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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50화 (50/272)

050화. 심야의 방문객(3)

처음엔 주로 사무엘의 일방적인 말소리만 들려왔다.

우방가로부터 지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 제 나름대로 신원 조회를 해봤다는 내용이었다.

먼저 큐브 인터내셔널 한국 본사에 한지태의 이름을 대며 이런 사람이 해외투자개발본부 소속 과장으로 있는지, 만약 존재한다면 그가 혹시 현재 아프리카 지역을 출장 중인지 등을 캐물었다고 했다.

큐브 측에서 당신은 누구냐, 왜 이런 것을 캐묻느냐고 되묻자 자신은 케냐 상무부 대외협력국장인데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한국인이 있어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녹음 파일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 이제부터 둘 사이에 의미심장한 말들이 오고 갔다.

지태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우방가가 지태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겠느냐고 사무엘에게 묻는 대목이었다.

“사무엘! 이 새끼가 우리한테 오히려 사기를 치려는 것 같은데 확 포를 떠서 하이에나 밥으로 던져 버릴까?”

“아니, 아니! 왠지 그냥 버리기엔 좀 아까워.”

“아깝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전화상으로는 세세하게 말을 못해주는데 암튼 한국 쪽에서 때마침 연락이 왔거든. 놈에 대한 정보를 넘겨주면서 나한테 의외로 재미있는 제안을 하나 해왔단 말이지.”

사무엘 은조로게가 제 말끝에 비릿한 뉘앙스로 끌끌 웃었다.

“제안이라니, 그게 뭔데?”

“그건 나중에 차차 알려줄 테니까 너는 일단 그놈에 대한 작업을 계속 진행해. 코딱지만 하긴 해도 명색이 주식회사의 대표라더군. 놈을 작업하다 보면 뭔가 재미있는 게 건져질 것 같아서 그래.”

사무엘이 의미가 진하게 새겨진 웃음을 흘렸다.

그 이면에는 분명 돈이 될 만한 건수가 숨어있다고 판단한 우방가는 사무엘의 제안을 반기는 듯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호옹! 그래? 그럼 일단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공작을 꾸며야겠구먼, 그래. 알겠어. 그 일은 나에게 맡겨라, 사무엘. 내가 확실하게 작업해놓을 테니까.”

“그렇다고 너무 성급하게 들이대진 마. 그랬다간 죽도 밥도 안 되니까 말이야. 그냥 살살 똥구멍만 좀 긁어 줘. 우리가 내민 미끼를 냉큼 받아 처먹고 싶을 만큼만.”

“걱정 말라니깐! 그런 건 내 전문 아닌가. 자넨 서포터나 잘해.”

“그러지. 암튼 진행사항을 봐가면서 다시 연락할게.”

사무엘과 우방가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녹음 파일을 전부 다 듣고 난 지태가 스마트폰을 에릭에게 다시 돌려주면서 한국말로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허, 이런 개자식들 좀 보소!”

그런 지태를 에릭이 힐끔 돌아보았다.

비록 한국말은 알아듣지 못하나 말하는 억양과 표정으로 대충 알아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지태가 어두운 허공에 대고 입바람을 훅 불어제쳤다.

그러곤 에릭을 돌아보았다.

“에릭! 사무엘 이 개새끼 말입니다.”

“예!”

“혹시 꼭 생포를 해야만 합니까?”

“그게 무슨……?”

“꼭 살려서 데려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냐고 묻는 겁니다.”

“……!”

에릭은 침묵했다.

지태가 하는 말의 의미를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었다.

놈을 기필코 제 손으로 없애고 싶다는 뜻이 너무도 완강해서 잠시 지켜보는 중이다.

이윽고 에릭이 느릿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체포 과정에서 어떤 돌발 변수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럼 부탁합시다. 이놈은 내 손으로 꼭 처리하고 싶습니다.”

“……?”

“대신 에릭이 주도하는 정보부의 사업에 내가 적극 협조하겠소. 내가 기꺼이 놈들의 미끼가 돼드리겠다는 말입니다.”

“허헛, 참!”

에릭이 뭔가 기가 차다는 듯한 헛웃음을 날렸다.

그러다가 곧 정색하며 은근히 말리는 투로 말했다.

“미스터 한! 이 새끼들은 보통 놈들이 아닙니다. 쉽게 볼만한 놈들이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사람의 목숨 알기를 파리 목숨보다 더 가볍게 여기는 아주 위험한 놈들…….”

지태가 말을 잘랐다.

“나에 대해서 많이 파악했다고 했죠? 그럼 내가 대한민국의 특수부대인 해군특수전전단 출신이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

지태의 말에 에릭이 쓰게 웃었다.

