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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67화 (167/272)

167화. 우려했던 현실(2)

트럭들의 전조등이 차례로 꺼져갔다.

잘된 일이다.

전조등에 노출되면 불리한 것은 이쪽이 될 것이다.

그것까지는 미처 명령을 내리지 못했는데, 후안이 스스로 알아서 조치를 취한 것 같았다.

산기슭에서 굴러오던, 얼핏 봐도 3미터는 족히 되고도 남음직한 통나무와 크고 작은 바윗돌의 기세는 곧 멈췄다.

도로가 막혀 수송 행렬은 어차피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믿어서일까.

괴한들이 이제는 산비탈을 내려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나 그들이었다.

검문소에서 보았던 경비대대의 병력들과 똑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다만 다른 것은 얼굴을 검은 헝겊으로 다들 감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태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필리핀 용병들이 산개하는 모습을 흘깃 돌아보았다.

특수부대에 ‘특수’라는 명칭이 괜히 붙어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들의 행동 양식은 아주 민첩했고 확실히 도드라져 보였다.

매일 실전 같은 훈련을 통해 길들여졌던 그들은 위기가 닥치자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반면에 이돈두와 친위대들은 아직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조직의 정예들답게 겁을 집어먹거나 허둥대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든 행동들이 어설퍼보였다.

지태가 그들 쪽으로 달려가는 사이에 어둠 저편에서 괴한들의 대가리로 보이는 사내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두 손을 머리에 들고 기어 나와라! 너희가 밀수품을 카친 반군 쪽에 넘기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그게 아니라면 당당하게 걸어 나와서 검문에 응해라. 그럼 모두가 무사할 수 있다.”

한마디로 개소리였다.

저들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얀마 연방정부군이 아니다.

지태가 운반 중인 물건들을 강탈해 가려는 그야말로 강도였다.

“어디서 수작질이야, 개새끼들아! 너희 놈들이 강도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내가 누군지 알려줄까?”

아론이었다.

그는 자신의 SUV 뒤편에서 겨우 고개를 내민 채 외쳤다.

“네놈이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한국에서 온 쥐새끼지!”

저쪽 편의 사내가 조소를 날려 왔다.

아론을 지태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뻐큐!”

아론이 욕설로 응수를 날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타타탕.

파바박.

자동소총을 긁어대는 소리와 함께 아론의 SUV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총소리만큼이나 요란한 아론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악, 시발!”

“아론!”

“괜찮아요, 한!”

안전하다는 아론의 응답이 있은 직후 지태는 워키토키를 꺼내들었다.

“후안!”

“예, 보스!”

“일단 대응 사격은 피하고 반반씩 팀을 나눠서 한쪽은 산기슭으로 우회하고 다른 한 팀은 밭고랑을 타고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라고 해. 사인을 주면 동시에 공격하는 것으로!”

“예!”

도로 왼편 아래는 1미터쯤 되는 경사지였다.

그곳에 놈들이 매복하고 있지만 않는다면 반대 방향으로 가서 자리를 잡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쪽에서 대응하지 않자 놈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녀석이 어둠 속에서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태 쪽에서 미처 무장하지 못한 것이거나 겁을 집어먹은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그 지휘관 뒤편으로는 대략 스무 명이 넘는 병사들이 병풍을 이루고 서있었다.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 좋은 말로 할 때 두 손 머리에 올리고 기어 나와라!”

이번엔 아론도 조용했다.

괜히 대꾸를 했다가 호되게 당하고 난 뒤라서 다시 응수하기가 겁이 난 듯했다.

지태의 옆으로 이돈두가 거의 기다시피 다가왔다.

“시발, 이거 장난 아닌데. 사격장에서 듣던 총소리하곤 차원이 다르다. 진짜 살벌한데.”

“이게 네가 원하던 거 아니었냐? 이런 걸 평소에 꿈꿨다면서?”

“넌 이 와중에도 농담이 나오냐?”

이돈두가 지태를 쳐다보았다.

지태는 눈을 흘기고 있을 게 분명한 이돈두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전방을 쳐다보았다.

지휘관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래도 전혀 반응이 없으니 확실히 이쪽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두려움에 옴짝달싹 못 하는 것으로 확신하는 것 같았다.

지휘관과 스물 남짓 되는 병력들이 움직이자 산기슭 쪽에서도 동시에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핏 보기에 그 인원들도 대략 스물 남짓.

“흠!”

지태는 낮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긴장이 녹아든 소리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크게 당황하는 모습은 아니다.

“돈두야!”

“어?”

“총격전이 벌어지면 무조건 머리를 박고 일단은 숨어 있어.”

“시발! 나더러 쪽팔리게 짱 박혀 있으라고?”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잔 얘기야. 괜히 가오 잡는다고 대가리 들이밀다가 벌집이 될 수도 있으니까.”

“끄응.”

이돈두가 못마땅하게 앓는 소리를 냈다.

지태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나중에 저 새끼들이 시야에 확실히 들어오거든 쏴버려. 명중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때 비로소 쏘란 말이야.”

“알았어!”

이돈두가 이번엔 순순히 대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괜히 자존심이나 내세우면서 지태와 다툴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는 아무래도 지태가 전문가일 테니까 믿고 따르려는 것 같았다.

- 보스!

그때 워키토키를 통해 후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

- 다들 위치 잡았습니다.

“오케이. 그럼 일단 유효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내가 먼저 사인을 줄 테니까 일제히 공격하는 걸로.”

- 예, 보스! 초장에 수류탄 몇 방 먹이는 걸로 시작하겠습니다.

지태는 무전이 끝난 워키토키를 조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사이에 지휘관 녀석의 모습은 약 50보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지태가 입술 끝을 비틀며 카운트를 세었다.

