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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88화 (88/272)

088화. 그놈들!(1)

강성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결코 좋아서 벌어진 게 아니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도 없다는 표정.

2차 술자리는 좋은 곳으로 가자더니 지태가 다짜고짜 데려온 곳이 바로 여기였다.

조현민의 아내가 운영하는 치킨 가게.

헐!

“여기가 니가 말한 그 좋다는 술집이냐?”

“인마, 좋은 사람과 마음 편하게 마실 수 있는 곳이 좋은 술집이야. 넌 도대체 어떤 걸 상상했는데 그래?”

“어휴, 이걸 진짜 그냥 확!”

강성원이 눈을 흘기는 사이 지태가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 어쩐 일이야?”

기다란 영업용 앞치마를 두른 조현민이 지태의 뜻하지 않은 방문에 놀란 눈빛이었다.

“2차는 자꾸 여기로 가자네요, 성원이가.”

“성원이가 여길? 그 자식 요즘 들어 철들었네. 근데 성원이는…?”

“금방 들어올 겁,”

“이미 들어왔다, 인마! 안녕하세요, 형님?”

강성원이 다시금 지태를 향해 눈을 흘긴 후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조현민에게는 깍듯이 인사를 해왔다.

“성원이, 너 요즘 며칠 안 본 사이에 철 많이 들었다? 이젠 형님도 챙길 줄 알고.”

“헤헷. 제가 의리 빼면 시체잖아요, 형님.”

강성원의 너스레에 조현민이 피식 웃고는 깜빡했다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아내가 밝은 미소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서로 인사들 하…….”

조현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지태가 한 발 앞서서 넙죽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형수님. 현민이 형님께 날마다 구박받으면서 살고 있는 한지탭니다.”

“반갑습니다, 형수님. 덩달아 구박받는 강성원입니다.”

“안녕하세요? 진즉에 한번 찾아가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미안해요.”

조현민의 아내는 적이 미안하다는 듯 기도하는 손동작 비슷하게 자신의 코끝을 감쌌다.

“별 말씀을 다 하시네요! 아랫사람이 먼저 찾아뵈었어야 하는 건데, 여하튼 인사가 늦었습니다.”

수인사를 마친 지태가 가만히 조현민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조현민과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고 들었는데, 그와 동갑내기치고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동안이었다.

게다가 미인이었는데 조금은 다부져 보이는 얼굴이 내조를 잘 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조현민이 술자리에서 간혹 은근슬쩍 아내를 자랑하는 이유를 지태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자, 일단!”

조현민의 아내가 테이블로 그들을 안내했다.

치킨을 전문으로 하는 호프집이니 안주는 당연히 튀김 닭이었다.

세 사람은 치킨이 나올 동안 기본 안주를 앞에 두고 천천히 500cc 호프 한잔씩을 비워 갔다.

문득 지태가 조현민을 바라보았다.

“형님.”

“응.”

“내가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이놈도 고생을 많이 했답니다. 아까 저녁을 먹는 내내 어찌나 자화자찬을 해대던지.”

지태는 옆자리의 강성원을 쿡쿡 찔러 대며 말했다.

“무슨 고생을 그리 했는데?”

조현민이 시선은 강성원에게 두고 질문은 지태에게 했다.

“나를 해외에서 조용히 묻으라고 사주한 놈들을 캐고 다녔답니다.”

“오호, 그랬어? 캐고 다녔더니 뭐가 나오긴 한 거고?”

조현민은 이제 강성원에게 대놓고 물었다.

“내막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선우의 허영만과 골드웰의 기획실장, 그 두 놈이 이번 일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돼있을 거라는 게 내 결론이에요.”

“골드웰 기획실장? 그게 누군데?”

“그 회사 대표이사의 아들. 선우글로벌의 허영만과 친구 사이이기도 하고요.”

“허영만이랑 그 기획실장이란 작자가 친구야?”

“예, 형님.”

“그건 어떻게 알아냈는데?”

“내가 달리 광수대겠습니까! 이 민완형사의 촉으로 놈들의 신상을 탈탈 털어 봤습죠. 알고 보니 그 두 놈이 대학 동문이더라고요.”

강성원의 대답을 들은 조현민은 곧 고개를 지태에게로 돌렸다.

“하, 이 새끼들 봐라? 그럼 뭐냐. 허영만이가 고작 그딴 일 때문에 앙심을 품고 너를 죽이려 했단 말이야? 우리 수연이의 성추행을 막아준 것 때문에? 아무리 그래도 겨우 그 정도론 말이 안 되는 거잖아, 상식적으로.”

