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57화 (157/272)

157화. 매를 버는구나(4)

“자, 빨리 서둘러!”

운전석의 문을 잡고 선 이현욱의 재촉에 양쪽에서 송민철을 부축하고 있던 허영만과 송영완이 그를 운전석에 태웠다.

물론 그것은 송민철 소유의 외제 승용차다.

송민철에게 안전벨트까지 단단히 채운 다음 이현욱은 문을 꽝 닫았다.

“잘 살펴봐라. 누구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변 감시를 맡은 임경남을 돌아보며 이현욱이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없어. 어서 강물에 처박기나 해.”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 멤버가 승용차의 뒤쪽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기어를 중립에 놓은 상태에서 승용차를 강물 쪽으로 힘껏 밀었다.

스르르릉.

풍덩!

천천히 미끄러지던 승용차는 탄력을 받자 곧 빠르게 굴러가며 강물을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어딘가에 걸렸는지 승용차는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트렁크 부분이 물 밖으로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괜찮아! 그 정도면 됐어.”

임경남이 말했다.

굳이 송민철의 시체를 숨길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발견이 된다 하더라도 술과 마약에 취해 운전 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할 테니까.

이제는 이 장면을 누군가 목격하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는 일만 남았다.

양재동 아지트의 네 멤버는 이현욱의 SUV에 오르자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

그와 동시에 지태와 이돈두가 쉼터 쪽으로 달려 내려왔다.

“야, 누가 빨리 저 새끼부터 꺼내.”

이돈두이 외쳤지만 친위대원들은 머뭇거렸다.

보스의 명령을 따르고 싶어도 다들 수영에는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거나 나무랄 시간이 없었다.

보다 못한 지태가 겉옷만 벗어던진 상태로 곧장 물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이돈두 역시 바쁘게 그의 뒤를 따라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자정을 넘긴 시각이다.

건식 사우나 안에는 타월 한 장으로 아랫도리만 겨우 가린 지태와 이돈두가 나란히 앉아 있다.

“이 새끼들, 내일 당장 수영부터 의무적으로 배우라고 해야겠다. 가오 떨어지게 이 꼬락서니가 다 뭐냐!”

벌써 감기 기운이 도는 듯 이돈두는 코를 벌름거리더니 이내 재채기를 해댔다.

“솔선수범 몰라? 겨우 그까짓 걸 가지고 그놈의 가오 타령은!”

지태가 한쪽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하긴! 그 덕분에 살려내긴 했으니까.”

이돈두는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 발달된 두 사람의 근육이 고온에 못 이겨 흘러나온 땀으로 번들거렸다.

이돈두가 조소를 띤 얼굴로 돌아보았다.

“그 새끼들, 지금쯤 아주 천하태평이겠지?”

“그럴지도! 눈엣가시를 제거했다고 파티를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지.”

“상놈의 새끼들! 아주 매를 벌어요, 매를!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우리가 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태가 픽 웃고는 자꾸만 눈 속으로 흘러드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만 일어나자. 이젠 더 나올 땀도 없겠다.”

“그럴까? 이제 그렇담 모자란 수분을 보충하러 가야겠지?”

이돈두가 따라 일어서며 히죽 웃었다.

“그래, 그러잖아도 나 역시 오늘은 술 생각이 간절하다.”

지태가 땀으로 번질거리는 이돈두의 어깨를 툭 쳤다.

* * *

다모아의 서울 매장 1호점은 강서구로 결정이 났다.

마곡 신도시 내에 마침 적당한 매장 자리 하나가 나온 거다.

8층 높이의 빌딩인데 1,2층을 다모아에서 임대하기로 건물주와 이미 계약을 마쳤다.

실 평수가 1,2층을 합쳐 도합 600평이었다.

문제는 이 넓은 매장을 과연 어떤 제품으로 얼마나 화려하게 채우느냐 하는 일이다.

대형 가전은 완전히 배제한 채 중소형 가전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 상품만을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다.

소비자들이 자칫 싸구려 중국산 물건과 부도난 상품만을 헐값에 파는 상설 매장쯤으로 오해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앞섰다.

영업 개시 초반에 어떻게든 소비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것이 이번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비자들의 소문과 변덕은 무섭다.

