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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78화 (78/272)

078화. 마침내 국경!(1)

“이 새끼들이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분명 동료라는 놈들이 일대를 수색하고 다닐 겁니다. 우린 그전에 빨리 강을 건너야 하고. 그러니 어서 서두릅시다, 캐서린!”

지태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캐서린의 손목을 잡고 다시 승합차가 세워진 곳으로 돌아왔다.

“자, 여기서 3시 방향이라고 했으니까…….”

승합차를 중심으로 3시 방향쯤을 가늠한 지태가 다시 캐서린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걸음 수를 헤아리며 어둠을 밟아갔다.

룬카야 놈은 확실히 숫자 개념에 약했다.

제 짐작으로 스무 걸음이라 했는데 숫자를 세며 오다 보니 정확히 예순다섯 걸음이었다.

여하튼 그래도 거짓말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수령이 30년은 족히 돼 보이는 야자수에 카누가 세로로 묶여 있었다.

상류로부터 물살을 몰고 내려오는 강물의 울음소리가 더욱 더 크게 들려왔다.

저 정도의 물살세기에 이 카누가 과연 지탱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헉, 헉!”

지태는 묶여 있는 카누를 풀어 등에 업듯이 메고는 힘겹게 강가로 걸어갔다.

10분쯤 힘겹게 어둠을 밀어내며 걸어가자 강둑이 나왔다.

“타요, 캐서린.”

지태는 강둑 언저리에 카누를 반쯤 걸쳐놓은 상태에서 캐서린을 그 안에 태웠다.

카누를 먼저 띄운 다음 캐서린을 올라타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일단 그녀를 먼저 태운 다음 힘껏 밀어서 물에 띄우고 그 자신은 나중에 점프해 올라타려는 계산.

그런데 캐서린이 망설이는 눈빛을 보내왔다.

“이거 뒤집어지지 않을까요?”

거센 물살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카누가 전복될까 몹시도 두려운 모양이다.

캐서린이 잔뜩 겁먹은 목소리였다.

지태는 전혀 염려할 것이 없다는 식으로 편하게 웃어주며 달랬다.

“카누가 보기엔 좀 엉성해보여도 이게 사실은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된 겁니다. 절대 안 뒤집혀져요.”

“한이 그렇다고 하면… 네, 믿고 탈게요.”

캐서린이 캐리어를 먼저 카누에 실은 다음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그때 두 사람의 뒤편으로 느닷없는 랜턴 불빛이 느껴졌다.

정확히 세 개의 불빛이었는데 출렁거리듯 가까워지다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춰졌다.

아마도 룬카야와 바르카의 시신을 발견한 듯했다.

지태의 마음이 급해졌다.

“자, 서두릅시다!”

지태는 카누를 강물 위로 힘껏 밀어젖혔다.

카누는 물에 닿자마자 미친 듯이 요동치며 앞으로 내달리려고 했다.

지태는 점프와 함께 서둘러 올라탄 다음 노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이대로 강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간다면 노가 굳이 필요치 않을 것이지만, 자신들은 지금 한가하게 뱃놀이를 나온 게 아니었다.

강 건너편으로 서둘러 넘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살에 휩쓸려 하류로 흘러가기 전에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할 것이다.

지태는 정신없이 노를 저었다.

그렇게 열심히 땀을 흘리며 젓다 보니 카누는 강한 물살을 힘겹게 이겨내며 오른편 강둑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긴 했다.

“나도 좀 도울까요?”

제 몸 하나 중심을 잡는 것도 어려운 처지에 캐서린이 거들겠단다.

지태는 대답 대신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고성능 랜턴의 불빛들은 여전히 출렁거리듯 다가오더니 어느새 승합차 부근에까지 이르렀다.

“아냐, 괜찮아요.”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가 어설프게 돕는다고 나섰다가 행여 노 젓는 호흡이 어긋나 중심을 잃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카누가 뒤집히는 날에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게 될 거다.

“캐서린, 내 말 잘 들어요. 아까 그 두 놈의 동료들이 우리의 뒤를 바짝 쫓아왔어요. 만약 내가 ‘숙여!’라고 외치게 되면 지체하지 말고 곧바로 납작 엎드려야 돼. 알겠어요?”

“네, 알겠어요.”

캐서린은 대답과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도 랜턴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지금껏 등지고 있던 캐서린으로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캐서린은 더더욱 공포를 느끼는 듯했다.

극도의 두려움으로 그녀가 몸을 떨어댈 때였다.

