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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82화 (82/272)

082화. 속임수의 끝(3)

복도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지태는 재빨리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태연하게 코고는 소리까지 내자 방에 들어선 캐서린은 곧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곧장 제 몫의 침대로 향했다.

“아, 피곤해. 그나저나……. 후훗!”

밖에서 얼마나 격한 사랑을 나누었는지는 몰라도 캐서린은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하, 참!”

그녀가 잠든 것을 확인한 지태가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쓰게 웃었다.

에릭이 말하기를 오늘밤엔 놈들이 덮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습격 과정에서 자칫 시끄러워질지도 모를 게스트하우스보다는 아마 다른 조용한 장소를 물색해 덮칠 것 같으니 오늘밤은 걱정 없이 푹 잠들라고 했었다.

하지만 지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놈들의 교활한 수작에 한두 번 속아본 게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지태는 만약을 대비해 머리맡에 놓아둔 베레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여차하면 한판 붙을 생각이다.

그렇다고 밤새 뜬눈으로 지새울 수는 없는 일.

선잠이나마 잠시 눈이라도 붙이는 시늉을 해야만 한다.

“후우~”

지태는 소리 없이 묵직한 콧숨을 내뿜으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잠들지 말아야지 했는데 그만 깜빡 잠든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창밖이 환했다.

그와 함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온통 게스트하우스를 뒤덮고 있었다.

이른 잠에서 깨어나 벌써 도떼기시장처럼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다른 방 투숙객들의 소란이었다.

저리 시끄러운 와중에도 캐서린은 좀처럼 일어날 줄을 몰랐다.

확실히 지난 새벽에 뜨겁고도 격렬한 시간을 실컷 보내고 온 것이 틀림없다.

지태는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다음 욕실로 들어갔다.

짧지 않은 시간을 욕실에서 있다가 나왔음에도 캐서린은 아직 침대 시트를 온몸에 돌돌 말아 안은 채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캐서린과 함께 보낸 요 며칠 동안 문득문득 육감적인 섹시미가 넘친다고 느꼈었지만 교활하고 악랄한 그녀의 정체를 알고 난 이후부터는 퍼질러 자는 모습조차 이젠 가증스럽게 보였다.

그나저나 이제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지태는 캐서린을 깨우기 위해 일부러 쿵쿵거리며 방 안을 휘젓고 다녔다.

그제야 캐서린은 반응을 보였다.

“하아아~.”

캐서린이 게으른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해댄다.

그러다가 문득 지태를 발견했다는 듯,

“어머, 언제 일어났어요, 한?”

그리 능청스럽게 인사를 해왔다.

“방금요! 어제 너무 맛있게 잤나 봐. 오늘은 아주 몸이 날아갈 듯 가볍습니다.”

“하긴! 코까지 골면서 너무 맛나게 자더라구요.”

“그랬어요? 난 자는 동안 캐서린이 은근히 덮쳐 주기를 기다렸는데.”

“내가 애써 유혹할 땐 사람을 그토록 민망하게 만들더니. 그럼 지금이라도 한번 오케이?”

캐서린이 요염한 자세를 만들어 보이며 검지를 유혹하듯이 까닥였다.

“흰소리 그만 하고 눈곱이나 떼셔, 캐서린!”

지태가 관심 없다는 듯 벽거울을 들여다보며 젖은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그 뒤로 캐서린은 욕실에 들러 샤워를 하고 꼼지락대며 오랜 시간을 정성스럽게 화장했다.

하는 일없이 여자의 화장하는 모습이나 멍하니 지켜보는 일은 아주 곤욕스러웠다.

더구나 가증스러운 여자라서 그런지 시간은 더디 가기만 했다.

그렇게 길고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두 사람이 게스트하우스를 나선 것은 오전 11시가 다 될 무렵이었다.

우선 아침밥부터 먹자는 캐서린의 의견을 좇아 지태는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식사를 주문하고 약간은 데면데면하게 앉아 있는데 캐서린이 문득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제 한이 잘 때 5촌 당숙과 통화를 했어요.”

이제 뭔가 속내에 감춰둔 꿍꿍이를 드러낼 모양이다.

지태는 시치미를 뗀 채 잠자코 캐서린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말을 안 했죠? 사실 5촌 당숙께서 세네갈에서 보석 사업을 좀 크게 하세요.”

이럴 땐 미친 척 그녀의 장단에 맞춰 춤을 추어줘야 하는데 그게 잘 될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 그래요? 근데 왜 말을 안 했어요. 암튼 그거 잘됐네.”