조현민이 불끈 치솟다가 다시 생각하니 그건 또 아니라는 듯 고개를 금세 내저었다.

지태가 쓰게 웃었다.

“당연히 말이 안 되죠. 그니까 이제부터 하나씩 벗겨 봐야죠, 왜 그랬는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건 아닐까?”

“그래서 일단은 두고 보려고요. 집요한 놈들이니까 그냥 말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기다리다 보면 뭔가 입질이 오겠죠. 그때 덥석! 낚으면 됩니다.”

지태가 낚싯대를 당기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런 지태의 표정은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속으로는 뭔가 단단한 것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독한 눈빛이었다.

* * *

양재동에 있는 고급 빌라의 펜트하우스.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50억이 넘는 곳이다.

그러니 실제 매매가는 그 두 배 정도 될 것이다.

몇몇이 공동투자를 해서 자신들의 아지트로 삼은 곳이었다.

이곳을 사들일 때 임경남은 그들 사이에선 자타가 공인하는 실질적 리더이자 최고의 재력가였던 터라 가장 많은 돈을 쾌척했다.

“어서 와, 경남아!”

식사 겸 마무리 회의까지 마치고 임경남이 뒤늦게 합류하자 모여 있던 멤버들이 손을 흔들며 반겼다.

술과 함께 늘 그래왔듯 약이라도 빨아댄 것인지 그들은 벌써 질펀하게 늘어져 있었다.

임경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다가 멤버 중 한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골드웰의 송영완과 선우글로벌의 허영만, 그렇게 둘만 모일 줄 알았었다.

한데 한 명이 더 추가가 된 것이다.

바로 대호건설의 사장 이현욱이었다.

“아까 현욱이가 온다는 말은 없었잖아!”

“왜, 넌 내가 오는 게 싫냐? 나 그냥 갈까?”

“넌 무슨 말을 그렇게 정 떨어지게 하냐. 뜻하지 않았는데 얼굴을 보게 되니 반갑다는 거지.”

임경남이 슈트를 벗어 아무렇게나 벗어던지며 소파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오자 이현욱은 지금껏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상석을 당연한 듯 임경남에게 내줬다.

다시 자리 정돈이 마무리되자 송영완은 의미가 듬뿍 담긴 표정으로 씩 웃었다.

“아까 필요 없다고 해서 안 불렀는데 혼자서 외롭지 않겠어? 지금이라도 하나 더 부를까? 요즘 데뷔 준비가 한창인 뉴 페이스들이라 아직 손도 타지 않은 아다라시들이라고 하더라. 어때, 이 정도면 오늘은 그게 좀 서지 않을까?”

“너 지금 장난하냐?”

비록 ‘나한테 감히!’라는 말은 생략했지만, 임경남은 얼굴의 온 근육을 다 쥐어짜며 독하게 인상을 썼다.

임경남이 눈을 부라리면 송영완은 예전부터 지레 오금이 저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송영완은 얼른 눈길을 피하며 제 옆에 앉아있던 어린 파트너의 가슴에 얼굴을 갖다 묻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여자애들은 메이저급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습생들이었다.

얼마 전 몇 다리를 건너 소개받은 이 회사의 대표는 틈만 나면 뉴 페이스들을 이곳에 자발적으로 공급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잘 보여야 투자나 협찬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는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들 중 뒤탈이 없을 것 같고 만만하게 보이는 애들만을 골라 슬쩍 스폰에 대해 언급했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되려면 재력이 있는 누군가의 스폰 없이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

그러면 몇몇은 눈치껏 말귀를 알아먹었다.

회사 대표는 그중 외모가 뛰어나고 입이 무거울 것 같은 아이들만 다시 추려서 이곳에 갖다 바쳤다.

아닌 말로 몇 번 데리고 노는 과정에서 혹시 만에 하나 불미스러운 일이 터져도 뒤탈이 나지 않을 애들만을 골라서 데려온다는 이야기다.

예전엔 개나 소나 마구잡이로 갖다 바쳤는데, 그게 갑자기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몇 번 피박을 된통 쓴 적이 있었다.

곤욕을 치렀던 그때의 학습 효과는 대단히 컸다.

그래서 요즘엔 되도록 몸을 바짝 사리며 조심하는 편이었다.

“쩝.”

임경남이 쓴맛을 다시며 술병을 들자 허영만이 자기 파트너 여자애한테 넌지시 눈짓을 했다.

대신 술병을 받아 그의 빈 잔을 채워 주라는 거다.

