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94화 (194/272)

194화. 잠깐 보실까요?(2)

“웬 뜬금없는 소리야?”

- 어! 몰랐어? 네 남친 한지태 씨, 이번에 그룹 회장으로 올라섰잖아.

“……?”

- 어, 진짜 몰랐나 보네. 한스그룹 홍보팀에서 전 언론사에 공문을 돌렸어. 이번 임시 주총에서 지태 씨를 한스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고. 지은아, 듣고 있니?

“어? 어!”

- 이 언니가 오늘은 모처럼 저녁에 한가해. 그런 의미로 우리 볼까?

“그, 글쎄. 이따가 사정 봐서 전화할게.”

- 그래. 여하튼 지태 씨의 기사는 데스크 설득해서 되도록 크게 내줄게. 물론 내 아름다운 미모를 이용해서 말이지. 큭큭.

오도희는 실없는 농담 한마디를 던지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지은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지태의 이름이 오도희의 입에서 흘러나온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그가 보고 싶다는 그 하나뿐이었다.

“쑥쑥 잘도 크고 있네, 우리 낭군님!”

지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옆을 돌아보았다.

복도 끝 창문가에서 보디가드라는 미명 아래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두 명의 사내가 보였다.

지은은 그들이 보란 듯 싸늘하게 돌아서며 경영지원실로 걸어 들어갔다.

* * *

“뭐어, 그룹?”

임경남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그러고는 곧 웃음도 안 나온다는 식으로 혀를 찼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한강일보를 신경질적으로 찢어발기더니 바닥에 휙 내던졌다.

“그깟 구멍가게 몇 개 갖고 있다고 회장 놀음을 할 것 같으면 개나 소나 다 그룹 회장하겠네, 시발 놈!”

진한 조소에 끓어오르는 분노까지 얹은 눈빛으로 임경남은 툴툴댔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감정 상태가 들끓고 있으니 수화기를 들자마자 고운 말이 나갈 리 없다.

임경남은 받자마자 버럭 쏘아붙였다.

“뭔데?”

- 오지용이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지용이가? 어서 들여보내.”

임경남은 방문자의 이름이 오지용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돌연 목소리에 부드러움을 채워 넣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오지용이 들어섰다.

임경남이 집무 책상을 돌아 나오며 반갑게 맞았다.

“어서 와라, 오 서방아!”

“예?”

오지용은 뜻하지 않은 호칭에 놀라 잠시 되묻는 시늉을 했지만, 이내 멋쩍으면서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곧 우리 가족이 될 사람인데 미리 한번 불러봤다.”

“하하.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 같지만 귀에 감기는 느낌은 좋네요.”

“근데 연락도 없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오늘 강의 없어?”

“요즘 불어 닥친 미투운동이 우리 학교에도 불어왔어요. 해당 교수의 집무실로 몰려가 연합 시위를 한다고 해서 휴강하고 왔습니다. 형님께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요. 형님이 들으시면 아마 박수 치고 좋아하실 만한 얘기 말입니다.”

오지용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어 보이자 임경남이 덩달아 웃어주다가 이내 궁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갸웃거렸다.

오지용은 말을 꺼내기 전 다시 한번 씩 웃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신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이야기일 거라고 짐작한 임경남은 눈빛을 반짝이며 주시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마저 궁금해 미치겠다는 듯 재촉했다.

“뭔데 그래?”

“한지태, 그놈 말입니다.”

“어!”

“아버지가 손을 한번 봐줄 모양이에요.”

“오신환 의원님께서?”

“예, 형님! 서울국세청을 움직이실 듯합니다.”

“서울국세청이라면……?”

“조사4국, 다시 말해 특별 세무조사죠, 형님.”

오지용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살짝 긴장하며 듣고 있던 임경남의 입에서 슬슬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뜻하지 않은 월척을 건져 올린 것처럼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데 털어낼 만한 것이 있을까? 무슨 제보 같은 거라도 받은 거야?”

“요즘 기업하는 놈들, 아니 형님이나 부경그룹은 빼고요.”

“아, 괜찮아. 원래 기업을 하다 보면 조금씩의 불법은 다 저질러. 그게 기업하는 사람들의 윤활유인데 전혀 없다면 사업하기 힘들지.”

