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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63화 (63/272)

063화. 수상한 접촉자(2)

벤자민 마가이는 곧 작심한 듯 입을 열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난 사업하는 사람입니다. 맥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이고요.”

“암튼 복잡한 나라에 내가 날아온 것만은 확실한 것 같네.”

지태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말했으니 벤자민도 알아들었을 것이다.

벤자민이 쓰게 웃었다.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현재 이 나라 돌아가는 사정이 좀 복잡하게 얽히긴 했지요.”

“그럼 내가 무역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맥이 알려주었겠군요. 그나저나 아주 발 빠릅니다?”

살짝 비꼬는 듯한 말투에 벤자민은 이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한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더욱 황당한 소리를 내뱉었다.

“미스터 한이 시에라리온에 넘어오리라는 것을 우린 이미 사흘 전에 알고 있었습니다.”

순간 지태의 눈썹이 위로 매섭게 치켜졌다.

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경우지?

“맥이 둠부캉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테고. 사실 둠부캉의 전화를 오래전부터 감청하고 있었어요, 맥 브라운이!”

아, 그렇다면 조금은 말이 되겠다.

둠부캉의 전화를 감청하면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한다면.

그러나 그것은 현재 자신의 기분이 더러운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지태가 입맛을 쓰게 다셨다.

“그런데 나는 왜 만나자고 한 겁니까? 거래라는 것은 또 뭐고?”

벤자민은 지태에게 전염된 듯 쓴웃음을 뱉어내곤 그윽한 시선으로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전에 먼저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태가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한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어떤 관점에서 말입니까?”

“우리가 오늘 처음 만났으니 우정이라는 핑계는 가당치도 않을 것이고. 미스터 한이 비즈니스맨이니 깔끔하게 사업상 관점에서라고 해두십시다.”

“차라리 그게 솔직할 것 같군요. 그런 관점에서라면 100%라고 자신할 수 있겠습니다. 이익이 걸린 비즈니스 관계라면 더더욱 그렇고.”

“이익을 공유하는 관계에선 100% 믿어도 좋을 사람이다?”

벤자민이 잠시 지태의 말을 곱씹더니 이내 만족한 듯 웃었다.

“믿음이 간다면 이제 그 거래라는 것에 대해 말씀해보시죠.”

“우리 쪽에서 가지고 있는 귀한 물건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입니다, 미스터 한!”

“시에라리온 밖으로?”

수출한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그런 정상적인 거래를 원했다면 이처럼 은밀하게 만남을 요청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지태의 물음에 벤자민이 똑바로 주시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미스터!”

지태가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귀한 물건이라는 게 마약 같은 겁니까?”

벤자민은 쓰게 웃는 낯꽃으로 이번엔 고개를 가로 내저었다.

“그럼?”

“그래요. 비즈니스적인 차원에선 100% 믿어도 된다고 하니까 내가 솔직히 말씀해 드리리다. 사실 보석입니다.”

“보석? 혹시 다이아몬드?”

“그렇습니다. 이 나라에서 생산되는 모든 다이아는 정부에서 철저히 관리하고 있지요. 그렇다 보니 정부의 승인 없이는 그 누구도 함부로 외부에 유출을 할 수가 없어요.”

“기존 광산에서 채굴되던 다이아는 이미 다 고갈된 것으로 아는데…?”

“이건 새로 발견된 광산에서 나온 물건입니다.”

한번 말문이 터진 벤자민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숨길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벌써부터 새로 발견된 광산을 두고 피의 전쟁이 시작되려고 꾸물대고 있지를 않은가 말이다.

지태는 속으로 벤자민이 반군 쪽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그 광산은 벌써 이권세력들이 달라붙고 있다 들었는데, 괜찮은 겁니까?”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하지만 그전에 몇 개 빼돌린 게 있습니다. 그 물건의 부피가 억울하긴 해도 최소한 덜 억울할 만큼은 됩니다.”

벤자민은 자신의 말끝에 웃음을 머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몇 개 빼돌렸다는 그것이 아주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 빼돌렸다는 보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제법 만족할 만한 수준인 것은 틀림없군요. 그렇죠?”