다행히도 극성스러운 지태의 호들갑이 먹혔나 보다.

미끼를 덥석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캐서린이 히죽히죽 웃었다.

“미안해요. 어젠 좀 경황이 좀 없어서…….”

“아니, 괜찮아요. 그래서요…?”

“그래서 지금 내가 처한 사정을 말했더니 오늘 가장 빠른 비행기 편으로 날아오신댔어요.”

“이야, 그거 참 잘됐네! 그럼 나는 오늘부로 마침내 해방이 되는 건가요?”

“어머, 내가 그리 천덕꾸러기 짐짝이었어요?”

캐서린이 입을 삐죽이며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지태가 만면 가득 웃음꽃을 피우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입니다, 농담. 그럼 언제쯤 도착할지는 확실히 모른다는 거네요?”

“코나크리에 도착하는 대로 전화를 주신댔어요. 아마 조금 있으면 연락이 올 거 같아요.”

지태는 아주 잘되었다는 식으로 반기는 시늉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조소를 날렸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뻔뻔한 새끼들의 낯짝을 한꺼번에 전부 보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캐서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어머, 당숙이신가 봐요.”

지태가 미소로 바라보자 캐서린은 속을 들킨 듯 약간 뜨끔 하는 눈치더니 곧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모르긴 해도 발신자는 맥 브라운일 거다.

“네. 도착하셨어요, 당숙?”

이윽고 그들은 지태를 옭매기 위한 작전을 개시하려는 것 같았다.

지태는 캐서린이 통화를 하는 사이 자신도 스마트폰을 들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 * *

캐서린의 말에 의하면 5촌 당숙은 코나크리 국제공항 근처 지인의 별장에 있을 거라고 했다.

대서양이 한눈에 펼쳐지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에 위치한 별장이라고 했다.

지태는 택시를 잡아타고 캐서린의 5촌 당숙(사실은 맥 브라운이겠지만)이 찍어 준 주소를 따라 달렸다.

아닌 게 아니라 약 2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그곳은 해안 절벽을 때리는 파도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는 풍광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별장 쪽으로 가는 길에는 제법 울창한 숲도 자리하고 있었다.

띠리리리링.

택시에서 내려 별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다시 캐서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네, 당숙! 아, 산책 중이시라고요?”

그러면서 지태를 힐끔 돌아다보았다.

어설픈 발연기지만, 어쩌겠는가.

기꺼이 속아 주는 척해야지.

지태가 미소로 끄덕이자 캐서린은 마무리 통화 멘트를 날렸다.

“그니까 절벽을 따라 올라오다가 숲으로 난 길로 꺾어 들어오란 말씀이시죠? 네, 알겠어요.”

놈들이 거사 장소로 삼은 곳은 들어갈수록 음습한 분위기를 풍겼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런 음습한 숲이 있는 것 자체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지태는 무심코 가슴팍을 쓸어보았다.

만약을 대비해 강성원이 선물해준 방탄복을 옷 속에 받쳐 입었는데 분위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어떤 긴장감에 그만 절로 손길이 가고 말았다.

“여긴가 봐요. 근데 당숙께선 어디 계시지?”

마침내 약속된 장소에 다다른 모양이다.

앞장서 걷던 캐서린이 발걸음을 멈추며 주변을 돌아보는 시늉을 했다.

그녀의 어색한 발연기에 지태는 목을 죄어 오는 긴장감 속에서도 하마터면 큭 하고 웃을 뻔했다.

해안가 절벽과는 약 7~80보 가량 떨어진 숲속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마치 천둥이 울리는 것처럼 가깝게 들려왔다.

주변을 빠르게 스캔해 가는데 문득 눈이 마주친 캐서린이 지태를 보고 씩 웃는다.

‘뭐지? 드디어 나타난 건가?’

지태가 조소를 담아 입술 끝을 비틀었다.

캐서린이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더니 턱짓으로 지태가 선 방향을 중심으로 양쪽을 번갈아 가리켰다.

“여어, 한! 이런 데서 보니까 왠지 더 반가운걸!”

좌측에서 먼저 큰소리를 외치며 나타난 것은 맥 브라운이었다.

그러자 우측에서 치면 울리듯 둠부캉이 말을 받았다.

“역시 우리가 호구 하나는 잘 골랐어. 멍청한 한국 놈!”

그러자 지태는 고개를 숙인 채 키득거렸다.

“큭큭.”

