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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67화 (67/272)

067화. 굴러올 복! 아니, 다이아몬드(3)

지태가 무릎을 꿇린 놈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이놈들은 어쩔 겁니까, 둠부캉?”

“미스터 한의 볼일이 다 끝났으면 모두 경찰에 넘기죠, 뭐.”

“그놈들은 먼저 넘기고 이놈은 내일 넘기면 안 되겠습니까?”

지태가 아바스 카마라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 대롱대롱 흔들어보였다.

“그놈하고 따로 볼일이라도…?”

“그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호텔에 가서 이놈 계좌를 탈탈 털어볼 생각입니다. 한국의 피해 업체들에게 돈을 되돌려 주려면!”

둠부캉이 피식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당연히 그래야지요.”

두 사람은 놈들을 앞세운 채 밖으로 나왔다.

지태가 아바스 카마라를 자신의 옆자리에 태운 뒤 둠부캉의 SUV를 손수 운전해 가기로 했다.

대신 둠부캉은 놈의 승용차에 나머지 녀석들을 모두 태우고 시내에 들어가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아바스 카마라의 승용차는 최고급 독일 수입차였는데 보닛 위에 삼각별 엠블럼이 매달린 B사의 S클래스였다.

지태는 둠부캉에게서 건네받은 수갑을 아바스 카마라의 한쪽 손에 채운 다음 보조석 손잡이에 걸었다.

호텔 인근에 다다르자 둠부캉은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며 녀석들을 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어서 서둘러! 지혈과 치료가 늦어진다면 다리를 잘라 내거나 출혈 때문에 몇 시간 못 견디고 바로 뒈질 테니까. 너도 이대로 뒈지는 걸 원치는 않겠지?”

주차장에 둠부캉의 SUV를 세워둔 지태가 아바스 카마라에게 호텔 현관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놈도 이대로 죽는 건 싫었던지 발걸음을 서둘렀다.

지태는 프런트 데스크에서 외진을 나와 줄 수 있는 의사를 부탁한 다음 놈을 끌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돈의 위력이 크긴 컸다.

호텔 측의 연락을 받은 의사는 생각 외로 빨리 도착해주었고 신속하게 치료를 마친 후 돌아갔다.

지태는 왕진을 온 의사에게 300달러를 손에 쥐어 주었다.

“자, 치료도 끝났고 네놈이 뒈질 염려는 없다고 하니까 이제 계산에 들어가야지?”

지태가 팔뚝에 링거를 꽂은 채 침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아바스 카마라를 티테이블 쪽으로 불렀다.

아바스 카마라는 잠시 주저하는 듯 보이더니 이내 마음을 바꿔먹은 듯했다.

놈은 지태에게 약속한 대로 여기저기 분산해둔 자신의 계좌에서 돈을 빼내어 지태가 내민 한국 중소기업체들의 계좌로 송금해주었다.

그들이 입은 피해금액에 약간의 보상금을 더 얹은 액수였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모처럼 가슴 뿌듯한 밤을 보내게 된 지태였다.

* * *

시에라리온으로 넘어온 지도 어느덧 열흘을 훌쩍 넘겼다.

그날 오후였다.

드디어 기민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태가 부탁한 밀가루를 실은 화물선이 나이지리아 라고스 항구를 떠났다는 거였다.

중간에 코트디브아르에서 화물을 하역하고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곧바로 프리타운 항구로 갈 거라고 했다.

항해에 걸리는 시간은 최하 5일, 늦어도 일주일 안에 도착할 거라는 부연 설명도 곁들였다.

지태는 기민성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고맙다, 기 대리!”

- 고맙다는 낯간지러운 소리는 됐고. 너 솔직히 말해봐. 이번 거래 말이다. 순수하게 수입 대행해주는 선에서 손 터는 거 맞지?

“내 말 못 믿겠냐. 그래, 맞아. 마약을 밀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순수하게 밀가루만 수입 대행해주는 거!”

지태는 위풍당당하게 말했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약간 뜨끔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눈속임용일 뿐이고 실상 그 뒤에 무슨 꿍꿍이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차마 기민성에게 말해줄 수 없는 까닭이었다.

- 암튼 잘 처리하고 자주 좀 연락해라.

“그래, 알았어. 참, 에릭한테 안부 전해주는 거 잊지 말고.”

- 네가 직접 전해, 인마. 내가 뭐 춘향이하고 이 도령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방자 놈이냐?

