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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33화 (133/272)

133화. 투 트랙(2)

“뭐냐? 혹시 둘이서 야동 보고 있었어?”

지태가 짓궂은 표정으로 농담을 건네자 이돈두가 짐짓 찡그렸다.

“야! 내 나이가 몇 갠데 그딴 걸 봐?”

“그럼 뭔데?”

“그러잖아도 이것 땜에 부른 거야. 직접 봐봐.”

이돈두가 턱짓으로 노트북을 가리켰다.

“……?”

지태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돈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윤학수가 바짝 다가와 동영상을 앞으로 되감더니 지태가 보기 좋도록 노트북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일단 보고나서 이야기하자.”

이돈두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으며 팔짱을 꼈다.

지태는 노트북 화면의 각도를 조절해 전등의 조명 빛에 반사되지 않도록 한 다음 재생되는 영상을 살폈다.

“허!”

동영상이 재생될수록 지태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갔다.

처음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가 돌연 ‘대박!’이라는 입모양 상태에서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어금니를 악물기도 했다.

참으로 변화무쌍하게 시시각각 변해가는 지태의 표정이었다.

이윽고 영상이 종료되었다.

대략 10분 정도로 편집된 동영상이었다.

“이거 누가 촬영한 거야?”

지태가 자못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얼마 전 우리 DD로 날아든 병아리한테서!”

병아리라니?

지태가 눈동자만 위로 치켜뜨며 이돈두를 쳐다보았다.

“럭키문 엔터테인먼트라고 거기에서 연습생을 하다가 빠져 나온 애야.”

“그럼 이 영상은 그 친구가 직접 촬영한 거고?”

지태의 물음에 이돈두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니고, 럭키문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던 동료 여자애가 찍었다고 하더라.

일단 영상의 출처를 말해준 이돈두가 좀 더 상세히 설명을 해왔다.

DD로 소속사를 옮긴 연습생의 말에 따르자면 럭키문 대표라는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연습생 숙소를 자주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연습생 중에서 끼가 제법 넘치고 얼굴이 반반한 아이들만 따로 불러서 무슨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눴는데, 그중에는 이것을 폭로한 연습생과 동영상을 몰래 촬영한 문제의 연습생도 끼어 있었다고 했다.

럭키문 대표가 애들을 불러 제안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회사의 자금 사정이 어려워 너희들을 데뷔시키려는데 아주 많은 애로사항이 있다.

그런데 때마침 대기업의 재벌 2세들이 이런 럭키문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기꺼이 투자를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왔다.

그러니 답례 차원에서 그분들께 인사도 드리고 기쁨을 줄 만한 그 어떤 것, 즉 미니 콘서트 같은 걸 열어 주면 어떻겠느냐는 것.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너희들이 하는 정도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반대급부를 얻을 수도 있다고 했단다.

“그 대표라는 새끼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들한테 그럴싸한 밑밥을 던진 거네!”

이돈두의 설명을 듣던 지태가 가증스럽다는 듯 내뱉었다.

“그렇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아주 시발 새끼지!”

눈앞에 있다면 당장 귀싸대기를 몇 대 날려 버렸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이돈두가 장단을 맞췄다.

“계속 해봐.”

지태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종용했다.

“근데 우리 품으로 날아든 병아리는 그나마 세상 물정을 조금은 아는 애인 거 같더라.”

이돈두는 말을 이어가면서 씩 웃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들이라고 했던 지태의 말을 다시금 상기하면서.

그가 왜 웃는지 눈치를 챈 지태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사이 이돈두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어리지만 이미 눈치를 챘어, 그 아이는! 대표라는 새끼가 말한 의미가 바로 그 재벌 2세 놈들과 스폰 관계를 맺으라는 얘기였다는 걸.”

비록 눈앞에서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던졌지만, 연습생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대표는 바로 눈치챘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더 권하거나 강요를 했다간 혹시라도 훗날 문제가 생길 듯하여 두 번 다시 그 연습생에게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반면에 문제의 이 영상을 찍은 아이는 대표의 꾐에 넘어가 재벌 2세들의 안가 파티에 몇 번인가 참석을 했었다고 했다.

“그 애 파트너가 바로 이현욱이었고?”

지태가 다시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맞아, 그 새끼!”

