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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24화 (124/272)

124화. 반가운 손님(1)

임경남의 평소 성격이라든가 그간 해온 짓거리의 행태를 잘 아는 까닭이다.

그가 자신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전자 쪽의 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은 뭔가 불합리하고 마음 내키지 않는 폭탄을 이쪽에 던져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시나.

불안감으로 살짝 달아올랐던 강 사장의 촉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럼 화성 쪽으로 눈을 돌리면 어떻겠습니까? 거기 꽤 괜찮은 부지가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 ……!

“여보세요?”

- 예,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지금 현재는 약 7천 평 정도 되는데 좀 넓게 쓰고자 한다면 최대 1만 5천 평까지는 매입할 수 있을 겁니다.”

-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화성 쪽이라니 너무 뜬금없어서 그럽니다.

“좋은 땅이 나와서 제안하는 건데 굳이 또 귀찮은 이유를 내가 애써 만들어내야 합니까?”

임경남의 목소리가 돌연 차갑게 변해 갔다.

숫제 협박에 가까운 엄포였다.

- …….

“왜 대답이 없으실까? 내 말이 같잖게 들렸나요, 강 사장님?”

- 아,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임 사장님.

“그럼 내 말대로 하는 걸로 알고 퇴근 무렵쯤 비서실장을 보낼게요. 자세한 건 두 분이서 조율하시고. 아, 좋은 곳으로 내가 예약해놓을 테니까 두 분이서 술 한 잔 진하게 하시고, 회포도 좀 푸시고.”

임경남은 그제야 제법 만족스럽다는 듯 소리 없는 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 * *

똑똑똑.

한스홀딩스 사장실이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지태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현민이 환하게 웃으며 들어섰다.

권하지 않아도 제 스스로 알아서 소파에 앉는 조현민을 보면서 지태는 집무 책상을 돌아서 나왔다.

“이동구 사장님한테서 전화가 왔다면서?”

조현민의 물음에 지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가 있냐고 길길이 날뛰시는 걸 겨우 달랬습니다.”

“하긴 그러겠네. 속내를 모르는 상태니 당신께서 배신을 당했다고 방방 뛰는 것도 이해는 돼.”

지태가 다시 한번 떨떠름하게 웃었다.

조현민이 방문하기 30분 전쯤 지태는 이동구 사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었다.

매우 격앙된 목소리였고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불꽃이 튀는 듯했다.

오전에 전자의 임원 회의를 마치고 얼마 있지 않아 화성시 산업단지 분양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거였다.

미안하지만 양해각서를 체결한 그 부지를 다른 곳에서 이미 선수를 쳤다는 일방적인 통고였다.

더구나 한스전자에서 제시한 평당 45만원에서 20만원이 더 높게 책정된 가격으로 계약을 마쳤다며 몹시 아쉽게 됐다고 위로를 하더라는 것이다.

“임경남 그놈이 원래 우리가 점찍어 놓았던 7천 평말고도 5천 평을 더 매입했다고 그랬지?”

“예. 도합 1만2천 평이라고 하더군요.”

“개새끼! 우리 뒤통수치려다가 외려 뒤치기를 당한 줄도 모르고 넙죽 받아 쳐드셨군. 그거 먹고 아주 배가 터지겠어. 금세 부자 되겠구먼!”

조현민은 임경남의 어리석은 행태가 고소해 죽겠다는 듯 킥킥 웃었다.

“참, 우리가 낙찰 받은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조현민을 따라 웃던 지태가 문득 물었다.

그제야 이 방에 찾아온 이유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조현민이 머쓱하게 웃다가 정색했다.

“낙찰 받고 절차를 진행하려고 보니까 이전에는 안 보이던 유치권이 갑자기 설정돼 있더라고.”

“음!”

지태의 입술 사이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분명 자기가 하는 일을 임경남이 방해할 것을 염두에 두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했다.

그것이 조금 전 이야기를 나눴던 바로 그 부분이었다.

지태의 예상대로 눈속임은 잘 먹혀서 이처럼 기뻐하던 참이었다.

대신 이동구 사장을 속이면서까지 따로 진행했던 일이 법원의 경매로 나온 물건 매입이었다.

당진의 산업단지 내에 입주한 업체였는데 두 번의 유찰을 거치는 동안 60%가 다운된 금액에 최종낙찰을 받는데 비로소 성공했다.

