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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으로 쓰는 재벌신화-48화 (48/272)

048화. 심야의 방문객(1)

“말씀하신 대로 원석의 품질은 최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방가 씨에 대해 내 나름대로 좀 더 알아봐야 하겠지만, 만일 내가 우리 회사의 회장님이라면 기꺼이 투자를 하고 싶을 정도군요. 하지만…….”

지태는 잠시 말을 끊었다.

[But!]

우방가의 입 모양이 지태가 마지막 부분에서 끊어 버린 부분, ‘But!’에서 멈춘 채 초조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지태의 말이 곧 이어졌다.

“…내가 우리 회사의 지시를 받기로는 케냐에 가면 사무엘 은조로게 씨를 가장 먼저 찾아보라 했어요. 케냐 정부의 전직 고위관료이면서 광산투자개발의 거물이라는 네임밸류를 굳게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문제는 내 독단으로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럼 미스터 한의 말씀대로라면 본사의 뜻은 오로지 사무엘과 협상을 하라는 것이오? 투자 역시 그에게만 하겠다는 말씀이시고?”

“본사 오너와 임원들의 뜻이 그러하니 나로썬 어쩔 도리가 없네요.”

순간 우방가는 쓴맛을 다셨다.

그러더니 눈동자만 들어 올려 피터를 올려다보았다.

피터 역시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 엿보였다.

“하하핫. 이거 원!”

우방가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가득 울려 퍼졌다.

“내가 괜히 헛심만 뺀 것 같군요. 나 혼자 들떠서 괜히 난리법석을 떨어 댔어.”

“나도 아쉽습니다. 이 원석이 우방가 씨의 새 광산에서 채굴이 된 게 확실하고 인증서가 틀림없다면 충분히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데……. 그래도 일단 위에 보고해보고 다시 본사의 의견을 들어 보기는 하겠습니다.”

“미스터 한의 의중은 잘 알았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라도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군요.”

우방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었다.

이제 볼일이 끝났으니 그만 돌아가 보라는 뜻이다.

지태가 악수를 마치자 우방가는 피터와 차를 몰고 왔던 부하를 근엄하게 쳐다보았다.

“편안하게 잘 모셔!”

* * *

우방가와의 미팅이 별다른 소득도 없이 무위에 그치고 말자 피터는 조금 뻘쭘해하는 표정이었다.

호텔로 복귀한 지태는 그와 로비에서 간단히 인사만 나누고 곧장 객실로 올라왔다.

표현은 못했지만, 내심 긴장하고 있던 터라 방에 들어서자 잔뜩 응축되어 있던 묵은 한숨이 저절로 뱉어졌다.

헐렁한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 던진 다음 그 안에 입고 있던 방탄복을 풀어 침대 위에 던졌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베레타-M9를 꺼내 탄창을 제거한 후 슬라이드를 후퇴시켜 장전된 총알마저 빼냈다.

그러다가 털털하게 웃었다.

“내가 너무 오버했나?”

나름 요란하게 대비를 하고 갔지만 별로 의심스러운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물론 우방가의 아지트로 여겨지는 목장 곳곳에 포진한 사내들의 인상과 바라보는 눈초리들은 살벌했다.

우방가의 명령 한마디면 곧장 자동소총을 갈겨댈 태세처럼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놈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진 자신을 함부로 대하거나 막 나가진 못할 것이다.

지태는 탄창과 분리한 베레타를 침대 위로 던져 놓았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놈들이 지레 포기해버리진 않겠지?”

지태는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던 우방가를 떠올리며 놈의 마음속에 숨겨둔 행간을 읽으려 애썼다.

“에이, 설마!”

무려 1000만 달러였다.

놈이 사무엘과 동업자이거나 그와 어떻게든 연관이 돼있다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과연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

좀 더 기다리다 보면 뭔가 색다른 모양의 반응이 나올 것이다.

“후훗!”

지태는 가벼운 조소를 섞어 피식 웃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밤 11시쯤 되었을 테지만, 조현민은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형님! 벌써 형수님하고 잠자리에 누운 거 아뇨?”

그렇지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툭 던져 본 농담이었다.

