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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87화 (187/272)

187화. 실종(2)

“그럼 지금 바로 만달레이로 넘어가는 거야?”

- 예, 보스. 북한 쪽 인원 10명 중 다섯이 만달레이까지 동행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섯?”

- 현금 수송 차원이니까 많은 인원은 필요 없을 거라고 나머지는 사령부에 남겠다고 합니다.

“그래, 알겠어. 그럼 일단 만달레이로 가서 휴식을 취한 다음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입금하는 걸로 하지. 참, 쿤모 소장의 해외 계좌를 보내줄 테니까 200만 달러를 입금시켜주도록 하고.”

- 예, 보스. 만달레이에 호텔을 잡은 후에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후안이 곧 전화를 끊었다.

“잘됐습니까?”

이미 다 들었으면서도 재차 확인을 하려는 듯 조현민이 물었다.

지태가 양 입술 끝만 치켜 올리며 웃어주었다.

그러자 조현민은 윤민수 상무와 유기영 부사장을 향해 곧바로 오른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예스!”

“축하합니다, 한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윤민수 상무와 유기영 부사장이 앞다투어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감사합니다.”

지태는 눈빛 인사로 끄덕이며 화답했지만 곧 인상이 굳어졌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찜찜하고도 불안한 그림자가 느릿느릿 다가오고 있는 느낌 때문이었다.

* * *

벌써 자정이 가까워오는 시간이다.

지태는 가슴 졸였던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배가 좀 출출한 느낌이었다.

대표실에 모이기 전 저녁을 대충 때우긴 했지만, 그것마저도 거의 뜨는 둥 마는 둥 했었다.

배가 출출한 것은 비단 자신 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 모두에게 의향을 물었다.

윤민수 상무와 유기영 부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이대로 귀가하여 샤워를 하고 그저 잠자리에 쓰러져 눕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왜 아니겠는가.

지태가 쓰게 웃고는 조현민을 돌아보았다.

“조 대표님도?”

“글쎄요, 난 그냥…….”

그는 밥 생각은 그다지 없지만 다른 뭔가가 아쉬운 눈빛이었다.

“그럼 조 대표님은 저랑 술 한잔하시는 걸로.”

지태는 그 아쉬운 무엇이 아마도 술일 거라는 쪽으로 해석했다.

제대로 들어맞은 듯했다.

조현민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회사 앞에서 유기영 부사장과 윤민수 상무를 보낸 두 사람은 곧 택시를 잡아탔다.

술을 마시고 대리운전을 부르느니 차라리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쪽으로 두 사람은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지태와 조현민은 회사 근처의 24시간 영업을 하는 감자탕집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시래기 뼈다귀전골을 안주 삼아 소주 두 병을 마셨다.

그쯤에서 이만 술자리를 파하려는데 조현민이 자꾸만 아쉬운 눈빛을 보내왔다.

한 병만 더하자고 간절하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럼 딱 한 병만 더하십시다. 형님, 난 집에 들어가서도 대기하고 있어야할 사람이에요. 후안이 만달레이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알았어, 알았다니까! 이제 겨우 새벽 2시야.”

그나마 이게 어디냐 싶었던지 조현민은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출근 안 하시려고?”

“왜 안 해. 이쯤은 거뜬하다!”

“좋겠수, 건강해서.”

“이게 내 장점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형수님 대단하셔. 나 같았으면 벌써 이런 양반은 집에서 로그아웃해버렸을 텐데.”

“우헤헤. 그건 인정하지.”

조현민은 낄낄거리며 새로 나온 소주병의 뚜껑을 돌려 따더니 자신의 빈 잔을 급히 채웠다.

그때 지태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벌써 도착했나……?”

“후안이야?”

조현민이 이제 막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다가 멈칫하며 물었다.

그러나 지태는 대답할 겨를도 없다는 듯 서둘러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어, 후안!”

- ……!

후안의 응답은 선뜻 나오지 않았다.

대신 요란한 소리들이 스마트폰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드드드드득.