이 모든 과정은 유기영 변호사, 즉 한스홀딩스의 부사장이 주축이 되어 진행했었다.

그런데 뜬금없는 유치권 행사라니.

지태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 위에 대고 조현민이 설명을 덧붙였다.

“내 생각엔 그 업체의 사장이란 놈이 꼼수를 부린 것 같아. 유치권자라는 사람과 통화를 일단 한번 해봤는데 제법 강하게 나오더라고. 음성이나 말을 내뱉는 싸가지를 보니까 딱 건달인 것 같았고.”

“건달요?”

조현민이 끄덕였다.

“짜고 치는 고스톱, 즉 가장(허위)유치권이 확실해.”

“유 변호사는 뭐라는데요?”

“일단 증거를 수집한 다음 그게 뭐라든가? 아, 사기죄나 경매, 입찰방해죄로 고소를 하자더군.”

“허!”

지태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 세월에!”

유치권이 걸려 있을 경우 낙찰을 받았더라도 유치권자와 합의하거나 보상하는 절차가 뒤따르지 않는 이상 그 건물에 대해 권리를 행사할 수가 없다.

한스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시간이 촉박한 지금, 언제 결론이 날지도 모를 그것의 해결을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낙찰 받은 사람이 어리바리한 사람 같으면 얼렁뚱땅 장난쳐서 거저먹으려는 수작이군요. 아니면, 합의금을 몽땅 뜯어낼 생각이던가.”

“그럼 어떡할까? 유 변호사한테 법대로 처리하라고 할까?”

조현민이 의향을 묻자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형님, 우리들의 신조가 뭡니까. 받은 대로 되돌려 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럼?”

“좀 더 알아본 다음 건달 끼고 장난질치는 것 같으면 똑같은 방식으로 되돌려 줘야죠.”

“……?”

조현민이 눈빛으로 물었다. 어떤 방식으로 하려는 건가를.

그러자 지태가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에 이돈두의 DD엔터테인먼트 회장 취임식 겸 기념 파티가 있어요.”

그것으로 답이 되었던 모양이다.

조현민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인상을 긁었다.

지태가 이제 노골적으로 조폭과 너무 가깝게 어울리는 것 같으니 그것을 지레 경계하는 것이다.

* * *

“저녁 먹으러 어디까지 가자는 거야?”

부득불 자신이 운전하겠다며 자동차 키를 빼앗아 운전석에 올라탄 지태를 돌아보며 지은이 물었다.

“가 보면 알아.”

지태가 사거리 신호에서 좌측 방향지시등을 켜며 말했다.

“뭐 이상한 곳에 나를 데려가는 건 아니지?”

“이상한 곳이라니?”

“거야 나도 모르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배시시 웃는 지은을 보며 지태가 피식 웃었다.

“이번에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친구가 있어. 오늘 그 친구의 회장 취임식 겸 기념 파티가 있어서 축하해주러 가는 거야. 지은이를 그 친구에게 소개해줄 겸.”

“자기한테 그런 친구도 있었어? 어떤 친군데?”

궁금한 것은 잠시도 참지 못하는 지은이다.

지은이 집요하게 캐묻자 지태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있어, 그런 친구. 조금 있다 만나보면 알 거야. 그 녀석 얼굴을 보고서 분위기로 직접 느껴봐.”

“헐!”

지태를 오랜만에 만나 반갑고 설레기만 한데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이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지은은 아까부터 입술이 삐죽 나와 있던 참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 귀한 시간을 지인의 취임 축하를 하는데 내버린다?

거기에 어떤 친구인지도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그녀더러 직접 만나서 확인해 보라는 알 수 없는 대답뿐.

지은의 입에서 어이가 없다는 식의 혀 차는 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기념식장인 호텔 연회장에 도착하자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수많은 화환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는 지태의 축하 화환도 보였다.

눈에 가장 띠기 쉬운 출입문 옆에 일부러 배치해둔 것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형님.”

입구에 나와 있던 친위대장 윤학수가 정중하게 허리를 꺾어 절을 해왔다.

“내가 좀 늦었지?”

지태가 머쓱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윤학수가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만 웃었다.

“취임식은 이미 끝났습니다, 형님. 지금은 축하 연회가 이어지고 있고요, 형님. 들어가시죠, 모시겠습니다, 형님.”

윤학수가 연회장으로 한 걸음 먼저 앞장서며 들어갔다.

지태가 뒤따르려하자 팔짱을 끼고 있던 지은이 그의 팔목을 가볍게 꼬집었다.