한줄기 강한 랜턴의 불빛이 무심코 카누를 스치고 지나갔다.

곧 다시 돌아온 그 조명 빛은 이내 두 사람에게서 멈췄다.

동시에,

타타타타탕!

자동소총에서 쏟아진 총알들이 강물 위로 날아와 박혔다.

피윳, 피윳, 피윳.

팟, 팟팟팟.

몇 발은 카누의 옆구리를 때리는 것도 같았다.

지태가 버럭 소리쳤다.

“숙여!”

하지만 캐서린은 지태가 소리를 치기도 전 이미 본능적으로 뱃전에 납작 엎드렸다.

지태의 마음이 더욱 바빠졌다.

이제 저쪽 편 강둑까지는 약 10여 미터 정도를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지태의 눈에는 마치 십 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시발!”

지태는 최대한 몸을 낮추며 노를 열심히 저어 댔다.

그 위로 다시 또 자동소총이 갈겨졌다.

타타타타탕!

“으잇, 씨발!”

순간 지태의 입에서 비명처럼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꼭 쥐고 있던 왼쪽 노를 그만 놓쳐 버렸다.

캐서린이 납작 엎드린 채 고개만 살짝 들어 지태를 바라보았다.

“왜요? 어멋!”

“그대로 있어. 움직이지 마요.”

도와주려는 생각에 무심코 상체를 쳐든 캐서린에게 지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대로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가만히 있어요.”

“아, 알겠어요.”

오른손에 들고 있던 노를 왼손으로 다시 옮겨 잡은 지태는 미친 듯이 노를 젓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지태는 마지막 죽을힘을 다했다.

그 위로 자동소총은 쉴 새 없이 쏟아졌지만 놈들의 사격술은 형편없었다.

그나마 잘된 일이었고, 제대로 훈련받은 군인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카누는 마침내 강둑에 다다랐다.

이번엔 지태가 먼저 카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잽싸게 손을 뻗어 캐서린으로 하여금 자기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기어오게 했다.

“자, 셋에 넘어오는 겁니다. 하나, 둘, 셋!”

지태의 카운트가 끝나자 캐서린은 날렵하게 카누를 넘어 지태의 몸 쪽으로 굴렀다.

그 다음에 지태는 재빨리 캐리어를 빼낸 후 카누를 힘껏 끌어당겨 옆으로 뒤집었다.

강둑 주변은 수초로 가득했다.

지태는 캐서린의 손목을 이끌어 우거진 수풀 쪽으로 기어가다시피 옮겨 갔다.

그러도 보니 이제 총알이 날아와 때리는 것은 일부러 뒤집어놓은 카누 쪽이었다.

* * *

“야, 속도 좀 최대로 높여!”

헬멧을 쓰지 않은 D.S.U 팀장이 소리쳤지만, 조종사는 반대로 헬멧을 쓰고 있는 탓에 오히려 그 소리를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러자 헬기 조종사 바로 뒤편에 있던 부하 하나가 어깨를 톡톡 쳐 뒤를 돌아보게 만든 다음 더욱 속도를 높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렛 스카이스 강에 인접한 마그베티 마을을 담당하던 초급장교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20분 전이었다.

현재 동양인 남자 하나와 금발의 여인이 도망치는 것을 뒤쫓고 있다고 했다.

먼저 발견한 것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었는데 동양인 남자 놈이 절친하게 지내던 지인 둘을 살해하고 도망쳤다고 진술했다는 거다.

“개새끼들! 그새 여기까지 도망쳐 왔군.”

팀장은 분하다는 듯 독한 눈빛을 한 채 이를 악물었다.

그러다가 생각하니 뭔가 좀 이상했다.

도망자의 숫자가 안 맞는 거다.

분명 남자 둘에 여자 하나여야 한다.

한국인 한지태와 신문기자로 위장한 미 CIA 요원인 맥 브라운, 그리고 캐서린이란 여자까지 셋이어야 하는데 한 명이 빈다.

그게 왠지 께름칙했다.

“뭐지? 다른 한 놈은 또 어디로 튄 거야?”

헬기의 메인 로터에서 내뿜는 굉음 때문에 주변에 앉아있는 부하들의 귓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멀뚱하게 바라보고 있자 팀장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라는 듯 손을 까불어댔다.

팀장은 헬기 차창 밖을 내다보며 다시금 이를 악물었다.