탕탕, 타타타타탕.

그것은 총소리였다.

후안이 만달레이로 가다 말고 사격장에 들른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분명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지태가 다급하게 후안을 다시 불렀다.

“후안, 후안!”

- 예, 보스! 이곳 사정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후안의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그제야 들려왔다.

몹시 숨 가쁘고도 다급해 보였다.

그 와중에도 후안이 대응 사격을 하는지 권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뭔데, 왜 그래?”

- 기습을 받았습니다. 매복하고 기다렸던 것 같은데 놈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습……. 윽!

“후안!”

지태가 애타는 심정으로 후안을 불러댔다.

그러나 연결은 벌써 끊어진 것 같았다.

먹통이 된 스마트폰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조현민이 불에 덴 듯 놀라서 지태를 쳐다보았다.

술이 확 깬 듯한 얼굴이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만달레이로 가는 도중에 기습을 받은 거 같습니다. 상황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설명을 해주면서도 지태는 이미 반쯤은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두 눈동자만 망연하게 허공을 더듬어댔다.

“이거, 이거 어디로…… 이걸 어떻게…….”

“야, 지태야! 우선 진정하고 침착하자. 자, 냉수부터 한잔하고!”

조현민이 물 컵을 들어 지태에게 내밀었다.

지태가 정신의 반은 다른 세상에 둔 채 컵을 건네받다가 힘없이 톡 떨어뜨렸다.

스테인리스 컵이 바닥에 떨어져 구르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지태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아론이다.

일단 그에게 전화를 걸어 그쪽 상황을 알아봐야겠다.

지태는 스마트폰을 들어 최근에 통화했던 아론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

긴 발신음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아론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태는 그 후로도 수십 차례나 연이어 통화 버튼을 눌러댔다.

그러나 아론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 * *

그날 조현민은 귀가할 수 없었다.

당장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지태를 따라 회사로 복귀했다.

“누구지? 어떤 새끼들이 매복을 하고 있었다는 거야?”

홀딩스 대표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조현민이 물었다.

그러나 아직도 반쯤은 얼이 빠져있는 지태에게서 어떤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너무도 답답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것이었는데 지태가 그 와중에도 한쪽 귀는 열어두었던 모양이었다.

“이쪽의 사정을 잘 아는 새끼의 소행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혹시 사가잉 구 군사령부의 보복이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에 지태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럴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은 까닭이었다.

“아론이 전화를 일부러 피하는 것이라면 혹시 그놈의 짓은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죠!”

지태가 무심결에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이더니 이내 멈추면서 이번엔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거렸다.

“그게 아닐 수도 있고…….”

지태는 답답한 듯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초조함 속에서 시간은 덧없이 흘러만 갔다.

시간은 벌써 오전 6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드르륵.

테이블 위에 올려둔 지태의 스마트폰이 아주 짧게 몸을 떨었다.

문자가 왔다는 알림이었다.

퍼뜩 고개를 든 지태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메시지 하나가 날아들었는데 열어보니 동영상이 첨부돼 있었다.

지태는 서둘러 영상을 클릭했다.

영상의 시작은 어두컴컴한 실내였다.

촉수 낮은 전등 하나만을 밝혀놓은 듯했는데 자세히 보니 군용 천막처럼 보였다.

화면은 조금씩 흔들리며 점차 밑으로 향해갔다.

그러면서 차츰 군화를 신은 어떤 사람의 발목부터 보였다.

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카메라는 그 사람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는데 검회색 군복을 입고 있었다.

쓰러져 있는 이는 그 한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진 사람의 숫자는 모두 세 명이었다.

카메라가 그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클로즈업해 들어갈 즈음 누군가가 쓰러진 이의 옆구리를 발길로 힘껏 걷어찼다.

그러나 움직임은 없었다.

곧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들.

그랬다.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어있었다.

그들은 후안의 현금 수송을 위해 따라나섰던 북한 군사고문단원들이었다.