“이 묘한 분위기는 뭐야? 혹시 오늘의 주인공이 내가 지금 상상하고 있는 그런 쪽 사람 맞아?”

지태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맞긴 한데, 제 입으로 이제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고 몸부림치는 친구야. 만나 보면 건달 티는 별로 안 날 거야.”

“헐! 오늘 여러 번 사람 놀라게 만드시네.”

지은이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햐, 내 사랑스러운 친구야, 어서 와라!”

초빙되어 온 어떤 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이돈두가 지태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호들갑스럽게 맞았다.

대뜸 포옹을 하려고 달려오는 것이다.

“야, 야! 징그럽다. 떨어져, 떨어져! 릴렉스 좀 하자고!”

지태가 짐짓 오버하며 양 손을 뻗어 거부 의사를 밝히자 이돈두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악수로 반가움을 대신했다.

“근데 누구셔?”

악수를 마친 이돈두가 새삼스럽게 지태의 옆을 흘깃 돌아보고는 물었다.

“아, 인사해. 여긴 임지은 씨!”

“그니까 둘이 어떤 사이시냐고?”

이돈두는 인사보다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찌 되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런 자리에 같이 온 것을 보면 모르겠냐?”

“어이쿠, 그럼 미래의 우리 제수씨겠네!”

바로 그 대답이 듣고 싶었다는 듯 이돈두는 활짝 웃는 낯꽃으로 반기며 얼른 지은을 돌아보았다.

“이거 반갑습니다. DD엔터테인먼트 회장, 이돈두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DD는 제 이름의 이니셜을 딴 겁니다. 헤헤.”

누가 이런 사람을 건달이라고 보겠는가.

이돈두는 아주 천진난만한 얼굴로 히죽 웃었다.

지은 역시 그런 이돈두의 첫인상이 그리 나빠 보이진 않았나 보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이돈두와의 인사에 응했다.

“안녕하세요. 임지은이에요.”

“부럽다, 부러워. 전생에 나라를 몇 번이나 구해야 이런 미인을 얻는 거냐?”

이돈두의 너스레는 계속 이어졌다.

지태가 실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피식 웃어 보일 때였다.

“저, 회장님!”

이돈두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태도 낯이 익은 사람이다.

그는 DD 엔터테인먼트의 전신인 득템 엔터테인먼트의 전 대표 김유창이었다.

물론 연예계에 인맥도 없고 돌아가는 시스템 자체도 전혀 모르는 이돈두를 대신해 앞으로도 계속 경영을 맡을 예정이었다.

김유창이 뒤늦게 지태를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해왔다.

“오셨습니까, 한 사장님.”

“예. 반갑습니다, 김 사장님.”

“뭔데?”

이돈두가 자신을 부른 이유를 물었다.

“전 문체부 2차관님께서 오셨습니다. 가서 인사라도 드리시라고.”

“그러지, 뭐. 이 세계에 발을 담갔으면 인맥을 한 명이라도 더 쌓는 게 좋겠지. 친구야! 식사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이돈두가 지태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다녀와. 천천히 식사하고 있을 테니까.”

지태가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지은을 데리고 뷔페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저 사람 진짜 깡패가 맞아?”

지은이 접시 하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왜?”

“사람이 너무 바보 같아 보여서.”

“쟤가?”

지태는 속으로 웃었다.

서울 광수대에서조차 요주의 인물로 분류했을 만큼 무서운 조직의 보스를 두고 바보 같다니.

“그리고 지태 씨하곤 나이 차이가 좀 나는 거 같은데 친구라니 그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

“나야 손해 볼 일이 없으니까. 저 친구가 먼저 친구하자고 그랬거든.”

“알 수가 없네, 남자들의 세계란.”

지은이 머리를 내젓고는 테이블을 돌기 시작했다.

지태가 뒤따라가려는데 윤학수가 다가왔다.

“뭐 불편하신 건 없습니까, 형님?”

“불편할 게 뭐가 있어. 그나저나 참석 인원들 면면이 꽤 화려하네?”

“어디 저희 형님 때문이겠습니까? 방귀 좀 뀐다는 양반들은 전부 김유창 사장의 손님입니다, 형님. 저희 쪽 초대 손님이라야 대개가…….”

뻔한 손님이지 않겠느냐는 부분에선 말꼬리를 흐렸다.

지태가 소리 없이 웃어 주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윤학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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