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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101화 (101/272)

101화. 강남 돈두파!(3)

사무실의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눈만 마주쳐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금 저리게 만들만큼 거친 사내들이 소파 건너편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파이낸스의 사장이라는 녀석은 호되게 맞아서 푸르뎅뎅한 멍 자국이 진하게 피어오른 얼굴로 지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태.

그사이 지태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로 올라온 유근영 사장은 하나 파이낸스 사장이 지정해준 계좌로 돈을 송금하는 중이다.

물론 그 소파 테이블 위에는 유근영 사장이 담보로 내주었던 각종 서류들이 놓여 있고.

하지만 이처럼 모든 상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동구 사장은 잔뜩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두 눈으로 목도하고도 이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이쯤 되면 지태의 전직이 의심스러울 만도 했다.

이동구 사장이 힐끔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지태가 소리 없이 입으로만 웃어주었다.

눈빛으로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는 이동구 사장에게 지태는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었다.

“허헛, 나 이거야 원!”

급기야 이동구 사장의 입에서 기도 안 차다는 듯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 사장, 다 되었습니다.”

유근영 사장이 스마트폰으로 제대로 송금이 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지태를 돌아보았다.

지태는 곧바로 파이낸스 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이봐! 확인 한번 해보지?”

이제는 얌전한 부뚜막의 고양이 같았다.

녀석은 스마트폰을 들어 곧 입금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큰 불상사 없이 협조를 잘해줘서 고맙다. 물론 나중에 나하고 따로 시간을 내서 빚잔치를 한 번 더 해야겠지만…….”

물론 이 빚잔치란 강성원에게 칼침을 놓은 것을 말한다.

그 사건이 이현욱의 사주를 받은 이놈들의 행동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까닭이다.

자신을 알아본 뒤 곧장 밖으로 도망친 행동대의 대가리 놈도 그러하거니와 저기에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들, 그리고 이곳 역시도 돈두파 소굴이 확실했으므로 그리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파이낸스 사장은 지태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지만, 지태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비릿하게 웃어줄 뿐이다.

“볼 일 다 봤으면 그만 가시죠, 사장님들.”

지태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두 사장들을 바라보았다.

“그, 그러지.”

이동구 사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유근영 사장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뒤따라 일어났다.

바로 그때였다.

파이낸스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동작 그만!”

맨 먼저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 사내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는 아까 지태를 보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던 녀석이었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꽤나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물론 놈의 행동에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의 뒤편으로는 현재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놈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진 살벌한 덩치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 서있었다.

그리고 눈에 확 띄는 또 한 사내.

군계일학이라 불리어도 좋을 만큼 한눈에도 몸 전체에서 풍기는 포스가 남달라 보이는 녀석.

딱 봐도 놈들의 최고 대가리처럼 보였다.

반듯하게 넘긴 헤어스타일하며 제법 맵시 있게 차려입은 슈트만 놓고 본다면 마치 어느 대기업의 중견 간부로 착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얼굴마저 곱상하게 생겼다.

나이는 아무리 많이 쳐준댔자 30대 중후반처럼 보였지만, 확실한 나이까지는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 사내를 보는 순간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앉은자리를 털고 무릎 꿇고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이내 허리를 반으로 접어 군계일학의 사내에게 정중히 절을 올렸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아직은 기가 죽은 모습 그대로이긴 했지만, 파이낸스의 사장 역시도 황망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 사내를 정중히 맞았다.

그럼에도 몹시 염치가 없다는 표정.

아니, 안절부절못하는 폼이 마치 죽을죄를 지었다는 얼굴이었다.

“야, 이 새꺄! 어딜 내빼려는 거야?”

다시금 소리를 내지른 건 행동대를 이끌던 바로 그 녀석이었다.

지태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씩 웃어 보였는데 이제는 살기 띤 비릿한 냄새까지 풍겼다.

그러자 보스로 보이는 그 사내가 놈을 돌아보았다.

표정 없이 돌아보는 그 눈빛만으로도 큰소리를 질렀던 녀석은 제대로 오금도 못 편 채 지레 쪼그라들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녀석이 고개를 조아리는 사이 사내가 시선을 돌려 지태를 바라보았다.

위아래를 두어 번 훑더니 천천히 입을 떼었다.

“자네가 한스무역 사장, 한지태라는 친군가?”

지태가 입꼬리를 살짝 비튼 채 소리 없이 웃었다.