“여하튼 뭐든 나오지 않겠습니까, 형님. 더구나 얼마 되지도 않은 기간에 저렇게 고개 빳빳하게 세울 정도라면 분명 불법과 탈세 같은 먼지가 수두룩할 겁니다.”

“그러겠지. 아니, 백 퍼센트 확실할 거야!”

임경남이 이제는 큰소리로 웃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잡지 못한 지태를 이번에는 단번에 고꾸라뜨릴 호기인 것이다.

“선물이야.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

임경남이 너무도 기쁜 나머지 새삼스럽게 악수를 청했다.

히죽 웃으며 뻗어온 오지용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맞잡으며 그는 기분 좋게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 * *

후안을 입원시킨 것이 벌써 2주가 넘었다.

지태는 퇴근 후에는 물론 간간이 시간이 날 때마다 병실을 찾았지만, 그를 혼자 둔 것이 전혀 걱정스럽지 않았다.

돈두파에서 후안의 곁을 지키며 돌봐줄 붙박이들을 세워놓은 까닭이었다.

거기에다 이제는 친구 사이로 발전한 윤학수가 틈틈이 찾아와 말벗을 해주고 돌아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두 사람의 대화 중 거의 대부분은 보디랭귀지이었지만 말이다.

지태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주치의부터 찾았다.

후안의 현재 상태를 묻기 위함이었다.

워낙 체질적으로 강골이라 그런지 회복이 빠르다면서 이제 퇴원해도 무방하다는 말을 들었다.

지태가 흐뭇함을 안고 병실에 들어서자 후안이 기다렸다는 듯 그에게 퇴원을 졸랐다.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보스. 이제 그만 퇴원 수속을 밟겠습니다.”

지태가 피식 웃었다.

“그러잖아도 주치의를 만나고 올라오는 중이야. 그러라고 했어.”

“그렇습니까?”

후안은 날아갈 듯 반겼다.

“근데 오늘은 학수가 안 온 모양이지?”

“왜 아니겠습니까. 오전부터 찾아와서 한참 놀다가 점심까지 먹고 돌아갔습니다, 보스.”

“그럼 이제 그만 퇴원 준비해. 나는 내려가서 수속을 밟고 있을 테니까.”

“예, 보스!”

후안은 지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침대를 내려왔다.

* * *

한스 홀딩스 사무실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업무를 보던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일제히 돌아보았다.

그중 홀딩스의 과장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리들 앞에 나섰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무리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슈트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과장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 보였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조사 2과장 홍성문이고, 한스의 특별 세무조사차 나왔습니다.”

“트, 특별 세무조사라니요?”

“한스에서 불법과 탈세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어요. 지금부터 특별조사에 들어갈 테니 모두 업무에서 손을 떼고 얌전히 자리에서 일어서주기 바랍니다.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저기요. 자, 잠시만요. 누가 제보를 했다는 겁…….”

홀딩스의 과장이 당황스러운 몸짓으로 막아서자 홍성문이라는 과장이 그를 밀쳐냈다.

“저리 비키세요, 비켜! 이봐, 자네들 뭐 하고 있어. 어서 시작해!”

그러자 국세청 조사4국의 조사관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원무과를 찾아 후안의 퇴원 수속을 마친 지태는 곧 윤학수에게 전화를 넣었다.

- 예, 형님!

발신음이 채 두 번을 넘기도 전에 윤학수 특유의 씩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쁜데 전화한 거 아냐?”

- 아닙니다, 형님. 돈두 형님 모시고 DD엔터 사무실에 와 있습니다, 형님.

“그래? 그럼 지금 당장은 못 움직이겠네?”

- 아닙니다, 형님. 돈두 형님께 말씀드리고 잠시 시간을 낼 수는 있습니다, 형님. 근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아니고 지금 후안을 퇴원시키려고 수속을 밟았어. 근데 회사에 데리고 갈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잖아.”

그쯤 말했을 때 윤학수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대답을 해왔다.

- 여기에서 병원이 멀지 않으니 금방 달려갈 수 있습니다, 형님. 돈두 형님께 말씀 여쭙고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래. 부탁 좀 할게.”