카메라가 낮은 자세에서 PAN을 하더니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사내 둘을 비췄다.

두 명의 생존 북한 군사고문단원들이었다.

그들은 두 손이 뒤로 결박된 채 낡은 헝겊 같은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둘 다 몸들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복부에 총을 맞은 듯했다.

고통에 못 이겨 자꾸만 허리를 굽히려 하자 누군가가 다시 또 달려들어 그의 총상 입은 복부를 걷어찼다.

“윽!”

악다문 이빨 사이로 고통스럽게 내뱉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군 최고의 전사답게 악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후 드디어 후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 또한 상태가 북한 군사고문단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후안에게는 보자기 대신 안대가 씌워져 있었으며 어깨와 가슴 사이에 총상을 입은 듯 피가 흐르고 있었고 무릎을 꿇은 허벅지도 총상을 입은 듯했다.

지혈을 위해 대충 감아놓은 압박붕대에 벌건 피가 흥건해 보였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던 지태가 분노로 치를 떨었다.

그 순간 사내 한 명이 총부리를 후안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카메라의 앵글은 후안을 벗어나며 서서히 복면을 깊이 눌러쓴 한 사내에게 맞춰져갔다.

후안을 습격한 괴한들의 대가리, 아니면 그들의 주요 간부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클리셰는 왠지 눈에 익었다.

흡사 이슬람 테러 집단들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듯하다.

이윽고 카메라의 앵글이 정면에 놓이자 사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우린 미얀마 정부를 상대로 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사들이다…….”

사내는 먼저 자신들을 소개하는 멘트를 선보였는데, 어느 종족이라는 것은 슬그머니 생략해버렸다.

지태는 화면 속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대며 집중했다.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을 만한 아주 작은 단서라도 찾으려는 듯.

그사이로 사내의 음성은 계속 흘러나왔다.

“미얀마 정부와 상관이 없는 민간인, 특히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이런 행위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다른 한편 유감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폭은 아주 좁고 작다.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린 종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목숨을 건 투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제반 조건이 아주 열악하다. 우린 지금 투쟁에 필요한 자금이 절실한 형편이다.”

사내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사이 카메라는 잠시 후안을 비춰갔다.

안대를 쓴 후안의 인상이 살짝 구겨져 있었다.

이를 악물고 총상의 고통을 참아내는 모습.

이때 놈들의 대가리로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러자 카메라는 흠칫 놀란 듯 흔들리며 빠르게 사내의 모습을 잡아갔다.

“나는 대한민국의 한지태 사장에게 고한다. 우리들의 독립 투쟁에 응원과 더불어 강력한 힘을 보태줄 것을! 그것은 그대의 순수함을 담은 지극히 선의에 의한 후원이고 지원이라야 한다. 우리 독립군의 해외 계좌를 보내주겠다. 여기에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하라. 아니면, 이놈의 목숨은 바로 이렇게 될 것이다.”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발의 총성이 요란하게 울렸다.

권총이었다.

카메라의 앵글은 이미 밑을 향해 있었는데, 무릎을 꿇고 있던 북한 군사고문단원 중 한 명이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즉사한 듯 보였다.

“이런 개썅! 야, 이 종간나 새끼야, 날래 나도 쏴보라!”

마지막 남은 북한 군사고문단원이 뒤집어쓴 보자기 속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옆에 총을 들고 서있던 사내가 그에게 발길질을 가했다.

군사고문단원은 숨이 턱에 걸린 비명을 내지르면서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카메라는 개의치 않고 다시 괴한들의 대가리를 비췄다.

“성의를 표시할 기한은 앞으로 3일 주겠다. 만약 우리의 요구를 거부할 시 너의 친구인지 부하인지 모르겠지만, 이놈의 목숨은 방금 저놈처럼 되고 말 것이다. 명심해라.”

동영상은 거기에서 끝을 맺었다.

지태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서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빠르게 일렁이는 양 볼의 근육이 지태가 품은 분노의 강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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