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화. 굴러올 복! 아니, 다이아몬드(2)
“그렇게 들렸습니까? 난 단지 조심하라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고 했을 뿐입니다. 너무 진지하게 말을 하다 보니 좀 오해가 있었나 보군요. 미안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딱 그런 식이었다.
사과를 해오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닙니다. 내가 좀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거 같네요.”
“하지만 매사 조심하라는 내 조언은 허투루 흘려듣지 말아요. 놈들은 미스터 한을 계속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은 이 나라의 법 위에 군림하는 그놈들의 세상이니까 떠나는 날까지 행동함에 있어 신중을 기하라는 말입니다.”
“둠부캉의 충고, 새겨듣죠.”
지태가 호의를 담아 끄덕이자 둠부캉은 다시 차의 시동을 걸었다.
작은 회호리가 몰아친 다음이어서 그런지 분위기가 약간은 데면데면해졌다.
그렇게 별다른 대화 없이 약 20분가량을 더 달렸을 때 비로소 둠부캉은 차를 멈췄다.
바다와 인접한 전망 좋은 땅에 전원주택이나 별장처럼 보이는 집 몇 채가 띄엄띄엄 세워진 곳이었다.
시에라리온에서도 제법 방귀깨나 뀌는 이들이나 살 것 같은 동네.
엔진을 끄고 차에서 내린 둠부캉이 작은 숲처럼 보이는 공간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유독 외딴 곳에 지어진 집이었는데 정원 밖 외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바로 저깁니다.”
“고목 뒤편에 있는 2층 양옥 말입니까?”
“우리 애들이 알아낸 바로는 그렇소.”
지태의 입가에 쓴웃음이 걸렸다.
“그동안 사기를 쳐도 꽤나 친 모양이네요. 저렇듯 화려하게 사는 걸 보면!”
“그래서 나도 이참에 직업을 한번 바꿔 볼까 생각 중이요. 어차피 정보부 요원 노릇도 오래 해먹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차라리 사기를 쳐서라도 돈이나 왕창 한번 벌어보게. 흐흣!”
둠부캉도 입맛이 쓴 모양이었다.
그걸 보며 지태는 어느 나라건 정상적으로 사는 것보다 불법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많이 할수록 떵떵거리며 사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둠부캉이 돌아보며 물었다.
“참, 맨손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지요?”
“왜요?”
“놈의 패거리가 많을 겁니다. 부하 녀석들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주택에서 머무는 인원이 적어도 일고여덟은 된다고 했으니까.”
“다들 무장을 하고 있을까요?”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몇 놈은 무장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현명하겠지요.”
지태가 쩝 소리가 나게 혀를 찼다.
“총은 쏠 줄 아시오?”
지태가 털털하게 웃었다.
“허헛. 총을 촐 줄 아느냐고요? 내가 말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라 불리는 UDT를 전역한 사람입니다.”
“오우!”
둠부캉이 제법 놀랐다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자신의 차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고는 운전석 쪽 좌석 밑에서 뭔가를 꺼내 곧 다시 걸어왔다.
언뜻 보니 글록이었다.
“글록17이군요.”
“오호! 단번에 알아보시네!”
“생산지 오스트리아. 플라스틱 프레임이라 가볍고 사격 반동이 적다는 게 이 글록 권총의 특징이죠.”
둠부캉의 칭찬에 지태는 약간의 잘난 체를 보탰다.
그 덕분이었는지 둠부캉은 권총의 사용법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따위의 잔소리는 늘어놓지 않았다.
“이 나라의 교도소 시설을 몸소 체험할 게 아니라면 되도록 살상은 피해야겠죠?”
“우리나라도 정당방위 정도로는 교도소 체험을 안 시켜 줍니다.”
그럼 정당방위라면 살상해도 무방하다는 말인가.
지태가 마음속으로 둠부캉을 가볍게 비웃고는 글록의 탄창을 빼낸 다음 노리쇠를 후퇴 전진시켜보았다.
글록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꽤 괜찮았다.
지태는 다시 탄창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그럼 슬슬 시작해 보십시다.”
둠부캉이 자신의 옆구리에서 빼든 베레타로 건물 쪽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자신이 먼저 앞장서 걸어갔다.