아직 가게 문을 닫을 시간도 아니라서 그는 현재 치킨가게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 죽을래? 네놈한테 속아서 한스에 몸담은 이후로 내가 남자 구실을 못해, 인마! 간이 쪼그라드니까 그것도 덩달아 쪼그라든 바람에…….

“형수님 옆에 안 계세요?”

- 나한테 가게 맡기고 근처에 배달 갔다.

“형님, 궁색하게 내 핑계 대지 마셔! 혹시 바람피우는 거 아뇨? 엉뚱한 데에 다 쏟아 붓고는 형수님한테는 국물도 없는…….”

- 시끄러, 인마! 흰소리 그만 때려치우고 얼른 결과나 말해 봐.

조현민은 버럭 소리치는 것으로 지태의 농담을 지우려 했다.

그가 이제는 좀 더 긴장한 음성으로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음…….”

지태가 곧 우방가를 만나서 나눈 이야기들을 빠짐없이 전해주자 조현민의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 내 생각엔 둘 중 하나일 거 같은데?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벌써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게 있나보다.

지태는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신의 생각과 조현민의 추측이 일치하는지를 지켜보려는 거다.

- 하나는 사무엘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투자제안을 포기하는 것이고, 둘째는 엄청난 투자금 때문에 뭔가 다른 방식으로 접근을 해올 것 같다는 생각! 근데 내 생각엔 두 번째가 더 유력해.

지태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생각과 깔맞춤 한 듯 정확히 일치했다.

“내 생각도 그래요, 형님!”

- 그래, 암튼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 참, 근데 무슨 일은 없었고?

“아무 일도 없었어요. 나를 살살 꼬셔야 하는 입장인데 조심을 한다면 오히려 그놈들이 조심하지. 아까 보니까 나를 알기를 무슨 국빈을 모시듯 합디다.”

이렇게라도 말해 두지 않으면 또다시 잔소리가 이어질 것이다.

- 암튼 케냐에 있는 동안 한시라도 절대 긴장 풀지 마. 나 혼자만 가슴 졸이고 있는 거 더럽게 배 아프니까!

“알겠수, 형님. 오늘은 다 잊고 푹 쉬셔. 형수님 즐겁게 해 드리…….”

- 하, 이 자식! 그만 끊어!

뚝.

이번엔 조현민이 지태의 흰소리가 나올 것을 염려해 먼저 선수를 치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끊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다보던 지태는 폰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아니, 내려놓으려다가 말았다.

그리고 입가에 슬그머니 묘한 미소를 걸었다.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 * *

지태는 걸치고 있던 모든 옷들을 다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욕실로 들어왔다.

지은에게 전화를 하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너무 자주 들이대도 자칫 가볍게 여길까봐 아쉽지만 적당히 간격을 두려고 한껏 달아오른 충동을 애써 가라앉혔다.

미지근하게 온수를 틀어 놓고 샤워기 앞에서 반나절 동안 잔뜩 긴장해 있던 근육들을 이완시켰다.

샤워를 마치고는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말이 휴식이지 누워 있는 대부분을 사색에 투자했다고 봐야 한다.

이런저런 여러 가설들을 머릿속에 설정해 두고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다보니 어느새 창밖이 어둑해졌다.

지태는 호텔 객실을 나왔다.

오늘 저녁 식사는 호텔 밖에서 해결할 생각이다.

어젯밤 피터와 술을 마셨던 술집 근처에서 딱 한군데 눈여겨 봐둔 곳이 있었다.

술과 함께 먹거리도 취급하는 그릴(Grill) 같아 보였는데, 오늘 저녁은 거기에서 간단히 해결할 생각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를 가로질러갈 때 마침 밖에서 돌아오던 피터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피터가 어색한 미소로 가볍게 눈인사를 해왔다.

지태는 오른손을 반쯤 올려 대충 화답을 해주고는 무심한 표정으로 호텔 로비를 빠져 나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약 5분쯤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젯밤 찜해두었던 그릴에 도착했다.

지태는 야채와 햄을 적당히 배합해 넣은 샌드위치 두 개와 맥주 한 병으로 간단히 저녁 식사를 때웠다.

술 생각이 그다지 없던 지태는 맥주 한 병을 끝으로 곧 가게를 나와 바닷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철썩, 처얼썩.

