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불길한 그림자(1)
양재동 멤버들의 아지트로 쓰는 빌라는 실 평수가 120평이 넘는 복층 구조로 돼 있다.
밤 10시.
질펀하게 벌이던 술판은 어느덧 끝이 났는지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실 한복판에 ㄷ자 형태로 놓인 널따란 소파에는 오로지 이현욱만 제 몫의 파트너를 낀 채 앉아있었다.
그들은 저녁 8시 무렵 텐프로 살롱에서 보내온 네 명의 호스티스들을 옆에 끼고 약 두어 시간 정도 술판을 벌였다.
10시 즈음 파티를 마무리하는 차원에서 마지막 행사를 치르기 위해 각자의 파트너를 데리고 제각기 방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현욱은 답답한 방구석이 싫다는 이유로 거실에 남았다.
가격이 1천 5백만 원이 넘는 부경전자의 85인치짜리 UHD 텔레비전으로 야동을 보면서 색다른 느낌을 즐기려는 의도가 포함된 선택이었다.
과연 저 자세가 가능할까 싶은 일본판 포르노를 보면서 파트너를 본격적으로 끌어안으려는 찰나였다.
띠리리리릿, 띠리리리릿.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한 방에 깨버리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현욱은 단단하게 성난 자신의 물건을 쳐다보며 짜증을 냈다.
“시발, 어떤 새끼야.”
그럼에도 손길은 벌써 저만치 던져둔 스마트폰 쪽으로 뻗고 있었다.
혹시라도 잔소리 심한 꼰대의 전화이거나 급한 용무로 걸어온 전화일 경우 무시하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이현욱은 하마터면 스마트폰을 내던져버릴 뻔했다.
다름 아닌 타워파의 보스 강창근인 까닭이었다.
“시발! 이 양아치 새끼가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이현욱은 짜증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 시간에 뭐, 뭐요?”
대뜸 소리치자 강창근은 잠시 말을 아꼈다.
어린놈한테 무시당하는 것이 짜증이 난 것이거나 아니면 너무 당황해서 속으로 욕을 내뱉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현욱과는 열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는 강창근이었다.
“아, 시발 뭐냐니까.”
거듭해서 짜증을 내자 그제야 강창근은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속마음은 어떻든 간에 겉으로는 어느새 을의 입장으로 급선회한 강창근의 목소리였다.
- 저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쁘신 모양인데 내일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이제 와서 무슨! 그냥 말해 봐요. 이미 흥이 깨질 대로 깨져버렸으니까.”
- 아, 예, 그럼! 저 다름이 아니라…… 광수대 쪽에서 뭔가 냄새를 맡은 거 같습니다.
“광수대?”
-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말입니다.
“나도 그쯤은 알아. 근데 무슨 냄새를 맡았다는 거요?”
- 느닷없이 럭키문의 인수 과정을 들쑤시고 다니고 있어요. 뭔가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을 일인데 정확하게 콕콕 찍어대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냥 건너 짚어보는 거 아뇨?”
- 그건 아닌 거 같아요. 더구나 담당 형사 새끼가 바로 그놈입니다.
앞뒤 자르고 그놈이라고 하면 도대체 그놈이 누군 줄 알겠는가.
이현욱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그놈이라니?”
- 양재동 빌라를 서성이다가 우리한테 칼침을 맞았던 바로 그놈입니다.
“한지태 친구라는 그 형사 놈?”
- 맞습니다. 그리고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뭔데?”
- 내가 우리 사장님들하고 연관이 됐다는 걸 눈치챈 것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보고를 드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알았어요. 우리끼리 논의 좀 해보고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지.”
이현욱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하는 사이 단단했던 몸의 한구석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축 늘어져 있는 그 물건이 어떤 불길함 때문인지 더욱 흉물스럽게만 보였다.
“에잇, 시발!”
이현욱이 짜증스러운 시선으로 거실과 면해 있는 방들과 복층에 자리한 방들을 쳐다보았다.
멤버들이 일을 마치고 내려오는 대로 다시 이 문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
어떤 놈이 제일 먼저 일을 마치고 내려올 것인가.
