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실종(6)
지태는 총상을 입은 후안과 김영철의 부하인 최명남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후안의 말에 의하면 오늘 오후까지만 해도 탕 마이와 아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곳을 떠나 다른 은신처로 옮겨갔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지금 여기 어느 곳엔가 있을 것이다.
놈들의 대가리이니만큼 군용 천막보다는 저 다섯 채의 오두막 중 한곳에 틀어박혀있을 확률이 컸다.
그중 두 곳은 후안을 찾기 위해 이미 확인했으므로 나머지 세 곳만 둘러보면 되었다.
이미 확인을 마친 건물과 거의 나란히 붙어있는 두 곳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앞쪽 네 채의 건물보다 십여 미터쯤 뒤쪽에 외따로 자리한 마지막 한 곳뿐이다.
김영철은 군용 천막을 포위한 채 경계 중인 부하들에게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니 정신을 더욱 똑바로 차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지태와 더불어 마지막 남은 건물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은 다른 네 곳보다 불이 더욱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봐서 아직 술자리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지태와 김영철은 출입문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갈라섰다.
손가락 숫자를 센 다음 안으로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셋.
둘.
마지막 하나의 손가락만 남겨둔 바로 그때였다.
“뭐야, 너희들!”
지태와 김영철은 화들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술을 마시던 도중 용변을 위해 밖으로 나왔던 놈 같았다.
다행히 총은 들고 있지 않았다.
김영철이 재빨리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면서 지태에게 외쳤다.
“먼저 시작하라우!”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 뭔가 홱 하고 날아갔다.
훼리릭.
“컥!”
누구냐고 소리쳤던 녀석이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바닥으로 픽 고꾸라졌다.
날이 바싹 선 군용단검이었다.
그에 맞춰 지태는 건물의 출입문을 발로 걷어찼다.
꽝.
우지끈.
나무로 만든 문이 힘없이 부서지며 내부가 환히 드러났다.
안에 있던 놈들은 밖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들리자 벌써 이런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던 듯했다.
가장 먼저 탕 마이가 언뜻 보였는데 그는 반사적으로 출입구를 향해 권총을 갈겨댔다.
탕, 탕.
피융, 파팟.
두 발 중 한 발은 뚫린 문 밖으로 그대로 빠져나갔고 나머지 한 발은 문 옆의 나무 모서리를 때렸다.
지태는 어느새 나무문 뒤로 몸을 날린 후였다.
그 상태에서 지태가 안에 대고 외쳤다.
“탕 마이, 이 상놈의 새끼야!”
“엇! 한?”
본능에 이끌려 권총부터 쏴댔지만 탕 마이는 미처 지태의 얼굴을 못 본 모양이었다.
뒤늦게 화들짝 놀라는 목소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 나 한지태다, 이 시발 놈아!”
“니, 니가 어떻게?”
“같잖은 새꺄! 내가 네놈 머리꼭대기에 있거든!”
분노가 온몸을 휩싸고 있는 지태의 입에서 고운 말이 나갈 리 없었다.
지태는 말끝마다 욕설을 덧붙였다.
“미, 미스터 한! 우선 내 말부터…….”
“시끄럽고! 좋은 말로 할 때 총부터 버려. 그런 다음 대가리에 손 얹고 밖으로 나와, 어서!”
“시발! 좆 까라 그래! 어디 나랑 한번 붙어보겠다 이거지?”
“그래, 붙어보자, 새꺄!”
지태는 말을 마치자마자 수류탄의 핀을 제거한 다음 안으로 툭 던졌다.
“헉!”
“피, 피해!”
놈들은 혼비백산했다.
요란한 비명과 당황스러운 탄식 뒤로 강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꽈꽝.
꽈꽝, 꽝, 꽈꽈꽝.
그것을 신호로 삼은 듯 군용 천막 쪽에서도 연달아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억!”
“아이쿠, 커억!”
느닷없는 폭발음에 놀라 텐트 밖으로 튀어나오던 무리들이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타당, 타타타타탕.
두두두두둑.
북한 군사고문단원들이 사냥하듯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잠시 상황을 지켜보던 지태와 김영철이 고개를 돌렸다.
저쪽은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다.
걸어 다니는 병기라 불릴 만큼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친구들이었다.
더구나 놈들은 아직 술도 깨지 않아 비몽사몽이었다.