파도소리가 들리는 모래사장을 따라 야자수가 길게 늘어진 몸바사 해변의 야경은 가히 예술이었다.

특히 잔잔하게 출렁이는 수면 위에 떠있는 달그림자는 사람의 혼을 쏙 빨아들이는 마력 같은 힘이 있었다.

지태는 마치 그림엽서에나 나올 법한 풍경을 따라 산책하듯 느릿하게 걸었다.

그러나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었고, 두 번째는 기왕 이럴 거라면 차라리 함께할 동반자라도 옆에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물론 그 동반자란 지금 자신의 마음을 잔뜩 간질이고 있는 지은이 분명했다.

“후훗!”

지태는 곧 실없이 웃었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을 품었다는 듯 이내 고개를 털었다.

그러다가 지태는 순간 움찔했다.

더불어 급하게 후회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권총은 둘째치고라도 방탄복이라도 입고 나올걸.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면 뭐 하나.

어차피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지태는 현재 자신의 뒤를 밟는 괴한들을 아직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애써 태연하게 야자수 사이를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태연을 가장한다고 해도 자꾸만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처음엔 두 놈인 줄 알았는데 좀 더 신경을 곤두세워 보니 모두 합해 다섯이었다.

그렇듯 온몸의 모든 촉을 곧추세워 정신을 하나로 집중하니 이제 놈들의 기척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푸삭, 푸사삭.

놈들은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다가오고 있었지만, 좁쌀 같은 모래알들이 뒤로 밀리며 내뱉는 소리까지는 전부 다 감출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 따라온 것인가.

잠시 기억을 더듬는 사이 뒷덜미가 몹시도 간질거린다.

이건 누군가 자신의 등 뒤로 바싹 다가왔다는 몸속 사인.

휘리릭.

순간 지태가 재빨리 몸을 틀었다.

오른쪽으로 몸을 급회전하며 다짜고짜 놈의 팔목을 붙들었다.

망설일 것이 없었다.

어차피 제압하지 못하면 그 자신이 당하고 마니까.

지태는 꽉 잡은 놈의 팔목을 왼손으로 바짝 끌어당기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주먹을 명치끝에 찔러 넣었다.

쩌억!

“억!”

괴한이 새우처럼 등을 굽히며 숨이 턱에 걸린 것 같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뱉어냈다.

지태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한껏 꺾어진 놈의 등허리에 여지없이 강한 엘보를 꽂아 넣었다.

이제 놈은 반항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지태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고통스럽게 바닥을 뒹구는 놈의 몸을 뒤졌다.

가슴께에 차고 있던 권총이 손에 잡혔다.

글록.

지태는 글록을 놈의 관자놀이에 대고 나머지 놈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이놈을 인질 삼아 일단은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의도였다.

이미 지태에게 발각이 되었고, 동료 하나가 눈 깜짝할 새에 당한 후였으니 놈들은 이제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급하게 달려와 지태를 포위하듯 빙 둘러쌌다.

“워, 워! 진정해라. 허튼 짓 하지 말고 일단 총 내려놔!”

“지랄하고 자빠졌네! 너희들 같으면 이 판국에 총을 내려놓겠냐?”

“오해야, 오해! 일단 대화로 풀자고. 자, 잘 봐! 나부터 총을 내려놓을 테니까.”

괴한들의 대가리로 보였다.

그는 정말 자신이 빼들고 있던 권총을 지태가 잘 보이도록 바닥에 툭 던졌다.

그러더니 두 손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린 채 공격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렸다.

빙 둘러싼 나머지 녀석들도 대가리를 따라 권총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 새끼들, 지금 뭐 하자는 시추에이션?’

지태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놈들을 둘러보았다.

놈들의 대가리가 지태를 진정시키려 양손을 아래로 찍어 누르는 듯한 동작을 취해보였다.

“자, 자, 진정하라고, 미스터 한!”

뭐, 미스터 한?

내가 누군지 뻔히 알고서 쫓아온 거라고?

기가 막힌 얼굴로 지태가 재빨리 손에 붙들고 있던 놈의 관자놀이에 글록을 더욱 가깝게 갖다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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