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북으로 가는 지태(2)
왕복 6차선 도로에서 우측으로 꺾어 들어가면 이면도로가 나온다.
이돈두와의 약속 장소는 도로 입구에서 첫 번째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였다.
강성원은 카페 모퉁이를 돌아 건물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가면서 인상을 썼다.
“새끼들! 지금 무슨 삼류 건달 영화를 찍나.”
카페 출입문을 중심으로 포진해 있는 친위대들을 보고 내뱉은 소리였다.
혼잣말로 툴툴거리며 차를 주차한 강성원이 주차장을 빠져나와 카페 쪽으로 걸어갔다.
안면이 있는 터라 친위대원들은 눈이 마주치는 순서대로 인사를 해왔다.
“오셨습니까, 형님!”
‘형님은 무슨!’
강성원은 속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이돈두의 체면을 보아 겉으로는 미소를 짓는 낯꽃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개중 윤학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돈두와 카페 안에 있는 모양이다.
“야, 깡패 씨! 꼭 건달 티를 내야겠냐?”
강성원은 이돈두의 앞자리에 털썩 앉으면서 괜히 눈을 흘겼다.
“뭐가?”
강성원이 턱짓으로 유리창 밖의 친위대원들을 가리켰다.
이돈두가 머쓱한 듯 피식 웃었고, 윤학수는 자신의 보스를 놀리는 것 같아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지태는 중국에 잘 넘어갔겠지?”
이돈두가 팔짱을 끼며 묻자 강성원이 썰렁하게 대답해주었다.
“잘 갔겠지. 서해 바다를 헤엄쳐서 넘어간 건 아니니까.”
“그걸 농담이라고……. 그나저나 이번엔 1박2일이 아니라 며칠 걸린다고 하던데. 내가 우리 애들 몇 데리고 따라나설 걸 잘못했나?”
“지태가 어디 거추장스럽게 누굴 달고 다니는 놈이냐. 더구나 보안에 신경 써야 할 은밀한 임무를 띠고 있는 놈인데.”
“하긴!”
이돈두가 그 점에 대해선 주저 없이 인정했다.
“나 다시 회사에 들어가 봐야 돼.”
강성원이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체크하며 바쁜 시늉을 했다.
어서 용건으로 곧장 들어가자는 이야기다.
이돈두가 팔짱을 풀며 정색했다.
“내가 전화로 대충 설명한 그대로야.”
“결심을 완전히 굳혔대?”
“며칠 전에 새벽 늦게까지 술친구를 해주면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 그건 염려하지 마.”
“애썼네. 고맙다, 깡패!”
그때 윤학수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성원 형님, 다 좋은데 그건 아니지 싶습니다. 저희 회장님께 자꾸 깡패, 깡패 하시는 건…….”
지금껏 꾹 참고 있었다는 식이었다.
강성원이 짓궂은 웃음을 흘렸다.
“그럼 깡패를 깡패라고 하지 뭐라고 불러?”
“공식 직함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 DD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회장님!”
그러자 이돈두가 중재하듯 나섰다.
“학수! 그동안 내가 겪어보니까 알겠더라고. 이게 강성원 표 친근함의 표시야. 친한 사람한테만 보여주는 최상의 호감 표시! 그냥 흘려서 들어.”
하늘처럼 모시는 형님이 말씀하시는 거다.
윤학수는 곧 강성원에게 사과했다.
“버릇없이 굴었다면 용서하십시오, 형님.”
“용서는 무슨 용서. 나름 진짜 건달들을 보는 것 같아서 흐뭇하기만 한데.”
강성원이 흐뭇하게 미소를 그렸다.
그때 이돈두가 미처 끝내지 못한 말을 마무리했다.
“여하튼 수일 내로 강창근한테서 연락이 갈 거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딱 여기까지야. 나머진 강 형사 네가 알아서 해.”
“그것만으로도 큰일 한 거야. 다시 말하지만, 고맙다.”
강성원이 소리 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돈두가 미소로써 화답했다.
* * *
지태는 고려식당 밖에서 김성욱과 한창 통화 중이었다.
주변을 살피며 목소리를 낮춘 모습이 매우 조심스러워 보인다.