50여 평쯤 되는 정원을 거슬러갈 때까지 집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려오지 않았다.
방음이 제법 잘된 집인 듯했다.
1층 현관 앞에 다다르자 둠부캉이 작은 소리로 지태를 불렀다.
“나는 앞에서 들이칠 테니 미스터 한은 후문 쪽으로 치고 들어오시오.”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지 지태는 군소리를 붙이지 않았다.
“정확히 1분 뒤에 치고 들어갈 테니까 그걸 신호 삼는 걸로, 오케이?”
지태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여 주고는 건물을 돌아 후문 쪽이라 짐작되는 곳으로 걸어갔다.
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려 보았다.
경계심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침입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문은 다행히 잠겨 있지 않았다.
둠부캉이 치고 들어갈 때 그와 동시에 안으로 들이치면 될 것 같았다.
지태가 손에 든 글록17을 내려다볼 즈음이었다.
와지끈!
둠부캉은 문이 닫혀 있는지 열려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발로 내지른 모양이었다.
현관문이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후문에까지 들려왔다.
그것을 신호 삼아 지태 역시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후문에서 주방 쪽으로 이어지는 짧은 복도를 지나 거실 쪽으로 재빨리 뛰어가자 소파에 나른하게 널브러져 있던 사내 몇 놈이 보였다.
코카인을 흡입한 뒤끝인지 다들 하나같이 몽롱한 상태였다.
둠부캉이 베레타를 겨눈 채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지태가 돌연 몸을 날렸다.
휘익.
약 다섯 걸음 정도를 붕 날아서 소파의 맨 왼편에 앉아 있던 녀석의 뒷덜미 부근을 세차게 가격했다.
콰작.
“윽!”
이제 막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고 둠부캉을 쏘려고 했던 녀석이 지태의 발길질 한 방으로 소파 테이블에 그대로 코를 박았다.
둠부캉이 깜짝 놀란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지태가 고갯짓으로 쓰러진 녀석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권총이 보였다.
“방심은 금물!”
둠부캉이 고맙다는 뜻으로 엄지를 치켜드는 사이 지태는 얼른 몸을 돌려 나머지 세 놈의 턱과 관자놀이 부근을 연달아 쳐 나갔다.
쩌억, 쩍, 빠각, 콰자작!
“윽!
“흡!”
“컥!”
혼자 북 치고 장고 치고 다 해버린 지태를 보며 둠부캉은 혀를 내둘렀다.
특수부대 출신이었다는 말만 들었지 그가 이 정도의 실력자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아니, 미스터 한! 정말 놀랍…….”
“쉿!”
지태는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대며 둠부캉의 말을 막았다.
아바스 카마라가 눈치를 채고 도망을 치거나 대비를 갖추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놈은 2층에 있는 듯했는데, 아직 아래층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정신 사납게 시끄럽고 비트가 아주 강한 아프리카 특유의 음악이 2층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둠부캉! 나 혼자 위층에 올라갈 테니 여길 맡아 줘요. 또 다른 패거리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이미 지태의 환상적인 몸놀림과 솜씨를 지켜본 후였다.
둠부캉은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만.
“놈이 총을 쏘거나 반항을 한다면!”
그러면서 자신의 목을 손날로 그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죽여도 좋다는 뜻.
하지만 지태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놈을 죽여 버리면 의뢰받은 중소기업 사장들의 돈을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단죄는 하겠지만 결코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다.
지태가 입술 끝을 비틀며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2층으로 뻗어있는 나무 계단을 천천히 밟아 올라갔다.
음악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2층에는 나무 복도를 따라 방이 2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는데 음악 소리는 맨 끝에 있는 두 번째 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태는 첫 번째 방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손잡이를 비틀어 보았다.
불이 켜지지 않은 방 저 너머로 침대가 하나 보였지만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구석구석을 살핀 다음 가만히 문을 닫았다.
지태는 걸음을 옮겨 두 번째 방으로 걸어갔다.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간간이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열락에 못 견뎌 절로 터져 나오는 여자의 끈적끈적한 교성.
“개새끼, 팔자가 아주 늘어졌구만.”
지태가 쓰게 웃고는 방문을 노려보았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지태는 발을 높이 쳐들어 뻥 걷어차며 안으로 들이쳤다.