하지만 임경남은 거칠게 뿌리쳤다.

“됐어, 치워!”

“우리 친구가 오늘 따라 왜 이렇게 까칠하실까? 요즘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갑작스럽게 싸늘해진 분위기가 어색한 듯 이현욱이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임영완이 파트너의 가슴 사이에서 얼굴을 떼어 내며 속없이 히죽 웃었다.

“경남이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요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니까.”

“왜?”

“어떤 개자식 하나 때문…….”

“아이, 씨발! 집어치우지 못해! 이것들이 가만 보자 하니까 정말!”

임경남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이현욱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술잔을 놓칠 뻔했다.

“에이, 씨! 팔자에 없는 애새끼 떨어지겠네. 훅을 날리려거든 예고편이나 때리고 들어와라. 시발, 졸라 놀랐잖아.”

“그니까 잠자코 술이나 처먹어. 내 신경 건드릴 생각 말고.”

“뭣 땜에 그러는 건데?”

이현욱은 그의 기분 따위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집요하게 물어왔다.

그러자 옆자리의 허영만이 더는 건드리지 말라는 듯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영문은 모르겠으나 분위기상 더는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이현욱은 쩝 소리가 나게 쓴맛을 다신 후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내가 예전에 말했던 새끼, 있지?”

“누구?”

임영완이 파묻고 있던 파트너의 가슴에서 얼굴을 쳐들며 물었다.

“나 예전에 물 먹였다는 새끼 말이야… 거, 있잖아, 한지태라고!”

순간 되물었던 임영완이나 허영만의 인상이 동시에 구겨졌다.

기껏 화제를 돌렸나 싶었는데 다시 또 원상 복귀를 시킨 거나 마찬가지 상태였다.

두 사람의 구겨진 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임경남의 눈빛은 더욱 또렷해졌다.

방금 그 이야기에는 오히려 퍼뜩 관심을 갖는 모양새였다.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임경남이 물었다.

“그 새끼가 왜?”

“아프리카에 출장을 갔다던데 얼마 전 돌아왔다고 하더라고. 그 시발 놈, 어떡하든 내 손으로 한번 단단히 조져 놔야 하는데. 아, 참! 경남아, 회장님한텐 말씀 드렸냐?”

“뭘?”

임경남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뻔히 알아들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퉁명스럽게 대꾸를 내놓았다.

“아, 지은이하고 그 새끼가 아무래도 썸을 타고 있는 것 같다는 내 말…….”

“썸은 무슨! 넌 상식적으로 말이 좀 되는 소릴 해, 인마. 우리 지은이가 심심풀이로 잠깐 데리고 노는 거라면 몰라도…….”

“아니라니깐! 내가 봤을 땐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어. 그때 보니까 둘이 서로…….”

“아, 그만 좀 하라고!”

임경남이 버럭 소리치자 이현욱은 제풀에 깜짝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생각해 보니 은근히 화딱지가 나는 모양이었다.

이현욱은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시발! 도대체 왜 나만 갖고 그러는 건데? 좆같은 계집애들 앞에서 이게 웬 쪽이야. 사람 가오 떨어지게, 씨!”

“야, 현욱아, 진정해.”

“시끄러워, 이 새끼들아!”

아무리 모임친구라지만 이 안에서도 그들 간에 서열은 명확한 것처럼 보였다.

재계 서열에 따라 등수가 매겨지는 듯 임영완과 허영만은 그 순간 나란히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땐 멤버들의 리더답게 임경남이 나서서 수습해야만 했다.

그는 거칠게 한숨을 푹 내쉬면서 이현욱을 진정시켰다.

“내가 요즘 많이 민감해져서 그래. 미안하다, 그만 앉아라!”

이현욱은 허공에 대고 입바람을 크게 쏘아 올렸다.

그러더니 곧 못 이기는 척 제자리에 다시 앉았다.

“사실 너한텐 말하지 못한 게 있었는데, 나도 그 새끼 때문에 요즘 신경이 무지 날카롭다. 그런데다가 다시 또 그 새끼 이야기가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솟구친 거야. 자, 풀어!”

임경남이 이현욱을 향해 술병을 들어 보였다.

‘말을 못한 것?’

이현욱이 빈 술잔을 내밀면서 물끄러미 임경남을 쳐다보았다.

“지은이 때문에 그러는 거 말고 내가 모르는 뭐가 또 있는 거냐?”

“하, 시발!”

이현욱의 물음에 임경남의 입에서는 자동적으로 욕설이 튀어 나왔다.

지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치욕과 수모가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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