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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72화 (72/272)

072화. 진실게임(3)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죠. 이것 말고 내가 다시 또 놀라야 할 일이 있는 겁니까? 있다면 지금 미리 말해 줘요. 이제 더는 멍 때리고 있다가 놀라고 싶진 않으니까.”

“이게 정말 끝이에요. 우리가 세워놓은 마지막 플랜이 맞아요.”

“그 말이 진실이라면 좋겠군!”

내뱉는 말과는 달리 지태는 캐서린에게 미덥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자, 슬슬 우리도 내려갑시다.”

맥 브라운이 출발하자는 듯 지태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했다.

앞장서서 임시 거처를 나서는 맥 브라운을 뒤따라 지태와 캐서린이 걸어 나왔다.

대문을 나서 골목으로 두어 걸음 내딛던 지태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대형 캐리어와 소형 캐리어를 각각 하나씩 양손으로 끌고 오는 캐서린의 모습이 무척 힘겨워 보였다.

자신이 들고 있는 것은 달랑 손가방 하나.

지태는 기꺼이 캐서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뜻을 알아차린 캐서린이 굳이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둘 중 하나를 내밀었는데, 소형 캐리어였다.

지태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 말고 큰 걸로.”

“미안해서…….”

“괜찮아요, 이리 줘요.”

그때 앞서가던 맥 브라운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주머니를 뒤졌다.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그는 곧 스마트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어, 벤자민!”

- 맥, 10분 전이야. 이쪽은 슬슬 준비에 들어갈까 하는데.

“그래. 우리도 곧 헬기를 이용해서 룽기로 날아갈 거니까 예정된 시간표대로 움직이자고. 난 이제부터 전화기를 꺼둘 거야.”

- 오케이! 암튼 나중에 좋은 데서 만납시다.

벤자민의 마지막 인사에 맥 브라운은 뭔가 의미가 가득 담긴 모습으로 씩 웃고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 옆으로 지태가 가까이 다가왔다.

“맥! 벤자민을 놈들에게 내주다면 우린 얼마나 시간을 버는 겁니까?”

“놈들이 화물선에 이어 룽기에서 출발하는 쾌속정까지 수색을 하려면 적어도 3시간 정도는 벌지 않겠어요?”

지태는 맥 브라운의 대답을 듣고는 곧 묵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한?”

“3시간이라면 너무 빠듯하지 않나 해서요.”

“어떤 점이 말이오?”

“기니 국경까지 가려면 우린 네 개의 강을 지나야 합니다. 만약 전국에 비상령이라도 떨어진다면 다리가 제일 먼저 폐쇄되거나 검문이 강화될 거 아닙니까.”

그것까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는 듯 맥 브라운은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프리타운에서 북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우선 만나게 되는 강이 코켈 강과 포트로크 강이다.

이 두 개의 강은 3시간 안에 충분히 주파할 수 있다.

문제는 리틀 스카시스 강과 그렛 스카시스 강을 그 시간 안에 주파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인데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쉬지 않고 차를 몰아간다 해도 기니 국경 근처에 있는 문제의 두 강을 건너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도 촉박했다.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만들어야겠군. 다만 한 시간이라도 더…….”

맥 브라운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꺼두었던 스마트폰의 전원을 다시 켰다.

발신음이 달려가는 동안 맥 브라운은 지태와 눈이 마주치자 멋쩍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 벤자민. 여기 사정이 좀 여의치 않아서 그러니까 선장을 붙들고 약 한 시간만 출항을 늦춰 달라고 부탁해 봐.”

-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요?

“예약해 둔 헬기에 약간 문제가 있나 봐. 살짝 손만 보면 되는 정도라는군.”

- 알겠수. 내가 알아서 적당히 비벼 보지 뭐.

맥 브라운은 곧 전화를 끊었다.

그러다가 혹시 벤자민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엔 꺼두지 않았다.

세 사람은 어둠을 밟으며 언덕을 내려갔다.

프리타운 시내에 인접하고 있다고는 하나 워낙 달동네인 까닭에 한낮에도 외지인들이 함부로 들어오기를 꺼리는 지역이다.

