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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78화 (178/272)

178화. 기대 이상으로(3)

이돈두는 지태가 오늘 저녁에 선약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크게 서운타하지 않고 배웅까지 해주었다.

다만 그는 자신의 아쉬운 마음을 담아 사족을 붙였다.

“조만간 술 한잔할 시간은 빼놔라!”

“그래.”

지태는 이돈두와 작별하고 곧 지나가는 택시에 올랐다.

강성원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를 10여 분쯤 남겨두었을 때였다.

뷔이익, 뷔이익.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살펴보던 지태의 표정에 금세 미묘한 감정이 담겼다.

지은인 것이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 응. 자기는 어때?

“보고 싶다는 것만 빼면 뭐 그럭저럭…….”

왜 이런 말이 덜컥 튀어나왔는지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숨길 수 없는 감정의 발로일 것이다.

지태의 솔직한 감정에 지은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그나마 행복하네. 자기가 나를 아직 가슴에 담아두고 있다는 게.

“우리가 영영 이별을 한 것도 아니잖아. 숨 고르기 차원이라고, 이건.”

- 맞아. 그런데도 난 많이 불안해.

“……!”

이번엔 지태가 침묵했다.

방금 지은이 불안하다고 한 것은 지태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닐 것이다.

주위 환경의 압박에 못 이겨 자기 스스로가 지레 포기할까, 그것이 두려운 까닭일 거였다.

- 하지만 이제 됐어. 자기의 그 한마디가 내겐 천군만마 같은 힘이 돼준 거 같아. 고마워, 지태 씨!

“별일 없는 거지?”

- 별일은 지태 씨가 있는 거 아냐?

“무슨 말이야?”

- 저, 그게……. 지금 공공연하게 퍼지고 있는 미얀마에서의 소문 말이야.

“……!”

- 그 주인공이 혹시 자기였어?

지태가 즉각 대답을 못하자 그것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지은이 다그치듯 급하게 되물었다.

이 모든 사달이 그녀의 오빠인 임경남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아직 모르고 있는 듯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태는 그 배후에 임상만 회장이 버티고 있음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것이 만약 사실이고, 지은이 그것을 알게 된다면 그야말로 그녀는 기절초풍하고 말 것이다.

지은이 너무 심각함에 빠지는 것 같아 지태는 뒤늦게 이 분위기를 수습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어설픈 변명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정하지 마. 미얀마에서 오더를 받은 사람이 비단 나 하나 뿐만은 아니니까.”

- 그걸 말이라고…….

그런 무모한 도전과 행동을 몸으로 보여줄 사람은 국내를 통틀어 딱 한 사람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지태.

“암튼 난 아냐.”

지태가 서둘러 거듭 부인했다.

곧 지은의 낮은 한숨 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흘러나왔다.

심증은 가지만 굳이 본인은 아니라는 데야 할 말이 없는 거다.

설령 본인이 맞는다 해도 이렇듯 무사히 살아왔지 않은가.

그거면 된 거라고 지은은 그것을 위로로 삼았다.

그리고 더 이상 지태를 추궁하며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는 더욱 조심해!’라는 말로 자신의 우려하는 마음을 보탰을 뿐이다.

“언제 한번 볼 수 있을까?”

지태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물었다.

흘러나온 지은의 대답은 우울했다.

- 감옥 아닌 감옥생활 중이야. 화장실 밖에 지금도 나를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있어. 명색은 보디가드인데 아버지가 붙여놓은 감시자들!

그것으로 대답이 됐다.

지태가 씁쓸하게 웃었다.

“참아야겠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잘 지내, 지은아!”

- 그래. 자기도!

지은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

지태는 끊긴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옅게 한숨을 지었다.

그러다가 문득 택시의 속도가 떨어져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강성원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였다.

지태는 얼른 우울한 표정을 얼굴에서 지워냈다.

* * *

버섯전골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실내는 약 50여 평 정도 돼보였는데 손님들로 꽉 찬 것을 보니 소문난 맛집인 모양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있던 강성원이 손을 흔들어댔다.

“자식, 얼굴 좋아진 것 좀 봐. 못 본 사이에 피둥피둥 살만 쪘네.”

지태가 자리에 앉으면서 강성원을 짓궂게 흘겼다.

