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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51화 (51/272)

051화. 미끼? 기꺼이 돼주지!(1)

지태는 귀에서 잠시 스마트폰을 떼어낸 다음 곧 다시 갖다 대었다.

“나 귀 안 먹었으니까 작게 말해도 돼.”

- 그니까 하루에 한 번씩 꼭꼭 해주기로 했던 전화를 왜 안 해주는 거야. 걱정 많이 했잖아!

“걱정했어?”

- 어휴, 그걸 말이라고! 근데 별일 없어요?

지은의 날선 목소리가 이제는 조금 가라앉았다.

나지막하면서도 조신하게 묻는 음성에 그녀의 진심이 듬뿍 담겨있었다.

“별일이라는 게 있었다면 이렇게 전활 못하잖아. 어젠 좀 바빴어, 비즈니스 관계로.”

- 그 비즈니스라는 게 혹시 여자랑 엮인 비즈니스는 아니겠죠?

“허, 참! 누가 들으면 우리가 진짜 부부라도 되는 줄 알겠네. 이봐요, 친구 씨! 우리가 이런 거 간섭할 만큼 진짜 무슨 사이라도 돼?”

- 찜했으니까, 내가 찜했으니까! 당신을 이제 내 사람으로 만들 거거든! 그니까 이제부턴 뭐든 내 허락 맡아야 돼, 알쬬?

“그게 어떤 나라에서 만든 법돈데?”

지태는 지은과의 밀당을 은근히 즐겼다.

그래서 아까부터 입가에 그려진 미소가 좀처럼 지워질 줄을 몰랐다.

- 아이, 몰라욧! 암튼 그런 게 있단 말이야.

지은은 부끄럽게 앙탈을 부리는 것으로 지태의 곤란한 질문을 피해가 버렸다.

그런 식으로 약 10여분 정도를 줄다리기 하듯 밀고 당긴 것 같았다.

“나 저녁에 또 만날 사람이 있어. 머릿속에 복잡하게 들어찬 생각들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이제 그만 통화를 끝내자는 말이다.

지은은 아쉬움이 진하게 묻은 목소리로 마지막 멘트를 날려 왔다.

- 그럼 언제 또 전화할 건데?

“내일! 그리고 이젠 귀국할 때까지 매일 전화할게. 그럼 됐지?”

- 약속!

“그래, 약속!”

그리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지은이 급하게 불렀다.

“왜?”

- 잠시만 기다려 봐. 그리고 핸드폰을 귀에다 좀 더 바짝 대봐요.

“……?”

쪼옥, 쪽!

입소리로 하는 키스였다.

- 일 보세요. 나 이제 운동 그만 끝내고 샤워해야 돼.

지은은 수줍게 속삭이고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야릇한 감정에 휩싸이는 걸 보니 이런 게 사랑의 전조 현상인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이런 건가?’

지태는 소소한 행복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소리 없이 웃었다.

* * *

오후 7시를 10분 정도 남기고 지태는 호텔 방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언제부터 로비에서 서성댔는지는 몰라도 피터가 은근한 눈빛으로 인사를 해온다.

“드디어 데이트를 나가시는군요?”

“그거야, 뭐!”

지태는 일부러 설렘 가득한 표정을 담아 씩 웃어주었다.

피터가 행여 수상쩍게 보지 않도록.

그때 피터가 객쩍은 소리를 던져왔다.

“남자는 국적을 떠나 뭐니 뭐니 해도 일단은 잘생기고 봐야겠군요. 부럽습니다, 미스터!”

피터는 핑계로 대었던 여대생과의 데이트를 진짜로 믿는 것 같았다.

통통한 살집에서 나오는 느물거리는 말소리마다 부러움이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택시 한 대 잡아드릴까요?”

지태는 고개를 저었다.

대신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였다.

“어제 타고 온 택시의 기사 번호를 따두었거든. 객실에서 나오는 동안 이미 호출해뒀어요.”

“아!”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텔 현관문까지 뒤따라 나왔다.

마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처럼.

택시는 단 1초도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에릭이 보내온 택시는 정각 7시가 되자 호텔 현관 앞에 멈춰 섰다.

감시의 눈초리로 배웅하는 피터를 등 뒤로 하고 지태는 곧 택시에 올라탔다.

호텔을 빠져나온 택시는 얼마쯤 달리더니 돌연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어제 그 길이 아니군요.”