더구나 어둠이 삼킨 이 즈음이면 더더욱 무섭고 으스스한 동네였다.

맥 브라운은 이미 권총을 빼들고 있었다.

그는 번뜩이는 두 눈으로 주변을 부지런히 살피며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언덕을 절반 이상 내려왔을 무렵이었다.

“잠깐!”

앞장서 가던 맥 브라운이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지태와 캐서린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지태가 바싹 다가서는 것과 함께 본능적으로 그 자신도 베레타를 빼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저 앞쪽에서 수상한 인기척이 잠깐 들리다가 말았소.”

“수상한 인기척이라니?”

“바로 이런 거 말이오.”

그러면서 맥 브라운은 권총의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키는 시늉을 해보였다.

“누굴까요?”

“글쎄. 근방에서 노는 불량배라면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둘 중 한곳의 요원들이라면…?”

하는 찰나였다.

골목의 앞쪽이 아니라 옆쪽에서 어둠을 찢어낼 듯 거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맥! 이 밤에 어딜 쥐새끼처럼 기어 나가시나?”

지태도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둠부캉이었으니까.

맥 브라운은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고, 지태 역시 바로 옆의 캐서린을 한쪽 팔로 감싸 안으며 납작 주저앉았다.

“미스터 한! 당신은 왜 또 거기에 있어? 내가 상황이 좋지 않으니 호텔로 데려간다지 않았나. 왜 도망친 거야? 이거 상황을 영 어렵게 만드셨어. 에릭에게 내 체면 다 깎이게 말이야.”

“둠부캉! 당신의 속셈이 뭔지 나도 다 알아 버렸어. 결국 당신도 나를 이용해먹으려 했던 거 아냐?”

“허, 말이 그렇게 되나?”

둠부캉이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낄낄 웃었다.

“이거 상황이 애매하게 됐는데.”

맥 브라운이 뒤통수를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며 지태를 돌아보았다.

“몇 명이나 되는 것 같습니까?”

“그야 알 수 없죠. 둠부캉이 제 부하 놈들을 몽땅 끌고 왔다면 대략 일고여덟은 되겠지.”

“여긴 어떻게 알고. 혹시…?”

“벤자민을 의심하는 거라면…….”

그리고 부정하는 부분, ‘아닐 겁니다.’라는 대목에선 고개를 내저어보였다.

“만약 털어놓는다 해도 둠부캉보다는 D.S.U 애들에게 털어놓을 겁니다. 그쪽이 만약 일이 잘못되거나 꼬이더라도 빠져나가기가 쉽다고 생각할 테니까.”

여하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둠부캉과 정보부 요원들의 포위망을 뚫고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내 사격 솜씨도 보통은 넘습니다. 군에 있을 때 내가 한 사격 했거든.”

지태가 그냥 밀고 나가자는 뜻을 보이자 맥 브라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둘뿐이라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그러면서 턱짓으로 캐서린을 가리켜보였다.

지태는 곧 수긍했다.

캐서린으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은 건 사실이니까.

“그럼 일단 엄폐할 곳이라도 찾아 들어갑시다. 여기서 이대로 총을 맞을 순 없으니까.”

지태가 주변을 빠르게 살피며 맥 브라운을 재촉했다.

맥 브라운은 곧바로 대답을 하거나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 둠부캉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잔대가리 굴릴 생각 마라. 이 근방은 우리가 다 감싸고 있어.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한다.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손들고 나와! 지금부터 열을 셀 테니 그 안에 나와라. 안 그러면 곤란…….”

둠부캉의 경고와 협박이 계속되는 중에 맥 브라운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지태를 그윽하게 돌아보았다.

“캐서린을 부탁합시다, 한!”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이렇게 지체할 시간도 없을뿐더러 저놈들을 전부 처리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 둘로선 무리요. 그러니까 캐서린을 데리고 먼저 떠나시오. 내가 이곳에 남아서 최대한 시간을 끌어볼 테니까.”

“혼자서 온갖 멋은 다 부리시는군.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한! 그냥 내 말대로 따라줘요. 부탁입니다.”

“맥! 안 돼. 나 혼자만 갈 순 없어.”