기민성은 제 말끝에 짓궂은 웃음을 날리더니 전화를 끊었다.

그날 밤 지태는 7층 비상계단의 소화전에 쪽지를 넣어두었다.

수입을 의뢰한 밀가루가 빠르면 5일 뒤 프리타운 항구로 입항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전에 부탁한 권총은 어찌 되어 가느냐는 말도 함께 첨부했다.

답신은 머지않아 도착했다.

자정이 되기 전에 노크 소리와 함께 쪽지가 놓여 있었는데 지금 바로 소화전을 확인해 보라는 거다.

지태가 밖에 나가 소화전을 확인해보니 쪽지와 함께 베레타 한 정이 들어있었다.

실탄도 50발 정도로 넉넉했다.

쪽지엔 신속한 협의를 위해 앞으로의 연락은 맥 브라운을 통하자고 적혀있었다.

지태는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쪽지를 주고받으려니 불편한 것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소통이 늦고 번거롭기도 한 까닭이었다.

* * *

나이지리아를 출발한 화물선은 6일째 되던 날 프리타운에 입항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파나마 선적의 한국 화물선이었다.

하늘이 도우려니까 이런 경우도 다 있는가 싶어 지태는 만면 가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부두에서 밀가루를 부리는 동안 지태는 화물선 선라이징호의 한국인 선장을 따로 불러내 만났다.

그는 머나먼 이국땅, 그것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같은 동포를 만났다는 점에 한껏 놀라워하면서 지극히 반가워했다.

“나는 성동해라고 합니다. 이름부터가 애국적이지 않습니까? 동해!”

“한지탭니다. 이런 데서 같은 한국인을 만나니 반가움이 두 배로 크군요.”

지태는 수인사를 마친 성동해 선장을 프리타운 시내로 데리고 나왔다.

날이 점점 어둑해지는 시점이어서 저녁 식사부터 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성동해 선장은 알코올이 더 고프다면서 기왕에 대접을 해줄 거라면 좋은 술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

아무리 같은 한국인이라지만 아무런 인연도 없는 자신을 따로 불러낸 데에는 뭔가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이미 눈치챈 성동해 선장이었다.

이 정도의 부탁쯤은 충분히 먹혀 들어갈 것이라는 계산을 밑바닥에 깔아놓은 제안이었다.

지태는 피식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 사람을 잘 구워삶아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오더 또한 무사히 마칠 수 있을 테니까.

지태는 일단 그의 비위를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원한다면 하룻밤 같이 보낼 여자까지 살 수 있는 술집으로 선동해 선장을 이끌어 몇 번 술잔을 맞부딪친 다음이었다.

옆에 앉은 여종업원들을 의식해서인지 선동해 선장은 한국말로 물어 왔다.

“지태 씨는 해외지사 주재원이오?”

지태의 나이가 어린 것을 두고 성동해 선장은 그리 짐작하는 듯했다.

“제가 어디에 소속돼 있는 건 아니고, 실은 얼마 전 독립했습니다.”

“오호! 그럼 사장님이라는 말씀이시네?”

“하하핫. 아직은 볼품없는 구멍가게 수준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해외까지 나와 비즈니스를 할 정도면 구멍가게 수준은 아니지. 대단해요. 아암, 대단하고말고.”

성동해 선장은 은연중 말을 놓았다.

지태는 차라리 그게 편했다.

삼촌뻘이 되는 사람한테 존댓말을 듣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고, 무엇보다 이제부터 어려운 협상에 돌입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좀 더 친밀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말을 편하게 나눴으면 했으니까.

“출항은 언젭니까, 선장님?”

“이틀 정도 이곳에 머물 생각이야. 다음 행선지는 모로코. 거기에서 화물을 싣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입항할 예정이고.”

“그럼 여기선 빈 배로 출항해야겠군요.”

“변동이 없는 이상은 그래야겠지, 뭐.”

성동해 선장은 술잔을 비우며 흘깃 지태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간을 보는 게 확연했다.

“뭐 부탁할 거라도 있나?”

“부탁이라기보다는 용돈이라도 벌고 싶은 의향은 없는지 먼저 묻고 싶군요.”

“알바를 제안하는 건가?”

지태가 대답은 미뤄둔 채 그윽하게 웃었다.

“절차를 밟지 않는 걸 보니 딱 봐도 불법적인 것이로구먼.”

화물선의 선장인 자신에게 알바를 제안하는 것을 보면 불법 화물을 국외로 빼돌리려 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약간 불법일 수도 있는데, 사실 물건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선장님.”