“그럼 거긴, 이 친구들의 대가리인가?”

“하, 이런 시발!”

조금 전 보스로부터 주의를 받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겠는지 놈은 무심코 다시 솟구치고 말았다.

보스가 차가운 시선으로 재차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턱짓을 해보이자 놈이 쪼르르 다가왔다.

그 순간,

뻐억!

보스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기생오라비처럼 얌전하고 곱상하게 생긴 줄만 알았던 그가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니 놀라웠다.

다가오는 부하를 향해 날리는 발길질에는 부드러우면서도 절도가 넘쳤고 다른 한편 잘 벼른 칼처럼 매서웠다.

녀석은 서너 걸음을 뒤로 밀려나는가 싶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 발라당 넘어갔다.

“미안하네, 친구! 난 어린놈들이 어른들 일에 끼어드는 걸 워낙 싫어해서.”

보스가 지태를 향해 한손을 들어 보이며 사과했다.

이런 행태가 건달세계 나름의 기선제압이고 상대에게 겁을 주려는 수작임을 지태는 잘 알고 있다.

지태가 다시금 같잖다는 듯 입술에 조소를 피워 올렸다.

“거기는 내 이름까지 알고 있는데 난 자네가 누군지조차 몰라. 이건 아주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보스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보였다.

“하긴 그렇군. 나는 이돈두라고 하네. 아우들은 내 이름을 따서 조직 자체를 돈두파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데 짜바리들은 촌스럽게도 파주 원주민파라고 저네들 맘대로 부르더구먼.”

돈두파든, 파주 원주민파이든 자신의 볼일과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애써 찾으려 했던 인물이 제 발로 걸어왔으니 지태로서는 오히려 반겨야 할 참이었다.

“잘 됐네. 그러잖아도 내가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자네한테 받을 빚이 며칠 전 그 일까지 합해서 이제 두 개로 늘어났거든!”

며칠 전의 그 일이란 강성원의 피습을 말하는 거다.

그러자 이돈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첫 번째 것은 나도 양심이 있으니 모른다 할 순 없겠고! 근데 두 번째 빚이라는 건 또 뭔가?”

“생각이 안 난다? 하긴 억지로 기억할 필요는 없어! 이제부터 정신없이 두들겨 맞다 보면 퍼뜩 기억이 날 테니까.”

지태가 돌연 안면을 바꿔 싸늘하게 이돈두를 노려보았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이동구 사장이 지태의 팔목을 살며시 붙들었다.

“하, 한 사장. 왜 이러시나?”

“걱정 마세요. 두 분은 먼저 내보내드릴 겁니다.”

이동구 사장을 가볍게 다독인 후 지태는 이돈두를 쳐다보았다.

“내 말 들었지? 이분들은 우리 두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그냥 보내 드리지.”

“상관이 아주 없다고는 볼 수 없지. 어쨌든 우리 사업을 방해하긴 했잖아.”

“그래서?”

“아, 진정해! 나도 그만한 아량쯤은 베풀며 살줄 아는 위인이니까. 어이, 거기 두 사람! 이제 그만들 집으로 돌아가셔!”

이돈두가 두 사장들을 향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병풍처럼 뒤에 버티고 선 부하들에게 말했다.

“정중히 보내 드려라.”

“예, 회장님!”

감히 누구의 명인데 거역할까.

녀석들은 홍해 갈라지듯 길을 터주며 두 사람에게 나갈 길을 만들어 주었다.

이동구 사장이 다시금 지태를 돌아보았다.

“걱정 마시고 가세요. 나중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 그래도 우리만 어떻게…?”

유근영 사장 역시 불안한 눈빛으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저 친구가 나타나기 전만 하더라도 사장님들의 일이었지만 이제부턴 제 일이 돼버렸네요. 염려하실 건 없습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사장님들.”

지태가 걱정되어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여하튼 이곳 분위기는 살벌하고 무서웠다.

다시금 지태를 돌아본 그들은 이윽고 건달들의 눈치를 살피며 겨우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 것은 제법 신사답군. 아, 그렇다고 해서 빚이 탕감되는 건 아냐. 오해하진 마.”

이돈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겁을 먹어서 저 사람들을 보내줬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뭐 각자 해석하기 나름이고. 자, 그럼 이제 슬슬 판을 한번 깔아 볼까? 어이, 거기 똘마니들! 뭐 하고 있어. 어서 시작해야지.”

