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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49화 (149/272)

149화. 왜 이곳에 그들이?(1)

“그런 현실인데도 병사들은 끊임없이 우리 쪽으로 몰려들고 있어. 자진해서 입대를 한다는 말이야.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바로 사람답게 살기 위함이야.”

그는 이런 현상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카친족들의 소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설움인지를 설명했다.

“자비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버마족이 70%를 차지하는 게 미얀마야. 그런 자들이 석가모니의 말씀과는 다르게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자기네들과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핍박과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게 지금의 미얀마 현실이야. 그래서 살기 위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총을 잡은 거지.”

“……!”

“같이 어울려 살기 싫다면 우리끼리 살게라도 놔주라는 거야. 그래서 카친족 모두는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가면서까지 이렇듯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지. 우리 군 지도부는 아무런 대가없이 그들을 대신해 민중을 이끄는 것이고!”

쿤모 소장이 단호하게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었다.

지태가 조용히 술잔을 들어 한 모금을 삼켰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의 항변 중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물론 민중들 대부분이 쿤모 소장의 말처럼 인간다운 삶,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독립을 요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들이 아무런 대가없이 민중들을 이끈다고 하는 말은 속내가 뻔히 보이는 소리라는 게 지태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쿤모 소장을 비롯해 반군 지도부는 지금 이대로 미얀마 정부와 대치하고 있는 국면을 내심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이 권리와 부귀영화가 영원히 지속될 테니까.

겉으로는 모두 민중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한 치의 거짓 없이 순수한 목적만으로 무리를 이끄는 지도자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설령 초심은 그러했다손 쳐도 날이 갈수록 그 본질은 까먹고 사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봐 왔다.

그들이 나중에는 오히려 더 민중을 핍박하고 착취하며 독재로 가는 경우도 수없이 목격한 우리들이다.

“술자리에 초대해 놓고 너무 무거운 이야기로 흘렀구먼. 미안하네, 한 사장!”

쿤모 소장이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며 웃었다.

“괜찮습니다, 각하. 폐부를 찌르는 각하의 말씀, 감동적으로 들었습니다.”

이쯤 되면 아부의 달인, 표정 바꾸기의 달인이라 할 수 있겠다.

지태는 조금 전까지 속으로는 그렇듯 비웃었으면서도 겉으로는 스스럼없이 입에 발린 소리를 쏟아 내었다.

만족한 듯 껄껄 웃던 쿤모 소장은 잔이 비어 있는 사람들에게 술을 다시 채워 주었다.

대화의 상대가 지태에게만 쏠려 있는 게 미안했던 쿤모 소장이다.

그래서 아론과 후안에게도 인사치레 같은 질문을 하나씩 던졌다.

아론은 형식적인 답을 준 뒤 이 틈을 타서 자신의 속내에 감춰둔 흑심을 은근히 던져 봤지만, 쿤모 소장으로부터 코웃음과 함께 가벼운 면박만 받았다.

“자넨 너무 욕심이 많아. 지금 우리 때문에 자네가 누리는 것도 모자라다는 거야? 뭐, 광산 개발에 발을 담그고 싶어? 에끼, 이 친구야!”

아론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어 댔다.

그때 지태가 쿤모 소장을 조용히 불렀다.

“응! 말해 보시게.”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말해 보게. 대답이 가능한 선에선 뭐든 다 말해 주지.”

쿤모 소장이 흔쾌히 수락했지만, 지태는 잠시 망설였다.

괜히 이런 말을 꺼냈다가 자칫 부작용만 불러일으키는 게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괜찮아, 뭐든 편하게 말해 보라니까.”

쿤모 소장이 사람 좋은 얼굴로 끄덕였다.

지태가 낮게 호흡을 고른 후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쿤모 소장을 바라보았다.

“아까 낮에 라와 양 훈련장에서 이상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봤습니다.”

지태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쿤모 소장이 뭔가를 직감하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곧 지워냈다.

그러고는 시치미를 뗀 채 되물었다.

“이상한 군복이라니?”

“블랙 계열의 군복이었는데, 특수 부대원들 같았습니다만…….”

정확하게 짚어 내니 쿤모 소장은 돌연 너털웃음을 쏟아 냈다.