싫증이 나지 않도록 다양하고도 풍성한 상품들을 구비하고 아울러 가격까지 만족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와 오랜 시간 편안한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일단 호기심에 찾아온 소비자들의 혼을 쏙 빼놓아야 매장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고, 그것은 곧 영업 매출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박 팀장님!”

매장을 돌아보던 지태가 박찬익 팀장을 불렀다.

“예, 대표님!”

“우리 다모아의 주 소구층이 젊은 세대들이죠?”

“예. 아무래도 기존 대형 가전전문매장과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주 소구층을 젊은 세대로 잡았습니다만.”

“그럼 저기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쪽 말입니다.”

“예.”

“거기에 작은 카페를 하나 꾸며 놓으면 어떻겠습니까? 연인들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멋진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분위기 좋은 포토존도 만들고.”

“꽤 괜찮은 생각입니다만, 저 아까운 자리를 굳이……. 우리가 주력으로 내세우는 상품을 거기에 전시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일단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올 수 있는 매장을 만드는 게 더 중요하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그 다음 일이고요. 찾아주는 소비자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제품을 전시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거 아닙니까?”

동행한 이동구 사장이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 팀장! 내 생각에도 한 사장님의 말씀이 옳은 거 같아. 그대로 진행합시다.”

박찬익이 서서히 입술 끝을 끌어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설득력 있는 말이어서 이미 공감하는 바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씀 같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어요. 카페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신선한 아이템도 추가로 개발해서 함께 추진해 보겠습니다.”

이쯤 되면 꼴통에 독고다이로 소문난 박찬익의 의식 구조도 꽤 많이 개조가 된 느낌이다.

아니, 한스라는 조직에 이미 녹아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워낙 예측 불가한 인물이라서 언제 돌변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서울 1호점을 시작으로 부산, 인천, 대전, 대구 등 광역도시의 매장들이 완성됐다.

한스전자에서 생산하는 50여 가지의 소형 가전제품들 외에도 참여를 희망하는 업체가 현재까지 200여 곳을 넘어 총 입점 예상 품목은 400여 개가 넘는다.

두 개 이상의 제품을 동시에 출시하고 있는 곳도 여러 업체여서 그것을 기반으로 추정해본 수치였다.

중국 등 동남아에서 생산된 제품은 비록 OEM으로 국내에 들여왔다 해도 전부 배제하기로 했다.

국내에서 자국민이 제조한 순수 ‘Made in Korea’ 제품으로만 매장을 꾸려가려는 것이다.

그렇게 다모아 매장의 론칭 시점을 약 한 달여쯤 앞둔 어느 날이었다.

지태는 한스의 전 계열사 임원진을 한곳에 모았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박수 소리가 대회의실을 요란하게 채우고 있었다.

한강일보 지령 10000호 특집으로 기획한 ‘올해 주목해야 할 핫한 인사 10인’의 인터뷰 중에서 가장 많이 주목을 받은 것은 지태였다.

특히 젊은 독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이 일자 다른 언론 매체에서도 앞다투어 인터뷰 요청을 해오는 실정이었다.

그중엔 국내 유명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에서도 초대 손님으로 모시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온 상태다.

지태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부끄럽게 왜들 이러십니까.”

“부끄럽다뇨? 우린 자랑스럽기만 하구먼.”

이동구 사장이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듯 지태의 손짓을 되받아 자신도 힘껏 내저었다.

그러자 이 틈을 노렸다는 듯 박찬익이 얼른 끼어들었다.

“송석기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엔 꼭 출연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곧 론칭하게 될 다모아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까요. 특히나 젊은 층들이 가장 좋아하고 신뢰하는 앵커가 아닙니까. 일부러 큰 돈 들여 광고도 할 판인데요.”

“이거 박 팀장님까지!”

“그리고 대표님께 제안할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거 승낙을 안 하시면 저도 한스에서 손을 뗄 겁니다.”

“뭔데 미리부터 겁을 주십니까? 난 우리 박 팀장님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서 아직도 불안해요.”

지태는 농담처럼 내뱉었지만, 사실 그중에 진심이 7할 이상은 되었다.