이 역시 벤자민은 부인하지 않았다.

“500캐럿이 넘는 것 하나와 최하 50캐럿에서 최대 200캐럿 정도 되는 원석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지요.”

지태의 입이 떡 벌어졌다.

500캐럿이라면 커팅 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쪼개져 나갈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하 400캐럿은 될 것이다.

그 외에 벤자민이 정확하게 수량은 밝히지 않았지만, 여러 개의 원석이라는 것 또한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가치를 지닌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벤자민이 말하는 뉘앙스로만 본다면 그 가치가 적어도 1억 달러에 육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먹고 빼돌리려 한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굳이 나를 중간에 엮어 넣으려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미스터 한과 거래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이겁니다. 우릴 주시하는 눈들 때문에! 현재 정보부뿐만 아니라 대통령 직속 직할대에서까지 우릴 감시하고 있는 형편이거든.”

“둠부캉이나 맥 브라운의 말에 의하면 나 또한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던데요?”

“그건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죠. 미스터 한이 오퍼상의 본분만 망각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서 함부로 터치하지는 못할 겁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를 모르겠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말인가.

지태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벤자민이 정색하며 쳐다보았다.

“무역의 형식을 취하자는 겁니다. 우리 측에서 미스터 한에게 오더를 주는 것으로 할 테니까 이 나라로 물건을 들여오는 것으로.”

“서류상으로 장난을 치자는 말입니까?”

“그건 아니죠. 제대로 물건을 들여와야 놈들이 의심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이 나라 빈민가에 자선을 베푼다는 개념으로 미스터 한을 통해 밀가루를 수입하겠습니다. 일단은 100만 달러어치를!”

“그다음엔?”

“우리 물건을 되돌아가는 그 화물선에 실어 일단 시에라리온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이건 모험이었다.

비밀이 누설되거나 자칫 일이 어긋나 잘못되는 날엔 신세를 망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태는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욕심이 나는 건 본능이었다.

“만일 내가 그 일을 맡겠다고 한다면, 아니 성공을 했을 경우 내게 떨어질 이득은 뭡니까.”

지태가 자못 기대 어린 표정으로 묻자 벤자민이 화답하듯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당연히 그런 말이 나와야 정상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벤자민은 한쪽에 서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를 돌아보았다.

호텔에서부터 줄곧 지태를 안내해온 사내였다.

지금 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프리타운 거리에서 쪽지를 건네고 간 사내가 분명했다.

벤자민의 눈짓을 받은 사내는 어느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뒤 곧 나왔다.

그의 손에는 부드러운 융단에 쌓인 뭔가가 들려 있었다.

벤자민이 그것을 받아 지태 앞에 펼쳤다.

아직 커팅이 되지 않은 다이아몬드의 원석이었다.

“이 원석을 우리와 거래하는 보수로 드리겠소. 블루 다이아몬드 원석 50캐럿짜립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지태는 저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졌다.

* * *

호텔로 다시 돌아온 지태는 한동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아프리카에 넘어온 김에 선심 쓰듯 중소업체 사장들의 청이나 들어줄까 하고 방향을 틀어 날아온 시에라리온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어쩌면 엄청난 기회를 잡을 것만 같았다.

무려 50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그것을 예술적으로 커팅만 잘 해낸다면 다이아의 가치는 천문학적인 수치가 될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복덩이가 절로 굴러온 것만 같았다.

아니, 굴러온 다이아몬드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까.

지태는 아직 흥분이 채 식지 않은 달뜬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할 새도 없이 곧장 통화버튼을 눌렀다.

발신음이 떨어지는 동안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다행히 새벽 1시였다.

한국은 지금쯤 오전 10시가 되었을 시간이었다.

- 어, 한 대표야!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밝은 목소리로 조현민이 반겼다.

“형님, 거긴 별일 없죠?”

- 여기야 잘 굴러가지. 별일이 있나 걱정되는 곳은 이곳이 아니라 거기고. 네가 있는 아프리카 말이야! 그나저나 목소리가 왜 그러냐? 너 지금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탕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거 같은데?

