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깡으로 쓰는 재벌신화-83화 (83/272)

083화. 이윽고 귀국(1)

그사이 세 놈의 비명 소리가 더 들려왔는데 모두 둠부캉의 부하들이다.

둠부캉은 이미 지태의 손아귀에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맥 브라운과 캐서린뿐이다.

부하들이 살아서 대응사격을 해댈 땐 그나마 간간이 반격을 가하던 맥 브라운도 이제는 자신의 품에 안긴 캐서린을 보호하는 것은 고사하고 저 하나 살길을 찾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캐서린의 안위 따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

당장은 자기 먼저 살고 보자는 의지가 강렬했다.

맥 브라운은 대응사격이고 뭐고 간에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본능적으로 땅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상황은 사실상 종료되었다.

D.S.U 팀장과 요원들이 총구를 겨눈 채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고, 그 반대편 쪽에선 에릭이 부하들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지태는 반쯤 엎드리고 있던 자세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한!”

“에릭!”

에릭이 반갑게 외치자 지태가 양팔을 벌려 그를 맞았다.

“좀 징그럽긴 한데, 이것도 괜찮긴 하군요.”

에릭은 품에 안기면서 계면쩍다는 듯 굳이 사설을 늘어놓았다.

지태가 포옹한 채 쓴맛 다시는 소리를 냈다.

“멋쩍기는 팔을 벌린 내가 더 민망하죠. 그니까 그냥 미친 척 가만히 있어요.”

포옹을 푼 두 사람은 악수로 모처럼의 정을 나눴다.

그때 뒤에서 ‘빠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D.S.U 팀장이 가소롭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가운데 맥 브라운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으으윽!”

그는 팀장이 내지른 발길질 한 방에 반쯤 틀어진 턱을 부여안고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를 냈다.

조소로 바라보던 에릭의 옆에서 또 하나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 에릭. 나 좀 살려 줘. 제발…….”

에릭의 정보부 부하들에게 빙 둘러싸인 둠부캉의 입에서 나온 구원을 갈구하는 목소리.

지태는 에릭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일러바치듯 한 마디를 건넸다.

“아까 저 새끼가 뭐라 한 줄 압니까?”

“뭐라고 했는데요?”

“에릭과 맺은 관계는 그야말로 지랄 맞은 관계라고 하던데요.”

“아, 그랬습니까? 그럼 나도 거기에 걸맞게 지랄 맞은 대접을 해줘야겠군.”

에릭이 부하들을 돌아보며 명령했다.

“내 귀에서 그 상놈의 새끼 목소리가 좀 안 들리게 해줘라. 아, 명줄 끊는 건 시에라리온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너희는 그냥 그 새끼의 주둥이만 닫아놔!”

명령을 내린 에릭이 다시 뒤돌아 지태를 바라보고 웃는 사이 둠부캉을 응징하는 부하들의 발길질소리가 들려왔다.

뻐억, 퍽, 퍽.

콰자작.

“윽! 어쿠, 컥!”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질러대는 둠부캉의 비명 소리가 처절했다.

그때 D.S.U 팀장이 활짝 웃는 낯꽃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은 모든 게 다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그려져 있었다.

* * *

“대낮부터 호텔엔 무슨 이유로?”

해안가 별장 근처에서 D.S.U 팀장과 작별인사를 나눈 지태와 에릭은 렌트카에 몸을 싣고 코나크리 시내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부하에게 대뜸 호텔로 가자는 명령을 내리니까 지태가 묻는 소리였다.

에릭이 지태를 돌아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가보면 압니다. 아마도 한이 무척 반가워할 겁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에 지태는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에릭의 얼굴에 시선을 꽂았지만, 그는 어깨만 한번 으쓱해 보일뿐이었다.

그런데,

“야, 한 대표! 한지태 대표님!”

공항 근처에 위치한 5성급 호텔 로비에 들어서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알은 체를 해왔다.

그는 현재 케냐에 있어야할 기민성이었다.

“뭐냐, 너?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되긴! 에릭이 기니로 넘어간다기에 나도 얼른 뒤따라 나섰지.”

“하, 이거 참!”