방어력을 갖추지 못한 저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누워서 떡 먹기일 터였다.
지태가 수류탄의 폭발로 쑥대밭이 된 건물 안쪽으로 먼저 들어섰다.
곳곳에 밝혀두었던 예닐곱 개의 랜턴들은 대부분 폭발과 함께 다 날아갔지만, 그중 한 개가 겨우 살아남아 짙은 어둠을 애써 밀어내려 용쓰고 있었다.
“으으윽.”
“끄응.”
산산이 부서져 내린 잔해 속에서 두 개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지태가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 순간 발밑에서 뭔가 밟혔다.
잘려진 누군가의 팔 한쪽이었다.
개의치 않고 다시 걸음을 옮겨간 지태가 무너진 잔해 더미를 발로 걷어냈다.
그 안에서 꿈틀거리는 사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희미한 조명에도 놈의 모습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탕 마이였다.
지태는 탕 마이의 뒷덜미를 거칠게 낚아채며 끌어냈다.
“나와, 이 개새끼야!”
“으으윽, 살살!”
“엄살은!”
퍽.
지태는 신경질적으로 탕 마이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아아아악!”
녀석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는 가히 피를 토하듯 처절했다.
그때 뒤에서 김영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보라우, 지태 동무!”
지태가 돌아보니 그는 누군가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는데 바로 아론이었다.
도합 네 명이 이곳에 있었으나 운이 좋게도 이 두 놈만 살아남은 것 같았다.
지태는 밖으로 두 녀석을 끌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지태가 김영철을 돌아보았다.
“자네는 애들이나 지원해 주지?”
아직 군용 천막 쪽에서 들려오는 총소리를 보면 뒤늦게 놈들의 저항이 심한 듯했다.
“기깟 얼빤한 새끼들 몇 명 처리하는 걸 개지고 아직도 뭣들 하고 있는 거이가? 내래 이놈들을 죄다…….”
김영철이 투덜거리며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자신더러 자리를 좀 피해달라는 뜻으로 이해한 까닭이었다.
“한, 미스터 한! 살려주시오. 난 진짜 아무 잘못이 없어요. 그저 난…….”
아론이었다.
온몸에 수류탄의 파편이 박혀 고통에 신음하면서도 눈빛만은 애절하게 지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이놈보다 더 괘씸한 새끼야!”
빠악.
지태는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는 아론의 턱을 축구공을 차듯 날렸다.
“커억!”
아론은 숨넘어가는 짧은 비명을 토해냈다.
저만치 떨어져나가 땅바닥을 두어 바퀴를 구르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지태가 탕 마이를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뒤로 짚은 양손을 이용해 물러서려 했지만 이내 찡그리며 풀썩 나자빠지고 말았다.
팔뚝에도 파편이 박혀 지독한 고통이 엄습한 까닭이다.
“처음부터 이런 기회를 노렸던 거냐?”
지태가 입술을 닫은 채 이빨 사이로 내뱉었다.
“그, 그런 게 아냐. 알다시피 나는 오래전부터 궁지에 몰리고 있었어. 그랬는데 저번에 네가 벌인 일 때문에 결국 윗선과 군부의 올가미에 걸려들기 일보 직전이었고. 난 천신만고 끝에 겨우 놈들의 올가미를 빠져나왔어. 그러니 어쩌겠냐. 망명이라도 하려면 돈은 필요하고……. 내가 이리된 것은 네놈에게도 책임이 있…….”
“집어치워, 이 새끼야!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늘어놓아?”
지태가 분노의 동작으로 발을 치켜드는 시늉을 취했다.
그러자 탕 마이는 제풀에 놀라며 몸을 돌돌 말았다.
지태가 어이가 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가 이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나도 에릭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어서 네놈의 처지를 모르는 건 아니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 하지만 네놈은 큰 실수를 했어. 너무 욕심을 부렸다는 거, 그리고 내 소중한 친구의 목숨을 담보로 거래하려했다는 거!”
“……!”
“2차 오더의 잔금만 갖고 네놈이 그대로 잠수를 탔다면 굳이 쫓으려하지 않았다. 돈? 아깝지. 아까운데 사람 목숨보다 귀하다고 여기지는 않아, 난! 그런데 네놈은 너무 욕심을 부렸어. 그게 지금의 화를 부른 거다. 알았냐, 이 개새끼야!”
