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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55화 (155/272)

155화. 매를 버는구나(2)

날이 환한 대낮에 모이기는 아지트를 만든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구나 다른 날도 아니고 토요일 오후라니.

양재동 빌라에는 현재 임경남을 제외한 3명의 멤버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임경남은 기재부 장관과 오찬 약속이 잡힌 임상만 회장을 수행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을 봐서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다.

세 사람이 모여 앉은 소파 옆에는 사냥총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도 하나같이 사냥을 위한 엽사의 복장이었다.

다만 사냥을 위해 모였다고 하기엔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무거웠고 얼핏 분노가 느껴졌다.

그때 허영만이 이현욱을 돌아보았다.

“그 새끼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거다. 어서 전화 넣어 봐.”

“어차피 애들을 보냈는데, 굳이 뭘…….”

구시렁대면서도 다른 한편 그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이현욱이 느릿하게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 * *

띠리리리릿. 띠리리리릿.

이윽고 기다리던 전화가 왔다.

이제나 저제나 하고 애를 태우며 기다리던 놈들의 연락.

하지만 막상 전화가 걸려오자 송민철은 서둘지 않았다.

그는 몇 초 정도를 느긋함으로 무장한 여유를 부리다가 천천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분명 갑이라고 착각하는 모습.

“아, 이현욱 사장님!”

- 너 지금 회사지?

“그럼요. 그러잖아도 전화가 걸려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밖에서 오늘 따라 까치가 크게 울어대는 걸 보니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도 같고 해서요.”

송민철이 느물느물 웃어 대자 폰 너머에서도 예의 비슷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송민철은 그의 웃음소리에서 왠지 모를 비릿한 뉘앙스를 느꼈다.

불길한 생각이 와락 달려들며 뒤통수를 후리는 듯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이현욱의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 오늘 우리랑 사냥이나 가지. 오랜만에 신선한 밤공기를 마시며 따끈따끈한 사슴피도 함께 나눠 마시고 말이지. 송 대표의 제안은 그 맑은 정신으로 그때 다시 들어 보자고! 어때?

불길한 느낌은 이제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러자 이렇게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송민철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옆에 던져 놓았던 슈트부터 챙겨 들었다.

그리고 이제 막 일어서려는 찰나였다.

벌컥 현관문이 열렸다.

곧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내들 중에는 낯익은 얼굴도 보였다.

그저께 집무실에 쳐들어와 생선회칼을 책상에 꽂아두고 갔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송민철이 알기로 놈은 타워파의 행동대장 유성두였다.

순간 눈앞이 먹물을 풀어놓은 것처럼 깜깜해지고 두 다리는 낙지 다리를 이식받은 것처럼 힘없이 가라앉으며 저절로 주저앉고 있었다.

‘시발, 끝장이다!’

* * *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이었다.

물론 7시 무렵에 지은과 저녁 약속이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아무런 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1년이었다.

늘 긴장의 연속이었고 매일매일이 가슴 졸이던 나날이었다.

그래서 모처럼 맞는 휴일의 달콤한 휴식은 산삼 열 뿌리와도 같은 보약이었다.

점심을 먹으라고 어머니가 깨우지만 않았어도 그동안 밀린 잠을 더 잤을지도 모른다.

어젯밤 11시 무렵에 잠이 들었으니 내리 열세 시간을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지태는 여전히 잠이 고팠다.

지은을 만나기 전까지는 충분히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랬는데,

뷔이익, 뷔이익.

진동으로 놓아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방해받고 싶지 않아 뒤집어 놓을까 하다가 발신자를 보고는 이내 생각을 바꿨다.

그럼에도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받는 것이 싫었다는 투로 지태는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뜸 물었다.

“왜?”

- 지금 뭐하고 있는데?

“모처럼 늘어지게 잠이나 자려고.”

- 햐, 팔자 한번 좋네. 잔소리 말고 당장 옷 입고 나와라. 지금 나랑 어디 좀 가자.