역시나 지태의 예상대로였다.
전등을 환하게 밝혀둔 방 안에서는 두 남녀가 뜨겁게 엉켜있었다.
아바스 카마라로 추정되는 놈이 벽을 짚고 서있는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였는데 뜻하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으로 화들짝 놀라 순간 얼음이 되어 버렸다.
“아악!”
뒤늦게 여자의 비명이 터져 나오자 지태는 글록 권총의 총구를 입술에 갖다 댔다.
“한 번만 더 소리를 질렀다간 대가리에 구멍 뚫린다!”
여자의 비명이 잦아들자 아바스 카마라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지태를 쳐다보았다.
“누, 누구…?”
“나? 빚 받으러 대한민국에서 바다 건너 날아온 사람!”
놈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다른 한편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어, 어떻게 여기까진…….”
“시끄럽고! 일단 뭐라도 걸쳐, 이 새끼야!”
지태는 놈의 말을 끊으며 턱짓으로 침대 시트를 가리켰다.
여자가 먼저 시트를 낚아채 자신의 몸에 돌돌 말았다.
아바스 카마라가 흘깃 지태를 쳐다보더니 느릿한 동작으로 바닥에 내팽개쳐둔 자신의 바지를 집어 들었다.
지태가 방을 둘러보기 위해 잠깐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그 틈을 노려 아바스 카마라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권총을 꺼내 지태를 겨눴다.
탕!
“억!”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할 만큼 지태는 둔하지 않았고 방심하지도 않았다.
수상쩍게 움직이는 동작만으로도 놈이 무엇을 하려는지 미리 알아챈 지태의 반응이 훨씬 더 빨랐다.
글록의 총구에서 결국 불이 뿜어져나갔고, 아바스 카마라는 침대에 모로 쓰러졌다.
놈의 새까만 허벅지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헤이! 거기, 여자!”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벌벌 떨고 서있던 여자에게 지태는 어서 방을 나가라는 고갯짓을 했다.
여자가 시트를 몸에 두른 채 걸음아 나 살려라, 하듯 방을 나간 다음이었다.
“자, 이제 계산 좀 해볼까?”
“아아아악!”
지태가 바싹 다가서며 글록의 총구로 구멍이 뚫린 녀석의 허벅지를 쑤시자 놈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자지러졌다.
지태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내지르는 놈의 한껏 벌려진 입속에다 총구를 박았다.
“내 말 알아들었어, 못 알아들었어?”
입이 막힌 녀석은 눈물범벅이 된 두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여댔다.
“왜 사기를 쳤느니, 넌 뭐가 나쁘다느니, 그래서 죗값을 치러야 하느니 그런 공자님 말씀 같은 건 집어치울게. 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다만 나는 빚만 받아 가면 돼. 알겠어?”
아바스 카마라는 다시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네놈이 진 빚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먼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금액이 총 150만 달러, 거기에 내가 이곳까지 날아온 경비며 수고비로 50만 달러! 이것 말고도 청구할 게 좀 더 있지만 그런 건 뭐 없는 걸로 쳐주지. 그래서 네놈이 갚아야 할 돈은 도합 200만 달러, 오케이?”
“그, 그건…….”
“이런 시발 놈이!”
놈이 뭔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이제껏 꾹 눌러 참았던 지태의 분노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빠각.
그 순간 지태가 날린 주먹에 아바스 카마라의 턱은 이미 뒤틀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 * *
지태가 아바스 카마라의 뒷덜미를 움켜쥔 채 1층으로 내려오자 둠부캉이 쓰게 웃었다.
총에 맞아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사기꾼 녀석의 얼굴 상태가 꽤나 심각해 보이는 거다.
거실에는 두 손이 뒤로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앉은 네 명의 사내가 보였다.
2층에서 내려 보낸 여자는 여전히 시트 한 장만을 몸에 걸친 모습으로 소파에 쪼그려 앉아있었다.
“미스터 한! 원하는 걸 손에 넣었습니까?”
“원하는 거라뇨.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뭘 억지로 빼앗는 강도 같잖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받아내야 할 빚을 정당하게 청구하고 있는 겁니다.”
지태의 설명에 둠부캉이 웃긴 했는데 그 표정은 꼭 이랬다.
엎치나 메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