이돈두가 후렴구로 ‘시발!’이란 욕을 입안에서 굴렸다.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 실린 목소리였다.

예전에 지태를 손봐주라는 의뢰를 받아 실패한 이후 이현욱에게 별의별 욕설을 다 들은 기억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영상을 찍은 애는 어떻게 됐어? 그림을 보니까 엄청 얻어맞은 거 같은데.”

“전치 4주라더라. 그 후로 이현욱을 폭행으로 고소를 하네, 마네 그랬나 봐. 그랬더니 대표라는 새끼가 그러더란다. 연예계 문턱도 못 밟아보고 조용히 매장당하고 싶으냐고. 심지어 쥐도 새도 모르게 뒈질 거라고도 했다더라.”

“완전히 인간쓰레기네, 그 개새끼!”

지태의 분노 게이지가 불쑥 높아져 있었다.

“쓰레기 매립장에 데려가 미련 없이 묻어 버릴 새끼지.”

이돈두 역시 추임새를 넣으며 지태의 분노에 합류를 했다.

“근데 그 애는 왜 DD에 같이 안 왔어?”

“럭키문을 나가면 행여 말이라도 새나갈까 싶어서 대표라는 새끼가 틀어막고 있는가 봐. 그래도 만약 기어이 나가겠다면 그동안 회사에서 투자한 금액의 10배, 그리고 계약금조로 지불한 금액의 20배를 위약금으로 토해내라고 했다더라.”

“허어!”

지태는 말문이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돈두가 은근하게 말했다.

“이 영상을 언론이고 인터넷이고 일제히 돌려 버릴까?”

“……!”

가만히 듣고 있던 지태가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천천히 도리질을 했다.

“……?”

“그건 나중에!”

“왜?”

“이것만 가지고도 그 새끼들한테 타격은 좀 줄 순 있는데 완전히 무너뜨리진 못해. 그 새끼들은 일반인이 아니잖아. 좀 더 모아 놨다가 한 방에 훅 가게 만드는 편이 나아.”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 같았다.

재벌 2세라는 새끼들이 그것 하나 덮을 힘이 없으려고.

이돈두가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지태가 이를 악물면서 포도 씨를 뱉어내듯 말했다.

“그래도 그 새끼만큼은 일단 가만히 놔두면 안 되겠다.”

“누구? 럭키문 대표라는 놈?”

지태가 여전히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돈두가 쓰게 웃었다.

“사실은 말이지, 나도 그럴 참이었어. 내가 우리 병아리한테 약속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꼭지가 돌아서 못 참겠다. 그 시발 놈의 모가지를 비틀지 않고서는 화가 안 가라앉을 것 같아.”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이돈두의 입가엔 비릿한 살기가 넘쳤다.

“그만 나가자. 이 좆같은 기분이나 씻어 내러!”

이돈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마시러 가자는 말이다.

빤히 바라보던 지태가 쓴맛을 한번 다시고는 그러자는 식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 * *

최고급 외제 승용차가 룸살롱 앞으로 다가오자 입구에 서있던 웨이터들이 달려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큰절을 했다.

운전석에서 내린 이현욱은 룸살롱 건물을 못마땅한 눈길로 훑어가면서 웨이터 중 한 명에게 노룩패스를 하듯 차키를 던졌다.

웨이터가 발레파킹을 하는 사이 이현욱은 땅바닥에 침을 퉤 뱉었다.

“이 개새끼가 몇 번 귀엽다, 귀엽다고 해줬더니 어디서 감히 나를 오라 가라야!”

이현욱은 당장이라도 때려죽일 듯 인상을 쓰며 룸살롱 안으로 들어섰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룸에 들어서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 하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얼굴은 빤히 든 채 허리만 살짝 굽히는 식의 건방진 인사를 해왔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

그는 럭키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송민철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현욱 사장님!”

“뭐, 어서 와? 이 새끼가 감히 누굴 오라 가라야?”

이현욱은 눈에 넣을 듯 노려보았다.

그러자 송민철이 사극 속 내시 같은 웃음을 흘리며 조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 있었던 상석을 그에게 내주었다.

“일단 좀 앉으시죠.”

이현욱이 잠시 째려보다가 못 이기는 척 놈이 내어준 상석에 앉았다.

오늘은 왠지 그동안 봐왔던 송민철의 모습이나 태도가 아니었다.