“어쭈, 이 새끼 맛이 갔네! 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와?”

어느새 서너 걸음 앞까지 바짝 다가온 둠부캉이 글록 권총을 위아래로 흔들어 대며 교만을 떨어댔다.

“내가 네놈 말대로 머리가 나빠서 분위기 파악을 못해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지금이 어떤 상황이냐?”

제 말끝에 지태가 씨익 웃었다.

“그 멍청한 대가리에다가 구멍을 뚫어 주겠다는 말이야, 인마. 그다음엔 저 절벽 아래로 던져서 물고기 밥으로 던져 주려는 것이고.”

“야, 둠부캉! 넌 이미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굳이 내 것까지 빼앗아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너 그렇게 더럽고 비겁한 새끼였어? 그게 에릭에 대한 네놈 식 우정이야?”

“우정은 무슨!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교류하던 놈과 우정은 무슨 지랄 맞은 우정! 잔소리 말고 그 손가방이나 이리 던져, 새끼야. 그리고 얌전히 뒈져주는 거다. 알겠어?”

말을 마친 둠부캉이 총구를 겨눴다.

지태는 개의치 않고 캐서린과 맥 브라운을 바라보았다.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 뜨거운 연인처럼 서로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있었다.

“캐서린! 내가 오늘 이렇게 죽을 줄 알았더라면 어젯밤 슬그머니 안아줄걸 그랬어.”

지태가 느물거리며 웃었다.

“그니까 병신 소리를 듣는 거야. 준다고 했을 때 ‘이게 웬 떡이야!’하면서 얼른 드셨어야지.”

캐서린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까르르 웃었다.

“한!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돌아갈 시간이야. 우리도 바쁘거든. 할일도 많고.”

맥 브라운이 비릿한 웃음을 날렸다.

“그러지 뭐. 나도 슬슬 지겨워지려던 참인데 잘됐네. 조금만 더 네놈 목소리를 들었다간 내가 엊그제 먹은 것까지 전부 토할지도 모르거든!”

이번엔 지태가 비릿하게 웃었다.

맥 브라운과 둠부캉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지태의 태도에서 뭔가 수상한 기척을 느낀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바스락.

어디선가 수상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돌아보는 그들의 시선에 어느새 주변을 포위한 사내들의 모습이 보였다.

맥 브라운의 시선엔 가장 먼저 D.S.U의 팀장이, 둠부캉의 시선엔 조소를 퍼붓고 있는 에릭의 모습이 들어왔다.

타앙.

파도 소리를 뚫고 들려온 첫 번째 총성을 신호로 일제히 사격이 개시됐다.

맥 브라운이 캐서린을 안은 채 바닥을 굴러 나무 뒤로 숨었고, 둠부캉은 부하들 틈바구니로 재빨리 파고들었다.

이대로 가만히 서있다간 눈 먼 유탄에 당할 염려가 있었다.

지태 역시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텀블링하듯 몸을 날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굴려 전신주만큼 굵직한 나무 뒤에 자리를 잡았다.

수세 싸움에서 이쪽 놈들은 저쪽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았다.

타타타타탕.

타앙, 탕, 탕, 탕.

D.S.U 요원 10여 명과 에릭이 따로 이끌고 온 대략 다섯 명 정도 되는 요원들이 그들을 포위한 채 집중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조금 높은 곳에서 이미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터라 이쪽 놈들은 그야말로 사격장의 고정 표적지나 같았다.

“으악.”

“컥!”

둠부캉의 곁에 있던 두 놈이 총에 맞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러자 둠부캉은 이미 숨통이 끊어진 부하의 시신을 방패삼아 고개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해댔다.

그러다가 우연히 지태와 눈이 마주치자 이쪽에 대고 괜히 신경질적인 사격을 가해왔다.

타앙.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 했던가.

피융, 팍!

놈이 쏜 총알 한 발이 지태가 몸을 숨긴 나무모서리에 와서 박혔다.

지태는 곧바로 대응사격에 들어갔다.

탕!

한때는 부대 내에서 권총 사격술의 대가로 칭송받던 지태였다.

총알은 정확히 날아가 권총을 쥐고 있던 둠부캉의 팔뚝을 그대로 꿰뚫어 버렸다.

“Fuck!”

충격과 고통으로 저도 모르게 권총을 놓친 둠부캉이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 위로 지태의 분노 어린 복수심이 다시 또 날아갔다.

탕!

이번엔 놈의 허벅지를 관통했다.

“Fuck, F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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