“도가니탕인지 도자기 사발그릇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가 지금 흥분에 몸부림치는 건 맞아요, 형님.”

- 사기꾼 놈 잡았어? 아니지, 겨우 그딴 일로 한지태가 흥분을 해? 뭐냐, 너를 지금 흥분하도록 만든 것이?

지태를 너무도 잘 아는 조현민이다.

몹시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것을 보면 어지간한 좋은 일은 아닐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것 같았다.

“뜻하지도 못하게 어쩌면 다시 엄청난 돈을 벌 거 같습니다.”

- 엄청… 이라면 어느 정도나 되는 거냐?

“최하 케냐에서의 벌어들인 노다지 정도? 아니, 가격 흥정만 잘 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많을 겁니다.”

- 헐! 그거 팩트냐?

“팩트죠. 내가 그 실체를 직접 확인하고 왔으니까.”

- 그래. 그, 그렇긴 한데… 혹시 너 그거……?

비록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퍼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거 보나마나 위험한 일이지? 라고 묻는 것.

조현민의 흥분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 있었다.

덩달아 이성을 잃고 마냥 좋아해야만 할 입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 듯했다.

지태가 움직일 때마다 목숨을 담보로 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들의 연속이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긴 했지만, 계속 운이 따라 주는 것은 아닐 터였다.

조현민의 심정을 눈치챈 지태가 먼저 선수를 쳤다.

“위험이니 목숨이니 하는 것들은 잠시 주머니에 넣어 두려고요. 그렇게 자로 재듯이 개념을 하나씩 따지다 보면 나 같은 놈이 어떻게 돈을 벌겠어요, 형님!”

지태가 자신의 결의를 담아 진지하게 내뱉었지만, 조현민은 바로 꿀 먹은 벙어리로 변했다.

“형님! 너무 걱정 마시래도 그러신다. 난 괜찮아요.”

할 말을 잃은 조현민에게 지태는 다시금 부탁과 당부를 했다.

- 어차피 말려도 넌 내 말을 도대체가 알아들어먹을 놈도 아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응원이나 해야지, 뭐. 대신 이번 일만 끝내면 당분간 대한민국 밖으로는 안 내보낼 테니까 그리 알아, 인마!

마침내 조현민의 항복 선언이 들려왔다.

지태는 코끝이 찡한 것을 느꼈다.

항복 선언이라고는 했지만, 조현민이 자신을 얼마나 염려하고 있는지 가슴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온 까닭이었다.

“예, 형님. 이제 그만 자야겠네요. 다시 연락드릴게요.”

지태는 전화를 끊었다.

조현민에게는 금방 잠자리에 들 거라고 했지만, 오늘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 * *

정확히 정오가 되자 둠부캉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 지키지 못한 식사 약속을 오늘 점심으로 대신하자는 거였다.

“가신 일은 잘 되었습니까?”

“골치 아픈 이야기는 나중에!”

호텔 밖으로 걸어 나오는 동안 지태가 인사치레로 물었으나 둠부캉은 손을 내저으며 자신의 SUV 차량 보조석을 가리켰다.

지태가 냉큼 올라타자 그는 곧 어디론가 차를 몰아갔다.

시내 외곽도로 오른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음속으로 생각해둔 식당이 해변 쪽에 있는가 보다, 라고 짐작했다.

지태의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곳 음식들이 한의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특별히 중국 요릿집으로 골라 봤는데, 맘에 드십니까?”

둠부캉이 차를 세운 곳은 경치 좋은 해변에 위치한 정통 차이니스 레스토랑이었다.

원래는 국외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곳 같았는데, 이 나라의 정국이 혼란스러우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는 까닭에 조금은 썰렁해 보였다.

음식은 나오는 족족 입에 맞았고 그 맛도 훌륭했다.

둠부캉은 여러 가지 사천식 중국요리에다 중국술까지 곁들였다.

술이 독해서인지 술병 하나가 밑바닥을 보일 즈음 둠부캉은 술에 취한 듯 제법 혀가 꼬인 소리로 엉뚱한 말을 뱉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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