지태는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지만, 그의 표정엔 기쁨과 함께 뜻하지 못했다는 반가움이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겨우 이 정도로 놀라긴 아직 일러. 또 하나의 빅뉴스!”

“또 뭔데? 아직도 나를 놀래게 만들 게 있냐?”

“이번엔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제대로 된 세속적인 기쁨!”

지태는 곧 에릭을 돌아보았다.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고 묻는 눈빛으로.

에릭은 픽 웃었다.

그러곤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였지만 정답을 말해주진 않았다.

기민성에게 직접 들으라는 것 같았다.

어리둥절해하는 지태를 데리고 기민성은 미리 잡아 놓은 방으로 올라가자고 했다.

에릭은 아직 점심도 못 먹은 부하들에게 밥부터 먹으라고 해놓고선 두 사람과 함께 객실로 올라왔다.

지태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매우 낯이 익은 중년사내 한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라프의 케냐 지사장인 윌리엄이었다.

지태가 멍하니 바라보고만 서있자 기민성은 다이아몬드 원석에 대한 감정과 판매까지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어렵게 청해서 모셔온 분이라고 설명해줬다.

물론 에릭의 협조가 있어서 가능한 거라는 부연설명도 빠뜨리진 않았다.

‘이런 고마운 사람들이 다 있나!’

지태는 기민성과 에릭의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윌리엄이 객실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 원석을 감정하는 사이 세 사람은 티테이블에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기민성과 에릭은 캔맥주로 간단히 목을 축이면서 그간 시에라리온에서 있었던 지태의 사연을 들었다.

맨 마지막엔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고 자평하는 지태에게 기민성이 픽 웃으며 말했다.

“누가 등 떠밀었냐? 제 무덤을 제가 파놓고선 엄살떨기는!”

그러자 에릭이 기민성에 이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덕분에 미스터 한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검은 대륙에서의 지난 시간들은 참으로 극과 극을 달리는 나날의 연속이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만큼 달콤한 수확물을 거머쥔 황금의 땅이기도 했다.

지태는 남다른 감회 속에서 지나간 날들을 머릿속에 주마등처럼 띄웠다.

말할 수 없는 벅찬 감회가 쉼 없이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 * *

그라프 케냐 지사장과의 협상은 잘 이루어졌다.

가격을 놓고 간을 보거나 지난한 줄다리기를 하지 않고 양측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선에서 금방 합의를 보았다.

아니, 사실은 그라프에서 이렇게 가격을 많이 쳐줄 것이라곤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지태는 솔직히 너무 놀랐고 쉬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꾸만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할 길이 없었다.

그라프의 케냐 지사장 윌리엄이 본사와 합의 하에 지태에게 제시한 금액은 700만 파운드였다.

한화로 따지면 102억이 조금 넘는 돈이다.

목숨을 한번 던진 값치고는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

이게 진정 꿈인지 생시인지 뺨을 여러 번 꼬집어보아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현실이었다.

윌리엄 지사장은 사람이 참으로 정직하고 솔직했다.

자신은 보석을 돈으로만 보지 않고 예술로 본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억 년 전 가장 뜨겁고 짙은 암흑 속에서 탄생하여 그 가치를 스스로 일구어낸 보석의 역사를 싸구려 취급할 수 없다는 게 자신의 철학이요 지론이라고 했다.

지태가 내민 블루 다이아몬드 원석을 보는 순간 그는 환호했었다.

요란하지 않은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데다가 티끌만 한 내포물조차 없어 그 투명도가 가히 예술이라고도 했었다.

여하튼 다이아몬드를 무리 없이 잘 해결하게 된 것은 오로지 기민성과 에릭 덕분이었다.

그래서 지태는 곧바로 귀국하지 말고 케냐에 잠시 들렀다 가라는 기민성과 에릭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코나크리를 떠나 나이로비로 돌아와 두 사람과의 우정을 이틀 간 더 쌓아갔던 지태는 마침내 귀국길에 올랐다.

기민성과 에릭은 조모 케냐타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지태는 먼저 에릭에게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했다.

“약속하는 겁니다, 에릭!”

“그럼요. 물론입니다. 아시아 근처에 갈 일이 있기만 해도 한국에는 일부러라도 꼭 들릴 겁니다.”