지태가 흡족한 미소를 그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병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살펴보니 회사였다.

“여보세요?”

- 회, 회장님!

홀딩스의 유기영 부사장이었다.

그는 몹시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지태를 불렀다.

아무래도 큰일이 터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에 지태가 서둘러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 뭔가 잘못된 거 같습니다, 회장님. 지금 서울국세청에서 특별 세무조사를 나왔어요.

“예? 세, 세무조사? 느닷없이 왜……?”

- 뭐 이 사람들 하는 말에 의하면 우리가 불법, 탈세 등을 자행하고 있다고 누군가 제보를 해왔답니다.

‘허!’

지태가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 * *

“흐흐흐.”

임경남이 저 혼자만 신나 보이는 야비한 웃음을 흘렸다.

눈칫밥으로 한세월을 살아온 오한표 실장이었다.

그는 타이밍을 놓칠세라 얼른 임경남의 흐뭇함에 장단을 맞추는 미소를 날렸다.

“이제 한지태 그놈은 끝장이 날 겁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은 없을 테니까요.”

“그럼! 그야 당연하지요. 사실 기업하는 새끼들치고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경영하는 놈이 세상천지 어디 있어. 뭐가 나와도 나올 거야. 그 순간 끝장나는 거지. 특별 세무조사 맞고 쓰러진 기업들이 어디 한두 갭니까?”

“맞습니다. 깝죽대다가 꽃도 피워보기 전에 뿌리째 뽑아지겠군요.”

“시발, 꼴같잖은 것이 무슨 사업을 한답시고…….”

임경남은 응접 소파에 몸을 묻으며 팔짱을 꼈다.

그러자 오한표 실장이 잠자코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사장님, 그럼 준비하려던 건 잠시 보류할까요?”

“어떤 걸 말하는 거요?”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는 듯 임경남이 되물었다.

한껏 기분이 업이 된 상태여서 그리 신경질적이지는 않았다.

“지난번 말씀하신 소형 가전매장 설치 건 말입니다.”

“아, 그거?”

그제야 떠오른 모양이다.

임경남은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도 잠시 오한표 실장의 물음에 생각을 정리하는 모양새였다.

부경전자에서 생산하는 소형 가전을 중심으로 다모아를 쓰러뜨릴 매장 설치 건을 오한표 실장에게 검토해보라고 했었다.

다모아와 비슷한 콘셉트와 아이템을 차용해 매장을 오픈한 뒤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그랬는데 이젠 그게 별반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가만히 두어도 세무조사에서 뭐든 꼬투리만 잡히면 한스는 그 순간 공중분해가 될 운명을 맞을 테니까.

머릿속 생각 정리를 끝낸 임경남이 다시 또 흐흐 웃었다.

“그건 일단 보류, 아니 없던 일로 하십시다. 어차피 공중분해될 거 아니오, 한스 자체가!”

“그야 그렇죠.”

오한표 실장의 장단에 임경남이 다시 또 야비하고도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 * *

똑똑똑.

부경그룹 회장실이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임상만 회장은 들여다보던 서류에서 눈을 떼며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노크는 형식적인 것인지 곧 문이 열리며 버릇없이 누군가 들어섰다.

부경그룹의 부회장급이라도 감히 그러지 못할 이 엄청난 무례를 저지를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임지은뿐이었다.

임상만 회장은 이제 막 들어선 지은을 빤히 쳐다보았다.

얼굴 가득 홍조를 띤 채 씩씩거리는 폼이 뭔가 불만이 가득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러냐?”

“혹시 아빠예요?”

“뭐가, 이놈아?”

임상만 회장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흘겼다.

지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성큼성큼 집무 책상으로 다가와 임상만 회장 앞에 버티듯 섰다.

“특별세무조사, 그거 아빠 작품이냐구요.”

“그게 웬 뜬금없는 소리냐?”

“지태 씨 회사 말이에요. 국세청을 움직여 특별 세무조사를 받게 만든 거, 아빠가 손을 쓴 거예요?”

“세무조사를 받는다고, 한스가?”

임상만 회장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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