위치가 발각되고 동선이 확실해진 이상 이제 놈들을 붙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제까짓 놈들이 아무리 튀어봤자 결국은 벼룩이고, 부처님 손바닥 안에 놓인 손오공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거다.

* * *

북쪽만 바라보며 얼마나 달려왔는지 모른다.

가는 길이 온통 숲 천지라 힘이 몇 배로 들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추적하는 자들을 따돌리기에 약간 용이하다는 이점도 있었다.

핡, 하악!

캐서린의 숨소리가 턱에 걸린 듯했다.

“하, 한! 조, 조금만, 조금만…….”

애달프게 내뱉는 그녀의 음성이 결국 지태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거리를 조금 벌려 놓긴 했지만 뒤쫓는 자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판국이어서 아직은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임계점에 도달한 캐서린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지 않는다면 한 발짝도 전진할 수가 없을 듯했다.

“캐서린! 허리를 굽혀 봐요. 그 상태에서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요.”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미안해요, 한!”

약 2분 정도 지태가 시키는 대로 숨을 고르던 캐서린이 비로소 허리를 폈다.

이런 때를 대비해 활동성 편한 레깅스에 운동화까지 갖춰 신은 캐서린이었다.

평소 조깅 등으로 체력을 높여 놨다고 생각했는데 극도의 공포심에서 오는 긴장감 때문인지 체력은 쉽게 고갈되어 버렸다.

더구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는 건장한 남자의 뒤를 따라가려니 몇 배는 더 힘들었다.

“그나마 캐서린이 건강해서 다행이오. 그 정도면 여자치고는 대단한 겁니다.”

지태의 칭찬에 캐서린이 멋쩍게 웃었다.

“한국에 아름다운 여친만 없다면 내가 과감히 대시하고 싶은 남자예요, 미스터 한은!”

캐서린의 말에 그 와중에도 지태는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험담은 아니라서 좋군요.”

“겨우 그 정도예요? 나 같은 미인이 자기를 좋아한다는데도?”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그래요. 캐서린이 대충 알아들었으면 좋겠군.”

“피이.”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던 캐서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지태의 팔목을 매만졌다.

“총 맞은 데는 괜찮아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아까 총을 맞았었지?

지태는 워낙 다급하게 도망치다 보니 자신이 총에 맞은 줄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박힌 것은 아니었다.

살점이 좀 패이긴 했지만.

“괜찮아요. 스친 것뿐인 걸!”

가볍게 웃고 말던 지태가 돌연 굳어졌다.

조금 거리를 벌려 놨다 싶었는데 추격자들은 벌써 따라붙고 있었다.

거기에 어디선가 작은 북을 연신 두드리는 것 같은 헬기의 로터 소리도 들려오고 있었다.

지태는 이를 악물며 다시 또 캐서린의 손목을 꼭 쥐었다.

“자, 빨리 여길 벗어납시다.”

* * *

D.S.U 팀장은 헬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거진 숲 사이로 랜턴을 어지럽게 흔들어대며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놈들을 추격 중인 군인들.

헬기가 그들의 머리 위를 날자 랜턴 몇 개가 공중으로 향했다.

“이곳 지휘관 놈을 연결해 봐.”

팀장이 소리치자 부하 하나가 얼른 무전을 날렸다.

연결이 되고 몇 마디를 날리던 부하가 곧 팀장을 돌아보았다.

“놈들의 위치가 확인됐냐고 물어봐라.”

부하는 팀장의 말을 받아 지휘관에게 전달했다.

“발자국을 찾아 계속 추격 중이라고 합니다, 팀장님.”

“그럼 지금은 아마 저곳을 지나고 있겠군.”

팀장은 북쪽 기니 국경과 잇대어 있는 숲 쪽을 가리켰다.

“국경을 넘어가면 말짱 다 도루묵이야. 놈들이 국경을 넘기 전에 어서 서치라이트를 비춰 수색하라고 해!”

“예, 팀장님.”

부하는 명을 받더니 이내 조종사의 어깨를 다시 두드렸다.

그러고는 지태가 도망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숲 쪽을 향해 어서 서치라이트를 쏘라는 신호를 보냈다.

“생포할 수 없거든 사살해도 좋다고 해라. 대신 두 연놈이 가지고 있는 가방만큼은 꼭 챙기라 하고.”

팀장 역시 이렇게 필사적으로 뒤쫓는 이유가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가방, 즉 다이아몬드 원석 때문이라는 것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헬기는 숲을 향해 강한 서치라이트를 쏘아대며 빠르게 북쪽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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