 떨리는 목소리가 녹음되어 있었다.
화면은 활짝 열린 대문에 한동안 고정되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괴한들의 모습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놈들은 정신을 잃은 듯 시체처럼 축 늘어진 강창근과 유성두를 부축해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 두 사람을 승합차에 짐짝 던지듯 내던지고는 재빨리 승합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아지트에서 바삐 사라지는 승합차에서 영상은 끝났다.
이돈두가 눈빛을 번뜩이며 물었다.
“누구냐, 저것들?”
망치 녀석은 고개를 절망적으로 내저었다.
“처음 보는 새끼들이었습니다. 근데 영상에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놈들의 말소리가 좀 이상했습니다.”
망치의 말마따나 강창근과 유성두를 승합차에 내던지면서 놈들은 무슨 말인가를 서너 마디 주고받았다.
그러나 너무 희미하게 들린 까닭도 있지만, 영상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말소리는 사실 놓쳐버린 부분이었다.
이번엔 지태가 얼른 물었다.
“말소리가 이상하다니?”
“여, 연변 애들 같았습니다.”
“연변… 조선족?”
“예, 회장님. 그건 확실합니다.”
“허! 뭐냐, 이 새끼들?”
이돈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내뱉었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듯 망치를 돌아보았다.
“야! 아지트에 창근 형님하고 성두밖에 없었어?”
분명 강창근을 설득하러 아지트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집 안에는 수십 명의 행동대가 있었던 거다.
망치는 고개를 푹 떨궜다.
“회장님께서 자수하기로 결심하시고 그날 오후에 저희들을 모두 해산시켰습니다. 안에는 회장님을 근접 경호하던 정예 다섯 명만 남겨 뒀었는데, 놈들의 차가 떠나고 제가 곧바로 들어가 보니 모두 다 난도질을 당해서 이미…….”
망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날의 참혹한 순간이 떠오르는지 간혹 몸서리까지 쳐댔다.
강성원이 망치의 곁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많이 놀랐다는 거 잘 안다. 이해해. 하지만 너희 보스를 구하려면 좀 더 들어야 할 부분이 있어. 너도 그걸 원해서 연락을 해 온 것일 테니까.”
강성원의 말에 망치의 흐느낌이 조금씩 잦아들었다.
윤학수가 그에게 담배 한 대를 내밀었다.
불까지 붙여줬지만, 망치는 그 와중에도 차마 그들 앞에선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괜찮아, 피워라.”
윤학수가 거듭 권하자 망치는 그제야 몸을 돌려 겨우 담배를 피워 물었다.
반쯤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내려놓고 발로 비벼 끈 망치가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다시금 그들을 비장하게 쳐다보았다.
* * *
“이번엔 뭣 때메 전화를 했소? 온종일 할 일도 읎이 시간만 죽이려니 좀이 쑤셔 죽갔고만.”
연변 거지들을 이끌고 와서 강창근을 납치한 일명 흑표라 불리는 사내였다.
그는 지린성(吉林省) 출신 조선족으로 40대 초반에 군더더기 없는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간 놈의 이력을 말해주듯 러닝셔츠 차림의 상체엔 깊게 베이거나 긋고 지나간 칼자국들이 수두룩했다.
한때 그는 칭다오 신시가지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흑사회의 2인자였다.
하지만 보스가 체포돼 사형을 언도받는 바람에 조직 자체가 와해되어 지금은 청부 살인을 업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형편이었다.
손도끼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까닭에 흑표라는 별명과 함께 부월귀(斧銊魁)라고도 불렸다.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있던 흑표가 비릿한 웃음을 피워냈다.
뭔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은 듯했다.
입술 끝을 올리며 웃던 그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갔소. 그럼 바로 작업 들어가갔소. 기건 그렇고 일 끝나고 당분간 한국에서 머물렀음 함돠. 중국에서 일 하나를 처리하고 들어왔댔는데 기거이 좀 시끌벅적하게 됐나 보오. 대륙이 잠잠하므 들어갈 테니 내 있을 데 좀 마련해 주오.”
그 후로도 몇 번 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주고받던 그가 전화를 끊었다.
흑표가 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물어가는 태양이 마지막 금빛 비늘을 반짝이고 있는 강물을 등진 채 잔디밭에 모여 앉아있는 사내들이다.
이번에 청부를 받고 함께 한국으로 넘어온 연변 거지들이다.
출신 성분이 동북 3성에 걸쳐 골고루 분포된 녀석들의 무리였지만, 통칭해서 연변 아이들 혹은 연변 거지들이라 불리는 놈들이었다.
“야!”
흑표가 놈들 중 누구 한 사람을 특정해 지목하여 부른 것은 아니었다.
놈들은 수다를 멈추고 일제히 돌아보았다.
흑표는 거기에 대고 손짓을 까불어댔다.
대가리의 포악한 성정을 잘 아는 듯 놈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서로 앞다투어 달려왔다.
“너희들 심심하니? 좀이 쑤셔 못 살갔니?”
“…….”
놈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이 새끼가 또 무슨 지랄을 떨려고 이러나 하는 눈빛으로 흑표의 표정을 살폈다.
“이것들 지금 머이라니? 내 말이 말 같지 아이 하니?”
“형니메, 그런 기 아입니다. 형니메 의중을 잘 알지 못해서리…….”
흑표의 인상이 구겨지자 그중 가장 배짱이 좋은 녀석이 총대를 메고 나왔다.
“의중은 무슨 의중. 아무 데나 갲다 붙이기는! 돈주머니 찬 놈한테서 오다 떨어졌다.”
“그라므 이제 작업 들어가는 거우까?”
“그래. 저기 노을 때메 저물어가는 강물 보이지?”
“예!”
“지하실에 있는 저것들 토막 쳐서 괴기밥으로 던져주라. 씨베, 작업 끝나는 대로 그동안 밀린 술이나 진탕 빨아보자.”
그제야 흑표의 뜻을 알아들은 놈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놈들은 곧 잔디밭 저쪽 나무 벤치로 달려가더니 각자의 연장을 챙겨 들었다.
그러고는 별장의 지하실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흑표가 웃음을 날리며 연변 거지들의 모습을 비릿한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 * *
망치는 어느덧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지태를 비롯해 네 사람이 무작위로 질문을 던졌지만 침착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이번에는 윤학수가 물었다.
“그래서 강 회장님의 뒤는 어떻게 쫓았는데?”
“회장님을 근접 경호하는 행동대들은 전부 다 위치 찾기 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형님. 연락이 닿는 애들을 모아 곧바로 회장님의 신호를 따라갔습니다, 형님.”
망치는 그 증거라며 스마트폰에 깔린 앱을 실행해 보였다.
하지만 강창근의 위치는 표시돼 있지 않았다.
이돈두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