이미 지태의 군 경력까지 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그리고 그가 몸담았던 해군특수전전단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몇 해 전인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의 주역이 바로 그 해군특수전전단 소속 대원들이었다는 사실도.

“어쩐지 아까 미스터 한의 실력이 남다르다 생각했습니다. 우리 애들도 하나같이 보통은 넘는 녀석들인데.”

에릭은 사주경계 중인 부하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런 다음 다부진 모습으로 말해주었다.

“좋습니다. 약속하죠. 어차피 선봉에서 사무엘과 접촉할 사람은 다름 아닌 미스터 한이 될 테니까.”

에릭은 둘 사이의 합의가 이루어졌음을 확인받으려는 듯 악수를 청해 왔다.

지태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 * *

지태는 에릭이 불러 준 택시를 타고 호텔로 복귀했다.

정보부 소속의 위장 택시였다.

혹시나 했는데, 지태가 호텔 로비로 들어서자 안내데스크 앞을 초조하게 서성이던 피터가 반갑게 다가왔다.

“아, 미스터 한! 어딜 다녀오시는데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웬 호들갑이냐는 표정으로 지태는 피터의 위아래를 훑었다.

눈치를 알아차린 듯 피터가 머쓱하게 웃었다.

“아까 초저녁에 밖으로 외출한 뒤로 아직까지 들어오질 않아서 내심 걱정했습니다. 혹시 밖에서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돼서 말이죠.”

지태가 일부러 살짝 비꼬듯 말했다.

“암튼 이 호텔은 너무 친절이 과하군요. 외출 나간 고객들의 신변 안전까지 신경을 써 주니 말이오.”

“아, 그건… 다른 분도 아니고 미스터 한이나 되니까 제가 신경을 더…….”

“이제는 내게 신경을 쓸 일도 없잖소. 우방가 씨와의 협상도 깨진 마당에.”

“아! 그러잖아도 그것 때문에 미스터를 기다렸습니다.”

“……?”

“아까 저한테 연락이 왔는데 말입니다. 우방가 씨가 미스터의 제안을 심사숙고한 끝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답니다.”

그러면서 피터는 한 걸음 바싹 다가왔다.

곧 무슨 큰 비밀을 털어놓기라도 하듯 귓가에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사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우방가 씨와 사무엘 씨는 뜻을 함께 하는 동업자입니다. 그니까 이번에 새로 발견된 광산 역시 두 사람의 공동소유라는 말이지요.”

대단한 비밀이라는데 어설프게 반응을 해주면 섭섭하겠지?

지태는 짐짓 호들갑스럽게 너스레를 떨었다.

“아, 그래요? 그럼 사무엘을 만나는 게 어렵지는 않겠군요?”

“그러긴 한데 사무엘 씨가 워낙 외부에 나서는 걸 꺼려해서 말입니다.”

“아하! 그럼 만나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다만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예에, 예. 알겠소. 뭐든 확실하게 결정이 나면 연락해줘요. 시내에 나간 김에 술을 한잔했더니 영 피곤해서……. 그럼 이만!”

적당히 끊고 여운을 남겨두는 게 좋다.

지태는 별로 아쉬울 게 없다는 표정으로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배짱을 튕긴 것이 주효했던 모양이다.

행여 지태를 유인하는 데 낭패를 볼까 싶어 놈들은 조급한 듯했다.

몹시 서두르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정오를 막 넘어섰을 무렵이었다.

똑똑.

객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피터가 직접 올라와 문을 두드린 거였다.

문을 열어주자마자 그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터! 방금 우방가 씨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사무엘 씨와 만나게 해드리겠답니다.”

“아, 그래요?”

“예. 이틀 뒤에 보면 어떻겠냐고 물어보라 하십니다. 그때 미스터의 모든 스케줄을 비워놓으라는 말도 아울러!”

“그렇게 하죠. 알겠소.”

피터를 돌려보낸 지태는 곧바로 에릭의 연락처를 꺼냈다.

케냐 정보부와 협조를 약속한 만큼 정보를 빨리 교환하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지태의 설명을 다 듣더니 불현듯 에릭이 신음성을 흘렸다.

“역시나 스마트폰 말고 다른 연락수단을 이용하는 모양입니다. 통화 감청을 했지만 우린 우방가와 사무엘이 통화하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거든요.”

“얍삽한 놈들이니 더욱 몸을 사리는 거겠죠.”

“미스터 한, 오늘 밤에 다시 좀 뵐까요?”

에릭이 돌연 만남을 청했다.

“그러죠. 어디로 가면 됩니까?”