캐서린이 거들고 나왔다.

맥 브라운이 다급히 그녀를 설득하려고 하는 찰나였다.

타앙!

그사이 둠부캉이 10이란 숫자를 다 센 모양이었다.

밤하늘을 찢어놓는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첫 발은 경고 차원에서 허공에 대고 쏜 듯했다.

이쪽으로 총알이 날아들진 않았다.

“기어이 죽고 싶다면 너희들의 소원대로 해 주지.”

둠부캉의 비웃음에 이어 다시 또 총소리가 들려왔다.

탕!

이번엔 정조준 사격이었다.

그것을 신호 삼아 이제는 사방팔방에서 총알이 날아들었다.

그때부터는 머리 위로 핑핑 날아드는 총알들 때문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사이로 요란한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다.

요원들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어서! 시간이 없어, 한!”

맥 브라운은 둠부캉이 숨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 대고 권총 한 발을 발사한 후 다급하게 소리쳤다.

어떤 것이든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지태는 이윽고 마음을 다잡은 듯 캐서린의 손을 움켜잡았다.

“지금은 맥의 말대로 합시다, 캐서린.”

캐서린이 맥 브라운을 쳐다보았다.

맥 브라운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캐서린도 마침내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래요, 가요!”

“한! 우리가 왔던 골목으로 되밟아서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올 거요. 그중 왼쪽 길을 따라 우회해 내려가면 동네 입구에 세워 둔 내 SUV가 보일 거야. 자, 어서!”

맥 브라운이 바삐 손을 까불어댔다.

“어서, 어서!”

“오케이!”

지태는 고개를 끄덕여준 뒤 오리걸음으로 뒷걸음질 쳤다.

한참을 그렇게 물러났다.

어느 시점부터는 총알이 날아들지 않는 것을 보니 권총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듯했다.

지태는 캐서린의 손을 꼭 붙든 채 맥 브라운이 알려준 대로 왼쪽 골목으로 몸을 틀었다.

그 순간 다시 또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에서도 이따금 총소리가 나는 걸 보면 아직까지는 맥 브라운이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맥 브라운의 말처럼 SUV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지태는 재빨리 차의 뒷문을 열고 캐서린의 캐리어들을 실은 다음 보조석에 그녀를 태웠다.

“일단 약속된 길로 달려가 봅시다. 맥이 무사히 탈출해서 뒤따라오길 기도하면서…….”

“…….”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잃은 캐서린을 보면서 지태는 SUV의 시동을 걸었다.

* * *

성동해 선장은 부두에 정박해놓은 선라이징호 앞에서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약속한 시간에서 벌써 10분이 지났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변을 쓱 훑어가는데 저 어둠 속 겹겹이 쌓아놓은 컨테이너 야적장 쪽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들은 곧 성동해 선장 쪽으로 달려왔는데 그중 유일하게 아는 얼굴인 지태는 보이지 않았다.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캡틴 성이오?”

어느새 바싹 다가온 사내들 중 맨 앞으로 나선 벤자민이 물었다.

“내가 성동해 선장이긴 합니다만. 혹시 한지태 씨 소개로 온 사람들이오?”

“맞아, 바로 우리들이오.”

“한데 한지태, 그 친구는?”

“문제가 생겨서 나중에 합류하기로 했소.”

“문제라면…?”

“걱정할 거 없어. 아주 사소한 거니까. 곧 해결하고 넘어올 거니까 딱 한 시간만 출항을 미룹시다, 캡틴!”

“이럼 곤란한데…….”

“그럼 이거라면 그 곤란함이 해결될까 모르겠네?”

성동해 선장이 쓴맛을 다시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벤자민은 거침없이 자신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허리춤에 감춰놓은 글록 권총 한 정이 눈에 들어왔다.

성동해 선장이 불에 덴 듯 놀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그거 효과가 아주 크군요. 내 곤란함이 그걸 보는 순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니까 그건 두 번 다시 꺼내지 마시오.”

벤자민이 만족스럽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사이 성동해 선장은 다시금 주변을 훑어갔다.

딱 봐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였다.

지태가 아닌 그 누군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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