그러자 강성원 또한 비슷한 시선으로 마주 보며 위아래를 훑어댔다.

“네놈 소식 안 듣는 것만으로도 살이 찔 이유로는 넘치고도 남거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네놈이 그동안 내 속을 얼마나 태워댔냐.”

“하긴! 틀린 말도 아니라서 거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지태가 멋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나마 즉각 실토라도 하니까 양심은 있어 보인다.”

“별일은 없었고?”

지태가 테이블 위에 세팅돼 있던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물었다.

순간 강성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갔다.

짓궂은 웃음기가 잔뜩 도사린 얼굴 뒤에는 분명 뭔가 있는 듯했다.

“뭔데, 인마?”

“흐흐.”

강성원은 즉답을 피하면서 약간 뜸을 들였다.

그걸 보며 지태가 인상을 찌푸리는 시늉을 했다.

“너 안 되겠다. 일단 밖에 좀 나갔다 오자!”

“밖엔 왜?”

“이 형님 약 올린 죄로 좀 쥐어박게!”

“니미! 사실은 내가 곧 장가를 가.”

“어?”

“내가 유부남이 된다고, 인마!”

“뭐야? 벌써 아름 씨랑 날까지 잡은 거야?”

“그래. 2주 전에 양가 부모님들 만나서 상견례까지 끝냈다.”

“햐, 이 새끼 봐라!”

지태는 자신의 일처럼 반기며 악수를 청했다.

“이 형님보다 먼저 상투를 트니까 배는 좀 아픈데 여하튼 축하한다, 축하해”

“고맙다!”

강성원은 바보처럼 헤 웃었다.

날을 잡은 것이 좋긴 한가 보다.

지태가 환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식은 언젠데?”

“가을 초입으로 잡았다. 9월 중순.”

“9월 중순이라……. 어디 보자.”

지태는 날짜를 헤아려 보았다.

지금이 5월이니 약 네 달가량 남았다.

“이 형이 축하 선물로 좋은 거 하나 해줘야겠네. 뭐가 필요하냐?”

“봉투나 두둑하게 집어넣어.”

“그거야 당근이고. 다른 거 필요한 게 있음 말해봐.”

“예전에 너한테 되로 주고 말(斗)로 받은 거……. 아니다, 말이 다 뭐냐. 그때 가마니로 받은 거, 아직 그대로 있어. 그걸로 충분해.”

강성원이 돌연 진지하게 나오자 지태는 순간 머쓱했다.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아버지의 치료비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강성원은 자신이 현재 가진 돈의 전부라며 선뜻 5백만 원을 내놓았었다.

물론 지태는 나중에 억 단위의 봉투를 강성원에게 우정의 표시로 되돌려주었었다.

잠시 코끝 찡한 기억을 더듬던 두 사람은 주문한 버섯전골이 나오자 일단 소주를 곁들인 식사부터 했다.

전골냄비의 국물이 거의 밑바닥을 보일 즈음 소주는 세 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적당한 취기 속에서 강성원이 문득 목소리를 깔았다.

“내가 속한 강력 2팀에서 요즘 내사 중인 게 하나 있어. 우리 팀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팀장님을 졸라서 내가 개인적으로 맡은 사건이기도 하고.”

“뭔데 무겁게 분위기를 잡아? 몸무게도 별로 안 나가는 것이!”

강성원의 표정이 너무 가라앉아 보여서 지태는 썰렁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강성원은 웃지 않았다.

“그게 사실은 우리 둘하고도 관련이 있는 놈이야.”

“……?”

“타워파!”

‘음!’

지태는 속으로 앓는 소리를 냈다.

“지난번에 너 칼 맞은 거, 그리고 나를 습격한 것 때문에 놈들을 파고 있던 거냐?”

“시발점은 그거였지만, 지금은 꼭 그 때문만은 아니고. 실은 얼마 전에 제보가 하나 들어온 게 있어. 회사를 놈들한테 통째로 털렸다는 친구!”

“그게 누군데?”

지태는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어서 다그치듯 물었다.

“송민철이라고, 얼마 전까지 럭키문이라는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대.”

“송민철?”

“왜, 아는 사람이야?”

지태는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낮은 신음성을 흘리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긍정의 뜻을 강성원에게 심어주었다.