파트너를 품고 싶은 마음이 어느덧 사라진 이현욱은 손을 뻗어 술병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술을 따르려다 말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파트너에게 괜히 악다구니를 썼다.
“뭘 봐, 이년아! 어서 옷이나 쳐 입고 꺼져!”
* * *
지태는 홀딩스 대표실로 조현민과 윤민수 상무를 불러들였다.
미얀마 반군 측에 보낼 오더 물품을 점검하려는 차원이었다.
응접 테이블에 차 한 잔씩이 놓이자 지태가 윤민수 상무에게 물었다.
“준비는 잘돼가고 있죠?”
“예. 물품을 의뢰한 메이커별로 담당 실무진들을 보내서 꼼꼼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지태가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현민을 바라보았다.
“화물 전세기 협상은요?”
이번 2차 오더 물품의 수송은 화물기로 보내려는 것이다.
오더에서 중고 SUV가 빠진 터라 굳이 시일이 많이 걸리는 해상운송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
조금은 비용을 무리해서라도 화물기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국적 항공기뿐만 아니라 외국 항공사와도 협상을 진행 중에 있어요. 최대한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쪽으로 연결해보려고요.”
“좋습니다. 두 분이서 계속 좀 수고를 해주세요.”
“근데 말입니다. 그 후안이라는 친구가 잘해낼 수 있을까요?”
2차 오더 분의 수송을 오로지 후안에게 일임한다는 점이 조금은 석연찮다는 듯 조현민이 입맛을 다셨다.
잘해낼 수가 있겠느냐고 묻는 조현민의 말속에는 과연 믿고 맡겨도 되는 것이냐 하는 뜻이 더욱 도드라져 있었다.
지태가 쓰게 웃었다.
“이 오더는 보통 거래도 아니고 현지 사정에 맞춰 순간순간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안은 최적화된 사람이죠. 100% 믿고 맡겨도 될 친굽니다. 그 점은 내가 보증해요.”
“한 대표께서 굳이 그러하다면야, 뭐…….”
100% 신뢰를 한다니 할 말이 없다.
조현민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가에 희미한 웃음 띠를 만들어보였다.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꼼꼼한 중간 점검이 끝나고 가벼운 대화로 화제를 전환하던 때였다.
삐이.
집무 책상 위에 놓인 인터폰이 울렸다.
지태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을 받았다.
“예.”
- 대표님! 박찬익 팀장이 뵙기를 청합니다.
대표실의 간단한 비서 업무까지 취급하고 있는 여직원의 목소리였다.
“예,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문이 열리고 박찬익 팀장이 들어섰다.
먼저 와 있던 조현민과 윤민수 상무를 보면서 그는 계면쩍은 미소를 지은 후 지태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어서 오세요.”
“조 대표님과 윤 상무님이 먼저 와 계시다는 걸 알면서도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어차피 우린 한 가족이니까요.”
실례를 했다는 것을 박찬익 팀장은 그런 식으로 둘러대고 있었다.
지태가 미소로 자리를 권했다.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방금 마시고 오는 길입니다. 그보다 우선 이것부터 좀 보시죠.”
박찬익 팀장은 손에 들고 온 서류철을 지태 앞에 내려놓았다.
지태가 펼쳐보기 전 흘깃 쳐다보자 박찬익 팀장이 서류철에 담긴 내용을 짧게 설명했다.
“현재까지 취합한 다모아 5개 매장의 영업 매출하고, 다른 하나는 5대 도시 외에 10개 도시를 우선 추려 새로 개설할 매장 후보집니다.”
“너무 급하게 서두는 건 아닙니까?”
조현민이 불쑥 박찬익 팀장을 쳐다보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지태는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리며 서류철을 펼쳤다.
그런 가운데 조현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박찬익 팀장의 반박이 흘러나왔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 시점에 미리 설레발을 치면서 매장을 늘린다는 게 다소 성급할 수도 있다는 점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 소비자의 반응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건 조 대표님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막말로 바람이 불어줄 때 연을 날려야 시너지 효과도 크리라고 봅니다.”