뚝!

어느 순간 웃음을 뚝 그친 쿤모 소장이 지태를 쏘아보았다.

“그래서 외부에 이 사실을 발설할 건가?”

말투가 몹시 사나웠고 비릿한 살기마저 느껴졌다.

지태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네!’

“말해봐. 자네가 목격한 것을 발설할 거냐고 물었네!”

더욱 매섭게 물어왔다.

지태가 입술로 미소를 그리며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지금껏 입을 함부로 놀리며 살아온 인생이 아닙니다. 다만 궁금했습니다. 왜 저 친구들이 이곳에 있는지 말입니다.”

당황한 기색 없이, 그것도 전혀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지태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한동안 지태를 노려보던 쿤모 소장이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

그는 웃는 낯꽃으로 나오칸 대령을 돌아보았다.

“이 친구, 간이 부은 건가, 아니면 겁을 상실한 건가?”

“그러니 저희들과 거래를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각하.”

“하긴…….”

쿤모 소장이 지태를 향해 술잔을 들어보였다.

지태가 예의 바른 청년답게 두 손을 받쳐 그와 잔을 부딪쳤다.

“맞아, 잘 봤어. 그 친구들,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쪽에서 온 사람들이야. 우리 쪽에서 군사 고문역을 맡고 있네.”

이쯤 됐으니 더는 감출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걸까.

쿤모 소장은 아주 쉽게 사실을 실토했다.

“뭐 비밀이랄 것도 없어. 사실 오래 전부터 미얀마 정부에서는 그들을 초빙해 군사 고문역을 맡기거나 땅굴 파는 데에도 고문을 맡겨 두는 형편이니. 우린 그들 중에서 몇 명을 몰래 빼낸 것이고. 그 사람들한테 다달이 도합 20만 달러 이상을 지불하면서까지 말이야.”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땅굴 이야기는 뭔가 싶었다.

지태가 의문을 담아 쳐다보자 쿤모 소장이 물었다.

“왜?”

“땅굴이라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미얀마에는 현재 800여 개가 넘는 땅굴이 만들어져 있네. 대외적으로는 타국의 공습에 대비한 방공호라고 하는데, 그건 다 헛소리고! 사실 그중 몇 개는 우라늄을 채굴하는 광산이기도 하고, 북한의 노동 미사일 실험장으로도 쓰이고 있다는 설도 있지.”

“그걸 북한 기술자들이 지휘한다는 겁니까?”

“걔네들이 그런 쪽으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들이 아닌가. 자네도 남쪽 사람이니 잘 알 거 아냐?”

쿤모 소장이 알 듯 모를 듯 묘한 웃음을 흘렸다.

“그럼 이곳에 북한 쪽 인력들이 대거 유입돼 있겠군요. 공식적인 것 외에 더 많은 숫자가……?”

“걔네가 군사적인 측면에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나라가 아닌가.”

“그렇군요.”

지태는 몰랐던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자, 술이나 드세, 우리.”

쿤모 소장은 기존의 화제들은 별로 재미가 없다는 듯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다.

그렇다.

이 화제를 가지고 더 깊이 파고들었다간 괜한 엉뚱한 오해로 번질 것 같아 지태 역시 입을 다물었다.

“이번 오더의 총액이 대략 얼마 정도나 될 것 같나?”

문득 쿤모 소장이 물었다.

질문을 받자 지태가 흘깃 나오칸 대령을 쳐다보았다.

실무적인 이야기는 그와 진지하게 나누었으므로 이미 보고를 받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모르는 것처럼 되묻는 쿤모 소장의 숨은 의도를 몰라 일단 나오칸 대령을 돌아본 거였다.

시선을 피한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물품 가격을 후려치려는 목적인 것이다.

“잠정 예상가는 중고차를 포함해 총 1,800만 달러 정도 됩니다만…….”

“1,800만 달러……. 아까 점심을 먹을 때도 말했다시피 우리 살림살이가 그리 넉넉지가 않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가 유연한 생각으로 우리 입장을 좀 더 고려해 줬으면 하네만…….”

역시나.

지태가 속으로 쓴맛을 다셨다.