잠시 후 지태는 송민철과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털어놓았다.

강성원은 듣는 내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일이 있었음을 알고는 경악했다.

“허, 시발! 완전히 막가파네, 이 새끼들!”

“내가 이런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는 건 네가 이 사건에서 손을 뗐으면 해서야. 그 새끼들은 대책 없이 그냥 섣불리 건드렸다간 오히려 되치기를 당해. 너까지 위험에 빠질 거라고.”

“시발, 그러니까 형사라는 새끼가 겁먹어서 손 놓고 있으라고?”

“당분간만!”

“당분간? 그게 언제까진데?”

지태는 대답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언제라고 날짜를 못 박을 수가 없는 까닭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가 좀 더 틀을 잡아나갈 때까지만 참아줘.”

“지태야, 이미 늦었어. 타워파 새끼들도 벌써 눈치를 챘을 거다. 그동안 내가 좀 무리하게 쑤시고 다닌 경향이 있거든.”

“어디까지 건드렸는데? 설마 송민철이 살아있다고 흘린 건 아니지?”

“인마, 내가 짱구냐? 그런 걸 흘리게. 이 새끼가 나를 무시해도…….”

강성원은 자신을 무시하는 지태가 어이없다는 듯 흘기면서 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말이 헛나갔음을 뒤늦게 깨달은 지태가 계면쩍게 입맛을 다셨다.

“성원아, 나 잠깐 밖에 나가서 전화 한 통만 하고 올게. 여긴 너무 시끄러워서.”

식당 안의 소음을 핑계로 댄 것은 이 민망한 분위기를 잠시 걷어내려는 지태의 의도였다.

그것을 왜 모르겠는가.

지태와는 죽마고우나 다름없는 사이인 것을.

강성원은 뒤끝이 없는 자신을 알리려는 듯 웃는 낯꽃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천천히 다녀와. 그동안 미뤄둔 술잔이나 비우고 있을 테니까.”

* * *

- 금방 헤어져놓고선 무슨 일로?

통화가 연결되자 이돈두가 의아한 듯 물었다.

“다른 게 아니고……. 송민철이 아직 데리고 있냐?”

- 송민철이? 그럼 당연히 데리고 있……. 왜?

뜬금없이 물어오는 지태의 말투가 이상한 듯 이돈두는 말을 맺지 못한 채 되물었다.

“그니까 데리고 있어, 없어?”

거듭 다그치자 이돈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누군가를 불렀다.

곧 ‘야! 송민철이 지금 어딨어?’ 하는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 뭐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놓쳤었다고? 근데 나한텐 왜 보고를 안 했어?

누군가를 혼내는 듯한 이돈두의 목소리에 지태가 얼른 끼어들었다.

“돈두야!”

- 어!

“애들 너무 나무라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 말해봐.

“송민철이 잠깐 밖으로 빠져나온 사이에 아무래도 광수대에 제보를 넣은 것 같아. 기획사를 눈뜨고 빼앗겼으니 억울하기도 하겠지.”

- 시발 놈, 가지가지하고 있네. 지금 회사를 잃은 게 중요해. 살아있다는 게 노출되면 이번엔 진짜로 뒈질지도 모르는 판국에…….

“암튼 아직까지 저쪽에서 송민철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몰라. 제보를 받고 내사에 들어간 사람이 다행히 내 친구거든.”

- 아, 광수대에 있다는 그 형사?

“그래. 얼마 전부터 타워파 쪽을 좀 쑤시고 다녔나봐.”

- 그럼 그 새끼들 이미 눈치챈 거 아냐?

되묻는 이돈두의 말에 지태는 쓴맛을 다셨다.

조금 전 그 부분 때문에 강성원과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야! 서울경찰청 광수대 형사가 그렇게 짱구 대가리겠냐? 더구나 내 친구가 말이야.”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해대는 격이다.

지태는 괜히 이돈두에게 쏘아댔다.

이돈두가 염치없다는 듯 흐흐 웃었다.

- 그 친구랑 이야기 다 끝났으면 넘어와라. 함께 술 한잔하게.

“건달이라면 학을 떼는 친구야. 너를 보는 순간 없는 죄도 만들어서 수갑 채우려고 할 거다.”

- 아, 시발! 됐다 그래!

지태는 피식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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