다짜고짜 나오라는 이돈두의 말에 지태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좀 쉬고 싶다니깐 그러네.”

- 그럼 푹 쉬든가. 나오기 싫다는데 내가 억지로 불러낼 필요가 없겠지. 그래, 낮잠이나 푹 주무시던가!

이돈두의 말투에서 묘한 기운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네놈이 손해라는 뉘앙스.

이럴 땐 슬그머니 꼬리를 말아 주는 미덕도 필요하다.

“뭔데?”

이제는 목소리를 좀 더 나긋하게 만들며 물었다.

곧 터져 나오는 이돈두의 설명에 지태는 순간 졸음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 * *

“이봐, 송 대표! 왜 그렇게 쫄았어? 어서 이리 와서 앉으라니까 그런다.”

허영만이 피식 웃으며 손짓했다.

그러나 송민철은 허영만을 쳐다보는 대신 현재 그들과 나란히 앉아있는 강창근에게 시선이 박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무서운 놈은 바로 타워파의 보스인 강창근이었다.

“왜 날 보는 거야? 허 상무님 말씀대로 이리 와서 앉아.”

강창근마저 손짓을 해대니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송민철은 본능적으로 뒤를 힐끔 한번 돌아보았다.

즉각 말을 안 들었다간 뒤에서 버티고 서있는 유성두가 행여 등에다가 회칼이라도 꽂을까 두려웠다.

“야, 성두야!”

“예, 회장님!”

“송 대표가 자꾸 겁을 먹잖아. 넌 인마, 왜 점잖은 사람한테 겁을 주고 그래?”

강창근이 짐짓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서 유성두를 나무랐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시정하겠습니다.”

유성두는 기계처럼 허리를 굽히고는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송민철은 후들거리는 걸음걸이로 겨우 다가왔다.

강창근이 송영완의 옆자리로 조금 옮겨 가며 그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입가에 살짝 조소를 띤 이현욱이 문득 시간을 확인했다.

임상만 회장과 헤어진 뒤 임경남이 곧장 이곳으로 오겠다는 연락을 해온 까닭이었다.

그들은 지금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자신들의 리더나 다름없는 임경남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허영만이 문득 이현욱을 흘깃 쳐다보았다.

“우리 송 대표 복장이 좀 그렇다. 사냥을 가는데 불편한 슈트 차림으로 갈 수야 없잖아.”

말이 된다는 듯 이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봐, 송 대표!”

“예, 옛?”

이제 송민철은 제 이름만 불러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그래, 자꾸? 모처럼 기분 전환 차원에서 사냥을 가자는 거야. 여기 강 회장도 그래서 불렀어. 단합대회 겸 밤에 사냥도 하고 별장에서 화끈한 술 파티도 열고…….”

이현욱은 여전히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사람 좋은 미소를 날렸다.

“아, 예. 근데 워낙 느닷없이 와서 말입니다. 제가 조금 있다가 급한 약속이 있는데…….”

“어허, 자꾸 또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현욱이 미소 짓던 얼굴에서 돌연 짜증스러운 표정을 연출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럼 전화라도 한 통…….”

“나중에 약속 시간 다가오면 그때 해줘. 그래야 피치 못하게 약속을 못 지키는 것처럼 보이잖아. 사람이 좀 융통성이 있어야지. 아, 그러지 말고 저쪽 작은 방에 가서 아무 옷이나 편안한 걸로 갈아입고 와.”

이현욱이 턱짓으로 거실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방을 가리켰다.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강창근이 눈을 부라렸다.

송민철은 불에 덴 듯 놀라며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촬영하는 애들이 몇이야?”

뒷좌석에 지태와 나란히 앉아 있던 이돈두가 물었다.

윤학수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반쯤 돌린 채 대답을 주었다.

“다섯 명입니다, 형님.”

“놈들 차량 번호까지 다 찍으라고 했지?”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형님.”

이돈두가 지극히 만족스러워하며 지태를 돌아보았다.

“이 정도면 나도 꽤 세심한 남자다 그쟈?”