달리는 차 안에서 주변을 훑어보던 지태가 물었다.

아무리 깜깜한 밤이고 몸바사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 해도 어제 갔던 길까지 기억 못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정보부에서 임시 거처로 쓰고 있는 곳입니다. 아지트라고나 할까요?”

운전대를 잡은 요원이 룸미러를 통해 힐끗 눈을 맞추고는 미소 지었다.

그 뒤로 20분 정도 울퉁불퉁한 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몸바사 외곽에 자리한 빈민가였다.

과연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싶은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빈민가 한쪽에 세워진 낡은 창고 같은 곳으로 지태를 이끌었다.

“어서 오시오, 미스터 한!”

어제 처음 만난 사이인데 에릭은 벌써 십년지기를 만난 것처럼 지태를 반겼다.

“나를 설레게 만들어줄 여인은 어딨습니까?”

대뜸 터져 나온 뜬금없는 소리에 에릭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호텔 지배인은 내가 여성을 만나러 가는 줄 아니까 하는 말입니다.”

그제야 에릭은 무슨 뜻인지 알아챈 듯했다.

역시나 썰렁한 개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통하지 않는다.

어처구니없어하는 에릭의 표정을 본 지태는 두 번 다시 소질 없는 썰렁한 농담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정보부의 아지트치고는 참 볼품없죠?”

가난한 나라의 정보부라서 그런 것인가.

사실 지태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 크나큰 실례가 될 것 같아 애써 내색하지 않았는데 에릭이 먼저 그런 말을 던져오니 지태는 자못 당황했다.

에릭이 피식 웃는 낯꽃으로 손을 내저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소문 난 빈국이긴 해도 GDP 대비 정보부에 배당되는 한 해 예산은 굉장합니다. 이런 곳을 굳이 아지트로 삼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지요.”

케냐의 경제 사정을 잘 아는 지태로써는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지만, 예의상 인정해주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릭은 곧 지태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말해주었다.

“사무엘과 우방가의 정보라인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입니다. 어설프게 우리들의 신분이나 위치를 위장을 했다간 죽도 밥도 안 돼요.”

“예.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지태가 미소를 담아 고개를 끄덕이자 에릭은 곧 이곳의 살림이 결코 구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듯 커피를 내왔다.

물론 질 좋은 커피를 담아 내놓은 커피 잔은 수입 제품인 듯 최고급 제품이었다.

케냐의 커피가 훌륭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은 원두로 커피를 내렸던 모양이다.

그윽한 향이 입안에 가득 퍼져 나간다.

두어 모금쯤 마셨을 때 에릭이 진지하게 지태를 쳐다보았다.

“괜찮겠습니까?”

“뭘 말입니까?”

“사무엘을 만날 때는 결국 미스터 한 혼자입니다. 물론 우리가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긴 하지만…….”

그가 지금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제도 말했지만 내 한 몸은 내 스스로 지킬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아요.”

“어쩌면 시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놈을 만나게 될 장소 말이오.”

“그럼 몸바사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

“아무래도! 몸바사 시내는 물론 외곽까지 우리 요원들이 샅샅이 뒤졌지만 놈의 흔적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 말인즉 놈은 이 근처에 없다는 얘기겠지요.”

“흠. 그렇군요.”

에릭의 우려에 동조하듯 지태는 잠시 묵음을 흘렸지만, 사실 지태는 그다지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걸 보는 에릭의 입꼬리가 위로 치솟았다.

“하, 이거 참! 미스터 한은 도대체 알 수 없는 사람이군요. 대체 겁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겁니까?”

“겁을 집어먹는다고 해서 내가 빠질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럴 바엔 차라리 즐긴다는 마인드로 임할 수밖에!”

“진짜 친구 삼고 싶은 분이군요, 미스터는!”

“우린 이미 친구 아닌가요? 에릭 역시 괜찮은 분 같은데!”

에릭이 깊은 존경심을 담아 호의를 보여 오니 지태 역시 맞받아 화답해줬다.

“고맙습니다, 미스터!”

에릭이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옆에 선 부하를 돌아보았다.

손짓을 하자 미리 약속된 듯 작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권총 한 정을 안겨드리고 싶지만 어차피 사무엘을 만나기 전에 몸수색을 할 겁니다.”