가만 보니 왠지 수상한 느낌이 뇌리를 빠르게 스쳐 갔다.

겉으론 굽실거리는 것 같아도 그 뒤에는 뭔가 꿍꿍이를 많이 숨겨둔 몸짓이 분명해 보였다.

이놈이 감추고 있는 패가 무엇인지 일단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이현욱은 울화가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우선은 참아보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때 송민철이 술병을 들고 권했다.

“자, 우선 제 술 한 잔 받으시죠, 사장님!”

“술은 됐고! 뭐야, 뭔데 갑자기 날 보자고 한 거야?”

“참, 성미도 급하십니다.”

송민철이 느물거리며 웃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했더니만.

이현욱이 더욱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엔 자꾸만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엄습해왔다.

도대체 무슨 패를 들고 있기에 이 새끼가 이렇듯 나한테 건방을 떨지?

급한 마음에 버럭 소리쳤다.

“너 빨리 말 안 해?”

“아, 예, 예. 말씀 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고요, 왜 저번에 이현욱 사장님이 손찌검을 했던 아이 있었죠, 수빈이라고.”

“그년이 왜? 이제 와서 치료비라도 달래?”

“어휴, 참! 그런 건 제 선에서 얼마든지 알아서 처리합니다. 그런 건 전혀 염려하실 게 못 돼요. 근데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또 느물느물 웃어대는 송민철이었다.

‘그럼 뭐?’라고 묻듯 이현욱이 성질 급한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송민철이 말을 이었다.

“걔가 입원해 있는 동안 숙소를 뒤져 봤어요, 혹시나 해서. 그런데…….”

송민철은 다시 또 말을 이어가다 말고 뜸을 들였다.

“너 정말!”

이현욱이 눈을 부릅뜨자 송민철은 그제야 자신의 슈트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고는 시계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

“이거 그냥 보통 시계 같죠?”

이현욱이 눈을 깔며 그가 내놓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달리 특별하다고 볼만한 게 없었다.

자신의 눈엔 그저 싸구려 아웃도어 시계 같았다.

“이게 뭐?”

“이게 겉으로 보기엔 그냥 보통 시계 같지만, 절대 일반적인 그런 시계가 아닙니다.”

“아니라면……?”

그리 물으면서도 이현욱은 머릿속에 이미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송민철이 대답 대신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러고는 소파 한쪽에 내려놔둔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잠시 꼼지락대며 부산을 떨더니 화면이 잘 보이도록 이현욱 쪽으로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엔터!

그러자 편집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동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럭키문 소속 연습생 아이들이 양재동 아지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녹화를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곧 거실에 모여 앉아 있는 멤버들의 얼굴들이 나타났다.

임경남, 송영완, 허영만, 그리고 이현욱 자신이었다.

정답은 나왔다.

굳이 더는 들여다볼 것도 없었다.

“너 그동안 우리들을 상대로 장난친 거냐?”

이현욱이 소파 등받이에 몸을 묻고 있는 송민철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송민철이 예의 그 느물거리는 미소로 몸을 바로 세웠다.

“장난을 치다니요. 제가 그런 짓을 했다간 이 자리에서 천벌을 받을 겁니다.”

송민철은 절대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에도 입가엔 그 느끼한 웃음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가 다른 뜻이 있었다면 이현욱 사장님께 원본 그대로 이걸 가져왔겠습니까.”

송민철이 시계형 몰래카메라를 톡톡 쳐보였다.

“따로 복사본을 빼돌린 거 아냐?”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현욱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너 말고 혹시 그년이라도?”

“그럴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그 애 숙소를 뒤져서 빼낸 것이니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입단속은 물론 그년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해!”

“그러잖아도 그년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돈깨나 쥐어 줬습니다. 없는 회사 살림에 1억씩이나 들어갔어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계약서를 빌미로 붙들어놓기도 했고 말입니다.”

1억 원이란 돈을 쥐어줬다는 말은 물론 거짓이었다.

동영상을 갖다 바치는 대가로 어차피 이현욱과 그의 양재동 멤버들로부터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송민철은 자신의 돈으로 우선 급한 입을 틀어막았다는 것을 내세우며 보상금을 조금 더 얹어 받으려는 의도였다.

‘시발!’

급기야 이현욱은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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