“한스그룹 이미지 광고하고 다모아 론칭 광고에서 대표님을 모델로 쓰려고 합니다.”

“예엣?”

“모르셨습니까? 대표님은 여느 어설픈 연예인보다도 인지도가 훨씬 더 높은 사람입니다. 비싼 돈 들여 검증되지 않은 모델을 내세우느니 차라리 인지도 면에서 확실한 대표님을 간판으로 내세우자는 겁니다. 무엇보다 아직은 생소한 우리 한스그룹과 다모아라는 기업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횝니다. 또 대표님만큼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모델도 없고…….”

박찬익은 이것만큼은 절대 거부할 수 없게끔 대차게 밀어붙였다.

다시 또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으로 게임은 이미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태는 느닷없는 박찬익의 제안에 떫은 입맛을 다셨지만, 속으로는 어느새 그의 제안을 따르겠다고 결심하고 있었다.

* * *

- 친구야! 어제 정말 멋지더라. 인터뷰를 하는 걸 보니까 말빨로 먹고 살아도 되겠더라.

박찬익이 책상에 두고 간 TV 광고용 콘티 시안을 들여다보던 중에 이처럼 호들갑을 떨며 전화를 걸어온 것은 이돈두였다.

어젯밤 송석기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나 지금 바빠. 그것 때문에 전화한 거라면 나중에 통화하자.”

- 야, 벌써 튕기는 거냐? 하룻밤 사이에 스타가 되니까 이제 나 같은 건 눈에도 안 보인다 이거지?

뱉어 놓고 보니 우스웠던가 보다.

이돈두가 털털하게 웃어 젖혔다.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별 것 없으면 좀 있다가 통화하자니까.”

- 그러세요, 그럼. 스타께서 나처럼 한가하실 리가 있나. 나중에 꼭 전화 줘.

“그래. 아, 참!”

- 어!

“송민철이는 좀 어때?”

- 이제 제법 안정을 찾은 거 같다더라.

“아직 파주에 있지?”

- 네 말대로 당분간 서울 쪽엔 얼씬도 말라고 했다. 그리고 제 맘대로 나돌아 다니지도 못해. 우리 애들이 24시간 껌딱지처럼 붙어 있으니까.

“알았어.”

- 참, 나도 하나만 묻자.

“뭔데?”

- 우린 언제 미얀마로 넘어가는 거냐?

지태가 털털하게 웃었다.

‘우리’라는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 때문이었다.

지태의 귀에 그 소리가 이젠 제법 자연스럽고 정겹게 들렸다고나 할까.

“준비가 얼추 다 끝나 가니까 적어도 한 달 뒤엔 넘어갈 수 있을 거다.”

- 준비가 끝났다면서 무슨 한 달씩이나!

“선적까지 이래 저래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 또 화물선이 미얀마로 넘어가는 시간도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야지.”

- 맞다. 우린 비행기로 가는 거지?

이돈두는 무슨 크나큰 깨우침이라도 얻은 듯 짐짓 탄성까지 내뱉었다.

“암튼 끊자. 퇴근하면서 연락할게.”

지태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퇴근하면서 연락하겠다는 그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다.

이돈두와 통화를 마치고 나서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액정 화면에 찍힌 번호는 생소한 유선 전화번호였다.

“예, 한지탭니다.”

- 안녕하십니까? 여긴 부경그룹 회장님 비서실입니다.

순간 지태의 얼굴 근육이 납덩이처럼 차갑게 굳어졌다가 다시 펴졌다.

부경그룹 회장실에서 전화를 걸어온 이유가 뻔해서였다.

“혹시 회장님께서 절 보자고 하십니까?”

- ……!

지태가 먼저 치고 나가자 전화를 걸어온 비서는 잠깐 할 말을 잊은 모양이었다.

머뭇거리던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 오늘 저녁 회장님과의 식사, 괜찮으시겠습니까?

“장소와 시간을 알려 주십시오. 시간 맞춰서 나가겠습니다.”

비서는 곧 다시 연락을 주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 비서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명시한 문자를 보내왔다.

지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번에 지은이 예고했던 말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상황에 부닥치게 되자 처음 먹었던 마음과는 사뭇 달랐다.

벌써부터 가슴이 착잡해지고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처럼 답답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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