“100%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권총은 나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로비에서 준비해둔 게 있거든. 근데 이건 뭡니까?”

“위치 추적기입니다. 혹시라도 미행이 여의치 않아 미스터 한을 놓쳤을 경우를 대비하자는 겁니다.”

지태는 에릭이 내민 상자를 열어 보았다.

시계로 위장된 추적기였다.

놈들이 몸수색을 한다 해도 최소한 의심받지는 않을만한 물건이었다.

지태가 시계를 손목에 차며 미소 지었다.

“좋군요. 보기에 좀 조잡하긴 해도.”

“겉은 그래 보여도 비싼 장비가 다 들어 있습니다. 고성능 도청장치까지 삽입해 넣었으니까요.”

“허, 이런! 이거 차고 있는 동안엔 여성과의 잠자리는 피해야겠군요.”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 시간만큼은 우리가 알아서 스피커를 꺼두도록 하죠. 미스터의 뜨거운 사생활을 침해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하하핫.”

“하, 참!”

지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둘 사이에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 느낌이었다.

에릭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내일 하루는 서로 연락을 취하지 말자고 했다.

사무엘을 만나러 가기 직전에만 잊지 말고 곧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지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이곳을 나서는 순간부터 도청을 하고 있을 테니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들에 의해 체크가 될 것이다.

굳이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도 자신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태는 정보부의 아지트를 나와 피터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적당히 시간을 때운 다음 밤이 꽤 깊어서야 호텔로 다시 복귀했다.

* * *

이틀 후.

지태는 오전부터 피터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놈은 어제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돌연 사라진 것을 이상하다 여겨 직원에게 물어보니 며칠간 휴가를 냈다는 거다.

모르긴 해도 우방가와 더불어 어딘가에 짱박혀 열심히 작전을 짜고 있을 것이라는 게 지태의 생각이었다.

조금은 께름칙하고 초조한 가운데 오후로 접어들었다.

그때까지도 피터에게선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뭐가 잘못 돌아가고 있나?’

혹시 놈들이 낌새를 알아차리고 이미 몸바사를 떠난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다시 두어 시간이 흐르고 오후 4시쯤 되었을 때였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요?”

- 예, 피텁니다.

피터의 목소리가 지금처럼 반가운 적은 없었다.

지태가 퍼뜩 문을 열어 주니 피터가 맨 처음 모습을 보였고, 지난번 우방가를 보러 갔을 때 권총을 찬 채 그 옆을 지키고 있던 패거리 중 낯익은 두 놈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모시러 왔습니다, 미스터!”

황당해하는 지태의 모습에 피터는 어색한 웃음을 띠며 안심시키려 했다.

“지금 사무엘을 만나러 출발하는 겁니까?”

“예, 지금 바로!”

“미리 연락이나 주지 그랬소. 아직 옷도 안 갈아입었는데.”

“어디 선보러 가는 건 아니잖습니까. 지금 복장 그대로 가시지요. 제가 보기에 아주 편안해 보이십니다.”

급하게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 눈에 확연했다.

‘이런!’

지태는 씁쓸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놈들에게 불필요한 의심을 사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알겠소. 그럼 스마트폰이나 좀 챙기고.”

“그건 우리가 따로 챙겨서 보관하겠습니다.”

생각보다도 철두철미한 새끼들이었다.

피터가 고갯짓을 하자 두 놈 중 하나가 티테이블 위에 놓아둔 지태의 스마트폰을 챙겨 왔다.

피터가 앞장서서 방을 나갔고 지태가 그 뒤를 따랐다.

덩치 두 놈은 지태의 뒤에 바싹 붙어서 따라왔다.

결박만 안 했을 뿐이지 이건 흡사 끌려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태는 호텔 현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해놓은 놈들의 차에 올랐다.

사파리 투어용 지프차처럼 생긴 SUV이었다.

차에 오르자 두 사내는 물론 피터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약 30분 정도를 달렸을까.

마침내 SUV는 어느 인적 없는 공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외제 SUV 차량 두 대가 더 있었는데 그중 한 대에 우방가가 타고 있었다.

지태가 사파리 투어용 같은 지프차에서 내리자 우방가가 차 밖으로 나왔다.

“어서 오셔!”

놈의 말투가 왠지 건방지게 들렸다.

이제는 제 손에 걸려든 물고기라고 생각한 탓일까.

우방가의 행동은 예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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