사실 중국으로의 출국을 하루 앞둔 어젯밤에 김성욱을 잠깐 만났었다.
그때 그는 지태의 스마트폰 속에 감청을 방지하는 칩 하나를 심어주었다.
그럼에도 지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극비를 요하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말을 조심했다.
그것은 김성욱 역시 같았다.
- 그래서 압록강을 넘기로 마음먹었다는 거지?
이미 출국 전에 말을 맞췄으면서도 북측의 도감청을 우려해 이런 생뚱맞은 소리를 해대는 거다.
그야말로 짜고 치는 고스톱.
“국정원과 청와대에서 허락만 해준다면 그럴 생각입니다.”
- 그냥 빈손으로 돌아올 것 같으면 넘어가지 않는 게 좋아. 그런 부분에 대해 약속을 받은 게 있다면 묵인해 주겠네.
“지금 김영철도 북측 고위 인사와 통화를 하고 있을 테니 들어가 보면 뭔가 답을 주겠죠.”
- 그래, 알겠네. 새삼 당부하는 거지만 조심 또 조심하게.
“그럴 거면 처음부터 보내질 말던가요.”
지태는 약간의 반발심이 일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혹시 모를 북측의 도감청 따위는 잠깐 잊은 듯했다.
그러자 김성욱도 이젠 노골적이다.
장단을 맞추며 나온다.
- 자넨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어. 비공식 특사 말이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그걸 알면 앞으로 더 잘하시던가. 여하튼 알겠습니다. 그만 끊을게요. 내일 떠나기 전에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고.”
- 그래.
통화가 끝난 지태가 이제는 조명을 환하게 밝힌 고려식당을 쳐다보았다.
“이래서야 어디 가게 월세라도 나오겠어?”
식당 안으로 들어와 김영철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지태가 툭 내뱉었다.
김영철이 건성으로 홀 안을 휘둘러보며 쓰게 웃었다.
“적자디. 그것도 아주 많이. 그게 다 양코배기들 때문 아니갔나. 유엔을 뒤에서 조종해 가지고서리 우리의 발목을 확 묶어 놨디 않았네. 그때부터 이런 식으로 늘 파리만 잡고 있어야.”
“원인 제공은 너희가 했잖아. 그니까 미국을 왜 건드려. 너흰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만 깡패지만, 미국이란 나라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깡패잖아. 어디 상대나 되겠냐?”
- 집어치우라.
김영철이 듣기 싫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고려식당의 자랑이라며 김영철이 특별히 권했던 동태찜과 기타 몇 가지 요리를 뒤섞은 푸짐한 상차림이다.
반주로는 들쭉술을 내놓았다.
그건 알코올 도수가 40%에 달하는 거의 보드카 수준이었는데, 도수에 비해 술맛은 의외로 달달했다.
백두산 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하는 들쭉이라는 열매를 주원료로 제조한 술이라서 그런지 과일향의 진한 여운이 입안에 계속 감돌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김영철이 그제야 물었다.
“어케 됐네? 남조선 당국의 승낙이 떨어졌네?”
“참 빨리도 묻네. 그 궁금한 걸 참느라 너도 무지 애썼다.”
지태가 농담을 흘렸는데도 김영철의 반응은 영 미지근했다.
자못 긴장한 눈빛으로 지태만 응시하고 있었다.
“수락하더군. 근데 빈손으로 왔다간 간첩죄로 확 잡아넣는다더라. 그니까 그렇게 안 되게 네가 책임지라는 얘기야”
그러자 잔뜩 긴장하며 바라보던 김영철이 픽 웃었다.
지태가 전화를 하러 나간 사이 그 또한 북한 고위 당국자로부터 무슨 언질을 받은 눈치였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갔디. 걱정하디 말라.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준비하고 있을 거이야.”
김영철이 말끝에 건배를 제안하듯 잔을 들었다.
만족스러운 모종의 합의를 이끌어 낸 뒤끝이라서 지태도 사양하지는 않았다.
쨍.
두 사람의 잔을 부딪치는 소리가 맑고 경쾌하게 들렸다.
* * *
단둥의 랑두공항과 평양의 순안공항을 운항하는 고려항공 비행기는 An-148 기종이었다.