“무슨 소리가 듣고 싶어서 공치사를?”

“하핫. 아니 그냥 그렇다고!”

이돈두가 계면쩍다는 듯 헛웃음을 삼켰다.

그러다가 생각하니 좀 억울한 기분이 드는 모양이다.

지태에게 못 마땅하다는 듯 한마디를 쏘아 댔다.

“야, 빈말이라도 너 참 잘했다고 하면 어디 덧나냐?”

지태가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쓴맛을 다셨다.

서울과 양양을 잇는 고속도로였다.

럭키문 엔터테인먼트에서 송민철을 감시하고 있던 친위대로부터 연락이 온 뒤로 이돈두가 직접 이 상황을 지휘하고 있었다.

지난번 럭키문을 들이쳐 송민철에게 치도곤을 놓은 다음 계약서를 몽땅 다 빼앗아왔다고 했을 때 지태는 놈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발밑에 두고 양재동 패거리들이 느긋하게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었는데 오늘 딱 레이더망에 걸려든 것이다.

놈들이 서울을 벗어나 어디론가 송민철을 끌고 간다는 것은 쥐도 새도 모르게 놈의 입을 막아 버리겠다는 의도.

“아무래도 저 새끼의 명줄은 오늘로 마지막이겠네.”

이돈두가 혼잣말처럼 내뱉었지만 자신에게 묻는 것이나 같아서 지태가 흘깃 돌아보았다.

“그러고도 남을 새끼들이지.”

한순간의 치욕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죽이려하는 임경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신뿐만 아니라 멤버들 모두의 운명이 걸린 사항이었다.

모르기 해도 송민철은 오늘 결코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어설펐다.

조직 애들을 시켜 청부살인을 하려는 것치고는 왠지 좀 미심쩍은 부분들이 많아 보였다.

굳이 양재동 멤버들이 자신들을 노출시켜 가면서까지 송민철을 처리하려는 이유, 지태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태가 가느다란 신음을 내뱉을 때 이돈두의 툴툴거림이 다시 들려왔다.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는 거야, 이 새끼들!”

그러자 윤학수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설악 IC로 빠지고 있습니다, 형님.”

“설악 IC? 그럼 청평 쪽이잖아.”

“맞습니다, 형님.”

“시발, 공구리 쳐서 강물에 던져 버리려고 그러나?”

이돈두가 쓰게 웃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지태가 흘깃 돌아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설마 그런 무모한 짓까지…?’

지태는 속으로 고개를 내저었지만, 그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놈들인 까닭이다.

서울을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석양이 막 질 무렵이었는데 지금은 먹물 같은 어둠이 완전히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 * *

이곳이 어디쯤인지 궁금했던 송민철은 두려움 속에서도 겨우 고개를 쳐들었다.

빠악!

그 순간 두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녀석이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린 것이다.

“이 새끼 봐라? 얼른 대가리 안 박아?”

송민철은 반사적으로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았다.

얻어맞은 뒤통수에 뒤늦은 아픔이 찾아들었지만 그는 신음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오늘 자신은 결코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쯤은 양재동 아지트를 나와 멤버들의 고급 SUV가 아닌 검게 선팅이 된 봉고차에 올라탔을 때부터 이미 예견했다.

그래도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나 싶어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참인데, 고속도로로 접어드는 순간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희망이었던가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적당히 주물러놓는 선에서 끝내려고 했다면 굳이 이 먼 곳까지 자신을 끌고 왔을 리 없다.

더구나 양재동 멤버들이 총출동했다.

그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송민철은 이제 오한에 걸린 것처럼 바들바들 몸을 떨어댔다.

덜덜덜.

딸그락, 딸그락.

딱딱딱.

이제는 이빨까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며 딱따구리가 나무 쪼아 대는 소리를 내고 있다.

그때 봉고차가 문득 서행하는 느낌이 왔다.

‘목적지에 다다른 건가?’

그렇다면 이제 죽을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송민철은 서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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