“맞아요. 내 생각도 박 팀장님하고 같습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이럴 땐 과감히 밀어붙이는 것이 나아요.”
지태까지 지원 사격을 하고 나오자 조현민은 금세 수긍한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처음부터 반대를 할 의향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우려가 기우에 불과할지라도 한 번쯤은 조급함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짚고 넘어가자는 의미였으니까.
지태의 지원에 힘을 얻은 박찬익 팀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 다모아 매장에서 취급할 품목들이 좀 더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사이에 참여하겠다는 업체들이 또 늘어났습니까?”
“예, 대표님.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리점 형식으로 매장을 개설할 수 없겠느냐고 문의해오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아, 그래요?”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대략 50여 명 정도 됩니다.”
“아주 고무적이네.”
지태가 얼굴 가득 미소를 그렸다.
그러면서 박찬익 팀장을 격려했다.
“신설 매장 증설에 자금이 부족한 우리 입장에선 좀 더 유연성 있게 고려해볼 문제군요. 아주 좋습니다. 박 팀장께서 모범 답안을 한번 만들어보세요.”
“알겠습니다.”
박찬익 팀장이 만족스럽다는 듯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태가 그런 박찬익 팀장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그가 괜히 얼굴을 쓸며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제 얼굴에 뭐라도……?”
“그런 게 아니라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서 말이죠. 제가 처음 박 팀장님을 모시러 갔을 때만 해도 이런 조신한 캐릭터는 아니었잖습니까.”
“하하. 환경에 따라 사람도 바뀌는 거죠.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반듯하고 옳은 길이다 싶으면 절대 한눈팔지 않는다는 게 제 인생의 모토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너무 변하긴 없깁니다. 사람이 갑자기 너무 변하면 뭐 어쩐다는 그런 말이 있잖아요.”
“흐흐. 걱정 마세요.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변할 테니까요.”
박찬익 팀장의 천연덕스러운 너스레에 자리에 있던 세 사람은 소리 내어 웃었다.
* * *
만지면 금방이라도 핏물이 배어날 것만 같은 시뻘건 노을이 어느 주택의 지붕을 서서히 물들이고 있었다.
우면산자락에 지어진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담벼락 뒤편의 쪽문으로 나가면 곧장 산길과 맞닿는 구조였다.
조직 내에서도 주요 간부 몇몇만 알고 있는 타워파의 비밀 안가였다.
석양이 지는 쪽으로 면해있는 거실의 통유리 창문 앞에서 뒷짐을 지고 선 타워파의 보스 강창근이 무거운 신음 소리를 냈다.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러자 두어 걸음 뒤에 서있던 행동대장 겸 럭키문의 대표이사로 등재돼있는 유성두가 바짝 긴장하며 자세를 꼿꼿이 했다.
“아무래도 대검 강력부 조직범죄과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만 콕 찍어 들이민다 이거지?”
“예.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거 아무래도…….”
유성두가 자신의 추측을 넣어 뭔가를 덧붙이려 할 때 강창근은 자신도 이미 눈치를 챘다는 듯 그의 말을 잘랐다.
“햐, 이것들 봐라. 나를 너무 띄엄띄엄 봤어, 이 애송이 새끼들!”
“혹시 송민철이가 실종된 것을 우리 쪽으로 뒤집어씌우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럭키문의 주식을 양도받는 과정에선 하자가 없겠지?”
“이현욱이 대호건설 고문 변호사를 통해 작업한 거라서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송민철이 기적처럼 다시 살아온다면 몰라도 그 점에 대해선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송민철의 지분을 타워파로 이전시키면서 강창근은 허위 차용증과 위조된 각서를 활용했다.
타워파로부터 사채 50억을 가져가면서 채무 이행을 하지 못할 경우 송민철 자신이 가진 지분 모두를 넘기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강창근이 창문 저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우면산의 산등성이에 걸려있던 핏빛 노을이 사그라지면서 그 위를 검붉은 어둠들이 빠르게 갉아먹어가고 있었다.
“끄응.”
다시금 강창근의 입술을 뚫고 무거운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