지태가 목구멍에 힘을 주어 침을 끌어 모은 다음 탕 마이에게 콰악! 하며 내뱉었다.
“내 돈은 어디다가 짱 박아뒀어?”
“시, 시내…….”
“내 말이 우습지? 내가 지금 너하고 놀아주는 거 같지?”
지태의 입술 끝이 비릿하게 올라갔다.
그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총을 탕 마이의 허벅지에 대고 갈겼다.
탕.
“으억!”
“차례대로 병신을 만들어주지. 정 쏠 데가 없으면 그땐 네놈의 대갈통에 바람구멍을 내주고.”
지태가 다시 권총을 겨눴다.
“쏘, 쏘지 마. 다 말할 테니까.”
탕 마이가 고통을 참느라 악문 이빨 사이로 겨우 내뱉었다.
* * *
놈들이 강탈해 갔던 달러 가방들은 반파된 건물의 잔해 속에 얌전히 숨겨져 있었다.
“이 간나 새끼들은 어카디?”
김영철이 턱짓으로 무릎을 꿇려놓은 탕 마이와 아론을 가리켰다.
인질과 돈 가방까지 찾아낸 마당이니 이제 뒷마무리를 하고 어서 이 자리를 뜨는 일만 남았다.
지태는 답을 주는 대신 주변을 휘돌아보았다.
폭삭 내려앉은 군용 천막들 사이로 처참하게 죽은 시체들이 널려있었다.
기절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아론에게 물어보니 저들은 샨 주의 몽린 인근에서 암약하던 마약 밀매 단원들이라고 했다.
아론의 부탁을 받고 용병으로 참여했다가 이렇듯 모조리 개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지태는 그들의 주검 앞에서 일말의 동정심도 일지 않았다.
“어차피 돈도 찾았는데 이제 더는 볼일이 없디 않간?”
“……!”
“기렇다면 이놈들은 나한테 맡기라!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애들의 복수나 하게 말이디.”
지태가 대답을 하지 않자 김영철은 거듭 재촉했다.
“후우!”
입바람을 허공에 훅 불어제친 지태는 어떤 생각을 지우듯 고개를 털었다.
그러고는 물었다.
“그래서 자네가 얻는 것은 뭔데? 겨우 복수?”
“지태 동무! 기게 무슨 말이네?”
지태의 알쏭달쏭한 반문에 김영철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제대로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느냐 이 말이야, 내 말은!”
“길케만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어드렇게 말이네? 뭐 좋은 수라도 있네?”
김영철은 구미가 부쩍 당기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지태가 턱짓으로 아론을 가리켰다.
“잊었어? 저놈은 명색이 사업가야. 한마디로 가진 게 엄청 많은 새끼란 얘기지. 한데 그깟 복수심 때문에 이 자리에서 부질없이 죽인다 치자. 그러면 저놈이 남긴 재산은 과연 누구의 차지가 될까?”
한국말로 나누는 대화여서 정작 아론은 무슨 말을 주고받는지 모른 채 겁에 질린 두 눈만 금붕어처럼 끔뻑였다.
“기러니까 저놈을 살려서 데려가 우리 애들 목숨 값을 받아내라, 이 말이네?”
“싫으면 말고!”
“싫기는!”
김영철은 밉지 않게 눈을 흘기고는 자신의 부하들을 돌아보았다.
“모두 들었디?”
“잘 알아들었습네다, 중좌 동지.”
김영철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문득 살기 띤 눈빛으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시선에 꽂힌 녀석은 아론 옆에서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탕 마이였다.
김영철은 그를 내려다보면서 알 수 없는 어떤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 * *
지태는 후안을 부축하며 산길을 내려왔다.
후안은 이를 악물며 애써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괜찮아. 차라리 참지 말고 비명을 질러. 아니면 맘껏 신음 소리를 내던가.”
지태가 안타까운 눈길로 말했다.
“참을 만합니다, 보스.”
“뭐가 참을 만해, 이 친구야.”
지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후안은 잠시 그윽한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찡그리고 말았다.
“정말 못 말릴 친구네.”
지태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순간이었다.
탕, 탕.
뒤쪽에서 돌연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지태는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짝 낮추며 후안을 나무 등걸에 앉혀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권총을 뽑아들면서 뒤쪽을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