영화에서 보면 보스는 맨 나중에 나오는 법이다.

그러니 나름 형식을 갖춰 병풍처럼 둘러싼 녀석들을 먼저 상대해주겠다는 뜻이었다.

녀석들은 지태의 실력을 동료들로부터 말만 들었지 실상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개중 몇 놈은 벌써 입술 끝을 비틀며 지태를 비웃었다.

자신들은 돈두파의 정예 중에 최정예로서 이돈두를 호위하는 친위대였다.

지태도 그것만은 인정하는 눈빛이었다.

예전에 상대해 봤던 행동대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것쯤은 눈치껏 알 수 있으니까.

‘그래봤자 오십 보, 백 보 아니겠어.’

지태는 속으로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그때 이돈두가 말했다.

“우리 애들한테 자네 실력은 익히 들었네. 그때 굉장했다지? 내가 지금 몹시 궁금하긴 해. 자네의 실력이 얼마만큼이나 되는지.”

“너무 보채지 마. 그러잖아도 보여줄 참이니까.”

지태는 독하게 눈빛을 쏘아 보내며 말했다.

강성원을 떠올리니 저절로 이가 악물어졌다.

“쩝!”

이돈두가 쓴맛을 다셨다.

그러고는 친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얘들아! 한번 놀아봐. 그렇다고 너무 심하게 놀진 말고.”

“예, 회장님!”

지태가 노는 짓들이 가소롭다는 듯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낼 때 친위대들이 체계 잡힌 동작들로 포위하듯 압박해 들어왔다.

확실히 저번에 한스무역으로 찾아왔던 행동대 녀석들하곤 달랐다.

말 그대로 보스만을 위한 친위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법 정예다운 면모가 흘러넘쳤다.

지태는 입고 있던 슈트의 윗도리를 벗어 소파 쪽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여유 있게 자세를 잡았다.

“준비됐으면 이제 그만들 들어오지?”

자존심이 상한 듯 지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녀석이 먼저 달려들었다.

주특기가 권투를 베이스로 삼고 있는 듯했다.

그는 복싱 동작으로 날카롭게 주먹을 뻗어왔다.

쉬익, 쉭.

녀석은 왼손 잽을 연속적으로 던져오더니 돌연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듯 날렵한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날려 왔다.

지태는 가만히 선 채로 위빙동작만으로 놈의 주먹을 옆으로 흘려보냈다.

동시에 엄지 끝을 뾰족하게 세운 뒤 놈의 귀 밑을 번개같이 찍었다.

쩌억, 쩍.

단 한 번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어차피 녀석은 시범케이스였다.

지태는 비틀비틀 뒤로 넘어가는 녀석을 잽싸게 따라가며 관자놀이를 한 번 더 찍어주었다.

쿠타탕!

놈은 맥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호오!”

지켜보던 이돈두의 입술에서 거짓이 전혀 담기지 않은 순수한 탄성이 새나왔다.

아우가 일격에 고꾸라졌는데도 전혀 동요치 않고 오히려 지태의 놀라운 실력에 감탄하는 모양새였다.

그사이 양쪽에서 두 놈이 동시에 지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왼쪽에서 달려든 녀석의 돌려차기가 먼저였다.

부슝.

지태는 왼손 팔뚝을 이용해 날아든 놈의 발목을 걷어냄과 동시에 오른손 중지로는 녀석의 허벅지 안쪽을 찍었다.

쩌억!

그리고 본능적으로 몸을 틀면서 오른편에서 달려들던 녀석의 주먹을 목덜미 사이로 흘려보냈다.

간발의 차였다.

지태는 여유를 두지 않고 주먹을 날리던 힘에 못 이겨 어느새 바짝 다가선 오른편 녀석의 팔목을 확 낚아챘다.

그러곤 위로 번쩍 치켜드는 것과 동시에 녀석의 명치에 니킥을 날렸다.

뻐억.

“크윽!”

녀석은 억지 숨을 뱉어내듯 짧은 비명을 토하더니 앞으로 괴롭게 몸을 숙였다.

그 등짝에 지태는 서비스처럼 엘보 한 방을 더 꽂아 넣었다.

빠각.

“윽!”

이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듯 녀석은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허벅지를 찍힌 녀석이 그새 회복하는 기미를 보였다.

지태가 마무리 차원에서 놈에게 다가서려는 순간이었다.

이돈두의 목소리가 지태의 발목을 붙들었다.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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