“미리 기름칠을 좀 해두세요. 지배인 놈이 혹시 어딜 가냐고 묻거든 시내에 나가 모처럼 객고를 풀겠다고 하시고. 어젯밤 봐둔 여자가 있는데 오늘 확실히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허, 참!”

지태가 쓰게 웃자 에릭 역시 머쓱하게 웃었다.

핑계치고는 왠지 궁색하다고 스스로도 느낀 모양이었다.

“여하튼 어제 그 택시를 호텔 앞으로 보낼 테니까 그걸 타고 오시면 됩니다. 시간은 정각 7시로 하죠.”

지태는 알겠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이제 숨 막히는 한판 승부가 점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태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꾸물꾸물 올라오는 긴장감에 휘파람 같은 한숨을 휘이~ 하고 토해 냈다.

* * *

오후 2시쯤 지태는 슬그머니 로비로 나왔다.

에릭의 충고가 아니라도 어차피 기름칠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밤마다 외출이 잦다보면 호텔 내에서 지태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은 피터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살 게 틀림없으니까.

그런데 피터가 보이지 않았다.

“어딜 갔지?”

그러다가 쓰게 웃었다.

하기는 자신이 언제 로비로 내려올 줄 알고 하루 종일 한자리만 지키고 있겠는가.

그때 안내데스크의 여직원이 지태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수상쩍어 보였다.

아무래도 피터가 자리를 비우면서 여직원에게 감시를 부탁을 해놓은 듯했다.

자신이 내려오면 연락을 해달라는.

‘후훗! 시험해보면 알겠지.’

속으로 피식 웃은 지태는 곧 안내데스크 근처로 가서 괜히 그 앞을 어슬렁거렸다.

문제의 그 여직원과 이런저런 농담을 하다가 문득 배가 출출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 점심은 또 뭘 먹지?”

그리고 말을 흘렸다.

이게 피터의 귀에 들어가길 바라면서.

“미스터 한! 오늘은 점심이 좀 늦으셨네요?”

역시나 예감이 맞았다.

레스토랑에서 간단한 요리로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생각이 없어서 그냥 굶으려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서. 그것도 그거지만 오늘 저녁에 약속이 있는데 미리 먹어두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피터가 귀를 활짝 열어두고는 물었다.

“약속이라니요? 무슨…?”

“아, 특별한 것은 아니고, 그냥 이거랑!”

지태가 새끼손가락을 까닥여 보였다.

그게 만국공통어인지 몰라도 피터는 귀신같이 알아듣는 눈치였다.

“콜걸 말씀이십니까?”

“으음, 아니! 어제 술집에서 만난 여대생인데 오늘밤에 만나자고 하더군요.”

“오호! 꽤나 능력자십니다, 미스터 한은! 누군지는 몰라도 오늘밤 화끈하게 한번 줄 모양인데요?”

피터의 은근한 눈짓에 지태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지태가 다시금 객실로 올라왔다.

지태는 시간을 체크한 뒤 곧 조현민에게 전화를 넣어 어젯밤 에릭을 만나게 된 상황과 그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전했다.

- 이거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거 맞지?

조현민은 뭔가 못내 찜찜하다는 듯 케냐에서의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곧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했다는 듯 스스로를 자책했다.

- 니미, 내 입만 아프지. 근데 생각을 해봐라.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놈을 잡으러간 게 아니라 네가 외려 잡히러간 꼴이잖아. 안 그래?

“얼핏 보면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놈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 아닙니까. 즉, 지피지기니까 백전백승일 수밖에 없다는 거!”

- 지랄하네! 매사가 어디 네놈 생각대로 돌아간대? 변수라는 게 있잖아, 변수가! 만에 하나 잘못되면…….

“에이, 걱정 말아요, 형님! 더구나 이번엔 나 혼자도 아니잖아요. 정보부에서 어시스트를 해줄 테니까 위험할 일이 없어요. 암튼 그런 줄 알고 계셔요.”

지태는 서둘러 말을 마무리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더 붙들고 있어 봤자 귀에 못 박히도록 잔소리만 해댈 것이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피식 웃던 지태가 문득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이틀이 지났다.

지은이 자신의 전화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어제는 자신이 너무 가볍게 보일 것 같아서 통화를 하루 빼먹었었다.

어느새 지은에게 중독이라도 된 모양이었다.

그 하루를 참는데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 무지 힘들었었다.

한국은 벌써 열 시가 훌쩍 넘은 시각.

- 뭐예요, 정말! 지태 씨, 진짜 이럴 거야?

지은은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따발총을 갈기듯 마구 쏘아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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