첫 거래에서부터 밀리면 안 된다.

위험수당까지 고려해 책정한 가격이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터무니없이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아니었다.

쿤모 소장의 말마따나 최대한 합리적으로 정한 가격이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잠정 책정가에서 저희가 감수해야 할 위험수당은 쏙 뺐습니다. 그렇게 최대한 합리적으로 가격을 매겼습니다. 그래요, 설령 이 거래가 깨진다 해도 운송비가 많이 드는 탓에 아무래도 더는 단가를 낮출 수가 없겠습니다.”

“선수금으로 50%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현금으로 말이야.”

“그것을 고려했기 때문에 그나마 큰 이문을 남기지 않고 드리는 가격입니다. 거기에 스페어타이어를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만 해도 30만 달러는 족히 됩니다.”

그건 그것이고!

쿤모 소장의 표정이 바로 그러했다.

“아주 단호하구먼, 그래.”

속만 빼앗기고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괜히 내뱉었다는 듯 쿤모 소장은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술잔을 들어 한입에 털어 넣었다.

지태가 그의 심기를 달래듯 한마디를 던졌다.

“첫 거래가 순조롭게 진행이 되고, 두 번째, 세 번째가 원활하다면 그땐 가격을 재조정해 보겠습니다, 각하. 그렇게 다운된 금액은…….”

그러면서 지태는 흘깃 나오칸 대령을 쳐다보았다.

잠시 말을 끊은 지태의 심중에 숨긴 뜻이 무엇인지를 노련한 쿤모 소장이 모를 리 없다.

“괜찮네. 나오칸 참모장은 내 수족과도 같은 친구야.”

“각하의 대내외 활동 자금으로 따로 넣어드리겠습니다.”

“허허, 이 친구 좀 보게!”

쿤모 소장은 당연히 그럴 줄 예상했으면서도 겉으로는 멋쩍다는 듯 웃었다.

따로 뒷돈을 챙겨 준다는 것을 어느 누가 마다하겠는가.

오더 금액이 굵직한 만큼 그것 대비 뒤따르는 커미션의 액수도 가히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쿤모 소장이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금 껄껄 웃었다.

* * *

다음날 지태 일행이 사령부를 떠나기에 앞서 나오칸 대령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 빨리! 인마, 그거 질질 끌지 말고 불끈 들어 올리란 말이야.”

그는 묵직한 자루를 나르는 병사들을 향해 고함쳤다.

지태에게 선수금으로 줄 달러 뭉치가 들어 있는 돈 자루였다.

잠정 책정가가 1,800만 달러였다.

그중 선수금으로 50%를 준다면 900만 달러가 될 것이나 쿤모 소장의 명령에 의해 1,000만 달러로 맞춰 주기로 했다.

돈 자루는 도합 다섯 개나 되었다.

그것들을 총알로 벌집이 된 아론의 SUV에 모두 옮겨 실은 후 나오칸 대령이 악수를 청했다.

“실수하지 말고 되도록 제 날짜에 선적을 해주시오.”

지태가 끄덕이며 손을 맞잡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약속은 꼭 지킵니다. 참, 그리고 돌아가는 대로 품목마다 정확한 가격을 매긴 오퍼시트를 보내드릴 겁니다. 물론 잠정 책정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지만…….”

“앞으로 잘해 보십시다.”

나오칸 대령이 꼭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어 흔들어 댔다.

악수를 끝낸 다음 지태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곧 SUV의 뒷문을 열어 미리 준비해두었던 가방 하나를 꺼내 나오칸 대령에게 내밀었다.

“친구가 된 기념으로 드리는 겁니다. 우정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받아 주세요.”

많이 받아 본 솜씨였다.

나오칸 대령은 모든 이가 예의상 내뱉곤 하는 그 흔한 거절 한마디 없이 가방을 덥석 받아 들었다.

“친구가 주는 선물을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지. 고맙게 받겠소.”

아론이 운전석에 먼저 오르자 지태가 후안을 향해 끄덕였다.

그러자 후안은 트렁크가 모자라 뒷좌석까지 꾹꾹 눌러 채워둔 돈 자루들을 한쪽으로 밀어내며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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