“사람?”

“이 나라의 탄압을 피해서 외국으로 망명하려는 사람이죠.”

“허허. 이 사람 꽤나 재밌구먼, 그래. 자네는 상품을 무역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거래하는가?”

얼굴은 비록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냉소를 퍼붓고 있는 게 틀림없다.

웃는 모습이나 말투가 조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10만 불 드리겠습니다.”

움찔.

성동해 선장의 입가에 걸린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건 알바 수준이 아니다.

엄청나게 큰 액수였다.

뜻하지 못한 달콤한 유혹이라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다시 의미심장한 웃음기가 그의 입가에 걸렸다.

“20만 불이라면 진지하게 한번 고려해보지.”

“15만 불!”

“18만 불! 그 이하로는 양보할 수 없어.”

“좋습니다. 18만 불!”

협상이 끝나자 지태가 만족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오늘 술자리에서는 선장의 의중을 확인하고 가격 절충까지만 해두는 선에서 끝냈다.

지태는 근처의 호텔을 예약해 성동해 선장을 그곳에서 묵게 했다.

술보다는 여자가 더 고팠던 성동해 선장은 이제 그만 술자리를 파하자는 지태의 말에 오히려 좋아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반겼다.

* * *

호텔로 복귀한 지태는 곧바로 맥 브라운을 찾았다.

병맥주 두 병을 들고 애써 태연한 척 지태를 기다리고 있던 맥 브라운은 살짝 오버까지 하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역겨워도 조금만 참읍시다, 한! D.S.U 애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러니까 최대한 자연스럽게.”

맥 브라운은 들고 있던 맥주병 하나를 지태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맥주를 마시는 척하며 맥 브라운의 말마따나 자연스럽게 호텔 정원으로 걸어 나왔다.

만면 가득 웃음기를 띄운 맥 브라운이 큰소리로 웃으면서도 복화술처럼 급하게 물어 왔다.

“갔던 일은 잘 되었습니까?”

“다행히 선장이 한국인이라 말이 잘 통하더군요. 부탁을 들어줄 것 같습니다.”

“그것 참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 근데 아무래도 D.S.U 애들이 눈치를 챈 것 같아요. 감시의 고삐를 더욱 당겨대는 폼이…….”

“그럼 내가 선장을 만난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거 아닙니까? 이거 왠지 내가 발가벗은 채 길거리를 활보하는 느낌인데?”

“우리의 패를 완전히 다 보여 준 것도 아닌데 뭘 미리 걱정하십니까. 괜찮을 겁니다.”

“하, 이거 참!”

지태가 찜찜한 표정으로 맥주병을 들어 입에 부었다.

맥 브라운이 흘깃 돌아보더니 지태를 따라 천연덕스럽게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 * *

그 시각.

술집에서 불러준 콜걸을 품에 끼고 호텔 방으로 들어선 성동해 선장은 마음이 몹시도 급했다.

샤워부터 하라는 콜걸의 말에 ‘일단 몸부터 풀고!’라는 말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성동해 선장은 콜걸의 짧은 원피스를 서둘러 벗겨내더니 집요하게 그녀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키스를 퍼부어대면서 두 손으로는 그녀의 풍성한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것도 잠시, 마음 급한 성동해 선장은 그 자세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내던지듯 눕혔다.

콜걸의 몸 위에 납작 엎드린 채 바쁘게 바지를 벗어 버린 성동해 선장이 이제 막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꽈꽝.

우지끈!

돌연 객실의 문 한쪽이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를 내면서 벌컥 열렸다.

불에 덴 듯 놀란 성동해 선장은 한껏 달아오른 동작 그대로 고개를 홱 돌렸다.

침입자는 도합 세 명이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듯 싸늘하게 권총을 겨눈 채 방 안 곳곳을 재빨리 훑어갔다.

성동해 선장은 뭔가 분위기가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젠장. 뭐냐, 이것들! 내 운명도 이것으로 끝난 건가?’

그는 괴한들을 무장 강도쯤으로 짐작했다.

이 정도로 과감한 놈들이라면 비단 돈만 빼앗고 자신을 살려둘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절망적인 기분이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있을 즈음 문득 시큼털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혼자야?”

세 명의 사내 중 머리를 아예 빡빡 밀어놓은 녀석이었다.

그는 성동해 선장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더니 하얀 이를 모두 드러내놓고는 비릿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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