조그만 더, 조금만 더.

“이 쥐새끼들! 안 기어 나올 거냐?”

탕, 탕, 탕.

지휘관 녀석이 어둠 속 아무 곳에나 대고 권총을 쏴댔다.

그래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갈겨! 쥐새끼 한 마리 남기지 말고 전부 다 쓸어버…….”

놈의 명령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쳐 든 자세에서 지태의 권총이 퍼뜩 앞으로 뻗어졌다.

타앙.

“컥!”

큰소리를 치던 지휘관 녀석이 복부를 감싼 채 앞으로 비틀거렸다.

그 위로 다시 한 발의 총알이 날아가서 박혔다.

이번엔 정확히 녀석의 머리였다.

털썩.

지휘관은 마지막 비명을 내지를 새도 없이 도로 위로 고꾸라져 더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반사적으로 병사들이 사격을 가해왔다.

두두두두두.

타타타타탕.

여명이 찾아오기 직전이다.

하루 중에서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전조등마저 꺼둔 상태여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병사들은 대충 가늠하고는 총을 마구 쏘아댔다.

그러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산개하려 했다.

휘익, 휙.

그 위로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산기슭에서였다.

그리고 곧이어 도로 아래 논두렁에서도 날아왔다.

꽝, 꽈꽈꽝.

후안이 무전으로 약속했던 수류탄이었다.

“으억.”

“악!”

미처 산개하지 못한 병사들과 산기슭을 따라 전진해 오던 병사들이 처절한 비명을 질러가며 곳곳에서 픽픽 쓰러져 갔다.

순식간에 십 수 명이 몰살을 당한 것이다.

생각지 못한 공격에 잠시 주춤하던 병사들의 총구에서 다시 불이 뿜어져 나왔다.

그들 총구에서 나오는 불빛을 표적 삼아 후안이 이끄는 필리핀 용병들의 총구도 동시에 열렸다.

타타탕.

타타타타타탕.

두두두두두.

철판 두드리는 소리와 콩을 볶는 듯 요란한 총격이 피아간에 격렬하게 이어졌다.

화력 면에서야 자동소총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권총 사격은 상대의 움직임에 대응이 빠르고 정확도 면에서도 뛰어나다는 이점이 있다.

지태는 자세를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 도로의 둔덕을 따라 앞으로 전진해갔다.

이제는 어둠 속에서도 적들의 윤곽이 뚜렷하게 들어왔다.

그들의 실루엣이 마치 검은 표적지와 같았다.

탕, 탕, 탕.

지태는 시야에 들어오는 족족 놈들을 쓰러뜨렸다.

한 명당 단 한 발의 총알이면 충분했다.

그 뒤를 이돈두와 윤학수, 그리고 친위대들이 받쳐주고 있었다.

실사격장에서의 사격 훈련이 나름 헛되지는 않았는지 꽤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고 있다.

피아간 교전이 이루어진 지 어느덧 20여 분 정도가 흘렀다.

총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지태 쪽에서 권총 몇 정쯤은 무장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처럼 자동소총에 수류탄까지 무장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경비대대 병사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이들 수송 행렬을 제압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쯤으로 여기고 방심했던 결과였다.

약 오십 명에 가까운 병력들 중 이제 간헐적으로라도 대응 사격을 해오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도로 아래 경사지와 산기슭을 돌아 우회했던 후안과 필리핀 용병들이 도로 위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아직은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여차하면 갈겨댈 요량으로 자동소총을 잡은 손에 긴장감을 더했다.

지태는 윤학수를 돌아보았다.

“학수!”

“예, 형님!”

“애들 시켜서 트럭의 헤드라이트 좀 이쪽으로 비추게 해.”

윤학수는 아우들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 트럭 쪽으로 달려갔다.

곧 환하게 전조등이 밝혀지자 도로 위의 상황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아직 숨이 붙어 꾸물대는 병사가 두엇 보였지만, 걸어오면서 둘러보던 후안에 의해 곧 확인 사살되었다.

트럭 기사들을 제외한 모든 인원들이 한곳으로 모였다.

지태는 그중 빠진 인원은 없는지 일일이 숫자를 세며 죽 훑어보았다.

다행히 유명을 달리한 인원은 없었다.

하지만 필리핀 용병들 중 두 명이 총상을 입은 듯했고, 친위대원 하나도 허벅지에서 피가 흘렀다.

친위대 쪽보다 용병들에게서 총상이 더 많이 나온 것은 미얀마 병사들이 초반에 그들에게 사격을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수류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총구가 본능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당연지사.

지태는 친위대보다 필리핀 용병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두 명 중 한 명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까닭이었다.

복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후안!”

“예!”“자네가 부상자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지. 가다가 시내가 나오면 우선 응급치료부터 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즉각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다.

“왜?”

“저, 보스…….”

“뭔데?”

“이 친구들 당장 죽을 만큼은 아닙니다.”

“그걸 말이라고!”

지태가 짐짓 찡그리는 얼굴에 약간의 노여움까지 담았다.

“그보다는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뭔…….”

지태가 되묻다가 멈칫했다.

지금 후안이 말하려는 것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같을 것이라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후안은 내 말대로 해!”

지태가 약간은 격앙되었던 목소리를 다시 부드럽게 누그러뜨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보스. 이런 일을 하자고 우리들을 고용한 게 아니겠습니까. 제가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자 아론이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지금 두 사람,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 겁니까?”

그에게 일일이 설명해줄 시간이 없었다.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별일은 아니고, 뒷수습을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럼 내가 부상당한 인원들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죠. 나야 미스터 한이 하려는 일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듯하니까.”

자신은 도움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렇듯 눈치 빠르게 말귀를 알아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도움이 되는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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