환하게 웃어주는 에릭에게 지태는 양팔을 벌렸다.

사내들만의 진한 우정이 느껴지는 포옹이었다.

“내 인생에서 에릭을 만난 건 참으로 행운이고 축복입니다. 결코 못 잊을 겁니다, 에릭.”

“나 또한 한과 마찬가집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자주 전화통화라도 하죠, 우리.”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하죠.”

지태는 따뜻한 정을 담아 에릭의 등을 두드렸다.

“야! 나도 여기 있다는 거 잊었냐?”

기민성이 두 사람을 질투하듯 끼어들었다.

“넌 머지않아 자주 볼 건데 왜 자꾸 채근이야?”

“자주 보다니……?”

“내가 찜했거든.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하려고!”

“헐! 누구 맘대로 나를 팔아먹어. 대기업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어디 감히 코딱지만 한 구멍가게에서 스카우트 타령을 해? 야, 지나가는 멍멍이가 걸음 멈추고 웃을 일이다.”

“인마! 아무 소리 말고 얌전히 목욕재계하고 기다려. 적어도 네놈이 쪽팔려 할 필요가 없을 만큼 내가 회사를 쑥쑥 키워 놓고 있을 테니까.”

“그렇담 쬐끔 말이 되는 거고.”

지태는 기민성에게도 양팔을 벌렸다.

“이런 건 좀 생략하자. 적응도 안 되고 졸라 쪽팔려!”

기민성은 쓰게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리면서도 슬그머니 다가와 지태의 포옹에 응했다.

* * *

다시 또 스무 시간이 넘는 비행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케냐로 넘어갈 때도 그랬지만, 귀국하는 길은 더욱 더 지루했고 시간이 더디게 갔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아니 금의환국(錦衣還國)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지태의 가슴은 자꾸만 설레고 벅찼다.

그다지 큰 확신을 가지고 떠나온 케냐 출장길이 아니었다.

자신감은 넘쳤지만, 그것만으로 자신이 오더를 수행해낼 것이라고는 스스로도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에릭이라는 좋은 친구와 연이 닿게 된 것은 천운이었다.

만일 그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케냐에서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복한 과부는 앉더라도 용케 요강 꼭지에만 앉는다고 했던가.

행운이 뒤따르고 좋은 일이 생기려니 생각지 못하게 복덩이들이 연달아 품에 스스로 달려와 안겼다.

아프리카에 온 김에 중소기업 사장들의 어려운 사정이나 해결해 주겠다고 날아온 시에라리온에서도 뜻하지 못하게 캔 노다지.

물론 그 과정에서 자칫 생명을 잃을 뻔도 했지만,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승리의 V자를 그리게 되지 않았던가.

지태가 마지막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일 즈음 마침내 기장의 목소리가 기내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

길고 지루한 비행에 수고가 많았다는 의례적인 인사말과 더불어 이제 곧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는 내용이었다.

* * *

“야, 한 대표! 여기다, 여기!”

이윽고 지태가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공항 대합실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조현민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반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누군가 바람처럼 달려와 지태에게 덥석 안겼다.

바로 임지은이었다.

“왜 이래?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하는 줄 알겠어.”

“너무나 반가운 걸 나더러 어쩌라고!”

자기표현에 있어 거침없고 솔직한 지은이다.

지태는 멀건이 바라보는 조현민에게 시선을 던졌다.

자기는 신경 쓰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부담 없이 만끽하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연신 손을 까불어 대더니 딴청을 피우듯 이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까매졌네. 어? 살도 좀 빠진 거 같고.”

긴 포옹 끝에 품에서 떨어지던 지은이 지태의 위아래를 훑어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 재벌 딸이 맞긴 하냐? 너쯤 되면 좀 도도해야 하는 거 아냐?”

“같잖은 것들이나 도도하라고 그래. 난 이런 게 좋아. 왜 내 마음을 감춰? 감춰서 뭐하게?”

“그래, 우문현답이다. 그보다 일단 현민이 형님한테 귀국 인사부터 하자.”

지태는 아직도 다른 곳에 시선을 던진 채 딴청을 피우고 있는 조현민을 가리켰다.

생각해 보니 너무 오버한 것 같았다.

지은이 픽 웃고는 길을 터 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