러시아 항공설계국 안토노프가 제작한 쌍발 단/중거리용 여객기로써 70석 규모였다.
고려항공은 정기 운항이 아닌 전세기편 형식으로 단둥과 순안공항을 주 2회 왕복하고 있었는데, 주로 중국의 사업가나 단체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며 외화벌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형편이었다.
단둥에서 평양까지의 육로 거리는 약 300km.
노후한 북한의 국제 열차를 이용하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그것도 고장이나 단전 등 다른 변수가 없을 때나 가능했다.
그러나 비행기로는 약 40분이면 닿는 거리.
수속을 마친 지태와 김영철이 고려항공 JS782에 올랐다.
역시 몇몇의 중국 사업가와 그 나머지는 단체 여행객이었는데 기내로 들어서자 그들이 내뿜는 소음으로 아주 도떼기시장 같았다.
김영철이 지태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외화를 벌어줘서 좋긴 한데 저거이 흠이디. 원래가 시끄러운 족속들이라서 말이디.”
누가 뭐래.
지태는 속으로 구시렁거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북한은 마음먹는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리 대범한 척하려고 해도 좀처럼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그 동토의 땅에 첫발을 내딛는 지태의 심정은 떨렸고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다.
“와, 떨리네? 우리가 잡아먹을까 봐 두렵기라도 한 거이네?”
“닥쳐주세요! 떨리긴 개뿔. 너희들이 과연 무슨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을까 그 기대감 때문이다.”
지태는 애써 의연한 척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활주로에 선 고려항공 비행기가 이윽고 힘차게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지태는 소리 나지 않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조용히 내뿜었다.
* * *
한강실업.
사무실 뒤편에 있는 비밀 공간에 김성욱이 혼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똑똑.
누군가 들어오겠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대답 없이 기다리자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요원 하나가 들어선다.
“어, 유 부장아! 왜?”
“대표님,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응.”
김성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 부장이라 불린 요원이 곧 보고를 해왔다.
“한지태 회장이 조금 전 평양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김성욱은 노트북 하단에 표시된 시간을 흘깃 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시 출발이구먼.”
그러잖아도 오전에 지태와 한차례 통화를 했었다.
어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부분과 몇 가지 수정된 요구 사항을 지태에게 말해주었다.
물론 청와대에서 내려온 지시 사항이다.
김성욱이 유 부장을 올려다보았다.
그것 말고 또 다른 보고 사항이 있나 하는 표정이었다.
“저, 그것이…….”
“뭔데 그래?”
약간 뜸을 들이는 폼이 뭔가 수상하다.
“아무래도 우리 측의 정보가 새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정보가 새어 나가? 내부 소행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종착지는?”
“미래한국당 오신환 의원입니다.”
“음.”
김성욱은 잠시 침음을 흘리더니 날카로운 시선으로 유 부장을 올려다보았다.
“골치 아픈 위인이야. 한때 우리 회사에 파견을 나온 적도 있어서 내부 사정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람 라인도 아직 존재하고 있지. 이봐, 그 라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은?”
“기조실장 같습니다만…….”
“잘 봤군. 그 하부 라인을 타고 쭉 내려와 봐. 우리 한강실업의 누구하고 연결이 되는지도 파악해 보고.”
“알겠습니다.”
“은밀하게, 쥐도 새도 모르게!”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
김성욱이 눈을 마주친 채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 부장은 목례를 하고는 바로 뒤돌아서 나갔다.
“아직 첫 삽을 뜨기도 전에 미리 냄새를 맡으면 곤란한데 이거…….”
김성욱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 *
비록 40분에 걸친 짧은 비행이었지만, 잔뜩 긴장하고 있던 지태에게는 일각이 여삼추와도 같았다.
40분이 네 시간보다도 더 길게 느껴졌다.
“자, 일어나라.”
김영철은 중국 단체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간 뒤에서야 지태를 돌아보며 말했다.
지태가 비밀리에 방문한 사람이란 점을 고려했는지 여타의 입국 수속을 거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공항 관계자인지 보위성 요원인지 그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중국 관광객들과는 달리 다른 루트를 통해 대합실 밖으로 나왔다.
공항 밖에 고급 외제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